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이영훈은 수업 중 많은 질문을 하고 노트 필기도 열심히 했다. 매우 부지런하고 성실한 그의 모습에서 한국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그는 훌륭한 한국인이자, 훌륭한 프랑스 요리사다.”
by 장 폴 나컁, 폴 보퀴즈 요리학교 교수 (YTN TV 인터뷰 중)
1er Chef Coréen Étoilé en France
프랑스 하늘에 뜬 한국의 첫 별
햇살 가득했던 5월의 어느 날 파리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리옹에서 파리로 시장조사차 출장 중이던 이영훈 셰프였다. 리옹에 위치하고 있는 레스토랑인 ‘르빠스떵(Le Passe Temps)’의 오너 셰프이자 프랑스에서 최초로 미쉐린 스타를 획득한 한국인 셰프로 세간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영훈 셰프와의 첫 만남은 2016년 2월 파리에서 개최됐던 ‘프랑스 미쉐린 2016’ 발표회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볼룸을 가득 메우고 있던 수많은 인파 사이로 낯선 한국말이 들렸다. 순간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돌려보니 젊은 한국 분들이 다소 상기된 모습으로 함께 모여 있었다. ‘르빠스떵’의 이영훈 셰프, 하석훈 소믈리에와 그들의 지인들이었다. 반가운 만남과 축하의 인사를 나눈 후, 이름이 호명되자 무대 위로 당당하게 올라선 이영훈 셰프. 세계 미식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프랑스에서 한국인으로서 첫 미쉐린 스타를 수상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내심 자랑스럽고 훈훈했던 기분이 여전히 생생하다. 프랑스 하늘 위로 한국 셰프의 첫 번째 미쉐린 별이 떠오른 역사적인 밤이었다.
▲실습생 시절 폴 보퀴즈와 함께
Nouveau rêve & Nouvelle vie en France
새로운 꿈과 새로운 시작
어릴 적 이과 계통의 학문에 뛰어났던 이영훈 셰프는 건축가와 같이 정확한 계산과 창의력의 조화를 요하는 일들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원하던 대학의 진학이 무산됐고 새로운 꿈, 아니 현실적인 ‘진로 결정’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조언으로 ‘요리사’란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 관광대 호텔조리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3년간 국내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으며 그는 ‘요리’에 대한 더 큰 확신과 열정을 가지게 됐다. 그 후 2009년, 그는 프랑스의 세계 명문 요리학교인 리옹의 앙스티튜 폴 보퀴즈(Institut Paul Bocuse)에서 인생 첫 유학을 시작했다. 학교 과정 내내 1등을 놓친 적인 없을 정도로 악착같이 열심히 배우고 연습했다. 그 결과, 폴 보 퀴즈의 명성이 자자한 레스토랑 로베르쥐뒤뽕드꼴론느(L’Auberge du Pont de Collonges) (미쉐린 3 스타)에서 인턴십 기회가 주어졌다. 아시아인으로는 최초였고 이는 교수의 추천으로 전교에서 단 한 명만이 선택되는, 즉 전교 1등과도 같은 영광인 것이다.
Un challenger sans peur!
=무모한 도전자? 용감한 도전자!
앙스티튜폴 보퀴즈를 졸업한 이영훈 셰프는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 오픈을 결심한다. 특별히 준비된 자금도없었다. 그저 자신의 꿈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내고 싶다는 의지와 열정과 그의 소신을 믿어주는 아내 임소영씨의 응원뿐이었다. 이 둘은 각자 잘할 수 있는 요리와 서비스를 책임지자는 약속 하나로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먼저 자금 확보를 위해 사업 계획서를 들고 리옹에 있는 은행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타국에서 외국인의 신분, 그것도 학생 신분으로 은행 대출을 받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10여 개의 은행에 들어서기 전, 항상 몇 번이고 홀로 마음을 굳게 다잡아야 했다는 이영훈 셰프. 수없이 반복되던 거절로 무척 지쳐 있었을 당시의 그의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포기를 몰랐고결국 마지막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외국인 학생에게 사업 자금 대출은 프랑스에선 꽤나 이례적인 케이스다.(미쉐린 별을 따는 것만큼 힘들다고나 할까!)
산 넘어 산이라 했던가. 어려운 대출로 레스토랑 임대를 해결하고 나니 실내 공사라는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심 끝에 친한 동생과 협심해 가스배관을 제외한 모든 내부 공사를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던 이 과정에선 정말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이영훈 셰프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또다시 그는 해냈고 소박했지만 그의 손길과 애정이 넘치는 공간이 준비됐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미식 역사에 ‘프랑스 최초의 한국인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라는 영광의 타이틀을 거머쥔 ‘르빠스떵(Le Passe Temps)’의 ‘시작’이었다.
‘Le Passe Temps’ à Lyon
레스토랑 ‘르빠스떵’- 리옹
레스토랑 ‘르빠스떵’은 2014년 4월, 프랑스의 미식 도시로 잘 알려진 리옹에서 오픈했다. 한국어로 ‘기분전환’이라는 뜻의 ‘르빠스떵’은, 말 그대로 이영훈 셰프의 개성 있는 음식과 하석환 소믈리에의 섬세한 와인 페어링. 그리고 숙련된 서비스팀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들에게 ‘기분전환’이 되는 시간을 선물하는 공간이다. ‘르빠스떵’은 작년 미쉐린 스타를 획득한 후, 레노베이션을 통해 더욱 쾌적하고 모던한 느낌의 레스토랑으로 재탄생했다. 22석 규모의 레스토랑에는 총 8명이 각 주방과 홀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8명 중 7명이 한국인이다.
Plat Signature de Chef Younghoon LEE
이영훈 셰프의 시그니처 디시
‘르빠스떵’을 대표하는 이영훈 셰프의 시그니처 디시는 ‘간장 소스가 곁들여진 멸치육수 푸아그라(Foie gras de bouillon de soja et anchois séchés’)다. 팬 프라이된 푸아그라 거위간의 고소함과 신선한 제철 채소가 간장과 멸치 육수의 시원한 맛과 조화를 이루며 굉장한 호평을 받고 있다. 가니시로 살짝 뿌려진 김가루는 동서양 맛의 조화에 섬세함을 더해준다.
Menus chez ‘Le Passe Temps’
레스토랑 ‘르빠스떵’의 메뉴
점심과 저녁 각각 두 종류의 코스 메뉴를 선보인다. 메뉴는 제철 재료에 따라 한 달에서 두 달 간격으로 바뀐다. 어떤 날은 그날의 셰프 영감(Inspiration)에 따른 색다른 디시가 선보이는 경우도 있다.
Interview
나를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드는 원동력, 요리
HR 이미 수없이 답했을 질문이다. 프랑스에서 한국인 셰프로서 첫 미쉐린 스타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했나? 그것도 레스토랑 오픈 후 불과 2년도 채 안 된 기간에 말이다.
이영훈 셰프 첫 미쉐린 스타를 받은 지 1년 반이 됐지만 그날의 기분은 여전히 생생하다. 한마디로 꿈같았다! 가끔 혼자서만 상상해보던 순간이 어느 날 예측불허로 찾아왔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날아갈 것 같은 기쁨 속에 왠지 모를 창피함과 의문도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내가 시작한 일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현실에만 충실했기에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지금도 나를 돌아보고 더 큰 꿈을 꾸라는 응원으로 받아들인다.
HR 세계 미식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쉐린 스타를 받은 후 심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이영훈 셰프 그전에는 프랑스(리옹)에서 프렌치를 요리하는 유일한 한국 셰프로서 적잖은 소외감을 느꼈다. 별을 받은 후, 주변의 많은 셰프들에게서 축하 인사를 받으며 그때야 비로소, 아니 새삼 내가 그들과 함께 프랑스에서 ‘프렌치 요리’를 하는 셰프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외국인 셰프로서 인정받고 싶었던터라, 그 후 더 자신감이 생기고 당당해진 기분이 들었다.
HR 미쉐린 스타를 받기 전과 후, 레스토랑 운영에 큰 차이가 있나?
이영훈 셰프 힘들게 오픈했던 ‘르빠스떵’이 오픈 1개월 후 지역 신문에 소개되며 다소 빠르게 만석이 시작됐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전에는 성수기, 비수기에 따른 업 앤 다운이 있었지만 지금은 꽤나 안정적이다. 꾸준히 2~3주 정도의 예약이 미리 차있다. 그리고 전에는 단지 한국인 셰프라는 이유만으로 한국 음식을 기대하고 무작정 찾아온 손님들도 종종 계셨는데, 지금은 미쉐린 스타 덕분에 프렌치 레스토랑이라는 아이덴터티가 확실해진 것 같다.(웃음)
HR 2016년 2월 첫 미쉐린 스타에 이어 이번 2월 발표에서 그 별을 유지했다. 그 사이 심정은 어떠했나?
이영훈 셰프 미쉐린 스타 첫 획득 후, 지난 1년간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많은 노력을 해왔다. 어떠한 결과라도 겸허히 받아들이자 생각했지만 물론 기대도 긴장도 많이 됐다. 이번 결과로 우리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지난번과 또 다른 의미의 기쁨이다.
HR 타국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은?
이영훈 셰프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아무래도 은행 대출을 구하러 다닐 때였다. 한국어로도 쉽지 않았을 대출 상담을 불어로, 그것도 반복되는 거절 속에 정신적으로도 많이 위축됐었다. 그리고 가장 기뻤던 순간은 역시 미쉐린 스타를 받은 것이다. 그 별 자체에 두는 의미보다 그로 인해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됐다는 것. 그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예전 은행 대출을 거절했던 은행의 직원들이 우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후, 대출이 필요하면 찾아와 달라고 부탁하며 명함을 줬다.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을 느꼈다.(웃음)
HR 요리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영훈 셰프 요리의 가장 큰 매력이자 냉정한 점은 나의 노력의 결과가 바로 확인된다는 점이다.(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만약 내가 나태해졌다면 고스란히 요리로 보이기 때문에 언제나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고로 요리란 나를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드는 ‘원동력’과 같다.
HR 이영훈 셰프의 시그니처 디시로 알려져있는 멸치육수 푸아그라가 굉장한 호평을 받고 있다. 한식 요리법을 접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영훈 셰프 솔직히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다양한 재료와 요리법으로 나만의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익숙한 한국의 맛들을 프렌치 요리와 조화시키는 시도를 하게 됐고 감사히도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HR 프랑스에서 요리하는 한국 셰프로서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영훈 셰프 어려운 질문이다. 물론 한국인으로서 한식의 세계화가 되길 바란다.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내 요리를 통해 한국의 식재료와 요리법에 관심을 갖는 프랑스인들을 보며 뿌듯함도 느낀다. 하지만 한 나라의 문화가 세계화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나라의 ‘브랜드 가치’가 뒷받침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HR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새로운 레스토랑을 오픈할 계획이 있나?
이영훈 셰프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가까운 미래에 한국에서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싶다. 로테이션 근무 방식을 만들어 양국의 직원들이 현지 삶의 체험을 통해 서로 다른 식문화를 더욱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만들고 싶다. 특히 요리의 꿈이 있지만 여건이 어려운 직원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에 충실해 더욱 단단한 기반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HR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과 <호텔&레스토랑>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영훈 셰프 아직 내가 한국에 팬들이 계실지는 모르겠다.(웃음) 파리처럼 관광객이 많지 않은 리옹까지 일부러 찾아와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그분들의 좋은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 큰 힘이 되고 더욱 열심히, 더욱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항상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스테파니 김
라 리스트 아시아 비즈니스 개발 매니저
스위스에서 미국인 고등학교(TASIS) 졸업 후 스위스의 유명 호텔경영대학 Les Roches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서울, 홍콩, 도쿄에서 파이낸스, 마케팅, 컨설팅 등 여러 분야에 경력을 쌓았다. 현재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레스토랑 리뷰 애그리게이터인 라 리스트에 재직 중이며 그 외에도 프랑스와 아시아의 음식문화 교류 및 관광협력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