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또한 의료진의 희생과 수고는 온 국민들에게 큰 감동과 희망을 주고 있다. 락다운(Lockdown) 상태의 시민들은 매일 밤 8시 아파트 창가로 나와 박수와 환호로 의료진들을 응원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종종 연주와 합창이 울려 퍼지고 외출 중인 시민들 역시 함께 길에서 동참한다. 또한 파리시는 매일 밤 8시 프랑스를 상징하는 에펠탑에 “메르씨(MERCI)”라는 문구와 함께 의료진과 봉사자들의 사진을 전광판에 올리며 경의를 표한다.
이렇게 매일 밤 8시 프랑스는 모두 하나가 돼 서로를 격려하며 감사의 맘을 전하는 훈훈한 도시로 변한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프랑스 셰프들과 관련업계 종사업자들의 하모니
“Occupez-vous de nous, on s’occupe de vous.”
우리를 도와주세요, 우리가 당신들을 보살펴드릴께요.
- ‘의료진과 함께하는 셰프들’ 단체 구호
이번 호에 필자가 <호텔앤레스토랑>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미식 강국 프랑스 셰프들과 관련업계 종사자들이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펼치고 있는 ‘연대와 결속(La Solidarité & l’Unité’)’과 관련한 행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프랑스 전국의 모든 레스토랑들은 현재(5월 17일 기준) 2달 이상 강제 임시휴업 중이다. 프랑스 요식업 역사상 전례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최근 점점 더 많은 레스토랑들이(비스트로부터 파인다이닝까지) 배달 또는 포장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장기간 임시휴업으로 인한 그들의 경제적 타격과 불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프랑스의 수많은 셰프들이 힘을 내 주방을 지키고 있다. 그들의 고객을 위함이 아닌 바로 ‘의료진’들을 위해서.
엘리제궁의 기욤 고메즈 셰프
- ‘의료진과 함께하는 셰프들’
프랑스 이동제한령이 발표됐던 바로 그 주, 프랑스 엘리제 대통령궁의 기욤 고메즈(Guillaume Gomez) 셰프는 ‘의료진과 함께하는 셰프들(LES CHEFS AVEC LES SOIGNANTS)’이라는 단체를 조직했다. 프랑스의 스테판 메자네스(Stéphane Méjanès)미식기자와 파리 공립의료원(AP-HP) 마르탱 히르쉬(Martin Hirsch) 대표와의 공동 주체로 조직됐다. 후원에는 식자재 공급자인 렁지스(Rungis International Market), 메트로 프랑스(Metro France), 트랜스고흐메(Transgourmet), 아비그로(Avigros)와 로지스틱을 담당하는 팁토크(Tip Toque) 등이 참여했다. 병원, 셰프, 식자재 공급자, 로지스틱의 네박자가 어우러진 이 단체의 궁극적 목표는 코로나19 환자들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프랑스 전국의 의료진에게 건강하고 위안이 되는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단체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구축된 두가지 플랫폼은 첫째, ‘병원과의 커뮤니케이션 – 병원의 요구/필요 사항 수집’, 둘째, ‘지원 가능한 셰프 식별 및 배정’이다. 배정된 셰프들은 병원의 상황에 알맞은 메뉴에 필요한 식자재를 렁지스와 같은 공급자들에게 지원을 받으며 준비된 식사는 팁토크의 로지스틱 시스템에 의해 병원으로 전달된다.
식사메뉴는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바쁘고 지친 의료진들이 빠르고 간단하게 섭취할 수 있는 건강식을 메인으로 하며 셰프들의 감사 메시지 또는 어린 아이들의 귀엽고 희망찬 메시지가 함께 의료진에게 따뜻한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기욤 고메즈 셰프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51일 동안(5월 11일 기준) 741명의 셰프들과 함께 최소 15만 인분 이상의 식사를 전국 77개 병원의 의료진, 노인 요양원(EPHAD), 소방서 등에 제공했다고 한다. 하루 평균 약 3000인분이다.
이 중 프랑스의 유명 레스토랑 미라주(Mirazur)의 이탈리아-아르헨티나 출신 마우로 콜라그레코(Mauro Colagreco) 셰프를 비롯해 다수의 일본 셰프들 등 외국인 셰프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이 단체의 공동 주체자인 스테판 메자네스(Stéphane Méjanès) 기자의 말을 인용하면(파리 매치 인터뷰 중) 셰프들은 마스크, 장갑 착용은 물론 주방 내 2명 이상이 함께 작업하지 않는 매우 엄격한 위생환경에서 요리하며 배달 역시 철저한 위생관리 하에 이뤄진다고 전했다. 또한 여전히 이 활동에 참가를 원하는 수많은 셰프들과 공급자들의 문의가 매일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좋은 식사가 우리에게 안락함과 위안을 선사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의료진들이 쉴 틈도 없이 수많은 생명을 구하려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잠시나마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안락한 순간’을
필요로 합니다. 모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아름다운 연대를
만들 수 있도록 여러분의 지지를 구합니다.”
– 엘리제궁 기욤 고메즈 셰프
렁지스 인터내셔널 마켓, 스테판 라야니 회장
- 의료진을 위한 신선하고 건강한 식자재 공급
세계 최대 규모의 식자재 도매시장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렁지스 인터내셔널 마켓은 스테판 라야니(Stephane Layani) 회장의 적극적인 주도 아래 여러 단체에 식자재를 지원하고 있다. 렁지스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의료진과 함께하는 셰프들’ 외에도 프랑스 농업과 음식 번영을 위한 크라우드펀딩 단체인 ‘미이모사(MiiMOSA)’는 병원과 노인요양원에 일주일 평균 1만 인분의 식사를 제공한다. 또한 이탈리아의 유명 마시모 보투라(Massimo Bottura) 셰프가 설립한 파리의 비영리 레스토랑 ‘레페토리오(Refettorio)’에서는 노숙자, 난민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에게 일주일 평균 6000인분의 식사를 제공해오고 있다. 이밖에도 ‘세뀨르 포퓰레르(Secours Populaire)’, ‘클리시 수 브아(Clichy Sous bois)’ 등의 자선단체에도 코로나19 관련 활동에 전방위적 지원을 하고 있다.
스테판 라야니 회장은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 역사상 전례 없는 현 시국에 렁지스 마켓은 그 어느 때보다 본인들의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프랑스인들의 건강한 양질의 식사를 위한 원활한 식재료공급에 대한 책임을 표했다. 또한 지금은 의료진과 함께 프랑스인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창의성과 연대의식을 발휘해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쳐야한다고 전했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프랑스 도매시장 시스템’의 중요성 및 활약을 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경제를 스톱시킨 코로나19 사태에도 렁지스 시장은 여전히 시민들과 의료진에게
신선한 먹거리 공급을 문제없이 실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꾸준히 프랑스인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힘쓸 것입니다.”
– 렁지스 인터내셔널 마켓 스테판 라야니 회장
레스토랑 기 사브아
- 3년 연속 세계 최고 레스토랑 선정 by 라 리스트
라 리스트(La Liste)의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지난 3년 연속 선정된 파리의 레스토랑 기 사브아(Restaurant Guy Savoy Paris)의 팀 역시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을 지원하고 있다.
레스토랑 기 사브아 팀은 파리 19구에 위치한 로베르 데브레(Robert Debré) 병원의 간호사 16명 모두를 위해 일주일에 5일 식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기 사브아 셰프의 또 다른 레스토랑 치베르타(Chiberta, Paris) 팀은 파리 외곽 콜롬(Colombes)에 위치한 루이 무리에르(Louis Mourier)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 25명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 식사를 제공한다. 식재료 구입, 식사준비, 배달까지 모두 기 사브와 셰프 그의 팀이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기 사브아 셰프는 인터뷰를 통해 가장 먼저 의료진의 수고와 헌신에 깊은 경의를 표했다. 그들이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그저 이 상황이 나아지길 만을 기다리고 있던 자신들의 모습에서 커다란 갭(Gap)을 느낀 그는 본인과 그의 팀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인 ‘요리’를 통해 그들에게 건강한 식사와 감사한 마음이 전달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레스토랑 기 사브아는 이번 긴 휴업기간 동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레스토랑 업계에 발생될 변화에 대한 대응을 준비 중이다. 새로운 서비스 시스템(포장/배달) 구축 및 새로운 메뉴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프렌치 퀴진에 항상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시는
여러분께 감사의 맘을 전합니다. 하루 빨리 이 악몽이
끝나고 여러분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그때까지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 기 사브아 셰프
뒤카스 파리(Ducasse Paris) by 알랭 뒤카스 셰프
- 5월 1일 노동절, 곳곳에 희망의 초콜릿 꽃을 피우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 셰프는 현재 10개국에서 34개의 레스토랑과 3개국에 초콜릿숍(Le Chocolate by Alain Ducasse), 요리학교, 카페, 공장 등 세계적인 규모의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이번 코로나 사태에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알랭 뒤카스 셰프와 그의 팀들이 모여 코로나19 사태로 지쳐가는 의료진을 응원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알랭 뒤카스 팀은 3월 30일부터 파리의 두 주요 병원인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대학 병원(L'hôpital de la Pitié-Salpêtrière)과 유로피안 조르주 퐁피두 병원(L'hôpital européen Georges-Pompidou)에 매일 230인분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5월 1일 기준으로 총 6000인분 제공).
또한 프랑스의 중요한 축제인 5월 1일 노동절에는 르 쇼콜라(Le Chocolate) by 알랭뒤카스와 레스토랑 르 뮈리스 알랭 뒤카스(Le Meurice Alain Ducasse)의 세계적인 세드릭 그롤레(Cedric Grolet) 파티시에 셰프가 의료진들을 위해 특별한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 ‘5월의 꽃(Fleur de mai)’이란 이름의 초콜릿으로 ‘봄에 새롭게 재탄생하는 꽃’처럼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행복한 날’을 상징했다.
“이 힘든 시간이 하루 빨리 종료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일터로 돌아가 우리의 일상을 다시 이어가야합니다.”
– 알랭 뒤카스 셰프
코로나19 – 우리의 미래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전 세계인의 생활양식과 의식이 변하고 있다. 물론 앞으로 더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에 대한 각국의 대처 또한 그 문화에 따라 다채로운 모습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한국은 국가적 위기에 저력을 발휘하는 특유의 ‘국민성’으로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며 ‘코로나19 대응 모범생’이란 찬사를 세계로부터 받고 있다(#의료진덕분에 #국민덕분에)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선 오랜 전통으로 다져진 미식업계 종사자들 간의 돈독한 네트워크와 연대의식으로 하나가 돼 2차 전선의 부대가 만들어졌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본인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이에 솔선수범한 프랑스 미식업계 종사자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미식 강국 프랑스의 멋진 면모를 봤다.
필자 또한 이번 <호텔앤레스토랑> 기고를 통해 한국, 프랑스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의료진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더불어 <호텔앤레스토랑> 독자분들의 건강을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마지막으로 <호텔앤레스토랑> 독자들을 위해 바쁘고 힘든 시기에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필자의 자랑스러운 친구 기욤, 스테판, 그리고 기와 알랭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Merci & Vive la France!
스테파니 김 라 리스트 마케팅 디렉터
서울, 홍콩, 도쿄에서 파이낸스, 마케팅, 컨설팅 등 여러 분야에 경력을 쌓았으며 현재 프랑스와 아시아 음식문화 교류 및 관광협력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