2017.03.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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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 Culinary

[The Chef_유성남 편] 셰프, 맛있는 부티크 호텔을 꿈꾸다. Part of Hotel Project, BRUTUS 유성남 셰프


이태원 경리단 길을 지나자, 이제 막 벌건 해를 산 뒤로 넘기려는 비탈진 주택가를 등지고 언덕 초입의 삼거리가 보인다. 나지막한 담벼락에 그려진 동심 가득한 벽화를 따라 오르다 보면 그 끄트머리에 유로피안 비스트로 ‘브루터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평화로움과 게으른 오후가 발길을 잡는 곳. 인생의 희노애락을 안주삼아 한잔 기울였을 것 같은 와인 병이 유리벽 테라스에 소탈하게 진열돼 있는 이곳은 Part of Hotel Project의 첫 번째 프로젝트, ‘브루터스’의 주인장 유성남 셰프의 그루터기이다. 오래돼도 그리 오래지 않은 듯 4년 차 손 때 묻은 브루터스는 그가 이루고 싶은 작은 호텔, 그 시작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인생의 반전
내로라하는 대기업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5년을 지냈다. 혹독한 야근과 술은 늘 곁에 두고 살았다. 하지만 평생직장인 줄 알았던 대기업은 IMF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간 믿고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 사라지는 듯 했다. 인생의 긴 암흑기는 끝도 알 수 없었고 지금 당장 뭘 해야 하는지 조차 알 수 없이 시간은 흘렀다. 극심한 스트레스 탓에 탈모가 오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고 평생직장이라는 허상 대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찮게 내가 요리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고민 없이 전세금을 털어 호주로 떠났다.
“산에 오르면 물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때가 있어요. 요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기 전, 이 시기가 딱 제 인생의 물안개 같았어요.”


파란 오이와 애호박, 대박 되다
어머니는 파란 오이와 애호박 밭에 있는 꿈을 꾸시고 나를 낳으셨단다. 채소밭 한가운데 있는 꿈이라니.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요리를 할 팔자였나 보다. 황해도 개성의 종갓집에서 태어나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머니까지 계신 대가족에서 자랐다. 종갓집 주방일이 좀 많을까. 김장철마다 4종류의 김치를 담그고 메주 띄우기, 장 담그기, 동짓날 팥죽, 두부, 도토리묵, 인절미, 찹쌀떡 등 떡 빚는 것은 물론 조청을 내려 한과를 만들기까지 종갓집의 부엌은 물기가 마를 날이 없었다. 부엌에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손으로 척척 버무려 낸 음식을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어주는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남자는 부엌에 얼씬도 말라는 핀잔도 들어가며 그저 음식 만드는 것을 구경하려고 부엌의 문지방이 닳도록 따라 다녔는데 모르는 사이 요리는 내게 일상이 돼 있었다.     


혈혈단신 20대의 마지막에서 경험한 쓴 잔
스물 아홉. 거의 서른이 다 되어 요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전화도 받지 않으셨을 정도로 아들에게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전세금을 모두 털어 호주로 떠난 아들에게 집안에서는 단 한 푼도 보태주지 않았다. 혈혈단신으로 호주의 르 꼬르동 블루에 등록했지만 비싼 등록금을 버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것은 물론 도시락도 만들어 팔고, 손수 김치도 담가 팔기도 했지만 결국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요리사로 산다는 것
한국에 돌아와 시간 당 3400원 하는 알바부터 시작했다. 주방에서 말단으로 시작하려니 나이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레스토랑에 면접을 봐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마지막으로 받아준 곳은 예술의 전당 근처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더바도포The Bar-dopo’였는데 정말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루에 18시간에 달하는 노동 강도를 참아 내며 1년 만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한국에서 2~3년간 박봉과 생활고에 허덕이며 살았다. 최근 한국에서 셰프의 주가가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요리사에 대한 처우는 팍팍하기 그지없다. 몸은 몸대로 힘들고 따르는 대가는 미미하지 않은가. 한 달에 120만 원 남짓한 돈을 쥐고서 월세 및 각종 공과금을 제하고 나면 손에 남는 것 없이 훌훌 빠져나가기 일쑤지만 고된 노동도 마다 않고 열정으로 버티는 이 땅의 젊은 요리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사내가 눈물을 보이면 쓰나.’ 사나이 체면에 남들 앞에서 힘든 내색조차 할 수 없었지만, 내 요리를 좋아해주고 응원해준 지금의 아내가 있어 그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었다.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곤 하죠. 인생은 내 분량의 그릇을 만드는 과정인 것 같아요.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채울 수도 있지요.”


마인드가 바뀌면 인생도 변한다
어쩌면 호주에서의 시간들은 요리하는 사람이 가져야할 삶의 가이드라인을 바꿔 놨는지 모르겠다. 아등거리며 살았던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5시면 퇴근해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 저녁을 먹고 산책하고, 주말이면 공원에 나가 피크닉을 즐기면서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그들이 꽤나 인상 깊었다. 그리고 올바른 삶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한국은 감정 컨트롤에 서툰 사회이다. 화, 짜증은 팍팍한 한국의 삶에 자연스러운 본성이 돼버렸다. 평범한 한국 사람이던 그가 호주에 살며 낙천적인 성격으로 변한 것은 셰프 인생의 전환기가 되지 않았을까. 


“한국에 돌아와 주방에서 일하며 화를 낸 건 딱 세 번뿐이에요. 요리를 하고 있는 목적이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된다면 인생이 참 고달프지 않겠어요? 요리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나누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껴요. 내가 만든 음식을 고객이 맛있게 먹어주면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내가 즐기면서 요리할 때 먹는 사람도 그걸 느껴요.”  



7년 만에 갖게 된 타이틀 Head Chef. 그리고 브루터스          
2007년 1월. 압구정 씨네드 쉐프를 오픈하면서 처음으로 헤드 셰프가 됐다. 프렌치를 전공했고 프렌치의 커리어도 쌓았지만 한국인의 정서는 이탈리안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탈리안 파인 다이닝 씨네드 쉐프에서 첫 헤드 셰프를 시작했다. 프렌치가 궁중요리라면 이탈리안은 가정식에 가깝다.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자식으로 손맛의 대물림은 한국의 문화와도 많이 닮아 있었다. 이탈리안 요리의 기본이 되는 함께 나눌 수 있는 편안함. 훗날 브루터스의 탄생을 알리는 시작이 됐다.


Part of Hotel Project, 브루터스(BRUTUS)
유 셰프는 5년간 씨네드 쉐프를 이끌다가 클럽 옥타곤의 주방 설계와 메뉴를 맡게 된다.(클럽 옥타곤은 2015년 EDM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매거진 DJ Mag에서 월드 랭킹 6위, 아시아 랭킹 1위에 오른 곳이다.) 여기에서 만난 인연을 통해 Part of Hotel Project라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만들어졌다. 마케팅, 디자인, 소믈리에, 셰프 각 분야에 몸담고 있는 네 사람이 모여 부티크 호텔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 그 첫 단계가 바로 브루터스다. 레스토랑, 카페 등 호텔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모아 하나의 호텔을 이루고자 한 게 Part of Hotel Project의 시작이다. 지금도 브루터스의 법인명은 Part of Hotel Project인데, 사업 규모가 작다보니 현재 모든 지분은 유 셰프가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푸드 마일리지를 줄인, 안전하고 건강한 재료 추구
2012년 11월에 오픈해 4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브루터스는 고객의 90%가 단골 고객일 정도로 꾸준하다. 유로피언 비스트로로 자리 잡아 메뉴는 물론, 디자인 콘셉트를 잡는 것도 유 셰프가 직접 팔을 걷어 붙였다. 어릴 때 입맛이 평생을 간다고 했다. 현대인의 질병인 성인병이 만연한 시대에 문제의 해답은 음식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패스트푸드나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지게 되면 성인이 돼서는 어떻겠는가. 유 셰프에게 좋은 재료로 만든 건강한 음식을 식탁에 올리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의무가 됐다. 그렇기에 재료를 선별하는 것도 깐깐하다. 유기농 채소를 사용하고 모든 요리에 MSG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데, 특히 시그니처 한우 암소 1++ 스테이크는 그가 고집하는 재료의 자부심이다.
“한국은 트렌드가 너무 빨리 바뀌고 퀄리티보다 가성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고기는 식재료 중에서도 원가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품목입니다. 고기 값은 속일 수가 없어요. 품질이 낮을수록 잡냄새가 날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을 감추기 위해 각종 양념을 첨가할 수 밖에요. 한우만을 고집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이동 거리가 길수록 유통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처리 과정이 필요해요. 질소 포장마저도 인위적이잖아요. 좋은 재료는 본연의 맛으로도 훌륭한 요리가 될 수 있어요. 요리는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데 건강한 음식보다 자극적이고 양 많고 화려한 음식에 열광하는 현상이 안타까워요.”


골목상권 잠식한 대기업의 그늘        
유 셰프는 오너셰프로서 쓴 소리를 좀 해야겠다고 작심한 듯, 의미 있는 말을 이었다. 외국에 가면 오래된 호텔과 레스토랑이 많은 반면, 유행에 민감한 우리나라는 과거의 유산을 이어가는 호텔과 레스토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서양식 레스토랑은 3년 문턱을 넘기가 힘들고 치솟는 임대료에 쫓기 듯 내몰리며,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딱지가 붙고 만다. 오너 셰프가 많아져야 외식업의 뿌리가 깊어질 수 있지만 그러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신사동 가로수길, 방배동 카페골목, 이태원 경리단길... 수없이 많은 골목 상권을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매장이 잠식하면서 다양성과 아기자기함이 존재하던 예전의 모습은 점점 색을 잃고 획일화 되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 외식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존재해야 합니다.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지요. 세월호, 메르스 등의 사건이 터졌을 때 문 닫은 레스토랑이 생각보다 많을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요. 오너 셰프의 자존심은 괜한 말이 아닙니다. 음식의 퀄리티에 대한 자신감이죠. 한국은 대기업들이 외식업에 너무 많이 뛰어들었어요. 원가 경쟁력이나 인력 수급에 있어서 대기업을 따라잡을 수 없죠. 이런 상황에서 작은 레스토랑들이 퀄리티 만으로 대기업과 경쟁이 되겠어요? 결국 대기업에 의해 시장은 획일화되고 다양성은 희미해지는 거죠. 유명한 골목들을 보세요. 처음엔 작은 레스토랑들이 옹기종기 모여 개성 있는 상권이었는데 대기업이 잠식하면서 높은 임대료에 하루에도 수없이 간판이 바뀌는 재미없는 동네가 되고 있잖아요.” 


유성남 셰프는 꿈을 꾼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과거에서 현재까지 색을 고스란히 지닌 부티크 호텔을 만들고 싶은 그림을 그린다. 서울을 떠난 어느 작은 동네, 산과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더 좋겠다. 아마 그 때는 호텔 안에 있을 브루터스에서 여전히 그를 찾는 손님을 위해 요리할 것이다. Part of Hotel Project를 완성하는 그 날.


Epilogue#

헉헉 대며 뛰었지만 한발 늦었다. 이미 촬영이 한창인 브루터스에는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벌컥 문을 열었는데, 하마터면 방해꾼이 될 뻔 했다. 포즈를 취하던 셰프는 초면에도 어색하지 않을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유성남 셰프. 이미 몸짱 셰프로도 유명한 터라 카메라 앞에 선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로 스포츠 의류 화보 촬영을 다녀왔다니, 말 다했다. 본업이 셰프가 맞는 지 궁금하다면 셰프 나이프를 손에 쥔 그의 모습을 슬쩍 엿보길. 요리를 할 때는 오직 요리 외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며 칼 앞에서는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촬영하던 유성남 셰프. 주방에서의 체력은 필수이므로 마라톤, 수영, 사이클, 웨이트 트레이닝 가릴 것 없이 하루 두 시간씩 운동으로 체력을 유지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게 요리를 하고 싶어서인 게다. 술과 음식과 사람. 이 셋의 조화가 완벽하다면 그곳엔 브루터스, 유성남 셰프가 있을 것 같다.


셰프의 애장품



# 첫 직장 첫 월급으로 구입한 가방
1995년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받은 첫 월급으로 일본 출장길에 구입한 가죽 가방.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가졌던 초심을 생각하며 지금까지도 서류가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 아버지의 결혼 시계
한국전쟁 때 월남하신 아버지가 남한에 정착하시면서 결혼하실 때 어렵게 장만한 시계.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삶을 거울삼아 간직하고 있다.


유성남 셰프
2015.09~2015.12  채널A 구원의 밥상 요리전문가 패널 및 메인셰프
2015.07  베트남 국영 하노이 TV 한국홍보영상물 제작
2015.05~현재  EBS 최고의 요리비결, KBS2TV 아침, MBC 기분좋은 날 요리패널
2015.05  이데일리 캠핑요리대회 심사위원
2015.05  푸드잡지 Essen 셰프 특집 인터뷰 외 다수
2014.10~2015.05  EBS 최고의 선택 프로그램 진행
2014.12  중국 베이징 U-town 내 레스토랑 및 클럽 컨설팅
2014.03~현재  메뉴판닷컴 요리자문단
2013.09~2016.05 MBC 찾아라 맛있는TV 맛 검증단
2012.11~현재  Part of hotel Project ‘Brutus’ 레스토랑 오너 셰프
2011.08~현재  인천문예전문학교 호텔조리, 푸드스타일, 파티플래너과 겸임교수
2011.10~2012.10  Club&Restaurants Octagon 주방설계 및 컨설팅
2012.08  프랑스 주방브랜드 르꾸르제&인스타일 10월호 쿠킹클래스
2012~현재  Essen, 월간 외식경영, 에센, 에스콰이어, 갤러리아 아우디 매거진, 외 다수
2007.01~2011.10  CJ CGV Cine de Chef Grand Open&Executive Chef
2010.09  매거진 맨즈헬스 한국의 대표적 미중년 30명 선정
2011.04~현재  현대백화점(무역센터, 압구정, 킨텍스) 문화센터 쿠킹클래스 강의
2009.08~2010.08  채널CGV 주말N영화 味 in Movie 메뉴 구성 및 최정윤님 공동 진행
2007.09  SBS 이홍렬의 요리왕중왕전 추석특집 French 부문 출전
2005.04~2006.05  8-steps French Bistro Consulting & Kitchen Master
2004.06~2005.04  ‘Palais de Gaumont’ French Cuisine Restaurant Chef de Partie
2004.05~2005.06  The Bar Dopo Italian Cuisine Bistro Chef
2000.02~2002.04  Red Ochre Australian Restaurant Assistant Chef (AU Adela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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