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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손진호 교수의 명가의 와인] 파이로스 와인(Pyros W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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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12월~! 연말이 되면 부쩍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바다를 보며 역동적인 한 해를 시작했다면, 높은 산 정상에서 장엄하게 한 해를 마감하려는 뜻일까? 고요하고도 웅장한 산은 생각의 깊은 원천이며 삶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게 한다. 그리고 산의 가장 높은 곳에서 새해의 새로운 태양을 맞는다. 이 즈음이니, 필자는 이 달에 산의 와인을 소개하려 한다. 지구상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와인산지에서 생산되는 와인, 안데스 산맥의 와인, 아르헨티나의 파이로스(Pyros)다.

멘도사를 대체하라, 산 후안 San Juan

1554년 스페인 이민자들에 의해 첫 포도밭이 식재된 아르헨티나는 현재 약 22만 3000ha의 포도밭을 가진 세계 5위권의 와인 대국이다. 자국 내 와인 소비가 세계 7위로 수출 비중은 칠레보다 낮아 우리나라에서는 칠레 와인보다 덜 알려져 있다. 이런 아르헨티나가 뛰어난 자연 조건과 충분한 생산량에 힘입어 남미 와인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안데스 산맥의 높은 해발 고도에서 풍부하게 쏟아지는 햇살과 높은 일교차로 품질 좋은 포도를 얻을 수 있는 아르헨티나는 최근 프랑스나 이탈리아, 미국 등 와인 강국의 러브콜을 받으며 잇단 기술 지원과 협력으로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고 있다. 지난 세기까지 아르헨티나의 와인 산지는 멘도사(Mendoza Province)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으며, 이미 현대적 생산 기술에 유럽 품종들이 모두 들어와 있는데, 아르헨티나의 특색 있는 품종은 말벡이다. 


보르도의 블렌딩 품종으로서 프랑스 남서부에서 주로 재배되는 말벡은 아르헨티나의 건조한 고산 기후에 최적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 안데스 고산지대는 대륙성 준사막 기후로, 연 200~250mm 정도의 적은 강수량으로 건조하고 화창한 날씨가 300일 이상 유지되고, 안데스 만년설이 포도나무의 관개를 돕는 청정 포도 재배 지역이다. 해발고도가 높은 만큼 일교차가 크고, 포도는 서서히 익는다.


산 후안(San Juan Province)은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로 큰 와인 생산 지역으로, 멘도사를 대체할 수퍼 루키다. 총 식재 면적은 4만 9000ha로, 아르헨티나 전체 와인의 28.5%를 생산한다. 포도밭의 해발 고도는 600~1400m 사이에 있으며, 멘도사와 유사한 환경이나 훨씬 거칠다. 안데스 산맥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 ‘존다(Zonda)’의 영향으로 세계에서 가장 화창한 기후 지역 중 하나인 곳으로 큰 일교차와 풍부한 일조량이 특징이다. 지난 세기까지는 낮은 품질 와인이나 증류주를 생산했던 곳이었으나, 21세기 들어, 뛰어난 테루아를 가진 소구역을 발굴해 아뻴라시옹(Appellation 공인와인생산규정)을 부여하며 품질 와인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고도가 가장 낮은 툴룸 벨리(Tulum Valley)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페데르날 밸리(Pedernal Valley)까지 테루아가 세분화됐다. 이 중,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페데르날 밸리는 2007년에 아뻴라씨옹(Geographical Indication,G.I.)을 획득했다. 이곳은 산 후안 주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산 후안 시로부터 약 90km 정도 떨어져 있다. 해발 고도 1250~1500m의 고지대로 인근 페데르날 산맥이 병풍처럼 보호하고 있다. 각종 병충해와 문명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진 오지로 매우 거칠고 삭막한 특별한 테루아를 가진다.




산 후안의 불꽃, 파이로스 와인즈~!

보데가스 살렌타인(Bodegas Salentein) 양조사의 창립자인 마인데르트 폰(Myndert Pon)이 산 후안 지방의 페데르날 밸리 구역을 처음으로 방문한 것은 2008년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오지의 거친 자연이 낳은 고유한 아름다움과 다채로운 테루아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투자를 결정했다. 파이로스 포도밭은 총 350ha인데, 그중 80ha에 말벡 품종을 식재했다. 언덕의 윗부분은 석회질 함량이 매우 높은 토양이며, 아래로 내려가면서, 미세한 점토와 자갈층이 나온다. 남향으로 열려진 방면에서는 시원하고 건조한 남풍이 불어와 포도밭을 건강하게 유지시켜준다. 이곳에서 낮과 밤의 일교차는 18~20°C까지 된다. 이런 모든 조건으로 포도알의 껍질이 두꺼워지며, 폴리페놀 함량이 높아지고, 당과 산의 균형이 이상적으로 맞춰진다. 결과적으로 파이로스 밭의 와인은 더욱 진한 색상과 아로마와 풍미가 뚜렷하며 다채롭고, 장기 숙성력도 곁들이게 된다. 




파이로스 와인은 해발 1400m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페데르날 계곡의 고립된 암석투성이 밭의 산물이다. 선사시대 해양 퇴적물에서 유래한 귀중한 석회암과 부싯돌 토양, 최적의 서늘한 날씨를 가진 이곳에서 뛰어난 농축미와 독특한 표현력을 지닌 세계적인 와인을 탄생시켰다. 페데르날 밸리의 동편, 파이로스 밭이 있는 곳은 4억 8000만 년전의 해양 퇴적층에서 유래한 석회질이 풍부한 토양이며, 이산화 규소암(Silicon Dioxide Rocks)과 더불어 페데르날 밸리 와인에 매우 고유한 미네랄 특성을 불어 넣어 준다. 산 후안 지방 페데르날 밸리 와인이 멘도사 지방 와인과 다르다면, 바로 이러한 토양 구성이 영향을 끼친다고 보겠다. 섬세한 타닌 구조, 풍부한 과일향, 깔끔한 미네랄 표현, 높은 산미, 이것이 페데르날 테루아의 진솔한 표현이다. 




현재, 파이로스 와인즈의 포도밭 관리는 구스타보 매톡(Gustavo Matocq)이 담당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몽펠리에 농대에서 농학기사 학위를 받았으며, 2006년부터 페데르날 밸리의 테루아에 적합한 포도 재배 방법을 연구해 왔다. 파이로스의 와인메이커는 2011년부터 근무했던 호세 모랄레스(José Morales)가 떠나고, 2020년 2월부터는 전년도에 합류했던 파울라 곤살레스(Paula González)가 맡게 됐다. 스페인 등지에서 경험한 유럽적인 와인 생산 전통을 잘 소화해 내며, 페데르날 밸리의 테루아에 최적화된 새로운 와인이 탄생될 것을 기대한다. 양조 컨설턴트는 캘리포니아의 전설적인 양조학자 폴 홉스(Paul Hobbs)다. 그의 이름이 들어가가는 곳마다 마법같은 와인을 만들어내는 양조 전문가다. 파이로스 와인이 불과 2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한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와이너리 이름 ‘파이로스’는 ‘불(Fire)’이라는 원주민 용어에서 유래했다. 페데르날 밸리에는 부싯돌(Flint)이 많은데, 토착 원주민들은 이 돌을 부딪쳐서 불꽃을 내어 불을 피웠다고 한다. 페데르날 밸리의 역사와 테루아에 헌정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불꽃 같은 와인, 파이로스를 만나 보자.




파이로스 말벡 아뻴라시옹 Malbec, Appellation




아뻴라씨옹~! 어차피 프랑스적 개념이기에, 불어로 발음해 봤다. 파이로스 와인이 만들어지는 페데르날 밸리는 2007년에 아뻴라씨옹(Geographical Indication,G.I.)을 획득했다. GI는 동일한 테루아를 공유한 지역을 구획해 명칭을 부여하는 아르헨티나의 와인 인증 체계다. 아뻴라씨옹은 파이로스 사의 기본급 와인이다. 전체 80여 ha의 말벡 밭에서 생산되는 포도 중, 일정 품질 이상의 포도를 모아 블렌딩한 와인이다.


어느 한 싱글 빈야드나 상품 포도만을 선별해 만든 것이 아니기에, 페데르날 벨리 와인의 특성을 가장 표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와인이 되겠다. 말벡 100%이며, 소출율은 100hl/ha다. 숙성에 사용된 오크통은 모두 한 번 이상 사용했던 것으로, 프랑스 오크통과 미국 오크통을 절반씩 사용했으며, 10~12개월 정도 숙성시켰다. 페데르날 테루아의 풍부한 과일향을 살리기 위한 현명한 오크통 사용법이다. 필자가 시음한 2017년 빈티지 아뻴라시옹은 알코올 14.5%vol의 힘과 섬세함을 겸비한 와인이었다. 제비꽃 향기가 처음부터 강하게 들고 나오며 아르헨티나 말벡의 풍미를 북돋는다. 이어서 블랙베리와 체리향, 그리고 정향과 아니스의 상큼한 이국적 터치가 곁들인다. 미감에서는 풍부한 타닌과 다양한 폴리페놀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높은 산미와 너그러운 알코올이 긴 피니시를 남기고 사라질 즈음에 페데르날 석회석에서 오는 텁텁한 그립감이 아련하게 등장하는 묘미는 덤이다. 하얀색 레이블 위에는 멀리 안데스 산맥부터 시작되는, 층층이 이어지는 산맥의 실루엣과 땅속 깊은 곳까지 이어지는 토양층을 가늘게 회색 펜으로 그려내, 페데르날 테루아를 그대로 잘 표현했다. 낮은 시판가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멋진 품질이다. 아르헨티나 출신 와인마스터(MW) 팀 앳킨(Tim Atkin) 점수 92점을 획득했다. 일상의 불고기와 바비큐, 각종 고기구이와 잘 어울리겠다. Price 5만 원대



파이로스 말벡 블록4 Malbec, Single Vineyard, Block No.4




싱글 빈야드 와인 콘셉트는 유럽에서 시작해, 이제는 뉴월드 생산 지역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No.4 블록은 파이로스 빈야드의 가장 상부 구획이며, 회사의 포도밭 관리자 구스타보 매톡(Gustavo Matocq)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밭이다. 이곳의 토양은 매우 복잡하다. 전 세계에 7%밖에 없다는 석회석이 가장 풍부한 곳이며, 여기에 충적토와 부싯돌 그리고 점판암에 화강암까지 매우 다양한 토양 성분이 존재한다. 말벡 100%며, 소출율은 75hl/ha다. 숙성에 사용된 오크통은 모두 한번 이상 사용했던 것으로, 프랑스 오크통과 미국 오크통을 절반씩 사용했으며, 14~16개월 정도 숙성시켰다. 


필자가 시음한 2015년 빈티지는 알코올 14%에 3만 병 생산됐다. 제비꽃과 감초, 바닐라, 토스트향에 약간의 타르향도 저변에 깔려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로즈마리와 세이지향 등 허브향이 매우 고아하게 번지며, 이국적인 안데스 산맥의 바람 내음을 전해 준다. 첫 입맛에서는 매우 견고하고 강인한 몸집을 드러내나, 30분 정도 지나면, 말쑥한 타닌과 정돈된 미감을 풀어 놓는다. 부드럽고 유연한 조직감에 상승감을 주는 산미, 인상 깊은 미네랄 터치가 근사하다. 시골의 한적한 밭길에서 멋드러진 신사를 만난 기분이다. 산 후안 지방 페데르날 밸리 말벡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놀라운 샘플이다. 팀 앳킨 MW 점수 96점을 획득했다. 이 와인을 처음 봤을 때, 레이블의 페데르날 산맥과 포도밭의 검은 실루엣이 다소 음침하고 무섭게 보였는데, 정작 그 내용물은 이리도 세련된 것을~! Price 10만 원대


파이로스 스페셜 블렌드 Pyros, Special Blend, Limited Edition




스페셜 블렌드다. 말벡은 파이로스 포도밭의 Blocks N°5와 N°13이 사용됐고, 시라와 까베르네가 합류했다. 필자가 시음한 2014년 빈티지에는 핵심 품종 말벡에 시라 품종이 22%, 까베르네 소비뇽 품종이 8%가 블렌딩됐다. 시라 품종은 이미 칠레에서부터 남미 대륙의 기후에 완벽하게 적응한 품종으로 인정받았으나, 아르헨티나에서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그런 이미에서 22%의 시라를 블렌딩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며, 블렌딩 기술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8%의 까베르네 소비뇽이 포함됨으로써, 레드 와인의 품격과 우아함이 더욱 고양됐다. 숙성에 사용된 오크통은 프랑스 오크통과 미국 오크통을 절반씩 사용했으며, 10% 정도는 새 오크통에 넣었고, 20개월 정도 숙성시켰다. 필자가 시음한 2014년 빈티지는 알코올 14%에 1만 2000병 생산됐다. 색상은 짙은 석류색에 살짝 벽돌색 뉘앙스가 가미됐다. 잔에 따르자마자 폭발적인 블랙 체리와 블랙베리, 강한 과일 풍미가 드러난다. 이어서 블랙커런트와 민트향이 특징적으로 올라오며, 먼지향, 감초향, 얼그레이향이 복합미를 형성한다. 후반부에는 토스트, 다크 초콜릿 등 감미로운 향들이 기분 좋게 마무리한다. 입안에서는 말쑥한 타닌이 미국 오크에서 오는 크림 질감과 합쳐져서 매우 우아한 조직감을 준다.


2시간 정도 디캔팅한 것이 주효했다. 잘 익은 과일과 모카커피, 바닐라 삼총사가 이루는 감미로운 풍미에 세련된 질감이 이루는 놀라운 하모니, 스페셜 블렌드다. MW 팀 앳킨은 97점을 줬구나, 조금 더 줘도 되는데...! Price 13만 원대


손진호 

중앙대학교 와인&미식인문학 교수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 칼럼니스트,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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