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은 2015년 프랑스 미식 전문 매거진 ‘르 셰프(Le Chef)’의 미쉐린 스타 셰프들이 뽑은 세계 1위,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의 국내 유일한 레스토랑이다. 지난해 9월 피에르가니에르 서울이 1년의 휴식기를 마치고 이그제큐티브 타워 35층에 문을 열었다. 파인다이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당시, 피에르 가니에르의 레스토랑이 서울에 들어온다는 소식으로 다이닝 업계가 흥분에 젖었던 10년을 돌아보면 크고 작은 변화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업장의 지속성이다.
유독 한국에서는 레스토랑을 오랜 기간 유지하기 힘든데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하다. 지난 9월 이후 4개월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를 호텔앤레스토랑이 단독 인터뷰했다.
오랜만에 다시 뵙게 돼 무척 반갑습니다. 얼마만의 한국 방문인가요?
지난해 9월 피에르 가니에르 재오픈 행사 이후 4개월 만이네요. 그동안 여러 나라를 방문해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을 살피고 다시 서울에 왔어요. 긴 여정이죠. 이번 방문은 특별한 목적을 두고 있다기보다 한국에 있는 스텝들을 만나 우정을 나누고 한국의 고객들을 만나는 기회입니다. 일 년에 두세 차례 정도는 한국을 방문해요.
전 세계에 퍼져있는 피에르 가니에르의 레스토랑이라니 대단하군요. 총 몇 개나 되나요?
런던에 2곳, 파리 3곳을 제외한 프랑스에 5개, 라스베가스 1곳, 서울을 비롯한 다낭, 홍콩, 도쿄, 상하이의 아시아 지역 5곳이 있고요. 프랑스의 푸케츠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은 곳까지 합치면 22개가 되네요.
그 많은 레스토랑이 다 똑같지 않을 것 같은데 서울의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이 갖는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나라도 다르고 식재료, 직원, 고객, 셰프의 스타일, 그들의 에너지까지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에 각 지역의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 중에서도 식재료에서 오는 차이가 가장 큰데,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재료의 선택 폭이 넓지 않고 새로운 재료를 들여오는 것도 힘들어 재료가 주는 로컬색이 강하다고 볼 수 있지요.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레스토랑 수명이 짧은 편인데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은 벌써 오픈한 지 10년이 넘었네요. 장수 비결이 있나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어요. 첫 번째는 롯데호텔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지리적 이점이에요. 35층에 위치해 아름다운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은 음식은 물론 서비스, 전망, 인테리어 등 모든 것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아름다운 레스토랑이지요. 세 번째 포인트는 저와 교감을 나누는 직원들입니다. 프레드릭 총괄 셰프는 지난 8년간 이 곳을 지켰고 페이스트리를 담당하는 제레미 셰프도 5년 동안 일하고 있어요. 이같은 서포트가 있었기 때문에 10년이 넘도록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 유지될 수 있었지요.
피에르 가니에르의 레스토랑이 한국에 진출할 당시에는 한국에 없던 미쉐린 셰프의 레스토랑이 처음 생겨서 엄청난 기대와 이슈가 됐었죠. 현재 한국에는 많은 미쉐린 레스토랑이 생겼는데 미식의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서울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피에르 가니에르가 서울에 들어올 때만 해도 전 세계 미식도시라면 당연히 있는 레스토랑 가이드가 없었어요. 오히려 경쟁이 아닌 그 안에서 함께 일하는 분위기였지요. 반면 프랑스, 일본, 뉴욕 등 가이드가 있는 도시에는 음식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관광객이 참 많아요. 한국도 이런 기류가 시작됐다고 생각해요. 서울에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과 다양성이 숨 쉬는 크고 작은 레스토랑이 공존한다는 것은 관광객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죠. 다양성과 더불어 품질 높은 좋은 레스토랑이 많아질수록 시장의 전반적인 퀄리티를 끌어올리게 될 것이므로 저는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그리고 이 또한 한국의 문화잖아요. 음식은 문화를 담기 마련인데 사람들이 점차 미식에 관심을 갖고 피에르 가니에르를 통해 음식에 담긴 유럽의 음식문화가 한국에도 전해진다면 좋겠어요.
미식관광을 떠나는 한국인도 늘고 있는데, 프랑스 현지에서도 체감이 되나요?
그럼요. 프랑스에서도 저희 레스토랑을 찾는 한국인 고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요. 많은 한국인들이 미식여행을 즐기고 있다는 뜻이죠. 한국에 돌아가서도 그 경험이 또다시 향수를 자극할테고요. 즉 미식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죠. 한국인 셰프들이 외국에서 많은 경험을 쌓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피에르 가니에르 파리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도 한국인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고 그 중 수셰프가 두 명이나 있을 정도로 한국인 셰프들은 근면 성실하고 바르게 일하며 일도 깔끔하게 잘 마무리해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셰프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레스토랑이 있을 것 같아요.
레스토랑은 하나의 극장과도 같아요. 열연하는 배우가 등장하고 관람하는 관객과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 갖춰져 있죠. 레스토랑도 마찬가지로 맛 뿐만 아니라 데코레이션, 분위기 등 요리에 몰입할 수 있도록 극장처럼 완벽한 공간이 돼야 고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평범하게 구할 수 있는 김치나 김처럼 한국만의 색깔이 담긴 음식이 있잖아요. 유럽스타일의 한국 레스토랑들도 이곳이 한국이기 때문에 선보일 수 있는 특별한 레시피를 만들 수 있어요. 전통과 기본을 넘는 새로운 요리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세대의 변화예요.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만 봐도 점차 고객층이 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레스토랑에서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맛과 분위기를 즐기고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의 관심, 경험치가 상승됐다고 보며 한국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레스토랑 산업의 발전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볼 수 있죠.
이번 리뉴얼로 달라진 점이 있나요?
레스토랑에 자주 변화를 주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어요. 높은 퀄리티를 항상 유지해야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레스토랑의 콘셉트나 메뉴가 자주 바뀌는 게 좋은 신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레시피를 구상하고 음식의 품질을 높이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안돼요. 미쉐린의 별을 유지하고 싶다면 음식의 퀄리티를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물론 달라진 것도 있어요. 코스를 간소화하고 가격을 낮춘 런치 메뉴인데요. 모두가 좋아할만한 높은 퀄리티의 메뉴를 7만 5000원에서 34만 원에 제공하고 있어요. 또한 숯을 이용한 요리, 생강과 단호박, 꿩 등 한국적인 식재료를 사용해 프렌치의 맛을 실현하는데 많은 연구를 했지요. 이번에 1년 여의 휴식기를 갖으면서 주로 메뉴와 직원 트레이닝에 집중했어요. 파리의 피에르 가니에르에서 교육하기도 하고 베트남, 일본 등 해외의 롯데호텔 파견근무와 시그니엘 스테이팀에 합류해 미쉐린 1스타를 획득한 것도 쾌거입니다.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 파인다이닝의 상징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특별히 호텔 내에 들어와 있어 파인다이닝이 공유하는 입지, 운영, 전문 인력의 활용 등에서 이점이 클텐데 호텔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나요?
호텔 내에 입지해 있지만 피에르 가니에르의 메뉴에는 저의 터치가 깊게 들어가 있어요. 여느 파인다이닝과도 차별되는 저만의 정체성이 담겨 있지요. 호텔과 긴밀히 공유하며 전적인 총괄은 셰프인 제가 하고 있어요. 음식은 물론이고 티스푼, 테이블 클로스부터, 와인, 서비스에 이르기 까지 하나하나 직접 손대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세심하게 신경을 쓰죠. 메뉴, 식재료, 서비스 뿐 아니라 인테리어도 가니에르 아키텍트와의 협업으로 이뤄져 저의 의견이 모두 반영돼 있는 공간입니다. 정기적인 직원 교육도 진행하고 있어요. 지난 6월에는 총 4주 간 피에르 가니에르 파리에서 요리와 서비스 부분의 직원 교육도 마쳤어요. 제가 직접 꼼꼼히 코치하지요. 크고 작은 사이드 접시의 사용법, 데코레이션의 위치에 이르는 세세한 부분까지 오롯이 제 마음과 생각을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비로소 파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피에르 가니에르의 요리를 실현시킬 수 있어요. 속해 있는 곳은 달라도 같은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소통. 즉, 직원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해외를 순방하는 동안에도 1년에 2~3번, 적어도 5일 이상은 체류하며 직원들과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일과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주방에서도 다양한 생각을 교환하며 메뉴작업을 진행하지요. 이런 저의 경영 철학을 모두가 이해하고 잘 따라와 줬기 때문에 지금의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 존재하며 이런 끈끈한 관계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비결이 아닌가 싶어요.
‘요리계의 피카소’라는 별명이 있는데 마음에 드세요?
(하하) 그럼요. 사실 이것은 30년 전에 리옹 인근의 생에티티엔(saint-ettien)에 있을 때 들었던 별명인데요. 이후 한동안 뜸하다가 요즘 갑자기 자주 듣게 되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피카소를 마이클 잭슨보다 더 좋아해요. 신기하고 개성 넘치는 창의성. 그런 면에서 비슷한 느낌이 통하고 피카소의 작품처럼 퀄리티 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한 저의 진정성에 대해 손님들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생각해요.
점차 요리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을 넘어 문화와 철학, 테크닉이 한데 섞인 작품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요. 셰프의 요리는 초창기부터 거장이 된 지금까지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해요.
저는 15살에 요리를 시작해 53년 동안 요리를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이디어도 넘쳤고 신기한 것들을 많이 시도했었죠. 제 요리 인생의 초창기인 25살까지는 요리 테크닉을 이해하는 시기였어요. 지금 저의 셰프들이 피에르 가니에르의 옛날 레시피를 사용하거나 이보다 발전된 레시피로 요리를 만들죠. 하지만 요리는 레시피대로만 만드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청취해 반영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후 45살까지 제 요리의 정체성을 갖고자 하는 시기였어요. 여러 가지 모험과 도전이 있었죠. 여태껏 잘 꾸려오던 레스토랑을 모두 정리하고 파리로 움직인 것도 이 시기였고요. 위험요소도 많았고 그 과정 중에 실패도 성공도 모두 맛봤지만 그 때는 파리의 손님들에게 내 요리를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더 앞섰어요. 열정이 있다면 여러분도 도전을 망설이지 말았으면 해요. 45살을 지날 무렵 점점 요리에 있어서 제 정체성이 명확해지기 시작했어요. 저만의 색깔이 느껴졌죠. 이후 피에르 가니에르의 이름으로 레스토랑을 많이 오픈하고 해외에 진출했어요. 외국의 다른 셰프들에게도 제 요리를 보여주고 싶었죠. 첫 10년 동안에는 왜 요리를 시작하게 됐는지, 벼가 무르익을수록 점점 더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요리할 때의 마음, 느낌, 생각... 요리는 이 모든 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자 도구예요. 왜 그런 요리를 할 수 있는지 내 마음과 생각 모두를 드러낼 수 있거든요.
그렇다면 정확히 본인의 요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요?
열정이죠. 사랑이 담긴 솔직한 마음이요. 전 세계 피에르 가니에르의 직원들 역시 진심을 담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제일 좋은 것으로 고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진심, 진솔함, 자유분방함, 좋은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 이 모든 것이 피에르 가니에르죠.
좋은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 정말 중요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죠. 비결이 있다면요?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의 총주방장도 8년, 페이스트리 셰프도 5년 동안 저와 함께 일하고 있지만, 저의 직원 중에는 37년을 함께 일한 셰프도 있어요. 파리의 메인 레스토랑 총주방장인데요. 이런 걸 두고 통한다고 하죠. 우리는 늘 같은 마음으로 일해요. 셰프뿐 아니라 18년 지기 소믈리에가 헤드매니저로 된 뒤 20년째 함께 일하며, 보르도 팀도 10년 동안 함께 일하고 있지요.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세 가지를 꼽자면 돈, 시간, 교감(같은 계획)인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대화와 교감이에요. 요리하는 사람들 중에는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의미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가 다 같이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이유는 같은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계획을 공유하고 피에르 가니에르 팀이라는 열정, 믿음, 철학이 있기 때문에 앞을 내다보고 계속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로컬의 파트너십과도 이런 느낌으로 일하고 싶어요.
앞으로 계획과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을 찾는 고객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해외 여러나라에 피에르 가니에르의 레스토랑을 선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정체성과 철학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삶으로, 열정으로, 철학으로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중요해요. 앞으로 변화를 주기보다 내실 다지기에 주력할 예정입니다. 또한 전 세계의 피에르 가니에르를 핸들링하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아야 해요. 이번에 파리에 새로운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오픈해서 여러 가지로 신경써야 할 일이 많네요. 여기에서 더 일을 벌인다는 말은 잠시 접어두죠.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을 찾는 고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피에르 가니에르의 요리는 단순히 식사의 개념을 넘어 전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평화의 의미도 담겨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같은 생각과 마음으로 정직하게 요리하고 있어요. 요리는 이 모두를 잇는 하나의 고리인 셈이죠. 우리의 마음이 담긴 요리를 드시고 그 깊이가 전달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