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ef] 5대째 가업을 잇는 오스트리아 싸일러 베이커리, 아돌프 싸일러 셰프

2020.01.10 09:20:49


백년 가업을 잇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1913년에 증조부로부터 시작된 베이커리를 5대에 걸쳐 운영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인 싸일러 셰프를 만났다. 백년 넘게 바통을 이어온 가문의 업이자 명예인 베이킹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장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1월 서울 청담동에 싸일러 베이커리로 한국의 고객들을 찾은 아돌프 싸일러 셰프가 전하는, 가문의 이름이 담긴 베이커들의 이야기다.


1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싸일러 베이커리가 한국에 문을 열었네요. 한국의 고객들에게 소개해주세요.
우선 한국의 고객들에게도 오스트리아 정통의 베이킹을 선뵐 수 있게 돼 반갑습니다. 싸일러 베이커리는 1913년에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Braunau) 마을의 조그마한 동네 빵집으로 시작했습니다. 증조할아버님으로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아버지로, 저와 형님에게로 전해졌죠. 그리고 제 조카인 시몬 싸일러와 루돌프 싸일러가 물려받아 5대째 명맥을 잇고 있어요. 100년이 넘도록 깊게 뿌리내린 지역중심사업으로 현재 오스트리아 내에 9개주를 커버하는 1개의 공장과 2개의 숍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매장을 관리하실텐데 일본에서 싸일러 베이커리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저는 1994년부터 일본 후쿠오카에서 싸일러 베이커리를 열어 운영하고 있어요. 일본 싸일러 베이커리는 구글, 트립어드바이저 등 온라인에서 10년간 후쿠오카 베이커리 분야 부동의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어요. 일본에만 85명의 직원을 둘 정도로 성장해 지역 인기빵집으로 자리 잡았지요. 이번 한국 진출은 서울식품공업과의 파트너십으로 성사됐는데 2019년 11월 청담동을 시작으로 점차 지점을 넓혀 많은 한국 고객들에게 정통 오스트리아의 빵 맛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베이커리를 100년 동안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이 뭔가요?
한국은 대기업이 베이커리 시장의 큰 포션을 쥐고 있지만, 저희는 한국의 구조와 다른 면이 있어요. 싸일러 베이커리는 오스트리아에서 철저히 지역 중심 기반의 빵집입니다. 저희의 이름을 건 숍도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지역 내 호텔과 레스토랑, 리테일숍에 납품할 만큼 오랜 시간동안 신용과 제품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지요. 지역주민이라면 싸일러의 이름만으로 베이커 집안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에요. 공장은 2년 전에 새로 지었는데 수작업과 자동화 공정을 병행함으로써 맛은 유지하되 품질력은 높였죠. 그 어느 것도 평준화된 맛이 아닌, 선대로부터 전해오는 깊은 풍미를 담았습니다.


오랜 기간 쌓인 기업 철학도 있겠네요.
베이커리는 영원히 지속될 사업입니다.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는 게 싸일러 베이커리의 철학이죠. 우리가 만든 제품으로 고객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큰 보람이 됩니다.
     

비즈니스 히스토리가 궁금해요.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하신 거에요?
오스트리아에서는 패밀리 비즈니스가 많아요. 대대로 베이커인 저희 집안사람들도 늘 빵 반죽을 끼고 살았어요. 저 역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베이커리를 드나들며 부모님 일을 도왔으니까 한 5살 무렵부터지요. 1913년에 저희 증조부께서 시작하신 싸일러 베이커리는 현재까지 가족경영기업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그리고 저와 조카들에게 대물림 됐ㅅ죠. 할아버지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전사하시면서 할머니가 공장만 운영해오시다가 아버지가 1958년에 싸일러 베이커리의 문을 다시 열어 지금에 이르렀고요. 현재 오스트리아에서의 사업은 5대째 조카들이 맡아서 하고 있어요. 그 중 23세 시몬은 세계 기능올림픽 국가대표이기도 한 오스트리아 제빵 기능장이랍니다. 저는 1984년에 큐슈지방에 있는 일본 회사로 스카웃 돼 그 때부터 일본에서 일하게 됐어요. 그로부터 10년 뒤에 싸일러 베이커리를 후쿠오카에 열어 지역 내 일등 빵집으로 성공시켰고 오늘 이렇게 한국에 있는 고객들을 만나게 됐네요.


이름에 담긴 의미가 있나요?
오스트리아에서는 장남이 아버지의 직업을 따르는 게 당연해요. 오랜 기간 한 가지 업을 이어오니 싸일러에는 베이커라는 직업을 내포하고 있어요. 집안의 명성이 이름으로부터 나오는 거죠. 그래서 첫째 조카의 이름도 아버지와 첫 이름이 같은 루돌프 싸일러입니다. 선대로부터 이어지는 메인 레시피를 유지하고 여기에 기술이나 재료를 업데이트시켜 예전 그대로의 빵맛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죠.


설명만 들어도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네요.
유럽은 장인에 대한 리스펙트가 강해요. 18세기에는 베이커라는 직업도 왕이 지정해야만 가능했답니다. 왕실에 납품할 수 있었던 제품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상징하는 KuK(KuK-Kaiser und König)를 표기할 정도로 자부심이 높아요. 지금은 오스트리아에서 자격을 부여하는 마이스터만 베이커리를 오픈할 수 있어요. 자격 기준도 많이 완화돼 경력 15년에서 3년으로 줄었지요. 마이스터가 되려면 경영, 법률, 마케팅 전반에 대한 시험을 통과해야 하며 제과, 제빵의 라이센스가 따로 나뉘어 있어요.


오스트리아 하면 비엔나 커피를 떠올렸는데 유명한 빵도 많다면서요?
250여 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오스트리아의 베이커리 제품은 단연 최고를 자부합니다. 비엔나 커피 뿐 아니라 카페오레, 크로와상, 바게트, 쿠겔호프 모두 오스트리아의 산물이지요.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와 결혼해 왕비가 된 마리앙투아네트가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로 시집갈 때 많은 요리 문화가 프렌치로 전수돼 퍼지게 된 것입니다. 한편 오스트리아에서 베이커리가 발전하게 된 것은 터키에서 전해진 커피와 함께 그 맥을 같이하고 있어요. 터키의 커피가 당대 예술 문화의 중심인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발전해 유럽으로 퍼지게 됐죠. 커피와 함께 케이크나 디저트류가 자연스레 뒤따르게 됐고요.




한국과 일본의 베이커리 시장이 어떻게 다른가요?
프렌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 베이커리 카페는 대게 제품군이 비슷해요. 싸일러 베이커리는 여기에서 오스트리아 정통 빵이라는 차별화 포인트를 둬 성공했지요. 안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변형 없이 정체성을 유지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한국 시장을 살펴보면 베이커리마다 비슷한 원재료를 사용하고 재료가 한정돼 있어요. 일본, 프렌치, 미국의 영향을 함께 받았지만 한 끼 식사로 먹는 유럽과 달리 한국은 단과자나 디저트 위주로 선호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한국에서 어필할 수 있는 싸일러 베이커리만의 특별한 점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세요.
한국 시장 진출은 지난 2월부터 준비해온 프로젝트입니다. 싸일러의 제품들은 원재료만 달라져도 같은 맛을 낼 수 없을 만큼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워요. 그래서 대부분의 재료도 오스트리아에서 공수해서 사용하지요. 겉으로 화려한 것보다 속이 꽉 찬 것이 저희 제품의 특징입니다. 그만큼 좋은 재료를 선별해 오랜 시간을 들여 퀄리티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투박하지만 풍미와 깊은 맛이 오랫동안 입안을 감돌지요. 최대한 원형을 유지하되 변형시키지 않은 100여 가지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이중 한국에서는 40~50가지 품목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 중 몇 가지 제품을 소개한다면요?
황제의 빵이라고도 불리는 카이저 젬멜이 단연 유럽시장 넘버 원 제품이지요. 카이저 젬멜보다 부드러운 맛을 원한다면 그라함 젬멜도 추천합니다. 오스트리아를 방문하신다면 자커토르테를 꼭 한 번쯤 경험하실텐데요. 싸일러 베이커리의 시그니처인 자커토르테는 초콜릿 코팅이 부드럽게 표면을 감싸고 설탕의 결정이 눈 녹듯 씹히는 게 특징입니다. 애플파이와 비슷한 아펠스투루델은 오스트리아 정통 카페라면 모두 갖고 있는 메뉴입니다. 애플필링을 바삭하고 얇은 레이어가 겹겹이 감싸고 있는데 여기에 생크림을 곁들여 커피와 함께 마시면 최고의 궁합이 되지요. 이밖에도 자극적이지 않고 맛의 깊이가 느껴지는 샌드위치나 비넨 슈티히, 바닐라 키펠도 경험해보길 추천합니다.
    
앞으로 한국에서의 확장 계획이 있나요?
우선 2020년에 2호점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일본과 한국의 매장을 관리하면서 오스트리아와 기술, 레시피 교환도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며 1년에 1~2회는 직원 교육을 위한 익스체인지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가업을 이어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죠. 여기에는 단순히 가족기업의 노하우를 떠나 오스트리아의 정체성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애정을 갖고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동기부여를 통해 비즈니스를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싸일러 베이커리가 앞으로 다음 세대에 어떻게 계승되기를 바라나요?
일본에 5명의 아들과 7명의 손주들이 있어요. 저의 자식들 역시 일본 싸일러 베이커리에서 일하고 있고요. 우리가 선대에 물려받았던 정신과 정체성을 담아 후대에도 이 모습 그대로 계승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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