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담아 요리한다.” 여기서 에릭 리퍼트가 말하는 ‘소울(Soul)’을 한국어로 직역하면 ‘영혼’이라는 다소 과한, 한국식 표현이 된다. 지난해 그의 레스토랑, 르 베르나댕(Le Bernardin)을 방문하기 전 우연히 접한 문구다. 한국어로 좀 더 자연스럽게 ‘혼신을 다해’, ‘온갖 정성을 다해’ 등의 표현으로 번역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진솔하고 열정적이다 못해 파워풀(Powerful)한 그의 요리인생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나의 눈에 비춰진 그의 모습은 진정한 ‘소울맨(Soul Man)’이었다. 에릭 리퍼트의 요리에는 그의 영혼이 담겨있다.
해산물 요리로 세계를 매료시킨 에릭 리퍼트 셰프
미국, 아니 세계를 대표하는 릭 리퍼트 셰프는 지난 30여 년간 수 없이 많은 영예로운 타이틀들을 얻었다. 그리고 작년 12월, *라 리스트 2019 ‘세계 1000대 레스토랑’ 발표에서 그의 레스토랑 ‘르 베르나르댕’이 ‘세계 1위 레스토랑’이라는 또 다른 영예로운 타이틀을 거머쥐며 다시 한 번 미국 및 세계 미식인들과 미디어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 라 리스트(La Liste): 최초의 세계 레스토랑 리뷰 애그리게이터, 라 리스트 2019의 세계 1000대 레스토랑 ‘세계 1위 레스토랑’으로 뉴욕의 ‘르 베르나르댕’과 파리의 ‘레스토랑 기사브아’가 선정됐다.
라 리스트(La Liste) 2019 시상식 현장_ 프랑스 외무성(세계 공동 1위 기사브아 셰프(왼), 에릭 리퍼트 셰프(우)
에릭 리퍼트 셰프는 1965년 프랑스 남부 앙티브(Antibes)에서 태어나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선에 위치한 안도라(Andorra)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요리 실력이 뛰어난 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요리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됐고 15세에 요리전문학교에 진학했다. 졸업 후인 17세부터는 파리의 4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레스토랑 ‘라 뚜흐 다흐졍(La Tour d’Argent)’,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셰프 ‘조엘 로부숑(Joël Robuchon)’의 ‘자맹(Jamin)’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았다. 1989년 미국 워싱텅DC의 워터게이트 호텔(Watergate Hotel)의 셰프 쟝루이 팔라댕(Jean-Louis Palladin), 셰프 데이빗 불리(David Bouley)의 수 셰프(Sous Chef)를 지낸 뒤, 당시 르 베르나댕의 남매오너였던 길버트 & 마기 르 코즈(Gilbert & Maguy Le Coze)의 스카웃 제안을 받고 르 베르나댕에 합류했다. 1994년, 그와 ‘르 베르나댕’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르 베르나댕’으로 이직 후, 에릭 리퍼트는 바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5년 29세의 최연소 셰프로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 4스타를 받아냈으며 1998년에는 제임스 비어드 재단(James Beard Foundation)에 의해 뉴욕의 톱 셰프로, 2003년에는 ‘미국의 아웃스탠딩(outstanding) 셰프’로 선정됐다. 30대에 이미 세계 미식 트렌드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승승장구하며 큰 성공을 거둔 그는 미국의 유명 TV 방송인 ‘톱 셰프(Top Chef)’에서 멘토 및 심사위원으로, ‘아벡 에릭(Avec Eric)’에서는 한국을 포함해 세계 곳곳을 다니며 다양한 식문화 및 요리를 배우고 소개하고 있다. 세계 최정상의 셰프로, 방송인으로, 작가로, 자선단체의 부대표로 그의 하루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에릭 리퍼트는 “요리는 그의 삶이며 그의 삶의 가치는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라고 말한다. 르 베르나르댕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계절메뉴는 물론 그의 영감에 의해 새로운 디시들이 수시로, 끊임없이 개발된다. “에릭 리퍼트에게 인기있는 디시는 곧 ‘과거의 성공’으로 간주돼 그의 메뉴에서 바로 제외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튜나와 프아그라’ 디시는 지난 수년간 르 베르나댕 메뉴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는 유일한 디시다.) 30여 년 차의 셰프인 그는 현재도 뉴욕은 물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직접 트렌드를 파악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이렇게 ‘변화와 발전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는 그의 가치관과 피나는 노력이 오늘날 그를 세계 최정상에 우뚝 서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라 리스트 2019 세계 1위 레스토랑, 르 베르나르댕
레스토랑 르 베르나댕은 세계 가스트로노미 트렌드의 중심이자 끊임없이 변화하는 뉴욕에서 지난 30년 이상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세계 최정상급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레스토랑이다.
르 베르나르댕의 역사는 1972년 파리의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으로 시작됐다. 에릭 리퍼트 셰프와 현재 레스토랑 르 베르나르댕 뉴욕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마기 르 코즈(Maguy Le Coze)와 그녀의 오빠 길버트 르 코즈(Gilbert Le Coze)는 파리에서의 큰 성공에 힘입어 1986년 르 베르나르댕 뉴욕을 오픈했다. 르 베르나르댕의 해산물 요 리는 프렌치 스타일로 심플(Simple)하며 재료 본연의 맛을 섬세하게 살려냈다. 당시 육류 위주의 요리들이 주가 됐던 미국에서 프렌치 스타일의 ‘고급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의 오픈 소식에 많은 이들이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르 베르나르댕이 까다로운 뉴요커들의 입맛을 오로지 해산물(Seafood) 요리로 사로잡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픈 3개월 후, 뉴욕타임즈로부터 최고점인 별 4개를 받아 최단기간에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인정받았음은 물론 이를 가장 오래 유지한 레스토랑으로 기록됐다. 또한 1976년에 첫 미쉐린 스타를 1980년에는 두 개의 별을 추가하며 뉴욕은 물론 세계 미식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해산물 레스토랑’이라고 각인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토록 승승장구하던 르 베르나댕의 선장과도 같았던 오너 셰프 길버트 르 코즈가 1994년 갑작스레 사망했고 그의 수셰프였던 에릭 리퍼트가 르 베르나댕의 총괄 셰프직을 맡았다. 그리고 현재도 르 베르나댕의 공동 경영자인 마기 르 코즈와 에릭 리퍼트의 지휘 아래, 르 베르나댕의 순항은 계속 되고 있다.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이 노력하고 진화해야 한다”
라 리스트 2019 세계 1000대 레스토랑 발표에서 레스토랑 르 베르나댕이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됐다. 이에 대한 소감은?
개인적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이자 큰 영광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셰프들과 레스토랑들 사이에서 르 베르나댕이 이런 영예롭고 권위있는 상을 받게 된 것이 믿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를 가능하게 해 준 나의 파트너 마기 르 코즈와 르 베르나댕의 모든 가족의 엄청난 노력과 열정 그리고 헌신에 감사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뉴욕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수많은 레스토랑이 생기고 없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도시다. 이곳 뉴욕에서 르 베르나댕은 지난 수 십년 간 세계 최전상급의 레스토랑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특별한 비결이 있는가?
르 베르나댕이 가장 노력을 기울이는 점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즉, 기복없이 매일 최상의 음식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들에게 단순한 한끼 식사가 아닌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비즈니스, 기념일, 일생에 한 번인 특별한 식사 등 각기 다른 목적으로 레스토랑을 찾는 고객들의 방문 목적을 미리 이해하고 그에 맞는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주방과 서비스팀의 완벽한 ‘의사소통’, 즉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 이는 곧 상대 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뜻한다.
일관성 있는 최상의 음식과 서비를 제공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창의성’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원한다. 특히 뉴욕에서는 단 1분만 멈춰 있어도 바로 뒤쳐진다. 이러한 다이나믹한 트렌드를 위해 르 베르나댕에서는 젊고 열정적인 마인드의 팀원들이 함께한다. 메뉴와 서비스 개발은 물론 레스토랑 운영에 관련된 모든 영역을 꾸준히 혁신하고 발전시키는 팀원들의 노력과 열정이 르 베르나댕이 변화무쌍한 뉴욕에서 인정받는 이유다.
르 베르나댕은 세계 최고의 해산물 요리 레스토랑으로 유명하다. 해산물 요리에 대한 특별한 매력은 무엇인가?
나는 새내기 셰프 때부터 항상 해산물 조리팀에서 일하는 것을 즐겼다. 해산물은 굉장한 섬세함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식재료다. 재료손질부터 해산물 특유의 향과 식감을 조절하는 조리법 모두 개성이 있으며 특별한 기술을 요한다. 훌륭한 해산물 요리를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할이 모든 과정은 내게 ‘도전’이자 큰 매력이다.
당신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요리에 굉장한 관심과 경험이 많은 셰프로도 유명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아벡 에릭’이라는 방송을 통해 한국의 사찰음식을 소개한 셰프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신이 경험한 한국음식은 어떠한가? 또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식은 정갈함 속에 특유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경험하고 배운 사찰음식, 해산물 요리, 고기 요리 등 모두 최고였다. 나는 평소에도 한식을 매우 좋아한다(I love Korean food!) 음식도 맛있지만 무엇보다 모두 크게 한 상 차려놓고 모두가 나눠먹는 문화가 매유 유쾌하고 재밌다.
이미 한식은 미국의 큰 도시들에서 인기를 얻고 시작했다. 하지만 한식세계화를 위해선 보다 활발한 국제무대에서의 ‘활동 및 교류’ 그리고 ‘미디어’ 활용성에 대해 집중해야한다. 예를 들어 한국 대사관 또는 권위있는 조직에서 한식을 외국 유명 셰프에게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어 그들에게 한식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다. 모든 요리사들은 새로운 식재료 및 조리법을 찾고 있다. 만일 그들이 한식을 맛보고 좋다고 생각하면 한식 재료 또는 한식이 그들의 메뉴에 사용될 수 있다. ‘세계 음식/요리 전문가들에게의 홍보와 활발한 교류’, 이것이 바로 일본이 일식세계화를 성공시킨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뉴욕시 최초 ‘음식구호단체’인 ‘시티 하비스트(City Harvest)’에서 오랜시간 활동하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또 어떠한 방법으로 봉사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남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사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일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항상 배고픈 거리의 노숙자들을 본다.(그것도 우리 레스토랑 가까이서 말이다.)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셰프로서 우리 레스토랑에서 최상급의 요리를 즐기는 고객들 외에도 내가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제공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강하게 인식하게 했다. 25년 전부터 나 개인을 비롯한 레스토랑 ‘르 베르나댕’은 ‘시티 하비스트’라는 자선 단체와 파트너십을 맺어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이 단체의 부대표로 뉴욕의 톱 셰프들(Top Chefs), 레스토랑, 식료품점, 농장 등 음식을 다루는 모든 영역의 파트너들과 뜻을 모아 하루에 그냥 버려질 수 있는 영양가 있는 양질의 식재료들로 요리해 뉴욕의 굶주린 사람들을 돕는다. 이러한 방법으로 뉴욕에서 우리가 절약할 수 식재료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하루에 무려 16만 7000파운드(약 7만 5750kg)나 된다!
주변의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음식 절약’은 ‘선의’가 아닌 우리의 ‘의무’다. 이렇게나마 나와 나의 가족이 몸담고 있는 지역사회복지에 도움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한다.
‘훌륭한’ 셰프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 있다면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셰프의 자질은 물론 기술(Technic)이다. 주방에 필요한 자질을 갖추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이 기술은 실습과 실수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들이며 이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내를 요한다.(높은 수준의 레스토랑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레스토랑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열정과 성실,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당신에게 영감을 준 셰프는 누구인가?
어린 시절 내게 최고의 요리를 선사해 준 어머니와 할머니다. 그들은 요리 뿐 아니라 ‘격식있는 식사’를 즐기는 우리 집의 훌륭한 요리사들이었다. 어머니는 매일 마치 멋진 식당에서 경험할 수 있을 법한 점심과 저녁식사를 준비하셨다. 빳빳이 다려진 식탁보, 은식기류, 도자기, 양초, 꽃으로 장식된 테이블에 항상 전채, 메인코스 및 디저트를 준비하셨다.(나는 아주 운이 좋은 어린아이였다!) 요리에 대한 열정과 정성으로 나와 가족을 위해 요리해 주신 어머니야말로 오늘 날 내가 되고자 하는 ‘셰프의 모습’, 롤모델이다. 그리고 실전에서 나의 훌륭한 스승이셨던 쟝루이 팔라댕 셰프, 조엘 로부숑 셰프 그리고 길버트 르 코즈 셰프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 또는 요리는 무엇인가?
가족과 친구들과 나누는 블랙 트러플과 빵, 올리브오일, 소금 그리고 좋은 보르도 와인이다. 매우 심플하지만 특별한 음식들이다.
요리 외에 당신이 가장 갖고 싶은 재능이 있다면?
언어능력! 언어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문화의 장벽을 깨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언어를 구사하여 더 넓은 세상을 배우고 이해하고 싶다. 현재 열심히 노력 중이다!
셰프로서 당신의 최종목표는 무엇인가? 달성하고자 하는 특별한 목표가 있나?
인생의 ‘최종목표’라는 관점으로 앞날을 계획하지 않는다. 나는 현재 내가 꿈꾸던 삶을 살고 있다. 나와 직원들의 일터이자 우리의 열정이 모여있는 르 베르나댕에서의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현재 집중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로는 ‘2019 봄/여름 메뉴개발’이다.(패션 디자이너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뉴욕 최초의 음식구호단체인 ‘시티 하비스트’의 부대표로서 앞으로도 열심히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에 앞장 설 것이다. 오는 4월 30일 열릴 연중 자선 갈라 행사를 위해 준비 중이다.
한국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가능한 빨리 한국을 재방문할 것이다. 그때까지 뉴욕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르 베르나댕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서로의 방문을 통해 ‘우정’을 쌓길 바란다.
스테파니 김
라 리스트 아시아 비즈니스 개발 매니저
스위스에서 미국인 고등학교(TASIS) 졸업 후 스위스의 유명 호텔경영대학 Les Roches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서울, 홍콩, 도쿄에서 파이낸스, 마케팅, 컨설팅 등 여러 분야에 경력을 쌓았다. 현재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레스토랑 리뷰 애그리게이터인 라 리스트에 재직 중이며 그 외에도 프랑스와 아시아의 음식문화 교류 및 관광협력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