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의 Coffee Break] 라바짜 플래그십 스토어

2018.05.01 09:43:25

Prologue#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흐릿한 기억으로 떠오르는 가사를 흥얼거려봅니다. 1931년 발표된 가곡으로 김동환님의 시에 김동진 작곡으로 봄을 기다리는 소박한 마음이 담겨 있는 이 곡은 단순하게 반복되는 멜로디가 제법 목가적입니다. 설레는 마음이 봄바람을 타고 들어오지만 2018년 4월의 봄은 늦겨울의 삼한사온처럼 변덕스럽습니다. 반팔 티셔츠를 꺼내야 할 것 같다가도 어느새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어야 합니다. 낭만과는 제법 거리가 멀지만, 봄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Scene 1#
커피엑스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필자는 남산타워 꼭대기에 걸려있는 하얀 구름과 파란 도화지 하늘을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중국 발 미세먼지로 자욱한 잿빛 하늘입니다. 마스크를 착용한 행인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달리는 차창 넘어 아스팔트 빛 하늘과 흐드러지게 피어난 흰 분홍 벚꽃의 간극이 상념을 불러일으킵니다.


집 근처 남산은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은 동네 아이들에겐 놀이터와 같은 곳이었죠. 개울이며 산기슭을 활보하는 개구쟁이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개나리꽃 구경도 하고 가재잡기도 하려고 개울 사이의 돌들을 들춰내던 유년의 천진난만함 말이죠. 냇가를 지나 바닷가로 흘러 들어간 물처럼 시간은 뒤돌아보지 않은 채 굽이쳐 흘러갔습니다.


밀라노에도 봄은 찾아왔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패션위크 기간 동안에는 전세계의 패셔니스타들이 거리를 벚꽃처럼 수놓았습니다. 화려함을 상징하는 밀라노의 명품 브랜드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구찌(Gucci)를 떠올릴 수 있는데요.


2018년 구찌는 파격적인 콘셉트를 선뵈면서 전 세계 패션 종사자에게 놀라움을 선사했습니다. 상상을 뛰어넘는 런웨이, 그 파격의 행보는 관객의 시선을 잡기에는 물론 누리꾼의 안주가 되기에도 충분했습니다. 병원을 콘셉트로 한 무대 설정으로 푸른색 이동식 침대와 침대에 내리쬐는 조명은 병원 수술실을 연상시켰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워킹을 하는 모델들은 허리춤에 자신의 머리 모형과 99% 똑같이 생긴 소품을 들고 걸어나와 기괴함을 선사했습니다. 목이 잘린 자신의 머리를 무표정으로 들고 있는 모습, 뱀· 용 등의 소품을 가지고 나온 모델은 가히 ‘호러 무비’를 방불케 했습니다.


구찌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Via Monte Napoleone)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원래의 구찌는 구찌오 꾸찌(Guccio Cucci)가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주)에 설립한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입니다. 구찌는 1921년 피렌체에 자신의 성을 딴 ‘구찌’라는 가죽제품 전문점을 열어 이후 세 아들과 함께 1940년대 무렵 밀라노, 로마 등 이탈리아 패션 중심지를 비롯해 1950년대부터 런던, 뉴욕, 파리 등 전 세계로 매장을 확대하기에 이릅니다. 현재는 핸드백, 여행 가방, 신발, 실크, 시계, 파인 쥬얼리 등을 선보이며 명실상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커피의 세계에도 구찌와 같은 북부지방을 대표하는 유명 커피브랜드가 있는데요. 바로 라바짜(Lavazza)입니다. 토리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라바짜는 1895년 루이찌 라바짜가 작은 상점을 오픈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Scene 2#
이탈리아의 커피는 싱글오리진 커피를 다양하게 블랜딩해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라바짜는 블랜딩 기술을 혁신적으로 발달시킨 회사로도 유명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상점으로 시작해서 그 품질과 맛을 인정받으며 점차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을 하는 스토리는 구찌의 그것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2017년 7월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 인근에는 라바짜 플래그십 스토어가 오픈을 하게 됩니다. 라바짜의 기존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콘셉트의 매장입니다. 타원형 바를 중심으로 네 개의 스페이스가 펼쳐져 디자인 됐는데요, 1유로에 커피 한 잔을 스탠딩으로 마시는 기존의 바와는 사뭇 다른 형태입니다. 전통이란 자부심과 경기침체란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이탈리아의 바는 다소 정체된 모습을 보여 왔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변화의 물결을 따라 작고 유니크한 숍을 중심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라바짜 플래그십 스토어도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됐는데요. 스타일과 색상은 커피를 연상시킬 수 있는 원료와 모티브를 사용해 커피의 경험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스펙타큘라라 불리는 카운터 위에 위치한 샹들리에는 커피가 탄생해 가공되고, 한 잔으로 전달되기까지의 마법과 같은 과정을 강조하기 위한 오브제입니다. 640개의 2차원 형태의 콩이 천장에 매달려 있어 시선을 이끌기에 충분합니다.


‘플래그십 스토어’란 사전적 의미 자체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특정 상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해 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으로 브랜드의 표준 모델을 제시하고 그 브랜드의 각각 라인 별 상품을 구분해서 소비자들에게 기준이 될 만한 트렌드를 제시하고 보여주는 것인데요.


라바짜 플래그십 스토어는 기존의 이탈리안 바의 모습을 일부분 유지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형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숍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둥그런 바에서는 바리스타들이 커피와 칵테일을 제조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커머셜 브랜드란 기존의 편견을 바꿔주는 탁월함이 있습니다.


Scene 3#
매장에 들어서면 매일 신선하게 콩을 볶는 모습이 펼쳐집니다. 자체적으로 볶기 때문에 소비자의 주목을 받고 커뮤니케이션도 용이합니다. 5개의 커피를 자체적으로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블랜딩, 그리고 케냐,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브라질, 네 개의 싱글오리진 커피가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데요. 이들은 이 커피를 슬로우 커피(Slow Coffee)라고 부릅니다.


블랜딩 커피에는 에디오피아, 과테말라, 엘살바도르의 3종이 블랜딩돼 초콜릿의 꽃향기와 함께 체리, 멜론과 같은 산뜩한 산도와 달콤한 애프터가 특징입니다.


Kangocho는 케냐의 싱글오리진입니다. ‘각진 장소’를 의미하며 이 커피가 재배되는 케냐의 언덕의 각진 테라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의 맛은 감미롭고 체리 덕분에 플로럴 노트와 함께 단맛이 강조돼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커피는 엘살바도르의 라스누베스(Las Nubes). 이 커피는 엘살바도르에서 가장 좋은 농장 중 하나이며, 용암 활동으로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화산인 산 안나(San Ana) 근처에 있다고 합니다. 밀크 초콜릿의 힌트와 함께 즐거운 신맛과 풍부하고 균형 잡힌 맛이 특징입니다.


과테말라 El Morito는 Jalapa 근처의 작은 생산자 그룹이 자연적인 방법으로 이 혼합물을 처리합니다. 커피는 신선하며 산뜻한 산도를 지니고, 열매와 과일, 섬세한 바디감을 지녔습니다. 마지막으로 초콜릿과 땅콩의 맛이 나는 균형 잡힌 브라질 커피가 있습니다.


바에 들어서면 5가지 정도의 에스프레소 가운데 하나를 골라 마실 수 가 있는 것이죠.



Scene 4#
이 숍에는 개성을 충분히 살린 맛을 경험시켜주기 위해 다양한 추출도구를 통해 커피를 선사합니다.
첫 번째 방식으로 사이폰입니다. 그것은 20세기 초 독일과 미국 사이에서 기원해 천천히 가열된 물이 유리플라스크를 통해서 통과하고 적셔지고 여과되는 과정을 통해 매우 깔끔하고 부드러운 커피를 맛 볼 수 있는데요. 그것은 미각적인 맛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커피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추출도구는 모카입니다. 이탈리아의 대부분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추출도구지요. 실제로 우유와 섞일 때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풍미를 연출하는데요. 1933년 알폰소 비알레띠에 의해 설계된 압력 커피 메이커로 중간 바디의 강렬한 향기에서 생동감 넘치는 맛과 커피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케멕스(Chemex)로도 커피가 제공됩니다. 이는 사실 화학용 비커에서 출발됐는데요. 독일의 화학자 피터 슈륨붐이 1941년 여과와 추출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서 ‘케멕스 커피메이커’를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처음 고안될 때는 실험용 도구인 삼각플라스크와 실험관을 응용했지만 공기채널을 추가해 종이필터가 달라붙어도 공기가 통하게 돼 물이 고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출이 이뤄지게 만든 발명품이지요. 현재도 많은 스페셜티 커피숍에서 이를 사용해 커피를 제공하고 있는데, 여럿이 함께 즐길 수 있고 복잡한 아로마를 지닌 우아한 컵에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이외에도 v60, 콜드브루 커피, 프랜치프렌스 등 다양한 추출도구를 통해 이들의 색깔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되는 커피를 맛 본 고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커피를 현장에서 직접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하이 퀄리티의 커피를 소비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생긴 셈이죠.


슬로우 커피 , 건강한 먹을거리, 감성이 담긴 디자인. 이들의 행보는 전통을 넘어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스타벅스가 유럽 최고의 규모 2만 5000평방피트의 크기로 오픈 준비 중입니다. 하워드 슐츠가 이탈리아의 커피문화에 감명을 받고 이를 도입한 것이 스타벅스인데, 이제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장소로 회귀를 합니다. 물론 이들은 관광객만 상대해도 성공을 이룰 수 있겠지만, 로컬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어떤 가치를 부여하게 될지 모두의 관심사입니다.


Epilogue #



이탈리아의 작은 커피숍들도 차츰 옷을 갈아입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아침마다 데미타세잔에 제공되는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시작합니다.


기괴함을 새로운 패션의 트렌드로 창조해낸 구찌의 봄 패션쇼와 120년 전통의 커피회사의 새로운 추구가 ‘무언가 변화하지 않을 것’이란 이탈리아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겨울이 봄의 생동감을 예고하듯 말이죠.
올 한해 우리에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이은상님의 시조와 함께 따뜻한 봄날의 햇살과 커피 한 잔으로 여유를 느껴보세요.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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