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친퀘테레는 이탈리아 리비에라에 있는 절벽과 바위로 이뤄진 해안입니다. 이탈리아 라스페치아(La Spezia)의 서쪽에 있는 리구리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소개했던 제노바와 인접해 있고 아래쪽으로는 토스카나주에 속한 마사(massa)에서 한 시간 정도를 달려가면 친퀘테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피사에서 친퀘테레를 향해 뻗은 해안선을 달리다 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과 더불어 드넓은 백사장을 뒤에 두고 관광객을 맞이하는 즐비한 레스토랑과 바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이탈리안 해산물 요리 애호가인 저는 바닷가 근처에 방문할 일이 생기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가에 침이 고이곤 합니다. 자연에서 건져낸 자연스러운 짠맛과 바다의 냄새를 간직한 요리접시는 과장을 조금 보태 입으로 바닥을 청소해 주고 싶은 마음까지 생깁니다. 그 옛날 소금이 화폐의 수단으로 사용됐던 것만 보더라도 음식의 저장과 맛의 측면에서 짠 맛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습니까?
실제로 저는 2년 전 이 지역을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달린 경험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카페 문화를 구석구석 경험해 보고 싶었던 제게 400cc의 스쿠터는 와이너리를 품은 산간지역은 물론 시골의 장터까지 저를 안내해 줬습니다.
여담이지만 친퀘테레를 가기 위한 여정에서 예정에 없었던 마사지역을 지나던 중, 잠시 저는 여행 계획을 급 수정하게 됐습니다. 뜨거운 햇살을 느끼며 달리는 해안선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 코끝을 타고 프리또 프루띠 디 마레(fritto frutti di mare_ 해산물 튀김)의 강한 향이 유혹했기 때문입니다. 그에 이끌려 바이크에 제동을 걸고 이 향기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로 북새통인 이곳은 이 지역에서 명성이 나있는 레스토랑 가운데 한 곳이었습니다. 80ℓ의 큰 배낭을 짊어지고 한 손에는 오토바이 헬멧을 움켜진 채 비장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동양인은 이곳에서도 낯선 풍경이었나 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제게 머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후에 펼쳐진 식탁의 스토리, 싱싱한 원재료들, 열정의 웨이터, 그리고 맛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면을 다 사용해도 모자랄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Scene 2... 이탈리아의 각 지역마다 유구한 역사와 자연풍경 유물들로 가득하지만 라스페치아(La Spezia)에 처음 도착하면 전혀 다른 이질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은 해상 군사의 요충지였습니다. 가족 중심으로 경영되는 소규모 패밀리 레스토랑 격인 트라또리아(trattoria)보다 패스트푸드점이 쉽게 눈에 들어옵니다.
잠시 낯설음이 제공하는 실망감은 차로 30분 거리에 숨어있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유산 친퀘테레를 만나는 순간 잊어버리게 됩니다. 조용하고 소박하며 평화로운 이곳의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보고 있자면 마음의 정화가 되는 기분마저 듭니다.
친퀘테레를 이루는 ‘다섯 개의 땅’은 몬테로소알마레(Monterosso al Mare), 베르나차(Vernazza), 코르닐리아(Corniglia), 마나롤라(Manarola), 리오마조레(Riomaggiore) 이상 5개의 마을입니다. 다섯 마을과 주변 언덕, 해변은 전부 친퀘테레 국립공원의 일부이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입니다. 사람들은 몇 세기 동안 절벽을 포함한 바위 투성이의 가파른 지형에서 테라스를 지었습니다. 개발 되지 않은 마을은 친퀘테레의 특징이자 치명적인 매력입니다. ‘꽃 보다 남자’에 소개되면서 너무 흔해져 버린 곳이 됐지만, 이곳은 여전히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네스코의 유산입니다. 수많은 길과 기차, 배가 다섯 마을을 연결해 줍니다. 하지만 외부 지역에서는 차를 들여올 수 없습니다.
알록달록한 파스텔 색상으로 칠해진 오래된 집이 그림처럼 뻗어있습니다. 열차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안선을 따라 절벽처럼 펼쳐진 도로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기 어렵습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절벽의 정상에서 바다를 바라봤습니다. 더 이상의 수식어 없이, 잠시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낡은 테라스와 파스텔 톤의 오랜 가옥들 사이로 펼쳐진 빨래줄 바람에 따라 앞뒤로 펄럭이는 세탁물마저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집니다. 다시 한번 이 소박함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에 그저 매료될 뿐입니다.
Scene 3... 이 소박한 마을에서 여지껏 맛보지 못한 최상의 카푸치노를 경험할 것이란 사실을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골목 어귀에 위치한 작은 카페의 직원들은 친절한 미소로 고객을 맞이했습니다. 따뜻한 봄 햇살처럼 포근하면서도 지역의 색깔만큼 부드럽고 평화롭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우유거품의 밸런스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보다 큰 건물, 화려한 인테리어, 고가의 장비가 맛을 대신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일루전’에 사로 잡힌듯 보입니다. 이러한 제 삶의 관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작은 어촌에서 만난 카푸치노는 소중한 책 한 권처럼 무언가 제 가슴에 남겨 뒀습니다. 에스프레소는 조금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었지만, 아쉬움은 들지 않았습니다. 벽면 한 켠에 적힌 “My wife is expensive, but wifi is free.”란 문구를 보며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이 카페의 주인장과 눈인사하고 그 곳을 기억 저편에 남겨두고 떠납니다.
Scene 4... 600년대부터 친퀘테레는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14세기에 라스페치아의 군사 무기고의 건설과 제노바와 라스페치아 사이의 철도 건설 덕분에 상황은 역전됐습니다. 철도는 고립돼 생활하던 주민들이 마을을 벗어날수 있게 해줬고 전통적인 관습은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결국 빈곤이라는 결과를 낳아 적어도 관광산업으로 다시 부유해졌던 1970년대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이민을 가게 됐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집은 고기잡이로 돈을 벌었으며 생선을 주식으로 했다고 합니다. 어부들이 연안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집을 쉽게 볼 수 있게 집을 화려하고 다양한 색으로 칠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가장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아내가 집안 일을 잘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Scene 5... 여름이나 이른 가을, 이곳을 여행한다면 모래사장으로 펼쳐진 해수욕장이 아닌 작은 돌덩어리로 뭍을 형성한 곳에서 한가롭게 태닝을 즐기거나 고요한 바다와 대화를 나누듯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유람선을 타기 위해 줄지어 늘어선 행랑객, 지역만의 카페 문화 또는 커피의 색깔이란 것을 찾아 보기란 어렵습니다. 다만 천혜의 풍경이 선사하는 공기, 햇살, 풍광 자체가 커피의 향을 배가 시킵니다. 어촌의 어귀에서 전 세계관광객을 상대하는 세련된 옷맵시의 바리스타의 친절한 미소 다이나믹한 동작으로 커피를 제조하는 여성 바리스타의 멋스러움은 이색적입니다. 대도시에서 커피 한 잔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Epilogue... 2016년이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커피 시장은 날로 팽창하고, 양적은 물론 질적인 성장과 저하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복잡한 가운데 있습니다. 카페문화에 대한 관심도 날로 높아지면서, 유명 커피숍을 찾아 무언을 카피해야 할지 눈을 번뜩이는 사람들, 소셜미디어에 남길 사진만을 찍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분들도 제법 있습니다.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친퀘테레가 아닐지라도 제법 조용하고 공기 좋은 뒷 골목 카페 같은 곳에서의 커피 한 잔하면 어떨까요? 포근한 미소 한 스푼 제공하는 집이면 더욱 좋구 말이죠.
<2016년 2월 게재>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