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호텔을 퇴사하고 방송, 강연,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리랜서로 활약하던 김한송 셰프가 돌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떠났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김한송 셰프는 미식의 각축전 뉴욕에서도 핫 스폿으로 손꼽히는 한식도시락 전문점 ‘핸썸라이스’의 오너 셰프가 됐다. 빈손으로 다시 기반을 쌓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을 터.
공신력 있는 미국조리사협회의 총주방장에 이어 심사위원 타이틀까지 획득한 최초의 한국인 셰프이자 한식 컨설팅 회사, 비스트로 요리(Bistro Yori)의 대표로서 바쁘게 지내고 있는 김한송 셰프를 인터뷰했다. 비우고 채우는 삶의 도전과 반복이 있기에 그에게서 늘 신선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게 아닐까. 여기, 김한송 셰프의 삶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전세계적으로 불안한 시기이지만, 한국도 코로나19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미국의 한식당 상황은 어떤가요?
먼저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시간을 지내고 계신 한국의 모든 분들께 응원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미국은 2월 즈음부터 코로나19에 대한 문제 인식이 시작돼 3월 현재 본격적으로 전파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2월에 코로나19가 시작됐을 당시 뉴욕 차이나 타운 식당들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 후 코리안 타운의 소비 감소로 이어졌는데, 현재는 아시안 식당을 넘어서 모든 식당들의 예약과 세일즈가 줄고 있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서로 조심하며 극복해 나가자는 분위기입니다.
한국을 떠나신 지 십여 년 쯤 된 것 같은데 한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돌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떠나신 이유가 뭔가요?
그 당시 저는 모래성을 쌓는 느낌이었습니다. 방송 출연이 많아질수록 제 이름의 책이 쌓여갈수록 제가 가진 것보다 없는 것을 지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당시 나이가 29살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한참 어렸다는 생각이 드네요.
걸어오신 길을 보면 모래성이라고 치부하기에 그 노력이 단순하지 않아 보여요.
경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힐튼호텔서울에서 견습을 거친 뒤 워커힐 호텔에 입사했어요. 좀 더 넓은 곳을 돌아다니며 한국음식을 깊이 공부하고 싶어 호텔을 그만 두고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됐죠. 이 시기에 전국에 있는 거의 모든 요리대회에 참가해 수상도 하고 여러 권의 책도 쓰면서 방방곡곡 우리 식재료를 찾아다니며 공부했어요. 운이 좋게도 이런 과정 속에서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 뒤로 방송과 강연, 저술활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가졌던 경험보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더욱 짙어지더라고요. 여기에서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 제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011년 여름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 거죠.
2011년이라면 당시 한국에서 스타 셰프의 입지가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저라면 미련이 남아 아쉬울 것 같은데요.
그렇죠. 미련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 같긴 합니다만, 당시에는 앞만 내다 봤어요. 알아봐 주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미국에서 티끌 모아 큰 산을 쌓는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말이죠. 제가 미국에 오고 나서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많은 셰프 분들이 방송에 출연했고 스타 셰프의 열풍이 불었는데요. 그때 잠깐, ‘조금 더 한국에 있다가 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하지만 서른이 다 돼 미국에 왔잖아요. 어떤 용기에서인지 20대에 하지 못했던 것들에 거침없이 도전했고 조금 늦더라도 빠른 길보다는 정확한 길을 선택했지요.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정식 코스를 밟아 혼자 힘으로 비자와 영주권(비자는 문화 예술 비자인 O-1 visa, 영주권은 특기자 영주권인 EB1A) 문제를 해결한 뒤 본격적으로 미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한 거예요.
홀로 미국에서의 정착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무엇이 가장 힘들었어요?
사실 제가 워낙 긍정적인 성격이라 미국 생활에서 크게 힘들었던 부분은 없었던 것 같아요. 딱 한 가지를 꼽으라면 뉴욕의 살인적인 렌트비 정도일 듯합니다. 전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 문화, 인종이 한 데 모인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지라 뉴욕의 체감 물가는 서울보다 높아요. 치열한 곳이지만 늘 곁에서 응원해주는 아내 덕분에 힘든 것도 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어요.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활동하는 셰프들 대부분 조리학교를 거쳐, 유명 호텔, 레스토랑에 근무하면서 커리어를 쌓는데 김한송 셰프의 길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네요.
레스토랑의 경력을 쌓는 것보다 브랜드를 만들어 좀 더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싶었어요. 대개는 학교를 졸업하고 OPT(졸업후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1년의 비자기간)기간 동안 유명 레스토랑에서 몇 달 동안 견습을 쌓다가 취업 비자를 받기위해 레스토랑이나 호텔에 취업 하거나 한국으로 돌아가서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죠. 저는 처음부터 생각을 달리 했어요. 미국행을 택했을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은 거침없이 하자’라는 생각으로 졸업 후 취업에 목을 매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때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도 안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나?’라는 근본 없는 자신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레스토랑 말고도 컨설팅 회사, ‘비스트로 요리’를 만드셨어요.
뉴욕, 더 넓은 범위의 미국에 많은 레스토랑 컨설팅 회사들이 있지만 한국 음식을 메인으로 하는 곳은 없었어요. 간혹 있더라도 중국회사에서 아시안 음식을 담당하면서 한국의 소스를 살짝 맛보게 하는 정도죠. 그래서 누군가는 이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한국음식의 레시피를 만들고, 미국현지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게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미국조리사협회 총주방장, 나아가 심사위원 타이틀까지 얻었는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미국조리사협회는 북미에서 가장 오래되고 공신력 있는 조리사협회입니다. 미국조리사협회는 셰프의 경력에 맞춰 등급별로 자격을 획득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이 자격을 가지고 있으면 많은 이득이 있지요. 예를 들어 특급호텔에서 총주방장을 구인할 때 ‘CEC(Certified Executive Chef) Require’라고 명시된 경우가 있어요. 자격 자체가 공신력이 있으니 HR 부서에는 이 자격을 믿고 셰프를 채용하는 것이죠. 또한 미국조리사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이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셰프들은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고 합니다. 총주방장 자격을 획득하고 나서 심사위원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오기였어요. 3시간 30분 동안 이어지는 총주방장 실기 평가과정에서 심사위원의 평가 한 줄 한 줄은 참가한 모든 셰프들을 얼어붙게 만드는데, 심사위원은 대부분 백인 위주의 셰프로 구성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오기가 발동해 콧대 높은 미국 조리사 협회의 심사위원에 도전하게 된 거죠.
결국 당시 유일한 한국계 최연소 심사위원이 되셨잖아요.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심사위원 자격을 획득하는 것은 꽤나 까다로워요. 총 3번의 실전 견습 평가를 거친 뒤 최종 평가를 받게 되는데 제가 평가한 점수가 3명의 심사위원의 평균 점수보다 5점 이상 차이나면 실격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과하면 최종 인터뷰를 거쳐 심사위원으로 자격을 얻게 되며 매년 조리사 협회에서 정해진 교육과 실기 평가를 하면서 심사위원 자격을 갱신해야 하지요. 2015년 이후로 올해까지 꾸준히 심사위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미국조리사협회에 몇 분의 한국인 심사위원도 늘어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현지 언론에도 소개된 핸썸라이스의 근황이 궁금한데, 한식도시락 전문점이라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착안했나요?
핸썸라이스(Handsome Rice)는 2018년 11월 오픈한 패스트 캐주얼 한식당으로 2019년 뉴욕타임즈 푸드 섹션, 미국 인기 푸드 팟캐스트 ‘Open Belly’, 2020년 폭스 뉴스가 맨해튼 런치 스폿 3곳으로 선정해 방송했을 만큼 현지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요.
편안하게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다이닝 공간을 갖는 것도 좋지만 저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편안한 한식으로 좀 더 많은 뉴요커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맨해튼에는 매일 점심 각 나라별 브랜드들이 런치 타임에서 1등이 되기 위해 전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멕시칸 브랜드 Chipotle, 미국 가정식 Dig Inn, 미국 샐러드 회사 Sweet Green, 지중해식 식단의 Cava, 인도 음식인 Deep, 중식의 Panda Express, 일식의 Wasabi 등 너무나도 많은 브랜드가 뉴요커들의 입맛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죠. 저는 그 가운데 누구도 도전하지 않은 한식도시락으로 틈새를 공략해 핸썸라이스를 오픈했어요. 핸썸라이스의 메뉴는 10달러 초반부터 15달러까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가격이에요. 제대로 만든 한국음식의 맛을 누구나 편안하게 즐기게끔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였거든요. 현재는 2020년 하반기 2호점 오픈을 앞두고 있어요.
외국에서 한식 컨설팅(Bistro Yori)을 하면서 특별히 한식을 다른 관점으로 풀어낼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제가 만드는 모던한 한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편안한 맛’이에요. 저는 한식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맛있다’라고 생각하는데, 편안한 맛은 사실 맛있는 음식에서 나오는 것이죠. 그래서 한식이 가진 매력 그대로를 현지에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하지만 음식의 맛을 전달할 지역과 사람들의 성향이 매우 중요하기에, 이 타깃에 맞춰 음식을 어떻게 선별해야 할지에 신중을 기합니다. 한식에서 반찬으로만 생각했던 메뉴들을 메인으로 풀어내는 것도 손 쉬운 접근법이죠. 가령 한국에서 잡채는 반찬 개념이지 주식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태국의 팟타이처럼 누들을 좋아하는 백인들에게 잡채는 주식으로서 충분한 매력이 있어요. 또한 비빔밥에서 착안해 샐러드 위에 비빔밥 고명으로 사용되는 채소를 담아내고 밥을 별도로 제공하는 형태도 선보이고 있어요.
컨설팅 의뢰가 들어올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나 문제가 뭔가요?
대부분의 의뢰인들은 점심, 저녁 타임을 모두 잡고 싶어 해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가게의 생명은 콘셉트입니다. 고객이 브랜드를 인지하는 시간은 단 3초 밖에 안 걸려요. 그 안에서 승부가 가려지는 거죠. 따라서 가게의 상호, 음식이 순간적으로 고객에 인지되지 않으면 레스토랑의 비지니스가 어려워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 코리안 BBQ 가게는 주로 저녁 매출이 높아요. 특히 주말(금~일) 저녁 매출로 일주일의 매상을 만들어나가는데 의뢰인들은 더 큰 매출을 올리기 위해 점심 손님도 잡고 싶은 것이지요. 이러한 과정에서 불필요한 메뉴들이 추가돼요. 그러면 전체적으로 오퍼레이션도 복잡해지고 푸드 코스트도 높아져 결국 불필요한 일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해결책을 제시한다면요?
작은 가게일수록 가게의 콘셉트에 맞춰 하나 혹은 두개의 콘셉트로 고객에게 접근해야 합니다. 이는 해외에 있는 작은 가게일수록 더욱 명확해져요. 중국의 딤섬 가게에서는 맛있는 딤섬만, 대만의 버블티 가게에서는 곧 죽어도 버블티만 팝니다. 하지만, 한국 식당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여전히 작은 한식당에서는 떡볶이, 돈가스, 치킨, 불고기, 제육, 각종 찌개 등 생각나는 메뉴를 모두 추가하죠. 돈가스 하나만을 특화시키는 식당, 각종 탕을 전문적으로 내어 놓는 식당들을 만들어 고객에게 어필하는 것이 맛과 오퍼레이션, 그리고 추후 확장까지 잡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한식의 인기가 높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변하고 있어요?
제가 미국에 첫 발을 들인 2011년 당시만 하더라도 한식은 가끔 요리잡지 뒷면에 소개되는 음식이었어요. 하지만 현재는 한식 트렌드가 엄청납니다. 과거 미국인들이 태국음식이나 일본음식을 먹으며 트렌디하다고 느꼈던 것을 이제는 한국음식에서 찾고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한식당을 찾아보는 것은 더이상 어려운 일이 아녜요. 오래전부터 뉴욕에서 한식을 만들던 수많은 레스토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통적인 한식당에서부터 파인다이닝까지 이 모든 것이 모여 한식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고 있어요. 유명요리 학교를 졸업한 셰프들이 만들어 내는 세련된 한식에서부터 미국에서 나고 자란 교포의 눈으로 바라본 한식, 그리고 미국 레스토랑에서 미국인 셰프가 그들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한식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사랑스럽게 진화 중입니다.
세계화된 한식을 목표로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한국의 맛 그대로를 전달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매운 음식은 맵고, 담백한 음식은 담백하게 한국식으로 맛있게 만들면 됩니다. 이는 우리가 다른 나라의 음식을 어떻게 기대하는지 반대로 생각해 보면 간단하게 풀릴 문제예요. 누구나 퓨전화된 스시, 퓨전화된 중식, 퓨전화된 파스타 보다 좀 더 각 나라의 맛을 담고 있는 음식을 더 선호하는 것처럼 말이죠.
현재 한국 음식의 트렌드는 많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만 사실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행은 지나가기 마련이에요.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한식 레시피와 음식 콘텐츠가 많아져야 한식 트렌드가 지났을 때 한국음식이 무너지지 않고 튼튼하게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을 벗어나 셰프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을 품은 후배들이 많은데요.
한국의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 힘들어서 무작정 외국으로 고개를 돌리는 거라면, 또 외국의 유명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면 된다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외국에서, 특히 미국에서의 생활은 한국에서 노력했던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매일같이 반복해서 생각하고 노력하면 그 꿈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앞으로 셰프님이 갖고 있는 계획에 한국과의 연도 닿았으면 좋겠네요.
뉴욕에는 ‘Xian Famous Foods’ 라는 중국 브랜드가 있어요. 2005년에 200스퀘어 피트(18.58㎡)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이 브랜드는 현재 뉴욕에 16곳의 지점을 가진 브랜드로 성장했고 현재도 계속 성장 중에 있습니다. 핸썸라이스도 마찬가지예요. 2018년 300스퀘어 피트(27.87㎡)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했지만 2020년 2호점 오픈을 필두로 점차 맨해튼 전역으로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다른 나라의 브랜드에 뒤지지 않게 한국 음식의 자부심을 갖고 뉴욕을 대표하는 한식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죠. 몸은 뉴욕에 있지만 마음은 늘 고국에 있습니다. 한국음식을 알릴 수 있는 기회와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