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뼛속까지 시린 공기가 폐부로 들어옵니다. 실제로는 영상의 기온임에도 불구하고 체감은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알프스의 공기를 연상시킵니다. 한국의 겨울에 비하면 비교적 높은 온도지만, 이토록 춥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공기가 매우 습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1월 평균 습도가 59.8%에 비하면, 밀라노는 86%까지 올라갑니다. 온도계가 가리키는 숫자가 절대적인 가치를 담지 못하는 상황으로, 오래 거주한 교민들은 ‘뼛속까지 시린 추위’란 표현을 종종 씁니다. 우주의 질서 안에서 찾아오는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추위는 왠지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어딘가 모르게 허전함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Scene 1 #
추운 날씨 가운데 밀라노에서는 L’artigiano in Fiera 행사가 RHO에서 열렸습니다. 이 행사에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의 각 나라들이 참석해 나라별 특징을 간직한 특산물과 공산품, 음식 등을 선보이며 축제의 열기를 더해갔습니다.
이름 자체가 장인을 의미하는 아르띠지아노(Artigiano)인데요. 사전적 의미로는 기술자를 가리키는 단어로 또한 예술가를 일컫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경지에 이른 숙련된 장인들은 일반인은 모르는 어떠한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제품 내지는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신념이나 혼을 담아내려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보통 ‘OO장이’라는 호칭을 부치며 기술자로 여겼죠.
독일에서는 이들을 ‘마이스터’라고 부릅니다. 어떤 한 분야의 최고 경지에 이른 전문가를 지칭하죠. 장인의 의미를 뛰어넘는 명인, 명장, 거장에 가까운 의미로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합니다. 한국은 자격증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독일에서의 마이스터 자격은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조차도 상당하며, 그것을 획득한 이들의 경우에는 그 분야의 최고로 인정됩니다. 그것은 수공예 분야의 사람들뿐 아니라 기계, 전기 등의 산업은 물론 농업, 식품(요리, 소시지, 도축, 제과 제빵) 등 다양한 분야에 존재합니다.
주최 측의 기획만큼 참가한 업체들이 수제 혹은 장인의 느낌을 갖고 있는지는 관람객인 저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알라딘의 램프에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마법의 양탄자와 같이 보이는 그것을 보기 전 까지는 말이죠. 인도의 부스에서 판매하는 카펫이 매우 인상적 이였는데요. 거실에 놓으면 제법 어울릴법한 크기와 디자인의 제품의 가격을 듣고서야 저와 동행들은 잠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수 천 만원에 이르는 그것은 일반인의 생활용품으로는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차라리 갤러리에 전시된 하나의 작품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로소 이름이 뜻하는 바를 체감했습니다.
베트남 쌀국수를 좋아하는 지인은, 그것을 먹고 싶은 나머지 이틀 연속이나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쌀국수의 인기가 높습니다. 쇼핑몰이나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는데요. 오리지널을 맛볼 수 있는 기회는 현지가 아니면 쉽지 않습니다. 새로움이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지 몰라도 경험이 누적되고 그것을 좋아하게 되면, 서로 다른 문화적 색채가 뒤엉키면서 융합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강한 흡입력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검색을 하게 만들고, 그 나라를 방문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일으키며, 마침내는 언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Scene 2 #
이 행사가 있는 주말 동안, 밀라노에는 쇼페로(Sciopero)라 불리는 대중교통의 운행 파업을 진행됐습니다. 임금협상 결렬이나, 노조가 이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이 날은 밀라노 시민의 안전을 위한 목적으로 운행이 중단됐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이 믿기지가 않더군요. 실제로 전시회가 있던 이 주에는 성탄절을 목전에 두고 있는 터라, 시내에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요. 대중의 교통이 이익수단이 아닌 안전을 위한 목적으로 멈추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의식구조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과도한 화물적재로 인해 대한민국이 겪은 비극적 참사와 잠시 오버랩됐습니다. 때로는 멈출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Scene 3 #
오늘 저는 코르소 디 뽀르따 비토리아에 위치한 신개념 포케바(Poke Bar)에 다녀왔습니다.
하와이 사람들의 식탁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의 비빔밥과 같은 음식 포케는, 밥 위에 얹어서 덮밥 형태로 먹는 포케볼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포케라는 단어는 하와이어로 ‘조각낸, 자르다.’라는 뜻인데요. 1970년대 이후 알려지기 시작한 이 음식의 정체는 상온에서 상하기 쉬운 생선을 소금에 절이면서, 야채, 해초, 견과의 조합으로 영양가를 높인 생활의 지혜가 담긴 식문화입니다. 태평양 한 가운데 위치한 하와이의 지리적 조건 덕분에, 참치나, 연어, 문어가 주재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웰빙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이 음식에 대한 관심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포케바를 운영하는 젊은 부부는 루카와 수잔나 중국인 이민 2세대입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덕에, 유럽피안의 마인드를 장착하고 있으면서 또한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중국적인 사고방식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둘은 오랫동안 옛날 스타일의 바를 운영해 왔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요.
2017년부터 암스테르담, 파리, 프랑크푸르트, 홍콩과 같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이들에겐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는데요. 바로 ‘새롭지만, 품질 지향적인 자신만의 매장을 운영하기’, 그것에 영감을 불어넣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하와이 여행을 다녀오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습관적으로 커피를 만들고, 고객을 응대하고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아왔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두 부부에게 날아온 열정의 바람은 기존의 바에 대해, 스스로가 쇼페로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말입니다.
포케에서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생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섬세하게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일본인 친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생선 손질에 대한 방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품질 높은 참치와 연어 등의 생선을 찾기 위해서 다리품을 팔아야 했습니다.
이곳에도 이미 아이러브 포케(I love Poke), 포케리아(Pokeria), 포쿠(Poku)와 같은 프랜차이즈 형태의 숍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아르띠지아노’라고 불릴만한 품질 지향적인 개인 매장을 열고 싶어 했습니다. 마침내 그것의 첫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오픈한지 3주 밖에 되지 않은 터라 보완해야 하는 것이 많겠지만, 이들의 얼굴을 밝습니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꿈꿔오던 것을 이뤄나가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포케바는 커피숍 역시 메인입니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커피는 이탈리안 바 어워드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작지만 품질 지향적인 로스터리 그리소와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두 종류의 블랜딩 커피와 콜롬비아와 온두라스의 싱글 오리진 , 그리고 디카페인 커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에스프레소 한 잔은 1.2유로로, 일반적인 커피숍에 비하면 20% 가격이 높은 셈이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원두와 최상급 에스프레소 머신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면 절대로 높은 가격이 아니죠. 한국의 기준으로 보면 ‘한 잔에 1300원? 게다가 1500원에 스페셜티 커피인가?’ 라는 대목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1유로의 커피 한 잔이 너무나도 삶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탓이죠.
Scene 4 #
코나 밀라노가 이 매장의 이름입니다. 코나 커피는 세계 3대 커피로도 유명합니다. 화산토양, 미네랄이 풍부한 환경, 고산지대, 보다 높은 품질의 커피를 재배하기 위해서 태양으로부터 커피를 보호하기 위한 셰이드 트리를 심는 경우가 많은데, 이 지역은 구름이 자연스럽게 햇빛을 차단해 주는 ‘Free Shade’ 역할을 하며 커피가 자라나기 좋은 천혜의 자연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점두의 수와 생두의 크기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분류가 되는데, 가장 좋은 등급을 코나 엑스트라 팬시라고 부릅니다. 크고 투명한 생두는 신맛과 고급스러운 향을 지닌 것을 잘 알려져 있지만, 유명세를 이용해 일부의 커피만 섞은 뒤에 코나 커피라고 판매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코나 바란 이름에서 이들은 하와이안 콘셉트과 높은 품질을 향한 이들의 철학을 담아내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 이들에겐 2세대 중국인으로 이탈리아의 언어 구사가 자유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이들이 중국인이 운영하는 바란 이유 때문에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더욱더 열심히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피부색이 아닌 본질로 인정받기 원하기 때문이죠.
Epilogue #
“꿈을 크게 가져라. 깨져도 그 조각이 크다.”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생계형 창업의 전선으로 물밀 듯 밀려드는 자영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냉랭한 분위기가 지속되는 경기 상황이지만,
2019년에는 보다 희망찬 소식이 들리길 소망합니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에스프레소에 뜨겁게 녹여낸 초콜릿과 함께,
리큐르를 넣은 커피 한 잔이 생각이 납니다.
적은 양으로도 온몸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독자들께 미리 인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