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ef] 이노베이티브 퀴진의 문을 열다 나를 담는 그릇,‘아키라 백’

2018.01.27 09:30:01

접시에 정성껏 담긴 음식에서 온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DOSA by 백승욱으로 돌아온 그가 1년 반 만에 미쉐린 1스타에 오르며 꿈을 이뤘다. 한국인 최초로 아이언 셰프에 출연했고 노부의 레스토랑에서 유일하게 非일본계 총주방장이 됐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 ‘아키라 백’으로 세계무대에 이름을 떨쳤지만 고국인 한국에서 만큼은 셰프로서 당당히 인정받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래서‘아키라 백’이 아닌 파인다이닝‘DOSA by 백승욱’은 오로지 한국에만 둥지를 텄다. 기자가 만난 백승욱 셰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카리스마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무엇보다 요리에 있어서의 자유분방함은 백승욱셰프이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장르를 뛰어 넘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백승욱의 요리를 만들어 레스토랑에 가득 담아냈다. 바로 ‘셰프 백승욱’자신이다.



요리하고 싶으면 삭발부터 하고 와!
하고 싶은 건 하고야 마는 성미였다. OB의 박철순 선수가 그렇게도 멋져 보일 수 없어 기어코 야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야구부에 입단해 야구에 흠뻑 빠져 지내다가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됐다. 영어도 모르고 한국인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던 시절, 주위에 멋있어 보이던 친구들이 하던 운동이 바로 스노보드였다.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며 유망주로 떠올랐지만 잦은 부상으로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자 다시 슬럼프가 찾아왔다.


한국의 높은 교육수준 덕에 학교에서는 수학천재로 불렸어도 공부를 다시 손에 쥐기 싫었다. 그렇게 방황하며 살던 시절, 우연히 만나게 된 동네 스시집 아저씨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의 이름 겐이치.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동네 아저씨처럼 다가온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스시 셰프였다. 야구도, 스노보드도 요리도 그렇게 시작했다. 그저 사람이 좋을 뿐이었다. 요리가 하고 싶어서 그를 다시 찾았을 때 셰프 겐이치의 첫마디는 “삭발부터 하고 와!”였다. 하얗게 염색했던 머리카락이 모두 잘라져 떨어지던 날, 그의 방황도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음식도 못하는 서툰 요리사
요리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전적으로 지지해주고 하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든 허락하셨던 아버지인데 이번만큼은 단단히 실망하신 모양이다. 한동안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걸지 않으셨다. 그렇게 3년이지나기까지 요리사가 최악의 직업이라 생각하며 ‘왜 이걸 해야 하지?’ 수십 번씩 되묻곤 했지만 여기에서 그만두면 부모님 보기가 부끄러워 남들보다 몇 곱절의 노력을 쏟아내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겐이치는 디테일이 섬세한 셰프였다.


밥알이 2~3개만 떨어져도 무섭게 야단을 치곤했다. 요리사의 기본을 그렇게 몸에 익혀갔지만 그는 여전히 서툰 요리사였다.“3년이 지나고부터 요리에 점점 재미를 느꼈지만 음식을 못해서 7년 동안 밥과 채소 요리 위주로 매번 비슷한 음식들만 내 놓았어요. 한 때는 최악의 직업이라고 느꼈던 요리사가 이제는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배고프면 무엇이든 만들어 먹을 수 있고, 맛있는 와인이 늘 곁에 있고 무엇보다도 내 요리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이 흡족해하며 돌아갈 때의 뿌듯함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죠.”


노부가 인정한 총주방장에서 라스베이거스의 별이 되기까지
미국 아스펜의 겐이치에서 요리를 시작한 백 셰프는 하와이와 텍사스의 겐이치의 오프닝 멤버로 발탁됐으며 우연한 기회에 세계적인 스타셰프인 노부 마츠 히사의 레스토랑에 합류하게 됐다. 그의 요리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 노부 마츠히사 셰프는 레스토랑 노부가 프랜차이징 되기 전 노부의 전신이 된 일식당 마츠히사의 헤드셰프로 백승욱 셰프를 지목했는데 그의 팀워크와 실력을 높이 평가해 1년 후 비일본계 최초이자 최연소 총주방장이 됐다.


이후 2008년에 미국의 셰프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에 한국인 최초로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한편 같은 해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과 만델레이 베이호텔에 그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이 성공을 거두면서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러브콜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싱가폴, 두바이, 방콕, 토론토에 아키라백의 레스토랑이 운영되고 있다. 오는 4월에는 베트남 하노이에도 매장 오픈을 앞두고 있다.


요리도사가 되기 위해 오픈한 ‘DOSA by 백승욱’
어떤 일에 아주 능숙한 사람을 두고 우리는 ‘도사’라고 말한다. DOSA by 백승욱의 뜻은 정확하면서도 간단하다. 요리에 대해 진지하되 지나치지 않은 진지함,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개성과 전문성을 담았다. 한국에서 그의 이름을 내 건 레스토랑을 꼭 열고 싶었지만 한국에서만큼은 특별한, 기존과는 다른 콘셉트의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세계에 퍼져있는 레스토랑 아키라백은 한국적 입맛을 더한 일식으로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을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캐주얼다이닝이다. 반면 DOSA는 한식을 백 셰프만의 방식으로 작고 섬세하게 표현한 파인다이닝으로서 고객들이 오랫동안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아늑하게 꾸몄다. 한식에 대해 정통한 셰프는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한국에서 한식을 먹고 자랐기에 입맛이 변했어도 그 뿌리는 한식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한국에 도사를 처음 열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이게 왜 한식이냐면서 물음표를 달았고 늘 그랬듯, 자신이 하고 싶은 스타일을 묵묵히 보여줬다. 이노베이티브 퀴진의 첫 걸음을 어렵게 떼는 순간이었다. 그 후 그의 명성을 듣고 하나 둘 사람들이 레스토랑을 찾기 시작했고 1년 반이 지나 미쉐린 1스타를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노부 마츠히사 셰프는 장르를 뛰어 넘어 창의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닐 것을 늘 강조했어요. 와사비가 들어간 스시는 일식이지만 갈릭과 스파이스가 들어간 스시는 노부 마츠히사의 요리인 것처럼요. 나만의 장르, 백승욱 스타일의 요리를 선보일 겁니다.”



요리에 대한 영감은 여행과 추억
“요리에 대한 영감은 어렸을 때 제일 좋아하는 음식에서 얻어요. 혹은 여행의 경험, 어머니의 그림에서죠.”


백승욱 셰프가 세계 각지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셰프인 것을 보면 사업가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음식을 참 잘하셨다. 한국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미국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어머니는 밥과 나물이 있는 한국 음식을 정성스럽게 차려주셨다. 하지만 한식이 처음인 그들을 위해 어머니는 조금씩 변형된 요리를 만드셨다. 간장과 버터로 콩나물을 무치셨고 마늘, 고춧가루 등 매운 것을 넣지 않고 갈비 요리를 만드는 식이다.


친구들이 처음 먹어보는 한식을 서툰 젓가락질로 맛있게 먹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지금도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요리의 영감을 얻곤 하는데 레스토랑 한 편에 걸려있는 어머니의 그림을 볼 때면 다양한 색채의 조화와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되살아나곤 한다. 처음 요리를 시작할 때 요리라고는 할 줄도 모르고 회도 먹을 줄 모르던 소년이 일식 요리를 하겠다고 나서니 아버지가 기가 차셨을 법도 하다. 하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한 가족여행에서 도미에 곁들여져 나온 초장이 그에게 영감을 줘 전 세계 아키라백의 인기 소스가 됐다니 백 셰프의 에너지는 가족과의 추억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우리가 회를 먹을 때 초장에 찍어먹기도 하지만 파인다이닝에서는 회를 초장과 곁들여 주지는 않잖아요. 18년 전 부터 제 요리에 초장을 사용하기시작했으니까 아마도 파인다이닝에서 초장을 사용한 셰프는 제가 처음일 것 같아요. 처음엔 다소 의아해했지만 지금은 반응 최고죠. 여전히 요리는 재미있으면서도 어려운 것 같아요. 때론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의외의 조합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모든 메뉴가 그렇지는 않죠. 매 순간 연구와 수정을 반복하며 메뉴 하나를 완성시킬 때도 있어요. 시그니처 메뉴인 머쉬룸 투나 피자의 도우는 맨 처음 밥에서 시작했어요. 이후 타코에 쓰이는 또띠아를 팬프라이 해보기도 하고 멕시칸 스타일로 바꿔보기도 하며 콘셉트를 잡기까지 10년이 걸렸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그니처 메뉴로 사랑받고 있지요.”


‘아키라백’은 호텔에만 들어선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전 세계 아키라백의 레스토랑은 모두 호텔 내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뭔가 의도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호텔이 들어설 때 개발단계에서 식음브랜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호텔이 원하는 콘셉트에 부합할 경우 해당 레스토랑에 제안을 한다. 하지만 많은 러브콜이 그에게 쏟아지더라도 정확하게 레스토랑 콘셉트에 맞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 백 셰프의 원칙이다.


놀랍게도 아키라백에는 입지분석팀이 따로 있다. 해당 지역에 살지 않는 이상 신도시가 몇년 후 정점을 찍을지 알 수 없지만 대게는 이미 그 지역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 호텔이 들어서고 빌딩이 들어서는 수순이다. 따라서 입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호텔에 입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아키라백이 원하는 입지는 빌딩이므로 2019년부터는 독립적인 숍으로 운영할 계획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조만간 한국의 호텔에서도 아키라백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해 봄직하다.


한식, 아! 한식
3~4년 전만 해도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구체적으로 김치를 콕 집어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이다. 백 셰프는 그 매개를 ‘사람’이라고 말한다. 많은 한국인 유학생들이 생겨나고 과거와 달리 여행과 문화교류가 많은 그들로부터 한국음식이 문화로서 접해지고 확장되기 때문이다. 사람과 관계가 맺어지고 신뢰가 쌓여지며 문화가 흡수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일식이 세계적인 음식이 된 것처럼 말이다.



3년 고개는 반드시 넘어라
일단 백승욱 셰프의 주방에 들어오면 김밥, 스시, 디저트 등 주방 안의 모든 음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백셰프는 후배들에게 그 안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그도 처음엔 사람이 좋아서 시작한 요리였지만 무엇이든 좋아서 시작한다고 해도 진짜 좋기만 할 수 있으랴.“힘들 것을 각오하고 죽기 살기로 3년은 버텨내야 끝까지 갈 수 있어요.


전 세계 유명한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내면 졸업장은 한 낱 종이에 불과해요. 누구한테 배웠는지, 어느 레스토랑에서 몇 년을 일했는지를 보죠. 단순히 1~2년 머문 것으로 사람을 뽑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만큼은 예외이지만요. 이것은 한국 다이닝에서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해요. 적어도 몸담은 레스토랑의 음식은 완벽하게 소화할 줄 알아야 하는데 오랫동안 일하지 않으면 요리를 배울 수가 없습니다. 외국 유명 레스토랑에는 6~7년씩 한 곳에 머무는 요리사 들이 많아요. 아키라백에도 노부 때부터 함께 일한 셰프가 15년 째 저와 함께 일하고 있고요.”


Epilogue.
"왜냐고요? 한국에서 태어났잖아요." 인터뷰 내내 마음에 품은 고국에 대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셰프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이름을 내 건 레스토랑을 그것도 전 세계에 갖고 있는 그였다. 굳이 한국을 택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사나이. 하지만 모든 질문의 답은 결국 하나로 통했다.‘내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향수가 담긴 한국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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