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불수교 130주년이었던 지난 2015~2016년 한국과 프랑스 양국에서 다양한 교류의 행사가 열렸다. 특히 ‘한국 내 프랑스 해’에서는 ‘식문화교류행사’가 대중의 큰 관심을 받으며 이와 함께 큰 화제가 된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로 프랑스 파리의 셰프 피에르 상 보이에(Pierre Sang Boyer)다.
두 뿌리의 연결고리
이른 아침 피에르 상과의 인터뷰를 위해 그의 레스토랑들이 위치해 있는 파리 11구의 *오베르캄프(Oberkampf) 거리를 찾았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레스토랑 피에르 상의 직원들이 빵과 커다란 치즈를 들고 3개의 레스토랑을 들락날락 하는 모습이 이 거리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듯 했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피에르 상은 2015년 11월 한불 13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방한하며 큰 화제가 됐다. 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인의 얼굴을 한 그가 당시 프랑스 대통령(프랑스와 올랑드 전 대통령)과 함께 프랑스 대표 셰프로 한국을 찾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피에르 상(Pierre Sang)으로 알려져 있는 그의 정식 프렌치 네임은 피에르 상 보이에(Pierre Sang Boyer)다. 프랑-코레로 7살 때 한국에서 프랑스의 가정으로 입양됐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그를 프랑스라는 미식 강국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국계 셰프’로 생각한다. 하지만 프랑스 셰프계에서는 그를 이곳의 노익장 셰프들과 젊은 셰프들을 연결해주는 ‘세대간의 연결고리(Generation to generation)’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프렌치 셰프로 인식하곤 한다.
*오베르캄프Rue Oberkampf: 파리 11구에 위치한 젊고 다이나믹한 분위기의 핫 플레이스로 각종 바와 개성있는 셰프들의 비스트로 스타일의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곳
소년 피에르 상이 만난 요리란, 가족의 사랑과 행복
피에르 상은 7살에 프랑스 중남부에 위치한 오베르뉴(Auvergne)에서 그의 프랑스 양부모님과 처음 만났다. 그가 기억하는 음식에 대한 첫 느낌은 ‘가족의 사랑과 행복’이라고 한다. 8세가 되던 해 피에르 상의 세례식 파티를 위해 며칠 동안 음식을 준비하시던 따뜻한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그 음식들을 함께 즐기며 즐거워하던 사람들. 이렇게 피에르 상에게 있어 요리는 ‘소중한 사람을 위한 사랑의 선물’로 시작됐다.
그의 인생의 첫 요리는 어린 시절 언어장벽으로 다소 소통이 어려웠던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한 음식이었다고 피에르 상은 웃으며 말했다. 물론 어린 피에르 상의 고사리 같은 손은 어머니께 맛있는 음식 대신 난장판이 된 주방을 선사했지만.
이렇게 자연스레 요리를 좋아하게 된 피에르 상은 고향 오베르뉴에서 요리 고등학교를 마치고 몽펠리에에 있는 대학에서 요리와 호텔경영학을 공부했다. 그 후 수년간 프랑스 및 런던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은 후 2004년 드디어 그가 7살에 떠나왔던 한국을 처음으로 다시 찾았다.
이태원의 르 생텍스(Le Saint-Ex)에서 5개월 간 근무하며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그 후 런던으로 돌아가 유명 레스토랑 르 서클(Le Cercle)에서 헤드 셰프로 지냈다. 그 후 2009년에는 프랑스 리옹으로 이주해 루르 베크(Rue Le Bec)와 리옹 오페라(Lyon Opera)에서 일을 하며 다양한 국제무대에서의 경력을 탄탄히 다졌다.
프랑스의 탑셰프 피에르 상
‘셰프 피에르 상’하면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다. 바로 탑셰프(Top Chef). 2011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TV 요리 경연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탑셰프 프랑스 시즌2에서 당당히 최종 Top 3에 들며 그야말로 그는 ‘유명 탑셰프’가 됐다.
그리고 2017년 현재, 피에르 상은 자신의 이름을 내 건 3개의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다. 2012년 단 4명(셰프 2명, 서비스 1명, 디시워셔 1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약 50명의 직원들이 함께 하고 있다. 한 골목에 서로 50m도 채 안 되는 간격에 위치해 있는 그의 3개의 레스토랑들. 그야말로 이곳은 파리의 ‘피에르 상 골목(Rue de Pierre Sang)’이다.
2012년 오픈한 1호점 레스토랑 피에르 상 인 오베르캄프(Pierre Sang in Oberkampf)는 경쾌한 분위기의 꼼뜨와(Comptoir) 구조인 1층과 지하층으로 돼 있다. 폭발적인 호응으로 한 시간 이상을 줄 서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파리에서는 무척 드문 광경이다.
2014년 오픈한 2호점 레스토랑 피에르 상 온 감베(Pierre Sang on Gambey) 역시 총 2층으로 1층은 아늑한 분위기이며, 2층에는 프라이빗 룸이 준비 돼 있다. 1층의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커다란 초상화는 그의 옛 직원이 직접 그려 선물한 것이란다. 그래서일까, 왠지 초상화 속 피에르 상의 웃음이 이 공간을 더욱 친밀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느낌을 준다.
마지막 3호점은 지난 4개월 전부터 현재까지 계속 가오픈 상태로 운영 중이다. 마치 동굴 안으로 안내되는 듯 한 이곳은 아늑하고 고급스러운 프라이빗 공간이다. 앞으로의 정식 오픈이 크게 기대되는 곳이다.
피에르 상의 요리세계
프랑스 셰프계의 거장 알랭 뒤카스, 피에르 가니예, 카스텔 바작은 물론 레니 크래비츠, 타케시 기타노, 타케시 무라카미 등 세계 유명 인사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레스토랑 피에르 상. 기쁘게도 파리에서 유일하게 프렌치 요리와 한식재료의 환상의 컬래버레이션을 맛 볼 수 있다.
피에르 상은 정해진 메뉴없이 그날 도착하는 신선한 재료들로 즉흥적이고 창의적인 메뉴를 선보이는 퀴진 드 마르셰(Cuisine du Marché)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셰프들은 그들의 즉흥적 창의력을 다양한 재료를 통해 표현할 수 있고(물론 굉장한 창작의 고통이 따르겠지만) 손님들은 신선한 재료로 요리된 음식을 맛 볼 수 있다는 데에 큰 매력이 있는 곳이다. 특히 식재료 절약과 요리과정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 절감을 위해 힘쓰고 있는 피에르 상에게는 일석이조인 시스템이다.
피에르 상의 시그니처 디시로는 역시 ‘프렌치와 한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민어회, 김치 렌틸콩, 소등심과 쌈장 소스와 바나나 갑각류소스 등이 있다.
해피 셰프 피에르 상 보이에
“나는 내 인생의 최악의 일이 내 나이 7살에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 오히려 ‘긍정’이라는 큰 힘을 선물해 줬어요. 지금의 프렌치 부모님을 만난 나는 정말 행운아예요!”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피에르의 말이다. 그의 요리의 원동력이라는 ‘가족 그리고 직원들’. 그들의 이야기를 큰 웃음과 깊은 진지함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사랑과 의리 그리고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진정한 ‘해피셰프(HAPPY CHEF)’와의 따뜻한 인터뷰였다.
한국의 젊은 셰프들과의 교류 통해 함께 발전하고 싶어
피에르 상 보이에 셰프
HR 지난 한불수교 기념행사들을 통해 한국 대중 사이에서의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다. 특히 국내에서 프렌치 요리공부를 하고 있는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워너비(Wanna be) 셰프’로 손꼽힐 정도라고 한다. 기분이 어떤가?
언제 어디서나 나의 요리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셰프로서 가장 흐뭇하고 보람된 순간이다. 더군다나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을 넘어선 영광스러운 일이다. 파리에서도 이곳 많은 교민들 및 한국인 여행자가 우리 레스토랑을 찾아 주신다. 항상 반갑고 감사하다.
HR 당신의 요리 철학은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것, 원하는 것, 느끼는 것을 요리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의 음식은 프렌치요리와 한식의 조화로 이뤄져 있다. 생각해보니 마치 요리로 표현 된 ‘내 자신’ 같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HR 그렇다. 당신의 요리는 프랑스식에 한식 포인트를 가미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한식의 뉘앙스를 사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물론 한국인이란 나의 필연적인 뿌리다. 입양 후 약 17년 만에 처음으로 방문한 한국에서 맛보았던 처음 보는 음식들에서 느껴진 왠지 모를 친근감과 익숙함. 마치 나의 머리가 기억 할 수 없는 나의 어린 시절을 어렴풋이나마 ‘맛’이란 감각으로 되찾은 기분이었다. 바로 한식의 매력에 빠져버렸고 그 후 나의 또 다른 뿌리인 프랑스의 요리법과 접목해 보기 시작했다. 음식을 통해 나의 뿌리를 찾고 싶은 내 가슴 속 깊은 곳의 열망일지도.
HR 정통 프랑스식에 한식을 가미한 요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꾸준한 공부를 통해 한식재료와 한식조리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맛의 조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어떤 훌륭한 재료와 요리법이라도 충분한 지식 없이는 진정한 ‘맛의 조화’를 이뤄 내기 힘들다. 앞으로도 꾸준히 한식을 공부하며 만나게 될 여정이 무척 기대된다.
HR 그렇다면 현재 즐겨 사용하는 쌈장, 매운맛을 뺀 김치 등의 한식 재료를 사용하게 된 계기는? 그리고 현지인들의 반응은?
먼저 감사히도 현지인들의 반응은 매우 좋다. 나의 본격적인 한식재료 사용법은 내 한국인 아내와 장모님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할 수 있겠다.(웃음) 장모님은 음식 솜씨가 대단하시다. 집에서 장들을 직접 담가 드시는 장모님에게서 한국 장 맛을 여전히 배우고 있고 이를 통해 많은 영감을 받는다. 장모님이야 말로 내게 최고의 한식 스승이시다.
HR 레스토랑 피에르 상에서의 재미난 점은 손님들이 식사를 하며 재료를 맞추게 하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손님들과의 소통을 통해 식사의 재미와 음식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한식재료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HR 레스토랑 피에르 상은 합리적인가격으로 멋진 식사코스를 경험 할 수 있는 곳이다. 점심, 저녁 코스를 포함한 모든 메뉴가 본인의 명성과 음식의 퀄리티에 비해 정말 친절한 가격대라는 생각이 드는데?
미식경험에 관심이 많지만 금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젊은이들이나 학생들. 나 역시도 그 중 한 명이었고 그 시절을 잊지 않는다. 사람들이 내 레스토랑을 찾아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즐거운 식사를 경험하는 것, 그것이 내 바람이다.
HR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는 뉴코리언/모던 한식이 주목받고 있다. 그런 움직임에 대한 경험이 있나?
2016년 3월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행사로 서울 밍글즈의 강민구 셰프와 컬래버레이션으로 만찬행사를 가졌다. 그의 한식베이스에 서양식을 접목한 요리와 나의 서양식베이스에 한식을 접목한 요리, 출발점이 다른 이 두 요리들이 이뤄낸 조화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나에게 한식의 무한한 다양성과 변화의 가능성을 경험하게 해준 좋은 기회였다.
HR 식재료 절약과 음식물 쓰레기 절감에 대한 노력을 펼치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 셰프들이 관심을 가져야할 문제인 것 같다, 특별한 계기나 노하우가 있나?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받은 교육인 것 같다. 그리고 사실 파리에서 어렵지 않게 접하는 거리의 홈리스들의 열악한 주식 환경 또한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노하우로는 퀴진 드 마르셰(Cuisine du marché) 시스템을 통해 요리하는 것이다. 그날 그날 필요한 만큼의 신선한 재료들을 구입하고 사용한 후 남는 식재료를 최대한 줄이고 또한 재료의 안 쓰는 부분들을 최대 활용하기 위해 신경 쓰고 있다.
HR 앞으로의 계획은?
함께 하는 직원들이 자신의 일을 더욱 즐길 수 있게 잘 이끄는 것이 목표다. 존중(Respect)과 신뢰(Fidelity)가 바탕이 된 직원들의 훌륭한 팀워크(Teamwork)와 동기부여는 레스토랑 피에르 상의 에너지이자 원동력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의 뿌리인 한국에서 내 요리를 선보일 수 있는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싶다. 또한 앞으로 더 많은 한국의 (젊은)셰프들과의 교류를 통해 프랑스와 한국의 미식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
스테파니 김
라 리스트 아시아 비즈니스 개발 매니저
스위스에서 미국인 고등학교(TASIS) 졸업 후 스위스의 유명 호텔경영대학 Les Roches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서울, 홍콩, 도쿄에서 파이낸스, 마케팅, 컨설팅 등 여러 분야에 경력을 쌓았다. 현재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레스토랑 리뷰 애그리게이터인 라 리스트에 재직 중이며 그 외에도 프랑스와 아시아의 음식문화 교류 및 관광협력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