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반가운 손님이 한국에서 찾아왔습니다. 유럽에는 이전에도 몇 번의 방문이 있었지만 이탈리아는 처음인 새내기 방문객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한 모양입니다. 특히나 겨울철임에도 불구하고 야외테라스에 앉아있는 오렌지 빛깔의 칵테일을 즐기는 사람들의 강철의지에 더욱 놀란 모양새입니다. “현지인들은 실내보다는 야외를 사랑하고 그것을 즐겨. 핫한 지역일수록 골목길에 와인 잔을 들고 서있는 젊은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어.” 라며 설명을 하고 있는 제 자신도 테라스의 풍경에 매료되고 있습니다.
Scene 1#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다빈치의 흔적이 남겨있는 스포르체스코 성을 거닐고 있습니다. 1482~1499년 사이에 밀라노에서 살았던 그의 생애 가운데 1495년에서 1497년에 걸쳐 완성한 그림 최후의 만찬. 매우 낯익은 주제를 전무후무한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이 작품의 장대한 구도와 함께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다빈치 이전의 작가들도 같은 주제를 그려냈지만 레오나르도의 그것은 전혀 다른 형태의 시도였다고 합니다.
가롯유다까지 열두 제자의 무리 속에 포함시켜서 그 열두 제자를 세 명씩 작은 무리를 짓도록 해 유다의 배반이라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이전 작가와는 달리 화면의 조형성에 역점을 뒀습니다. 화면의 구도는 대단히 수학적인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요, 3개의 창문, 4개의 무리를 이룬 12제자 등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네 복음서,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 등을 각각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차원의 기획 때문일까요? 다빈치코드와 같은 반기독교적인 내용의 소설이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지구촌의 역사에 있어 가장 민감한 주제를 다룬 작가는 어쩌면 보고 싶은 것을 믿으려는 인간심리 가운데 하나인 확증편향을 역이용한 내러티브로 ‘노이즈마케팅’에 성공하며 대작가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이러한 경향성 때문일까요? 2년 전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밤의 카페테라스’ 속 등장인물들이 ‘최후의 만찬’ 예수와 열두 제자를 상징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미국 인터넷 언론인 허핑턴포스트는 미술 연구가인 제어드 박스터가 이 그림 속에서 흰 옷차림에 긴 머리를 한 사람이 예수를, 검은 옷이나 모자를 쓰고 테이블에 앉거나 주변에 서 있는 12명은 열두 제자를 상징한다는 분석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카페에서 걸어 나가는 한 명은 예수를 배반한 유다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카페를 밝히는 노란 불빛의 전등은 예수의 ‘후광’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 이 카페의 창틀이 희미하게나마 십자가 형태인점도 언급했습니다. 이런 ‘종교적 암시’는 고흐의 성장 배경과 부합한다는 분석도 있는데요. 고흐가 화가가 되기 전 목회자가 되기를 희망했다는 이야기에서 추론한 것입니다. 해석이야 각자의 몫으로 남겨둬야겠지만 원조에서 시작된 짝퉁전쟁은 우리의 삶에 익숙한 풍경이기도 합니다.
Scene 2#
두오모 성당 주변을 거닐다 보면 한국인 관광객에게는 낯익은 커피 브랜드를 발견할 수 있는데요, 바로 파스쿠치. 이미 한국에서도 오랜 기간 프랜차이즈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평소의 기억으로 이곳을 찾는다면 우리는 어설픈 일반화의 오류 내지는 확증편향의 폐해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숍은 이탈리아에서도 정통성을 자랑하고 있는 브랜드면서 동시에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 맞게 디자인된 플래그십 스토어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확 트인 바가 인상적입니다. 고가의 에스프레소 머신 장비를 좌우로 배치하고 있는데, 사소한 행동까지 노출이 되는 낮은 높이의 오픈바는 고객과의 소통을 위해 고려된 것입니다. 2층에서는 이곳에서만 사용하는 싱글오리진 커피를 로스팅하는 별도의 룸이 마련돼 있는데, 주문을 하는 곳에서도 한 눈에 보입니다. 매일같이 소량의 커피를 볶는 사람은 루아나(Luana)인데요. 현재는 바리스타 챔피언십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전문 커피인입니다.
서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즐기고 있으니 3개의 커다란 스크린이 눈에 띄는데, 이곳에 근무하는 바리스타들이 농장을 다녀온 이야기들이 화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일반의 이탈리안 바처럼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마키아토와 같은 메뉴만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외국인이 즐겨 찾는 카페모카, 아메리카노, 캬라멜 마키아토와 같은 메뉴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필터커피, 에어로프레소, 프레스필터, 터키 시 커피와 같은 커피에 집중하고 있는 전문매장의 아이템들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짧은 순간에도 고객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주는 서비스를 실행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꽃미남 바리스타 페데리코가 카푸치노에 멋있는 ‘라떼아트’ 그려주고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예쁜 모양을 연출하기 위해 커피의 맛을 훼손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은 전혀 없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내는 순간 집중을 하고 계량하며, 움직이는 모습들이 프로페셔널 합니다.
Scene 3#
한국의 동일한 브랜드에서 마셨던 커피와는 아예 다른 맛이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곳의 높은 품질은 한국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탈리아 본토기 때문에 환경이 달라서 맛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는데,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의 클라이언트의 별도 요구에 따라 그들에게 맞춘, 이탈리아에서 사용하지 않는 생두로 만든 커피가 보내어지고 있었습니다.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은 애호가거나 전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컵 오브 엑설런스(Cup of Excellence)의 커피가이 곳 밀라노의 파스쿠치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프랜차이즈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Scene 4#
지하 1층은 노트북을 들고 작업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려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돼 있고, 1층은 스탠딩으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바쁜 포장 고객들을 위한 공간, 2층의 로스팅 룸과 개인 공간도 눈에 띄며, 3층에는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넓은 공간과 오픈 키친이 별도로 마련돼 있습니다. 시내의 매가숍에서 다양한 콘셉트를 한곳에 녹여내고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매우 놀랍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가커피가 한국의 트렌드였다면 2018년에는 고용에 대한 어려움으로 인해 무인시스템 내지는 자동화로 눈을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문가의 손길 내지는 감성이 결여된 제품들이 만들어지는 환경이 점차 증가 할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하향 평준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가치 있는 소비에 대한 니즈는 커질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가치를 제안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작년에 한국의 유수 호텔 매니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한편으로 대한민국의 호텔과 레스토랑의 비전문인력, 자동 머신에 대한 높은 의존도에 대한 아쉬운 현상도 알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눈을 돌리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AI와 빅데이터와 관련된 4차 산업이 미래의 것, 다른 산업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외식업계, 그리고 커피와 관련해 이미 수 년 이상 앞서나가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스템들이 있습니다. 늘 과거에 정체돼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이탈리아에는 오히려 젊고 새로운 숍들이 생겨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커피들을 와인처럼 선보이려는 커피 회사들의 행보가 눈에 띕니다. 얼마 전에는 세계적인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라바짜(Lavazza)가 플래그십 스토어를 론칭 하기도 했습니다.
Epilogue #
지난 주 전문지식 없어도 돈만 내면 5시간 만에 딸 수 있는 자격증 관련 뉴스를 접하면서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100만 명 바리스타 자격증 보유시대, 게다가 바리스타 자격증의 종류만 213개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에겐 어떤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잠시만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보세요. 위작 덕분에 더욱 유명해진 ‘최후의 만찬’의 역설처럼 선입견을 걷어 낸 이탈리아의 한 브랜드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용혜원님의 시 한편과 함께 커피 한 잔의 행복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