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 혹은 실수
몇 해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한 사진을 보고 격한 공감을 한 적이 있다. 프랑스 사진작가인 사샤 골드버거(Sacha Goldberger)의 작품으로 아이언맨이 16세기의 고풍적인 의상을 입고 있는 상당히 특이한 이미지였다. 이 사진에 마음이 간 이유는 마침 그 당시에 처음으로 설계한 호텔이 오픈을 앞둔 시기였는데 묘하게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호텔의 외관은 라임스톤(석재의 한 종류)을 기반으로 모던클래식(Modern Classic)한 입면으로 디자인한 반면 내부 인테리어는 컬러풀하고 트렌디한 aloft 호텔 강남의 모습이 필자에게는 최첨단 아이언맨이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이미지와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런 외관과 내부의 대비되는 디자인 결과물은 처음부터 의도한 연출은 아니었고, 이번에 이야기하려는 주제인 호텔설계 프로세스의 중요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프로세스의 역주행
앞선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호텔사업 프로세스는 상품기획(Product Planning) 및 상품재원(Financing) 단계에서 호텔 브랜드가 결정되고 그 브랜드의 콘셉트를 기초로 건축 및 인테리어 설계가 진행되는 것이 통상적이다. 하지만 해외호텔 브랜드가 도입되는 프로젝트들에서는 건축설계가 완료되고, 이후 인테리어 디자인 단계에서 최종 브랜드가 결정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aloft 서울 강남 역시 전형적으로 이에 해당하는 사례인데 초기 상품기획 단계에서 검토되던 브랜드는 인터컨티넨탈 호텔그룹(IHG)의 Holiday Inn이었다.
Midscale 규모의 편안함, 가치, 신뢰가 브랜드 콘셉트로 전 세계적으로 약 1200개의 호텔을 운영, 1952년에 만들어진 상당히 대중적이고 역사를 가진 브랜드다. 반면 스타우드 호텔 & 리조트(SPG)의 aloft 는 2005년에 브랜드 론칭됐고, Style at a Steal 이란 모토로 현대적, 신선함, 재미있는 목적지란 콘셉트를 가진 유니크한 브랜드였다. 이미 Holiday Inn의 콘셉트를 기초로 건축설계 및 인허가까지 완료된 상태였기 때문에 새로운 브랜드의 콘셉트를 반영한 설계변경은 당시 프로젝트 여건상 어려움이 있었고, 결국 인테리어 디자인만 브랜드에 맞춰 변경이 이뤄지고 다음 단계인 건설(Construction)로 넘어가게 되면서 지금의 내외부가 대비되는 결과물이 탄생됐다. 물론 모든 호텔의 건축디자인이 브랜드 콘셉트를 반영해 만들어지냐고 반문한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천 개의 호텔 브랜드가 존재하는데 하나하나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하고 호텔의 건축외관 역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다만 그 중에서도 명쾌한 자신만의 콘셉트를 가진 호텔 브랜드의 경우에는 그러한 개념이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건축외관에서도 표현된다면 디자인의 완성도 및 호텔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aloft 강남 이후 2017년에 2번째로 국내에 오픈한 aloft 명동 역시 유사한 외관재료 및 디자인 스타일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서 선례로 작용한 듯해 불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프로세스의 또 다른 불균형 현상은 건축설계와 비슷한 시점에 진행되는 인테리어 디자인 단계가 너무 늦게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건축설계의 첫 단계인 계획설계(Schematic Design) 완료 시점에 시작하는 것이 전체 스케줄을 고려한다면 정상적인데 몇몇 프로젝트에서는 건설(Construction)단계인 착공 이후 인테리어 설계를 시작하곤 한다. 이럴 경우 인테리어 디자인에 따른 건축설계 변경이 필수적으로 수반되고 결국 건축주는 추가비용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건축가 역할의 변화
보편적인 사업 프로세스를 대다수의 건축주가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 및 운영상의 불리함을 발생시키는 이런 상황들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첫 번째로는 건축주들이 사업의 리스크 해소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건축설계 및 건설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인허가, 착공 등의 법적행위들이 빨라질수록 금용조달의 용이성 및 사업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브랜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을 들 수 있다. 브랜드, 건축, 인테리어의 콘셉트가 통일되지 않고 다르게 만들어지더라도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호텔 건축설계를 하고 있는 현업에서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이 이 프로세스의 불균형이며 이에 대한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전통적인 건축가의 역할을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브랜드 및 프로그램이 결정된 상태에서 단순히 건축설계만을 진행한다는 인식으로는 프로세스의 불일치가 반복될 수밖에 없고 문제점들은 지속될 것이다.
건축가 자신이 브랜드 및 호텔 프로그램에 대한 전문성을 쌓고 건축주에게 적극적으로 자료 제공 및 프로젝트 초기 단계를 리드한다면 여러 문제점들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고 수백억에서 많게는 수천억이 소요되는 대규모 호텔사업의 리스크 감소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Hotel Architectural Design Guide Contents
1. 호텔설계 프로세스
Courtyard Marriott Seoul Botanic Park 사례를 Aloft호텔 중심으로 건축설계
진행시 발생된 프로세스 상의 차이점
2. First Impression_ 호텔의 첫인상
호텔 주출입구, 로비 등 공용공간을 중심으로 고객들이 호텔에 대해 느끼는 첫인상에 대한 건축설계의 의도
3. Maximum View_ 호텔 조망의 가치
호텔 투숙할 때 객실 및 공용공간에서 바라보는 전망의 가치가 건축설계에 미치는 영향
4. 호텔의 숨겨진 공간_ B.O.H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호텔 후방공간에 대한 소개 및 설계 시 주요사항
5. 호텔 브랜드 & 자동차 브랜드
해외 브랜드에 대한 소개 및 호텔설계에 미치는 브랜드의 세부 사항
6. 호텔건축 트랜드
관광호텔 특별법 종료 이후 진행되고 있는 호텔 건축의 트렌드
이효상
(주)간삼건축 호텔그룹 이사
공간적인 특성 및 전문화가 요구되는 간삼건축의 호텔설계를 전담하고 있으며 주요작품으로는 명동성당 종합계획(1단계), 홍천 블루마운틴 CC 클럽하우스, 알로프트 서울 강남,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보타닉 파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