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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월)

남기엽

[남기엽의 Hotel Notes] 낙후된 하드웨어와의 끊임없는 전쟁 웨스틴 조선 호텔 서울 & 부산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최고(最古) 호텔의 기억
음식을 남기기만 해도 꾸중을 듣던 시절에 자란 나는, 음식을 바닥에 쏟는 행위가 어떤 야단을 불러올지 알았다. 유치원생이던 당시 어느 뷔페에 갔다가 그릇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하필 그곳엔 진열된 음식마다 이리저리 휘저으며 활보하는 아주머니가 앞에 있었다. 그 아주머니의 손에 내 그릇이 부딪혔고 반사각으로 튕겨나간 음식과 함께 그릇까지 산산조각 나자마자 부모님의 눈치를 봤다. 이윽고 호텔 직원인 어느 여자 분이 오셔서 고작 유치원생인 나에게 건넨 한 마디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고객님,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지금은 “변호사님”으로 시작된 문자를 볼 때마다 긴장하며 각잡고 보게 되는 것이지만, 내 기억에 최초로 “님”이란 호칭을 들었던 때가 바로 저 때다. 주말마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온 가족이 갔던 웨스틴 조선 서울 1층 뷔페식당 아리아. 그릇의 안위 따위 상관없이 놀란 나를 걱정해주던 그 직원분은 나를 안전지대로 대피시켰고 다른 직원들은 음식을 주워 담았다. 저 음식이 묻은 카펫은 어떻게 세탁할 것인가 한가한 고민을 하던 그 당시가 생생히 기억나는 까닭은 이때가 내가 사회에서 인격체로 존중받은 첫 기억이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호텔은 지금 말한 뷔페식당 아리아가 위치한 웨스틴 조선 서울에 관한 이야기다.

 

웨스틴 조선 서울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최고(最古)의 호텔’이란 말은 식상하지만, 그래도 언급을 해두겠다. 웨스틴 조선 서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호텔이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에 의해 건립됐고 지하 1층, 지상 4층의 규모는 당연히 당시 최대 규모 호텔이었다. 해방 이후 미 군정청 사령부 및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집무실로도 사용됐으며 6·25 전쟁 때 북한에 넘어가기도 했다는데 사실 나도 찾아본 것이고, 객실 안 물품은 미군정과 아무 관련이 없으므로 여기까지만 알아두면 되겠다(1970년, 20층 건물로 재개관됐다).

 

 

 

답답한 로비, 직원들의 분투

시청 광장 앞, 입구의 존재를 과시하는 플라자 호텔과 달리 웨스틴 조선 서울의 입구는 의외로 찾기 어렵다. 시청역을 따라 한글로 쓰인 ‘스타벅스’ 간판을 지나가면 찾을 수 있는데 로비는 ‘웨스틴’ 치고는 작고 직원 및 오가는 사람이 많아 번잡하다. 체크인 역시 사람이 많으면 피난민 마냥 줄지어 기다리거나 번호를 입력하고 대기하는데 가뜩이나 높은 인구 밀도 위 건물기둥까지 여럿 있어 답답하기까지 하다.

 

호텔들이 너도나도 코로나19로 세일인 척 사실상 덤핑을 하는 요즘 같은 때 로비는 더더욱 복잡해진다. 아예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어딘가에서 체크인을, 많게는 1시간 가까이 기다리는데 여기서부터 직원들의 분투가 시작된다. 잔뜩 벼르는 투숙객들을 맞이하며, 먼저 미소로 인사한 뒤 선제적으로 룸업그레이드 또는 레이트 체크아웃 등의 Benefit을 제공하며 따듯하게 환대하는 직원들의 마인드는 그간 기다린 고초를 잊게 한다.

 

클럽룸 투숙객의 경우 라운지에서 대기하게 되는데 클럽라운지 직원들의 케어 역시 국내 어느 호텔에 뒤지지 않을 만큼 숙련돼 있다. 체크인을 마치고 들어간 객실은 여느 호텔 객실의 같은 카테고리 룸보다 ‘조금 더’ 넓다. 리모델링된 욕조와 대리석은 한데 어우러져 투숙객의 따뜻한 휴식을 보장하고 침구의 컨디션은 그 어느 호텔보다도 뛰어난 웨스틴 조선 서울의 핵심 경쟁력이다. 90년대 스타일의 창틀, 전화, 서랍과 모던한 객실 컨디션은 묘하게 조화돼 촌스럽지 않고 창가 너머 보이는 환구단은 실로 ‘조선’의 느낌을 더한다. 필요한 것만 리뉴얼해 예의 정갈함을 유지하는 웨스틴 조선 서울의 객실을 보면, 왜 이 호텔이 100년 헤리티지를 갖춘 호텔인지를 알 수 있다. 추후 투숙하게 되면, 객실 안에 놓여 있는 가구 하나하나를 뜯어보기를 권한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니즈를 채우는 웨스턴 조선 서울

클럽라운지는 최고층인 20층에 위치하는데 잦은 인허가로 서울 시내 스카이라인이 엉망이 된 탓에 딱히 볼 건 없다.애프터눈 스낵으로 준비된 마카롱은 지친 심신을 달래고 해피아워의 라운지 음식은 핫푸드 및 콜드푸드가 각 3~4종류가 나와 부족함이 없다. 화이트, 레드 와인과 더불어 맥주 역시 다양하게 구비돼 있고 직원들은 바쁘게 그릇을 나르면서도 여유로운 자세로 투숙객에게 최선을 다한다. 뭔가 튀는 포인트가 없어도 불만을 느낄 시간을 주지 않는 게 적절한 서비스로 표상되는 웨스틴 조선 서울답다.

 

 

‘뷰’에도 전통과 모던이 있다면 웨스틴 조선 부산

형제 호텔인 웨스틴 조선 부산은 부산 부촌인 해운대 전통의 호텔이다. 로비는 상당히 넓으며 직원들 역시 웨스틴 조선 서울과 마찬가지로 프로페셔널하다. 1층에 위치한 까밀리아는 바다를 곁에 두고 음식을 즐길 수 있는데 우리나라 어느 특급호텔도 까밀리아처럼 가까운 바다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객실 컨디션은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다. 이게 메리어트에서도 상위 티어인 ‘웨스틴’의 카테고리인가 싶을 만큼 놀라게 되는데 당초 전면 리뉴얼을 계획했다가 취소한 탓에 그야말로 ‘노후화’ 됐다. 객실은 크지 않은 데다 TV가 벽걸이가 아닌 것도 놀랍고 욕실의 크기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침구는 편안하지만 처음 받은 충격 탓에 편안한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방음도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반전은 있다. 바로 통창 너머 보이는 오션뷰다. 부산에는 수많은 오션뷰 호텔이 존재한다. 기장에 위치한 힐튼 부산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오션뷰를 자랑하고 송도에 최근 개장한 페어필드 메리어트 역시 ‘페어필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해상 케이블카가 노니는 아름다운 오션뷰를 선사한다.

 

그럼에도 웨스틴 조선 부산의 오션뷰는 특별하다. 헬스장도 만족스럽다. 리모델링의 상당한 혜택을 본 것으로 보이는 헬스장은 최신식 기구와 함께 스미스 머신, 파워랙이 모두 구비돼 있고 피티룸이 따로 있어 동선도 잘 겹치지 않는다. 수영장은 평범하나 로비에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기둥이 시야를 가려 답답하지만 다른 호텔에서 찾기 힘든 따뜻한 자쿠지가 아쉬움을 녹인다. 조식은 지하 1층 아리아 또는 클럽라운지에서 먹을 수 있는데 아무래도 아리아가 종류 면에서 더 낫고 반드시 우동을 먹어볼 것을 권한다. 웨스틴 조선 서울은 넓은 객실, 숙련된 직원, 부족함 없는 부대시설로 요약될 수 있는 곳이다. 홍연(중식), 스시조(일식) 등의 미식까지 구색을 갖췄다. 그러나 콘래드 서울, 하얏트 서울의 탁 트인 뷰 또는 이웃에 위치한 롯데 이그제큐티브타워의 환상적인 클럽라운지에 비춰 볼 때 크게 끌리는 부분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그러나 옛 호텔의 정갈함을 느끼기 위해서라면, 경복궁과 명동을 경험하고 싶은 해외 친구에게 소개해줄 호텔로는 이만한 호텔도 없다. 더 낫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범주에서 논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션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해운대 해수욕장 오른쪽 끝에서 측면을 바라보고 있기에 왼쪽엔 백사장이, 정면엔 달맞이 고개와 미포방면까지 들어온다. 뷰에는 ‘전통’과 ‘모던’이라는 경계가 없다고들 믿는데 여기 오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 뷰는 전통적이다. 그래서 쉽게 안 잊힌다.

 

 

클럽라운지 역시 바다를 곁에 두고 핫푸드와 주류를 즐길 수 있다. 보통 바다는 밤에는 아무것도 안 보여 온도차가 큰데 웨스틴 조선 부산은 해운대를 벗하는 덕에 야경뷰도 제법 멋지다. 바다를 배경으로 갓 나온 훈제 베이컨과 시원한 맥주를 들이킬때 만큼은 객실에서 받은 충격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직원들 역시 상당히 친절하다. 웨스틴 조선 부산은 고른 경쟁력을 갖춘 웨스틴 조선 서울과 달리, ‘뷰’ 하나로 모든 것을 대체할 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수영장 가든 뒤 계단으로 올라가 해운대를 바라보며 태닝을 즐길 때는 ‘말해 무엇’ 할 게 없었다. 신세계조선 호텔 계열 중에서 나는 ‘웨스틴’ 조선에 특히 정감이 간다. 최고의 인피니티 풀을 보유한 웨스틴 싱가포르, 궁전을 연상케 하는 웨스틴 도쿄에서 좋았던 추억과 함께 나의 어린 시절 기억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프로바둑 대전에서 인간 기사는 많은 차이로 이기는 것이 좋은 바둑이라 생각해 ‘최선’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리스크를  감당한다.

 

반면 알파고의 목적은 승리 그 자체다. 집을 많이 짓지 않아도 최소 반집만 앞서면 이긴다는 개념을 갖고 있다. 난 이를 웨스틴 조선 형제호텔에 차용하고자 한다. 편안한 투숙을 위해서라면, 웨스턴 조선 서울은 충분히 고려 가능한 선택지다. 하지만, 압도적인 경험이 좋은 호텔의 조건이라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리스크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다면 웨스틴 조선 부산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혹 시설이 아쉽다면, 둘 모두 편벽한 어느 깡촌이 아닌 서울, 부산의 핵심부에 자리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일이다.

 

*본 호텔노트는 오로지 호텔 안에서의 투숙경험만을 평가하기에 도심 인프라 접근성 등 ‘위치’는 큰 평가요소로 다루지 않음을 밝힌다.

**다음 호에서는 여의도의 양대 럭셔리 호텔, 콘래드 서울 &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을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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