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4개의 큰 섬과 대략 3000개가 넘는 부속도시로 이루어진 열도다. 국토의 ⅔은 개발이 힘들만큼 험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일본 농토의 절반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주식인 쌀농사에 이용되고 있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동식물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은 단 한 번도 국가적인 식량난을 겪은 적이 없었다.
어류자원이 풍부한 일본
고대 일본 야먀토 시대의 기록물들을 보면, 일본은 20가지가 넘는 토종식물과 120가지가 넘는 육류와 생선요리가 기록돼 있을 정도로 엄청난 동식물자원과 오래된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일본은 섬나라인 만큼 풍부한 어류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4대 어장 중 한 곳인 서태평양 어장, 대한해협어장, 센다이 어장, 동해 등 일본 전체가 비옥한 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세계 어획량의 8%를 담당하고 있고, 1인당 연간 어류 소비량이 70kg이 넘어갈 만큼 어류를 많이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일본의 식량관련 상황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일본은 90%의 식량자원을 해외에서 수입하며 세계에서 손꼽는 수입국이 됐다.
일본의 이이토코토리 정신으로 해석한 음식문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요리와 음식문화는 외국의 영향을 받으며 수많은 변모를 해왔다. 하지만, 일본요리는 다른 나라의 음식문화의 변화와는 사뭇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일본화된 외국요리의 역수출이다. 대표적인 예로 카레라이스와 고로케를 들 수 있다. 카레라이스의 원조는 인도의 커리, 고로케의 원조는 프랑스의 고로케다. 하지만 일본식 현지화로 원조들과는 다른 하나의 요리로 인정받고 있다.
이렇듯 일본 스타일로 재해석한 외국 요리의 역수출은 일본의 이이토코토리(좋은 것은 받아들인다) 정신과 관련이 깊다. 이이토코리 정신은 아무리 남의 것이라도 좋은 문화요소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일본 특유의 세계관이다. 이는 비단 음식문화 뿐만 아니라 과거 근대 일본의 서구화, 일본의 전자제품 등 현대 일본의 정체성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이토코토리 정신의 영향인지, 일본요리 중에서 전통적으로 ‘일본스럽다’라고 할 수 있는 요리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식사문화
그렇지만 진정한 ‘일본’스러운 음식은 일본의 식사문화 자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요리와 식사문화는 재료 각각의 맛과 정체성을 존중한다. 따라서 서로 다른 요리는 양에 상관없이 다른 그릇에 담겨 나오고 같은 그릇에 나오더라도 잎 같은 것으로 분리돼 나온다. 이런 식사문화는 가마쿠라 막부시대(1192~1333년)에 만들어졌다.
일본 음식문화에 있어서 타국의 영향은 신석기시대였던 기원전 1250년 중국으로부터 시작됐다. 기원전 600년 쌀농사가 중국으로부터 전해졌고 뒤를 이어 젓가락, 간장, 두부 등이 중국으로부터 소개됐다. 이후, 쌀을 이용한 제면기술, 우동면, 메밀면 역시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 따라서, 일본 요리문화에 있어서 중국의 영향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중국의 문화들은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는데 쌀농사가 보급된 이후에도, 쌀은 부의 상징이었고 일반인들은 잡곡을 먹었다. 더불어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사무라이들의 징세대상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당시 일본에서는 비밀 논에서 쌀을 재배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이러한 비밀 논에서 재배된 쌀 덕분에 일본의 쌀을 이용한 제사음식들이 발달했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에게 쌀은 여전히 사치의 대상이었고 그 결과, 14세기와 15세기에 들어온 밀과 메밀의 제면기술을 이용한 면 요리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런 면 요리는 특히 17세기 에도막부 시대에 큰 인기를 누렸다.
일본 음식에 생선이 주류가 된 이유
고대 일본음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일본요리의 핵심은 생선, 육류, 절인 채소, 콩(특히 풋콩)이라고 할 수 있다. 육류와 아스카시대(552~645년)에 전해진 유제품류는 한때 금지품목에 오르기도 했다. 헤이안시대(794~1185년)는 일본에서 불교가 정점을 찍은 시기였다. 일본 여성문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궁중야사와 영웅설화마저도 이 시기에는 불교적인 색채를 띠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육류와 유제품은 많은 핍박을 받았다. 유제품과 육류는 징세품목으로 지정됐다. 급기야 덴노가 4월과 9월 사이에 도축금지를 선언하면서 한때 육류와 유제품을 이용한 요리들은 일본요리사 속에서 존폐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런 육류에 대한 탄압은 가마쿠라시대까지 이어졌고, 근대에 해당하는 메이지시대(1866~1912년)에 가서야 이러한 육류에 대한 제한조치가 풀렸다. 이런 육류에 대한 조치는 모두 살생의 금하라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육류가 금지된 것은 아니었다. 개나 고양이, 사슴 정도는 허용됐다. 이런 육류에 대한 제한 덕분에, 752년 생선류에도 금지조치가 내려지기 전까지 일본의 생선요리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일본요리의 중심은 육류보다 생선 쪽에 실리게 됐다.
일본에 전래된 기독교는 일본사회와 요리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육류에 대한 제한조치도 기독교의 전래가 큰 역할을 했다. 16세기부터 일본은 네덜란드, 포르투갈과 같은 유럽의 무역국가들과 제한적인 교류를 해왔다. 이 과정에서 조총, 비누, 담배, 설탕, 옥수수 등 다양한 선진문물들이 들어왔고 이 과정에서 많은 음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포르투갈에서 들어온 ‘덴푸라’ 와 ‘카스테라’다. ‘카스테라’라는 말은 스페인의 스펀지케이크인 ‘Pao de castela’와 ‘카라멜’의 합성어다.
일본 스시의 역사
스시는 우동, 카레라이스 등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스시의 기원은 메콩강 인근에서 시작됐다. ‘나레즈시’라고 불리는 이 음식은 생선과 쌀을 같이 발효시켜 쌀은 버리고 발효된 생선만 먹는 요리로, 일본에 야요이시대(기원전 300~250년)에 전해졌다. 일본에 와서 나레즈시는 10세기 ‘후나즈시’라는 요리로 발전한다. 후나즈시는 교토인근 비와 강에서 사는 ‘니고로부나’라는 물고기로 만들지만, 오늘날에는 어획량문제로 인해 ‘후나’라는 물고기로 대체해서 만든다. 후나즈시는 1년간 소금에 발효시킨 생선을 밥과 함께 다시 4년을 발효시켜 만든다. 발효 시기는 다양한데 어떤 것들은 100년 이상 발효되기도 한다. 필자의 경험으로, 맛은 한국의 홍어와 비슷하며 진한 암모니아향을 누르기 위해 사케를 마셔야 할 정도다. 이런 냄새로 인해 종종 발효과정이나 시기가 줄어들기도 한다고. 이후, 후나즈시는 ‘나마나레’라는 또 다른 형태의 요리를 탄생시킨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탄생한 나마나레는 후나즈시와는 다르게 발효 없이 신선한 생선을 밥으로 싸서 만든다. 18세기 초, 오사카에서는 오시즈시라는 초기 형태의 스시가 탄생했고, 이것이 에도막부시기(1603~1868년) 하야즈시로 발전한 것이다. 하야즈시는 처음으로 초기 스시 중에서 밥과 생선은 같이 먹는 첫 시도였다. 1750년, 해초를 얇게 써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마키즈시’와 ‘모키즈시’라는 새로운 종류의 스시류가 생겨났다. 이때의 ‘마키즈시’는 지금의 마키즈시와는 다르게 해초가 밥에 들어가 있는 형태였다. 도호쿠와 훗카이도 지방에서는 ‘이즈시’라는 새로운 스시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잡곡밥위에 야채와 생선을 얹고 사케를 뿌리고 그 위에 돌을 얹어 발효시키는 요리였다.
우리가 아는 형태의 스시는 1800년이 돼서야 나타났다. ‘니기리즈시’라는 오늘날 스시의 원형은 식초간을 한 밥 위에 간이 돼 있는 생선을 얹어 간장을 찍지 않는 형태였다. 니기리즈시는 고급음식이 아닌 길거리음식에 가까웠다.
개성을 존중하는 일본의 음식문화
일본의 음식문화는 식재료 하나하나의 개성을 존중한다. 일본 요리는 재료의 신선도와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을 중시한다. 하지만, 재료자체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조화다. 따라서, 여러가지 재료를 섞거나 볶아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한국요리와는 또다른 맛과 풍미를 가지고 있다. 일본음식은 일본의 국민성과 크게 닮아 있다. 일본은 와(和)라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개성은 존중되는 개인주의적인 관점도 있지만, 사회 전반을 보면 구성원 전체의 조화를 최우선시하는 분위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런 와(和) 문화는 크게 보면 일본정치의 극우화를 이끌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갈등을 줄이고 일본 특유의 배려문화를 형성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일본음식문화는 일본사회 그 자체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셸 이경란
MPS 스마트쿠키 연구소 대표
Univ. of Massachusetts에서 호텔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오랫동안 제과 분야에서 일해 왔다. 대한민국 최초 쿠키아티스트이자 음식문화평론가로서 활동 중이며 현재 MPS 스마트쿠키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