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ef] 하이엔드 모던 일식의 강자, 히비끼

2020.03.04 09:30:58


한남 더힐의 전경을 한 눈에 품고 있는 히비끼는 방송인을 비롯한 국내외 인플루언서들의 한남동 맛집으로 자리 잡은 모던 일식당이다. 8년 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시작된 히비끼는 201710월에 한남 더힐 인근의 한남동 숍으로 이전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그동안 정통 일식을 선보여 오던 히비끼가 트렌디한 인근 상권의 영향을 받아 201910월부터 조선호텔 스시조 출신의 실력파 이종심 셰프가 오너셰프로 이끌면서 이 셰프만의 독특한 감성이 돋보이는 하이엔드 모던 일식당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의 시그니처인 고등어 소바, 타마고 카츠 샌드 등은 입소문만으로 고객층을 확보했을 정도다. 음식으로 고객의 가슴에 작은 파동으로 퍼져나간다는 의미를 담은 히비끼는 이종심 셰프의 섬세한 한 점으로 깊은 울림이 되고 있다.


 

Q. 정통 일식을 고수하던 히비끼가 전폭적인 메뉴 리뉴얼을 통해 새로워졌는데 어떻게 바뀌었나요?

가장 큰 변화는 메뉴입니다. 스시, 사시미 위주의 정통 일식에서 퓨전 일식으로 바뀌었어요. 사이드 메뉴의 구성이 많아지고 프리젠테이션이 눈에 띄게 달라졌지요. 아무래도 스시조에서 오랫동안 몸담았기 때문에 스시조의 기본이 남아있지만 그것을 저의 방식대로 새롭게 바꿔봤어요. 호텔에 있을 때 일본에서도 명성이 높은 레스토랑 여러 곳과 컬래버레이션을 해봐서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계절별 메뉴 변화를 주고 있어요. 일본은 매뉴얼이 잘 돼 있다고 하죠. 직접 경험해보니 정말 소름끼칠 만큼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완성도 높은 요리를 내더라고요. 이곳에서 재료의 용도, 소스와의 매칭 등을 배웠고 여러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한국의 특성에 맞는 레스토랑을 위해 5년간 콘셉트를 준비하고 연구했어요.

 

Q. 경험한 메뉴 중에 인상 깊었던 부분도 있었나요?

디저트 과일에 곁들여진 소스가 기억에 남아요. 일반적으로 소스는 액체형태로 부어주잖아요. 그런데 한천을 굳혀 젤리형태로 만든 소스를 잘게 다져 과일 위에 뿌려주더라고요. 마치 금처럼 빛나 고객들의 탄성을 자아냈었죠. 이처럼 요리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접시 위에 그림을 그리듯 요리를 담아내야하지요. 제가 데코레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감흥 없는 요리는 재미도 없잖아요.

     

    

Q. 셰프님이 추구하시는 퓨전 일식은 어떻게 변화를 주는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스시조에서 10년 간 메뉴 개발을 했어요. 분기 별로 5~6가지 메뉴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수백 여 개의 메뉴가 손을 거쳐 갔죠. 이제는 재료만 봐도 뭘 해야 할 지 알 정도로요. 한 가지 재료라도 그 특성에 따라 수많은 조리법과 매칭 시켜 다양한 요리가 나올 수 있어요. 일식은 재료가 한정적이지만 여러 퀴진을 담고 있는 호텔 다이닝의 특성상 양식, 한식, 중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한 번에 공유할 수 있어 메뉴를 구성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외식인구가 점차 고령화되고 있지만 그만큼 외식업은 변화의 여지가 많은 업종입니다. 메뉴 개발에 있어서도 변화는 늘 새로운 즐거움을 주죠. 같은 자리에 안주해 머물다보면 어느 순간 정체성이 상실되고 말아요. 머릿속에 맴도는 것을 끄집어내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그렇다면 변화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를 꼽는다면요?

자신의 요리스타일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지양하고 오픈 마인드로 접근해야 해요. 같은 메뉴나 재료라도 달리 보는 시각을 가져야하고요. 조리법에 한정해 재료를 선택할 필요는 없어요. 다양하고 폭 넓게 시야를 넓히는 게 중요하죠.

 

Q. 히비끼가 그동안 유지해오던 클래식한 콘셉트에 변화를 주면서 기존고객층과 신규고객층 사이에 고민도 했을 것 같아요.

히비끼가 무거운 정통 일식의 콘셉트를 벗고 캐주얼 다이닝으로 변화를 추구하다보니 기존 고객층과 신규고객층을 모두 안고 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의 히비끼는 한 세대 정도 고객층이 젊어졌고 여성 고객도 많아졌어요. 오히려 무리하게 욕심 내 절충안을 찾다보면 이도 저도 아닌 정체불명의 레스토랑이 되고 말아요. 고객이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문턱을 낮추고 차츰 퀄리티를 끌어올릴 거예요. 가격이 비싸다고 다 맛있는 건 아니잖아요. 원래 이곳은 30~40대 고객의 발길이 뜸한 곳이었어요. 유동인구도 적고 간판도 없지만 2~3달 만에 입소문만으로 고객층이 형성됐지요. 한번 방문한 고객이 주변 사람들을 데려오고 싶게 만드는 히비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Q.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요리의 기본은 무엇인가요?

요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기본을 넘어서면 비로소 정성이 나올 수 있는 것이죠. 청결은 물론이거니와 칼 관리, 서비스 타이밍, 센스라고 말하고 싶어요. 조리사에게 칼 관리는 마음가짐이에요. 칼이 잘 들어야 부상이 없고 일이 수월하지요. 저는 음식이 제공되기 전에 온도 체크를 자주 하는 편인데요. 무엇보다 부드러운 재료는 부드럽게, 뜨거운 음식은 뜨겁게, 샐러드는 신선하게 서비스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서비스 타이밍을 잘 지켜줘야 해요. 마지막으로 요리는 센스가 필요 합니다.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은 변화가 없어요. 발전하기 원한다면 여러 가지로 응용하고 생각해 움직여야 해요.

 


Q. 이런 셰프님의 색깔을 담은 메뉴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새콤한 폰즈 소스를 베이스로 하는 식전 메뉴인 방어 카르파쵸인데요. 채소만으로는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카르파쵸를 새롭게 변형시켜 제철 생선과 매칭해 봤어요. 또 감자전분을 실처럼 가늘게 뽑은 카다이프, 연근 슬라이스 튀김을 활용한 샐러드는 신선한 채소와 함께 바삭한 식감과 오일 드레싱의 궁합을 입안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메뉴에요. 가츠산도와 타마고산도를 하나로 합쳐 놓은 타마고가츠산도는 히비끼에서 최초로 개발해 선보이는 메뉴로 많은 고객들이 좋아해요. 특히 스시조에 있을 때 개발한 고등어 소바는 히비끼의 인기 메뉴에요. 고등어를 쪄서 튀겨내는 독특한 방법으로 담백한 육수와 곁들어 내는데 비린 맛을 없애기 위해 유자채를 넣어 입맛을 돋우는 담백하면서도 상큼한 요리입니다. 여기에 기름진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 실파도 곁들였어요.

 

Q. 조선호텔 스시조에서만 23년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시잖아요. 셰프님의 이름을 걸고 로드숍으로 나온 이유가 궁금한데요.

완성도 높은 요리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통이 중요해요. 하지만 획일화된 평가 기준과 동일한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큰 조직에서 구성원 하나하나의 존재감은 묻혀버리기 쉬워요. 호텔은 모든 성과가 주방장에게 쏠리는 구조죠. 내 색깔을 나타내는데 제약도 많고 존재감을 상실한다고 할까요. 23년이나 일 했어도 뒤돌아보니 내 존재는 없더라고요. 어느 순간 상실감이 밀려와 내 이름을 건 요리를 마음껏 펼치고 싶어서 호텔을 떠났어요.

    

Q.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아요.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호텔을 나와서 처음으로 내 가게를 열었는데 1년 만에 문을 닫았어요. 처음에는 장사도 잘 됐어요. 하지만 호텔과 내 영업장은 다르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 외에도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늘어났고 매출에 따라 자꾸 메뉴에 변화를 주다보니 음식의 정체성도 사라졌어요. 나중에는 우울증이 심해져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조차 싫고 이러다 사람 죽겠구나 싶더라고요. 그 때 제 곁에 가족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어려울 때만큼 가족의 존재가 이처럼 빛날 수 있을까요?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 일어날 수 있게 해준 가족에게 고마운 게 많아 지금은 다시 태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Q. 호텔 내에서 셰프님과 같은 꿈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조언을 해주세요.

당시 저는 제 가게를 열기로 마음먹은 뒤로 어떤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한번 꽂히니 말려도 해야 됐으니까요. 장사를 해 봐야 그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와요. 호텔에서는 서비스, 교육, 구매 무엇 하나 신경 쓸 게 없어요. 편하게 일하는 것으로만 따진다면 호텔에 있는 게 낫죠. 게다가 호텔에서 사용하는 재료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일단 호텔을 떠나면 재료를 고르는데 애를 먹기 일쑤예요. 호텔에서는 고급 재료뿐만 아니라 원하는 재료는 무엇이든 얻을 수 있어 요리에 집중할 수 있지만 내 레스토랑은 달라요. 손익을 생각해 원가를 따져야 하고 그밖에도 신경 쓸게 많아 요리에 집중하기 힘들어요. 물론 고객층도 확연히 달라 지역 특색이나 고객층의 음식 취향에 맞게 메뉴의 구성이나 콘셉트도 가져가야 하지요. 결국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하고 싶은 건지 잘 따져봐야 합니다

   

Q. 요즘 고용문제가 힘들다고 하죠.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체감하는 부분이 있나요?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아쉬운 점은 고연령자를 기피하고 젊은 사람을 선호하는 현상입니다. 특히나 요리업계는 나이 들면 힘들어서 못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요. 반면 젊은 사람들은 일이 힘들어 3달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죠. 제가 호텔을 나와서 일을 해보니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닌 절실함인 것 같아요. 주방은 철저히 팀웍으로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힘을 모아야 하죠. 그래서 노력과 함께 신뢰가 바탕이 되는 것이 중요해요. 유명한 레스토랑일수록 5, 10년 이상의 팀웍으로 움직여요. 메뉴만 봐도 톱니바퀴 돌아가듯 움직여서 최고의 음식이 나오죠.

 

Q. 앞으로 히비끼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싶은지 설명해주세요.

앞서 제가 경험한 일본의 한 식당을 언급하고 싶은데요. 일본 신주쿠의 가쿠라자카에 위치한 미쉐린 갓포 레스토랑 렌, 고하쿠, 이시카와는 한 명의 오너셰프가 소유한 레스토랑입니다. 30석도 안되는 조그만 규모이지만 일본 정통성을 살려 최고의 서비스를 선보이는 곳이죠. 2가지 코스 메뉴를 선보여 먹기 아까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음식을 만들고 있어요. 식재료, 일하는 스타일, 모든 게 충격이었죠. 100M 근방에 모여 있는 이 세 레스토랑은 독특한 운영 구조를 갖고 있었는데요. 바로 직원들을 공유하는 방식입니다. 인원 결손이 발생하면 그 즉시 충원할 수 있는데다가 마치 한 식구처럼 모든 조리사들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더라고요. 더욱이 눈에 띄는 건 고객과 셰프의 수평적인 관계였어요. 자연스럽게 고객들에게 직원을 소개하고 모든 주방 직원이 손님을 다 알고 있는 독특한 구조. 이처럼 모두가 수평적인 관계에서 셰프가 존중받는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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