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에어컨을 가동시켰습니다. 분명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며 다녀온 피사 여행이 아직도 생생한데, 자동차 시동을 켜기 위해 키를 돌리는 짧은 순간, 이곳은 사하라의 사막 또는 습식 사우나를 연상케 합니다. 이윽고 물방울로 맺힌 땀이 ‘뚝’ 떨어지고 맙니다. 자연의 대류현상을 몸으로 느끼는 찰나입니다. 여담이지만, ‘찰나’는 불교적인 용어로, 산스크리트어가 어원이라고 합니다. ‘대비바사론’에 따르면 75분의 1초에 해당하는 매우 짧은 순간을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저는 불교 신도가 아닙니다. 다만, 짧은 순간의 해프닝을 어떻게든 묘사해 보려 발버둥 치는 궁색한 필자입니다.
큰 일교차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코 푸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소리 역시 다가올 여름의 신호탄이 아닐까요…. 코 푸는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이탈리아에서는 식사 도중에 코를 푸는 것에 대해서 매우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코가 떨어질 정도로 크게 풀어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말이죠. 그런데 파스타면을 먹을 때 후루룩 소리를 내며 식사를 한다거나, 음식의 냄새를 맡기 위해 오랫동안 코를 킁킁거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매너가 없거나 교육받지 못한 행동이라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식사 도중 코를 크게 푸는 행위가 달갑지 않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문화적 차이지요.
Scene 1# 영국의 문화연구자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문화(文化)를 ‘영어 단어 중 가장 난해한 몇몇 단어 중 하나’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는 “문화는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고 일상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며 “인간의 역사속에서 형성돼 온 문화는 역사가 진행되며 끊임없이 변해 왔다.”고 말합니다.
문화의 정의가 여러 가지 듯, 현실 세계에서 다양한 용도로 혹은 다양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세대 문화, 청년 문화, 노동자 문화 등에서는 ‘특정한 집단’이라는 뜻으로. 화장실 문화, 교통 문화 등에서는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행위를 할 때 지켜야 할 사회적 약속’을 의미합니다. 정말이지 문화가 가장 난해한 몇몇 단어라는 데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 다른 ‘무엇’! 말로 설명하기 애매한, 그들만의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커피의 문화는 어떻게 다른가요? 한국의 커피숍은 이제는 단순하게 커피를 마시기 위한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약속, 대화를 나누기 위한 장소이기도 하고, 최근 코피스족(coffice)이라는 신조어처럼 노트북을 가지고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직장인들이 바삐 점심을 해결하는 곳, 식사 후 테이크 아웃 커피를 즐기는 곳,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진동벨이 대중화된 곳 등 이토록 다양한 색깔이 존재합니다.
반면 에스프레소가 처음 탄생한 이탈리아 카페의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오전에는 주로 아침식사를 하는 장소입니다. 잠시 들러 크루아상과 카푸치노 혹은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출근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죠. 일과 일 사이 갖는 잠깐의 휴식시간에는 바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스트레스를 풉니다. 이른 오후 퇴근길에는 칵테일과 샴페인 등을 마시며 피로를 푸는 아뻬리띠보가 카페에서는 일반적입니다.
Scene 2# 이탈리아는 한 나라라는 것이 의심될 만큼, 작게는 수 십km 떨어진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른 양상의 문화가 존재합니다. 지난 주말 저는 이와 같은 ‘다름의 미학’을 밀라노에서 85km 떨어진 곳에서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브레시아는 이민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입니다. 150여 개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 거주한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다국적 도시입니다. 이민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다양한 종류의 산업이 발달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기계 제작, 강철금속, 공장설비 등이 매우 발달됐는데요. 처음 이 곳을 방문했을 때는 이런 산업도시의 면모만 보고 브레시아만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의 실제의 모습을 보면서 단면만 보고 판단했던 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 도시의 역사는 매우 유구합니다. 기원전 12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BC 2, 3세기 경에 로마에 합병돼 로마 공화국의 일원이 되면서 로마시민권을 얻어 특정관리 자율성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이후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베네치아 공화국에 예속됐다가, 오스트리아의 지배 하에 놓이기도 하고, 마침내는 1860년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됩니다.
북부 로마 시대에 존재했던 가장 크고 잘 보존된 공공건물이 위치한 브레시아는 고고학적 가치가 충분합니다. 공화당 성소 ‘카피 톨 리누스 사원’은 기원전 양식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AD 73년의 모습을 지닌 고대사원 가운데 하나인 ‘카피 툴 리움’ 로마시대 극장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로마극장’은 1만 5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게 지어졌습니다. 이것이 AD 3세기 경의 건축물이란 사실은 실로 놀랍습니다.
또한, 유소년 시절 갖고 싶었던 장난감 총 가운데 하나인 ‘베레타’ 권총이 바로 이 유구한 역사의 도시 브레시아의 역사적 무기 공장의 이름을 딴 사실, 알고 계십니까? 물론 공감할 수 없는 분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실대는 추억의 파도가 홀연히 밀려듭니다.
그리고 이곳은 와인생산으로도 매우 유명합니다. 토스카나와 피어몬떼만이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것은 아닙니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가 기술생산 농업연구소의 인증을 받고 DOC, IGT 등의 엄격한 규율을 따르며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와인의 떼루아를 더듬어 가는 과정을 통해 맛의 프로세스를 이미지화 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맛의 즐거움을 증폭시키는 애호가들의 그 무엇처럼 도시를 보고, 만지며, 느끼며 공부해가는 과정자체는 마치 연애를 통해 상대방을 알아가는 일련의 ‘도파민 방출과정’처럼 흥미진진합니다.
Scene 3# 온통 녹색으로 둘러싸인 곳, 이곳을 십 여분 차로 지나다 보면 오늘의 주인공인 BEDUSSI를 발견합니다. 독립건물 구조에 높은 천장의 복층구조 입니다. 숍은 외관부터 매우 모던합니다.
BEDUSSI는 2015년 BAR ITALIA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밖에서 보면 오픈 키친과 젤라또 연구실이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여과 없이 노출돼 깨끗함과 신뢰감을 느낄 수 있는데요.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일종의 자신감의 표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서면, 전면에 디저트가 눈에 들어옵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조명과 통 유리 반대편에 자리 잡은 야외 정원과 테이블이 시원합니다. 아이스크림주걱을 대기만 해도 흘러내릴 것 같은 젤라또는 꼬마친구들이 왜 이토록 쇼케이스를 만지며, 부모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부둥켜안은 채 사랑에 빠지려 드는지 짐작케 해줍니다.
늘 그렇듯 오늘도 아무 말 없이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하고는 잠시 앉아 이곳의 맛을 느껴봅니다. 매장의 손님들, 직원들의 옷매무새부터 메뉴들의 진열상태와 공간을 관찰합니다. 무슨 미쉐린 평가원도 아닌 사람이 이 곳 저 곳을 훑어대는지. 혹시 직업병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해 봅니다.
잠시 후, 이곳의 매니저이며 BAR를 관리하고 있는 PAOLO BEDUSSI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곳의 막내아들입니다. 한국나이로 28살인 청년은 겉으로 보기에는 캐주얼하고 가벼워 보이는 인상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서 커피에 대한 크나큰 열정과 매장에 대해 매우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Scene 4# BEDUSSI는 가족의 이름입니다. 투자와 회계를 맡고 있는 아버지, 젤라또의 콘셉트와 품질과 함께 셰프를 관리하는 어머니, 모든 디저트를 총괄 생산하는 큰형 프란체스코, 그리고 음료와 BAR를 책임지는 파올로. 온전히 가족이 운영하는 매장입니다.
고객의 70% 정도가 젤라또를 먹기 위해 이곳에 온다고 합니다. 품질은 이미 정평이 나있습니다. 퀄리티 중심의 매장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창업 목표였다고 합니다. 브레시아의 자존심이 될 수 있는 매장을 만드는 것, ‘출발 동기’부터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고품질에 대한 비결을 물어보자 단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좋은 재료’라고 답합니다. 기술적인 부분의 중요성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물론 이 역시 중요하지만, 좋은 품질의 원자재를 구하려는 열정 자체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습니다.
파올로는 “브레시아는 밀라노만큼 큰 레스토랑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뉴욕이나 런던에서 쉽게 볼법한 모던한 디자인을 채택했지만 이탈리아의 맛을 판매하는 매장이다. 부모님이 원래 요식업을 하던 분들은 아니셨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디어와 열정을 현실화하기 두려워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곳은 브런치는 물론, 디너도 가능한 곳입니다. 50대의 일본인 여성 셰프가 퓨전 디너를, 이탈리아 셰프는 클래식한 이탈리안 음식을, 나머지 한 명의 셰프는 빵과 포카치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젊은 매니저는 18살 때부터 커피맛보기 훈련을 해왔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맛보기 전문가인 파올로 밀라니와 함께 말이죠. 이처럼 늘 최상급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커피와 우유가 들어간 메뉴에는 다른 블렌딩 원두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는 흔치 않은 핸드드립 커피를 팔기도 하고 심지어 주스에 사용하는 다양한 종류 과일도 전부 유기농을 쓴다고 하는군요.
이 매장을 찾는 이들 중 어림잡아 3000명 정도는 단골손님이라고 합니다. 적어도 50%의 손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파올로. 1500명의 이름을 불러주며 대화하고 가벼운 일상을 나누는 것. 이것이 정말 쉬운 일일까요? 이 청년에게서 다른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청년이 아닌, 이들의 삶의‘ 문화’일 것입니다.
Epilogue# 유년시절 집에 돌아와서야 실내화 주머니를 잊어버린 걸 깨닫고 학교로 돌아가서 닫힌 교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꼬마아이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마침내 되찾은 실내화 주머니. 외식산업의 선봉장에 서있다고하면서도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우리…. 천 명이 넘는 이웃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불러주는 파올로의 가족들은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깊고 강렬한 메시지를 남겨줬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전용(Jonny Je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