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의 Hotel Architectural Design Guide] 건축설계사무소의 Hotel Branding

2019.06.05 09:20:30


90년대 초 건축과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한때 건축과의 경쟁률이 엄청 높아진 때가 있었다. 어찌 보면 필자도 그 시대에 건축과에 입학을 하고 설계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한 세대로 볼 수 있을 듯하다. 당시 건축설계는 지금 일반인들의 인식에 자리 잡고 있는 건축가의 모습과 동일하게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업무가 주였다. 건축주가 특정 용도의 건물을 짓고 싶다고 프로젝트를 의뢰하면 어떤 형태로 디자인할지 고민하고 몇 가지 아이디어를 건축주에게 제안 후 최종 계획안을 결정, 다음 단계로 인·허가를 진행한다. 그 이후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상세도면(실시설계)을 작성해 건축주에게 전달한다. 건축주는 그 상세도면을 가지고 건물을 지을 건설사를 선정하고 착공을 하게 된다. 건물이 지어지는 동안 건축가는 주기적으로 건설사 및 건축주와 실제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문제점들을 협의, 솔루션을 제시하며 최종적으로 건물이 완공되면 초기에 생각했던 디자인 의도에 맞게 지어졌는지 둘러보며 기뻐하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했다. 첫 호텔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할 때까지도 건축설계는 이전 방식과 동일하게 설계가 진행됐다. 호텔의 콘셉트 및 운영사가 초기 상품기획 단계에서 결정된 이후 건축가는 건물의 디자인과 시스템, 인·허가 등에 개인의 역량을 집중해 업무를 완료했고, 준공된 건축물을 보며 또 한 번 좋은 작품을 완성했다는 희열을 느꼈다.



경쟁구조의 변화
하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사회를 점점 고도화시키고 업종간의 경계를 없애며 경쟁이 심화되는 계기가 됐다. 그에 더해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탄생한 에어비앤비는 ‘숙박공유 서비스’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 글로벌 호텔업계를 위협했고 그 성장은 국내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무한경쟁 시기에 신규 호텔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건축주들은 도대체 어떤 콘셉트의 호텔을 만들어야 하는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디자인을 본업으로 하고 있는 건축설계 사무소 역시 이러한 환경변화에 예외는 아니어서 고객들에게 건물에 대한 기본 디자인 및 시스템 외에도 사업 방향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들의 제공을 통해 사업을 같이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업무행태를 변화시키고 있다.



호텔업=숙박(Lodge)+플랫폼(Platform)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에 필자가 몸담고 있는 건축설계 사무소는 4, 5년 전부터 디자인전략 부서를 신설, 본격적인 사회변화 및 트렌드에 대한 리서치를 시작했고 주요 스터디 분야 중의 하나가 호텔이다. 다양한 스터디 내용들 중 최근 가장 깊게 연구하고 있는 것이 호텔업의 시대변화에 따른 구조적 변화다. 사회적인 변화에 대응해 호텔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 기능인 숙박(Lodge)에 더해 플랫폼(Platform)의 성격이 더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플랫폼’ 하면 기차를 타고 내리는 정거장이 먼저 떠오른다. 플랫폼은 한마디로 무언가를 타고 내리는 승강장이다. 본래 기차를 승·하차하는 공간이나 강사, 음악 지휘자, 선수 등이 사용하는 무대·강단 등을 뜻했으나 그 의미가 확대돼 특정 장치나 시스템 등에서 이를 구성하는 기초가 되는 틀 또는 골격을 지칭하는 용어로, 컴퓨터 시스템·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플랫폼의 속성을 분석해 보면 근본 원리는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플랫폼은 공통의 활용 요소를 바탕으로 본연의 역할도 수행하지만, 보완적인 파생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제조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이를 호텔분야에 대입해 보면 호텔은 입고, 먹고, 휴식을 취하는 삶의 모든 순간을 새로운 경험으로 만드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일상은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끊임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다. 과거에는 모두가 대량으로 공급된 상품을 같은 방식으로 소비했으나, 이제 사람들은 각자가 필요한 요소를 찾아 직접 소비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지출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나가길 원하고 있지만 기존의 호텔들은 이러한 지점에서 새로운 소비 욕구를 전혀 충족해 줄 수 없었다. 대형 호텔 체인들은 표준화된 매뉴얼로 모든 시설과 서비스를 관리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장이 유사한 호텔 상품들로 채워졌다.


차별화의 유일한 요소로 남겨진 것은 위치뿐이었고, 동시에 상품의 가격을 부풀리기 위한 다른 방법들이 동원됐다.


예를 들어, 객실의 금고는 일반적으로 사용 빈도가 높지 않지만, 필요할 수도 있는 상황에 대비해 대부분의 객실에 설치된다. 소비자는 실제 사용여부와 무관하게 금고 사용료가 포함된 숙박료를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상품을 접하기 힘들었던 과거에 소비자들은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에어비앤비의 탄생 이후, 소비자들은 호텔만큼이나 많은, 호텔보다 다양한 가치를 제공하는 대체재들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게 됐고, 소비자가 실질적인 선택권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제 호텔은 불합리한 가격의, 천편일률적인 객실로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으며, 대신 독보적인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자들 간 교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플랫폼이 되고 있다.


사실 호텔은, 그 어떤 사업보다 플랫폼으로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24시간 고객과 교류할 수 있으며,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IT 기술을 접목한 공간 중개 스타트업들이 혁신을 선도하는 가운데, 호텔은 고리타분한 숙박사업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호텔은 가장 역동적인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에서 자기변화를 꾀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건축가의 업무영역 역시 본질적인 디자인 업무에 더해 축적된 건축물의 DB와 추가적인 리서치 업무를 결합, 현재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고 있는 건축주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주는 업무가 주업이 될 것이고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효상
(주)간삼건축 호텔그룹 이사


공간적인 특성 및 전문화가 요구되는 간삼건축의 호텔설계를 전담하고 있으며 주요작품으로는 명동성당 종합계획(1단계), 홍천 블루마운틴 CC 클럽하우스, 알로프트 서울 강남,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보타닉 파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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