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넥타이를 매야 하는 이유
법정에서 넥타이를 하지 않은 남자 변호사를 본 적 있는가. 드물 것이다. 보수적인 법정은, 당사자는 물론 변호인에게도 단정한 복장을 요구한다. 더운 여름까지 넥타이하면 너무 힘들다는 변호사들의 민원 때문에 변호사협회가 법원과 협의해 여름 동안은 ‘노타이’해도 된다고 공지하기도 한다. 법정에서 변호사가 넥타이를 매야 한다는 규정은 없는데 왜 이런 우스운 문화가 지속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혹시라도 재판에 악영향이 있을까봐.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판사는 넥타이를 매야 한다. ‘법복에 관한 규칙’ 규정 때문이다).
권위만큼은 법정보다 결코 덜하지 않을 국무회의에서도 대통령은 타이를 벗어 던지고 장관들은 ‘노타이’로 국사(國事)를 논하는데, 유독 법정에서 이런 관행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 걸까. 심지어 대한제국 시기 반포된 재판정복규칙(1906년)조차 판사의 의관정제엔 ‘노터치’다. 이뿐이 아니다. 법정에 들어서며 변호사는 사법부에 예를 표하는 의미로 인사를 한다. 결국 법리와 아무 상관없는 이러한 관행은 결국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나쁜 인상을 남겨주지 않기 위함에 터잡는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할 때의 불이익은 오롯이 내 몫이 될 뿐, 누군가 나서 싸워주지도 않음을 우리는 안다.
호텔도 그렇다. 고객에게 주는 첫인상이 중요하고, 그래서 전통있는 호텔은 도어맨부터 프론트데스크 직원들까지 모두 훌륭해야 한다. 특히 특정 호텔을 처음 이용했는데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그 평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호텔은 ‘재화’뿐 아니라 ‘시간’까지 소비를 요구해서, 일단 1박 2일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불만이 누적되면 그 평가는 바뀌기 힘들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그어려운 평가를 뒤집은 여의도의 럭셔리 호텔과 그 옆에 버젓이 터잡아 아성을 위협하는 또 다른 여의도 럭셔리 호텔에 관한 것이다.
‘콘래드’라는 이름의 중압감
2012년 서울 여의도 IFC에 들어선 콘래드 서울은 글로벌 호텔 체인 ‘Hilton Worldwide’의 럭셔리 브랜드다. 한강을 바로 앞에서 조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호텔 중 하나며 근처에 IFC, 더 현대 서울, 여의도 공원 등 인프라도 훌륭하다. 객실 컨디션 역시 지금은 10년이 다 됐지만 다이슨 드라이기를 전 객실에 배치하는 등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헬스장도 훌륭하고 클럽라운지의 조망, 그 옆의 라운지 바까지 하드웨어는 이만한 호텔을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콘래드 서울에 대한 평가는 초기에 엇갈렸고 최근까지도 그랬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서비스. 경직된 설명, 때론 일방적이고 융통성 하나 없는 그 서비스에 많은 고객들이 실망했고, 나 역시 수차례 겪었다. 사회 구성원이 갖는 특정 호텔에 대한 이미지는 그 개인이 해당 호텔에서 갖는 경험의 총화이기에 일반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할 것이지만, 콘래드 서울은 그 일반화가 가능할 정도로 고객들 평가가 어느 정도 일치했다. 몇 년 전 있었던 ‘여의도 불꽃축제 패키지 논란’은 고객의 눈에는 그 연장선으로 이해된다(당시 콘래드 서울은 불꽃축제 기간 동안 고가에 객실을 판매했으나 정작 객실에서는 공사현장 때문에 불꽃을 볼 수없어 항의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콘래드 서울은 언제부턴가 방문할 때마다 개선됐다. 고객 경험을 위한 노력, 직원들의 미소, 깔끔한 객실 컨디션은 콘래드 서울에 대한 이미지를 재고하게끔 했다. 언제나 ‘만실’이며 예정되지 않은 어떠한 ‘혜택’도 고객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콘래드 서울에 계속해서 투숙하며, 나는 이 호텔이 변화하고 있음을 체감했다. 그리고 이런 나의 느낌은 최근 “콘래드가 바뀐 것 같다”는 취지의 콘래드 서울 투숙 리뷰 경향과도 대체로 일치했다.
서울시내 최고의 하드웨어, 개선된 소프트웨어
연회비만 잡아먹는 신용카드가 주는 유일한 효능감인 ‘발렛 서비스’를 이용하면, 언론에 수차례 소개된 베테랑 도어맨이 문을 열어준다. 층고 높은 로비를 통과해 도착한 프론트 데스크의 직원들의 서비스는 큰 환대는 없되 충분히 친절하다. 꽤 많은 엘리베이터 대수 덕에 객실에 올라가 기가 제법 편하고, 한강을 바라보는 리버뷰 객실은 콘래드 서울의 존재 가치를 웅변한다. 테이블 위에는 콘래드 영문이 적힌 사탕이 놓여 있는데 쓸데없이 맛있고 대리석 욕조와 푹신한 베딩은 특1급 호텔임을 끊임없이 느끼게 한다. 콘래드 서울 특유의 간접조명 역시 빠질 수 없다.
클럽라운지는 최고층인 37층에 위치하는데, 서울 시내 호텔 중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수위를 다툰다. 숙련된 직원들의 서비스는 확실히 과거보다 개선됐고, 음료 역시 있을 것은 다 있다. 해피아워의 라운지 음식은 적당히 먹을만하며 준비된 샴페인, 와인 등은 기분 내기 좋다. 다만, 종류가 적어 저녁을 대신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며 특히 주말 등 붐빌 때에는 콘래드 서울 특유의 감각적인 자리 배치 때문에 다른 투숙객과 이웃해 먹는 상황이 발생되는데 옛정을 느낄 수 있다.
콘래드 서울의 헬스장 ‘Pulse 8’의 하드웨어 역시 서울 시내 호텔 중 수위를 다툰다. 근력 운동 기구는 이탈리아의 ‘테크노짐’으로 배치돼 있는데 다양한 부위를 자극하는 여러 기구들이 있어 층고 높은 넓은 공간에 배치돼 시원함마저 준다.
자연채광이 스며드는 수영장 역시 충분히 크고, 매력적이다. 콘래드 서울의 뷔페 ‘제스트’는 메뉴의 종류가 많기로 유명한데 석식과 조식 모두 만족스럽다. 특히 37층에 위치한 그릴 앤 바는 공간구성이 매우 넓고 환상적인 야경을 제공함에도 와인리스트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므로 꼭 한 번 들러볼 것을 권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콘래드 서울의 하드웨어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 어느 호텔에도 뒤지지 않는다. 비슷한 카테고리의 JW 메리어트 서울, 파크하얏트 서울과 비교해도 하드웨어만큼은 개인적으로 가장 낫다고 생각된다(그럼에도 객실 가격은 셋 중 가장 저렴하다.). ‘파크원’이 준공된 뒤에도 한강뷰는 생각보다 볼만하며 ‘그랜드 킹 코너 스위트룸’은 한강뷰와 63빌딩을 동시에 담는 특별한 공간이다. 콘래드 서울은 입지와 시설, 그리고 가격을 생각해서라도 꼭 가봐야 할 호텔 중 하나라고 말해두고 싶다.
저층은 콘래드 특유의 개방감을 느낄 수 없기에 라운지를 즐길 수 있는 고층 이그제큐티브룸(리버뷰)으로 예약하는 것이 좋다. 한강을 조망하면서도 폭넓은 풍경을 담고 싶다면 63빌딩쪽 코너 디럭스룸 역시 괜찮은 선택지다(코너 양측 모두 창이 있음에도 가격은 일반 객실과 큰 차이 없다).
트렌디한 럭셔리의 정수,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이하 페어몬트 서울)은 유명건축가 리처드 로저스가 무슨 생각으로 설계했는지 모를 빨간 기둥이 인상적인 호텔로 글로벌 호텔 체인 ‘아코르’의 럭셔리 브랜드다(목조건물을 장식하는 ‘단청’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단청’의 색과 다르다). 올 2월에 개관했는데 새 호텔답게 모든 것이 깔끔하다. 층고 높은 로비는 산뜻한 개방감을 주고 입구에서의 환대 역시 고객이 마치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초창기라 그런지 직원들 간 커뮤니케이션에 다소 엇박이 있지만 몇몇 직원들의 그리팅 및 서비스는 정말 고객에게 감동을 줄 정도로 섬세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입지는 본 평가에서 크게 고려하지 않는 요소지만 더현대서울과 연결돼 있어 심심할 여유가 없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객실로 연결되는 통로 모든 공간에 걸쳐 곱씹어볼 정도의 인테리어가 투숙객을 반긴다. 객실 안 커튼은 노동에 지친 투숙객을 달래듯 자동으로 열리고 크롬캐스트가 설치된 스마트 TV 역시 고객이 즐길 수 있는 선택지가 된다.
객실 컨디션은 그야말로 세련됐다. 63빌딩 방면 탁 트인 뷰는 야경까지 볼만하고 어메니티는 요즘 핫한 ‘르 라보’를 쓰는데 젊은 고객의 취향에 맞춘 신선함이 인상 깊었다. 욕조는 블랙 소재가 눈길을 끄는데 충분히 크고 두꺼운 슬리퍼는 발을 따뜻하게 녹인다. 방 안의 미닫이문은 공간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이해되는데 당황스러운 점은 있으나 큰 문제는 아니다.
조식은 ‘스펙트럼’에서 제공되는데 랍스터, 북경오리가 나올 정도로 메뉴 구성이 다양하다. 요거트조차 여러 가지 맛이 구비돼 있고 돼지고기 역시 즉석에서 잘라 제공하므로 페어몬트에 투숙한다면 조식은 꼭 포함시킬 것을 권한다. 헬스장 및 수영장은 지상이 아닌 지하에 위치해 있는데 바로 옆 콘래드 서울과는 규모면에서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이지만 헬스장에 있을만한 기구는 있으므로 그런대로 넘어가면 된다(인테리어는 매우 예쁘다). 수영장은 역영(力泳)할 생각만 없다면 이용은 가능한 수준이며 썬베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랜드마크 안의 랜드마크로
이로써 여의도를 대표하는 두 럭셔리 호텔을 알아봤다. 호텔 투숙객들은 대개 은밀하게 만족하고 요란하게 불만족한다. 그래서 불만족 소리는 쉽게 들리고 읽힌다. 콘래드 서울은 분명 압도적이고 세련된 하드웨어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해 왔다. 세계 최고의 호텔 중 하나인 콘래드 오사카, 환상적인 수영장과 뷰를 제공하는 콘래드 발리와 비교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누군가 필자에게 서울에 갈만한 호텔을 추천해 달라 한다면 그 중 하나는 다른 어느 호텔도 아닌 콘래드 서울이다. 그리고 필자는 페어몬트 서울이라는 바로 옆 호텔의 경쟁력이 엄청남을 느꼈고 묘하게 겹치는 두 호텔의 색깔이 흥미로웠다. 코로나 시국으로 쉽지 않겠지만, 훌륭한 대리석 복도 위의 직원들이 비록 지치더라도 미소를 잃지 않고 여의도 호텔 역사의 새 지평을 열었으면 좋겠다. 어느 변호사가 오늘도 땀 흘리며 넥타이를 매고 법정에 출정하듯이.
*본 호텔노트는 오로지 호텔 안에서의 투숙경험만을 평가하기에 도심 인프라 접근성 등 ‘위치’는 큰 평가요소로 다루지 않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