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년이라는 오랜 역사와 레스토랑 가이드북의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미쉐린 가이드’가 지난 2016년 11월 첫 한국판을 출간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세계 곳곳의 수많은 미식인들에게 마치 레스토랑 ‘바이블’처럼 읽히는 미쉐린 가이드는 필자가 근무하는 라리스트(LA LISTE)의 세계 톱 1000 레스토랑 선정평가의 중요한 소스중 하나기도 하다.(미쉐린 가이드가 비교적 높은 신뢰를 얻고 있는 유럽 레스토랑 평가의 경우다.)
라리스트(LA LISTE): 레스토랑 가이드의 가이드로 불리는 세계 레스토랑 셀렉션. 현존하는 레스토랑의 모든 정보들을 수집(레스토랑 가이드북, 리뷰, 기사 등)해 알고리즘 산출법으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함. 매해 세계 톱 1000 레스토랑 및 라리스트 앱을 통해 165개국의 약 만 5000곳의 레스토랑을 소개함.
미쉐린 가이드의 고향, 프랑스 2018년 런칭 세레모니
지난 2월 5일 미쉐린 가이드의 고향인 프랑스에서 ‘2018 미쉐린 가이드’ 발표행사가 개최됐다. 행사장은 파리근교에 위치한 불로뉴비앙쿠르 공연예술극장인 ‘라 쎈느 뮤지칼(La Seine Musicale)’. 직접 현장 취재를 하기 위해 행사장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이날의 행사는 수많은 셰프들과 미식관련업자들, 그리고 기자단이 모인 가운데 지난 1월 타계한 프랑스 요리계의 교황 셰프 폴 보퀴즈(Paul Bocuse)를 추모하며 시작됐다.
미쉐린 가이드 프랑스 2018년 편은 총 1887장으로 만들어졌다. 어마어마한 페이지 수에서 가늠할 수 있듯 무려 총 4300개의 숙박업소와 2800개의 레스토랑 정보가 수록 돼있다. 역시 미쉐린 가이드의 고향답다. 매해 최대의 관심사인 새로운 별을 받은 레스토랑 발표에서 새로운 1스타 레스토랑은 총 50곳, 2스타 레스토랑은 총 5곳, 그리고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3스타 레스토랑은 총 2곳이 선정됐다. 이로써 현재 프랑스는 총 621곳의 레스토랑들이 미쉐린 스타를 보유하고 있다. 이미 한국에 진출해 있는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Pierre Gagnaire)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파리)와 셰프 야닉 알레노(Yannick Alleno)의 ‘르 드와엥’(파리)과 ‘르1947’(꾸쉬벨) 역시 3스타를 유지했다.
새롭게 추가 된 1스타 레스토랑 발표에서 눈에 띈 점은 영셰프(Young Chefs)들과 외국인 셰프들의 활약이었다. 50개의 새로운 1스타 레스토랑 중 27세의 최연소 셰프인 셰프 기욤 몸브루아스(Guillaum Mombroisse)의 ‘쎕트(Sept)’와 동갑내기 셰프 안토니 루메(Anthony Lumet)의 ‘Le Pousse Pied’가 포함돼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한 일본, 덴마크, 레바논, 캐나다 등의 국적을 가진 외국인 오너셰프들이 시상식에 오르며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다국적인 행사가 됐다.
또한 새롭게 추가된 5개의 2스타 레스토랑 중 2곳이 일본셰프들의 레스토랑으로 프랑스 내 일본 셰프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로는 시상식 이틀 후인 2월 7일, 2스타를 거머쥔 스타 셰프장 술피스(Jean Sulpice)의 레스토랑 오베흐쥐 뒤 페르비즈(Auberge du Père Bise)의 와인창고 도난사건 소식이 전해졌다. 레스토랑 오베흐쥐 뒤 페르 비즈는 1903년 오픈 이래 지난 1세기에 걸쳐 대대로 세계 희귀 와인들을 모아 선보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번 도난주류의 손실액은 약 30만 유로(약 4억 원)에 다다르며 무엇보다 100년 이상의 유서 깊은 한 레스토랑 역사의 한 부분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함께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새로운 3스타의 영광은 프렌치 분자요리 셰프 마크베라(Marc Veyrat)의 라 메종 데 브아(La Maison des Bois)와 지중해 음식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파인 다이닝을 선보이는 셰프 크리스토프 바키예(Christophe Bacquié)의 레스토랑 크리스토프 바끼에(Restaurant Christophe Bacquié)에게 돌아갔다. 셰프베라는 스키사고와 레스토랑 화제로 두 차례 요리계를 떠났었으나 2017년 가이드에서 2스타를 받은 지 1년 만에 3스타를 받으며 ‘컴백황제’라 불리기도 한다.
한편 이번 미쉐린 가이드 프랑스 2018년의 또 다른 특별한 소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난 18년 간 꾸준히 3스타를 유지해온 스타셰프 세바스티앙 브라(Sebastien Bras)의 요청에 의해 그의 레스토랑 ‘르 쒸케(Le Suquet)’가 올해 가이드에서 제외됐다는 점이다. 셰프 브라는 페이스북 비디오를 통해 “이제 내 나이 46세. 앞으로 미쉐린 평가에 대한 압박감 없이 오직 훌륭한 요리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며 내 인생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싶다.”고 밝혔고 미쉐린 가이드는 이런 그의 뜻을 공식 수용했다.
미쉐린 가이드란
1911년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탄생된 미쉐린 가이드는 지난한 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3000만부 이상 판매되고 있으며 가장 권위 있는 레스토랑 가이드 북으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는 영미권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미쉐린의 본토 프랑스어 발음인 ‘미슐랭(Michelin)’으로 불리며 한국에서는 미쉐린 코리아-타이어에 의해 ‘미쉐린 가이드’로 공식 명칭됐다. 미쉐린 가이드의 역사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중부의 끌레르몽 페랑(Clermont-Ferrand)에서 앙드레(Andre) 미슐랭과 에두아르(Edouard) 미슐랭 형제가 타이어 회사를 설립하며 창간 한 ‘여행안내서’가 현재 미쉐린 가이드의 시초다. 그렇다면 타이어 회사에서 어떻게 세계적인 레스토랑 가이드가 탄생됐을까?
1900년 초 프랑스에는 자동차대수가 3000여 대에 불과했고 장거리 운전을 위한 제대로 된 도로 및 지도 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미슐랭 형제는 곧 그들의 고객인 ‘자동차 운전자’들의 편리를 제공하며 운전을 장려하기 위해 타이어 교체법 및 지도를 포함 한 안내책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지도를 따라 찾을 수 있는 주유소는 물론 숙박시설 및 레스토랑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책자로 발전 시켰으며, 이것이 바로 미쉐린 가이드의 시초다. 미쉐린 가이드의 상징인 ‘별’은 1926년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난 호텔에 별을 붙여 표시한것으로 시작됐으며 1993년부터는 레스토랑에도 별을 주기 시작하며 현재의 ‘레드 가이드’가 탄생됐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시작된 미쉐린 가이드는 1911년부터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발간되기 시작했고 현재 26개국에서 28개의 가이드가 발간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2007년 도쿄편을 시작으로 현재 총 6개의 도시 및 국가에서 미쉐린 가이드가 발간되고 있다. 그리고 이번 2018년 봄에 타이페이(대만) 편이 발간 될 예정이다. 일본은 미쉐린 가이드의 고향인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최다 미쉐린 스타 보유국으로 꾸준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라리스트(LA LISTE) 월드 톱 1000 레스토랑 셀렉션에서도 역시 일본이 매해 가장 많은 레스토랑들을 순위에 올리고 있다.
또한 프랑스에는 프렌치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일본인 요리사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대부분 프렌치요리에 일식요리법 및 식재료를 접목한 요리를 선보이며 프랑스인들에게 자연스럽게 ‘일식의 미’를 동시에 알리고 있다. 한국인 셰프로는 지난 2016년 프랑스 하늘에 첫 한국의 별을 쏘아올린 리옹 ‘르빠스 떵’(Le Passe Temps)의 이영훈 셰프와 파리의 셰프 피에르 상(Pierre Sang)이 정통 프렌치요리에 한식요리법 및 식재료를 가미한 음식들을 선보이며 대단한 인기를 얻고있다.
별 별 별, 미쉐린 가이드 평가방식
미쉐린 가이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역시 ‘스타’(별점)다. 하지만 이 외에도 일명 ‘미쉐린 암행어사’라 불리는 ‘평가원(Inspector)’ 또한 미쉐린을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다. 미쉐린의 직원으로 소속된 익명의 평가원들이 일반 손님으로 가장해 레스토랑을 찾아 시식 및 평가하는 것을 뜻한다. 평가는 요리재료의 수준, 요리의 완벽성, 요리에 대한 셰프의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요리질의 일관성, 음식의 질과 가격의 합리적인 밸런스의 중심으로 이뤄진다.(스타 레스토랑 평가에는 인테리어 및 서비스 평가는 포함되지 않는다.) 평가결과는 대표적으로 1스타, 2스타, 3스타로 표현된다. 빕구르망(Bib Gourmant)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선사하는 친근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을 평가기준으로 삼으며 이는 포크와 나이프로 표현한다.
미쉐린 스타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오늘날 세계의 많은 미식가들과 셰프들이 미쉐린 스타를 미식의 철도, 아니 성공의 척도로 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필자 역시 프랑스에서 많은 유명 셰프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대부분의 셰프들이 그들의 성공의 기준으로 ‘미쉐린스타’를 생각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어느 한 미쉐린 2스타 셰프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요리인생의 목표는 ‘오로지 미쉐린 3스타’라고 (몇 번을) 말하기도 했다. 참고로 미쉐린 평가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프랑스 및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더 안정적이고 높은 신뢰를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된 셰프 브라처럼 미쉐린 평가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 셰프들도 있다. 이렇게 미쉐린 스타를 받으며 얻는 명예와 성공 그리고 이에 따르는 부담감(물론 개인차는 있다)은 마치 양날의 검과도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많은 셰프들이 미쉐린 스타를 꿈꾸고, 또 스타 셰프들은 그들의 <미쉐린 별의 왕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때론 그 경험을 통해 우리 삶의 질이 풍요로워 지기도 한다.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우리에게 또 다른 인생의 ‘즐거운 맛’을 경험하게 해 주는 많은 셰프들도 각자의 왕관의 무게를 즐겁게 견뎌내길 바란다.
스테파니 김
라 리스트 아시아 비즈니스 개발 매니저
스위스에서 미국인 고등학교(TASIS) 졸업 후 스위스의 유명 호텔경영대학 Les Roches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서울, 홍콩, 도쿄에서 파이낸스, 마케팅, 컨설팅 등 여러 분야에 경력을 쌓았다. 현재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레스토랑 리뷰 애그리게이터인 라 리스트에 재직 중이며 그 외에도 프랑스와 아시아의 음식문화 교류 및 관광협력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