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대표 먹거리, 홍콩 완탕 누들 수프
미식의 도시 ‘홍콩’을 대표하는 먹거리는 다양하다. 딤섬, 홍콩 샤브샤브, 신흥유엔의 토마토 라면, 신무이의 굴국수, 카우키의 카레 소고기 국수, 에그 타르트, 고급 호텔에서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즐기는 애프터눈 티 등 많이 있지만, 꼭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완탕 누들 수프’다. 왜냐고 묻는다면... 필자가 누들 마니아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딤섬은 두 번 이상 먹으면 기름기에 질리지만 담백한 국물과 함께 먹는 누들은 질리는 법이 없다.
홍콩 완탕 누들 수프의 가장 큰 특징은 고무줄 같은 식감의 면발이다. ‘에그 누들’이라 불리우는 완탕 누들에는 밀가루에 달걀, 소금 외에 베이킹 소다가 첨가돼 쫄깃한 식감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홍콩 완탕 누들 수프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전통 방식으로는 밀가루에 달걀과 소금만으로 반죽하고 기다란 대나무 봉 위에 사람이 타고 앉아 위, 아래로 또는 봉을 굴려 가며 반죽, 글루텐을 최대한 끌어 올리면서 면발의 탄성을 극대화했다고 하는데 현재 이 전통 방식으로 면을 만드는 식당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다음으로 완탕 누들 수프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바로 속이 꽉 찬 새우 완자다. 새우를 통으로 사용한 식감은 하가우 딤섬보다 맛있고 단순한 조합인 이 음식의 만족도를 높여 준다.
완탕 누들은 중국 남부지역인 광둥지역이 원조며 당나라 시대에는 ‘훈툰(Huntun)’이라 불렸다. 남중국지역, 즉,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폴, 베트남, 태국에서 특히, 인기가 있으며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호텔 직원 식당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메뉴로, 매일 먹는 쌀 국수에서 밀가루로 만든 에그 누들은 느끼한 중국 음식을 싫어하는 베트남인들에게도 매우 매력적이어서 주로 특별한 날 특식으로 제공될 정도다.
각 나라의 완탕 누들 수프
- 광저우와 홍콩
뜨거운 국물에 새우 완탕과 중국 브로콜리 또는 ‘중국 케일’이라 불리는 잎 채소가 곁들어져 나온다. 가장 뚜렷한 특징은 완탕의 주재료가 새우로 약간의 갈은 돼지고기를 섞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특징은 면을 꼬들꼬들하게 삶는다는 점이다. 국물은 주로 마른 가자미를 이용하며 맑은 국물로 서비스한다.
베트남
중국 이민자들로부터 들어온 베트남 완탕 누들 수프는 ‘미환탄(Mi Hoanh Thanh, Mi Van Than)’이라 부르며 에그 누들과 돼지뼈로 우려된 육수와 갈은 돼지고기, 차이브 등과 함께 제공된다.
태국
태국에서는 ‘무댕(Mu Daeng, Red Pork)’이라 불리는 바비큐 돼지고기가 토핑으로 사용되는 완탕 누들 수프가 있는데 ‘바미 무댕 키아오(Bami Mu Daeng Kiao)’로 부른다. 전통적으로 중국 이민자가 많아 여러 종류의 누들 수프가 있는데 식초에 절인 고추, 말린 고추, 설탕, 피시 소스를 첨가해 완탕 누들 수프를 즐긴다.
말레이시아
음식문화에 중국 이민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말레이시아는 지역별로 완탕 누들의 다양한 형태를 맛 볼 수 있는데 돼지고기 바비큐인 차슈(Char Siu)를 토핑으로 사용하는지, 아니면 수프와 완탕을 따로 서비스해 면을 굴소스와 버무려 서비스하는지 등에 따라 달라진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슬람 인구가 많은 나라기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손님이 많다 보니 생겨난 스타일인 것 같다.
차찬텡(Cha Chaan Teng)과 빙셧(Bing Sutt)
차찬텡은 홍콩 식당의 한 종류로 홍콩 요리와 홍콩식 서양 음식을 포함한 절충식으로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재미있는 메뉴 구성을 가지고 있다. 차찬텡은 말 그대로 ‘차식당’인데 여기서 ‘차’는 홍차 또는 밀크 티, 아이스 레몬차 같은 ‘차 음료’을 말하며 일반 양식당에서는 차 대신 물을 서비스하는데, 일반 양식당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식당과 메뉴가 생긴 것일까? 그 유래를 알기 위해 18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당시 홍콩에서 양식 요리는 특권층에게만 허락된 음식이었고 노동자 계급이 접근할 수 없는, 고급 식당에서만 제공됐다. 1920년대 양식당의 식사 비용은 10불 정도였는데 노동자들의 임금은 겨우 15불에서 50불 사이였다고 하니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 홍콩은 영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몇몇 홍콩인들은 지역민들을 겨냥한 차찬텡을 개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0~1960년대 서민들의 소득이 오르면서 차찬텡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빙셧이 ‘홍콩 + 서양음식’의 높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차찬텡으로 전환됐으며 1997년 이후 더욱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빙셧은 이름 그대로 ‘Ice Room’ 즉 ‘얼음 방’이라는 의미, 홍콩의 고온 다습한 여름을 버티기 위해 꼭 필요한 시원한 얼음 음료를 파는 곳으로 시작됐다. 소다 유리컵에 차가운 팥을 넣고 시럽으로 달콤함을 추가한 후 무가당 우유와 으깨진 얼음을 그 위에 부어 마시는 음료, ‘홍다우빙’은 중국 광동식 디저트 재료와 서양식 음료 스타일의 표현으로 구현된 홍콩 만의 시원한 음료 디저트로 에어컨이 없던 그 당시, 홍콩의 찌는듯한 더위를 잊게 해 주는 최고의 음료였을 것이다.
천정에 선풍기가 돌아가는 빙셧 카페에서의 시원한 단팥 아이스 음료 한잔은 최고의 피서나 다름 없었을 것이며, 아마도 지금 한국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도 일년 열두 달 인기를 끌고 있는 팥빙수의 시초가 홍다우빙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렇듯 더운 홍콩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 필수였던 얼음은 그 당시 쉽게 얻을 수 없었다. 1840년경 영국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들은 홍콩의 여름에 힘겨워했으며 이를 이겨내기 위해 미국이나 북중국으로부터 호수나 강에 떠 있는 얼음을 배로 수송해와 Ice House Company Building(얼음 창고)을 짓고 그곳에 보관했다.
1874년경부터 Scottish에서 온 엔지니어 John Kyle이 홍콩 식민지에서 처음으로 아이스 머신 판권을 얻었고, 같은 나라 동료인 William Bain과 동업하면서 Vapour-Compression Refrigeration Systems으로 만들어진 얼음을 팔기 시작했으며. Jardine Matheson and Company(현재 Jardine Matheson Holdings로 홍콩의 주요 대기업의 중 하나)가 1870년 후반에 인수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홍콩 인구는 중국 노동자들로 인해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동시에 빙셧 역시 홍콩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 카페는 단순한 카페 이상으로, 하루의 고된 노동으로 인해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주는 장소였다. 이곳에서는 시원한 음료와 함께 현재까지도 유명한 파인애플 빵을 즐길 수 있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매달 첫 주말은 월급을 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온 가족들의 유일한 외식 장소로도 홍콩인의 사랑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홍콩에도 점점 집집마다 냉장고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빙셧 카페는 줄어들었고 몇몇은 차찬텡으로 바뀌어 지금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예전의 홍콩식 음료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장소로 홍콩 거리를 걸을 때 상점들을 더욱 주의 깊게 보게 한다. ‘혹시 이곳이 예전의 빙셧 카페는 아니었을까?’하고 말이다.
몇 남지 않은 빙셧 카페 중 하나인 ‘Hoi On Café’는 이름 그대로 ‘Sea Café’인데 진짜 아이스 하우스가 당시 물가 근처에 위치해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1952년에 오픈한 오너의 손주가 3대째 운영 중인 찐 원조 빙셧 카페로, 카페의 디자인이 외부에서 볼 수 있도록 돼 있는데 냉장고 창문을 통해 안에 진열된 파인애플 빵과 에그 타르트를 볼 수 있고 좁은 카페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 홍콩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차찬텡과 빙셧의 인기 메뉴들
- 파인애플 빵: ‘보로바우’라 불리는 이 빵의 의미는 광둥어로 ‘보로’는 파인애플이고 ‘바우’는 중국요리의 빵 종류다. 진짜 빵에 파인애플이 들어가 생긴 이름이 아니라 빵 위쪽의 모양이 파인애플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소보로 빵, 일본의 멜론 빵과 비슷하며 보로바우의 윗 부분 즉 파인애플을 닮은 부분은 슈거 쿠키를 만드는 반죽과 비슷한 재료가 들어가 많이 달고 바삭바삭한게 특징이다.
- 홍콩 프렌치 토스트: 차찬텡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메뉴인 프렌치 토스트는 전통 프렌치 토스에 다양한 속 재료를 넣고 튀기듯이 구운 토스트 샌드위치다. 속 재료는 땅콩 잼, 카야잼, 치즈, 커스타드 크림 등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서 제공되고 있으며 각각의 식당 개성을 엿볼 수 있는 메뉴다. 쌉싸름한 밀크 티나 새콤달콤한 레몬 티와의 궁합이 굿이다.
- 런천 미트 마카로니 수프: 홍콩을 이해하기 전에 헛웃음이 나왔던 음식. 닭고기 육수에 마카로니 누들과 햄 한 장이 올려져 나오는 이 누들 수프는 돈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는 하루 고된 노동을 시작하기 전 허기진 배를 채워준 소중한 메뉴였을 것이다. 맛은 예상하는 그대로다.
- 밀크 티: 영국에 의한 홍콩의 식민지 시대에 유래한 홍콩 밀크 티의 가장 큰 특징은 자루에 차 잎을 걸러낸다는 점인데 차를 더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자루의 모양이 실크 스타킹을 닮아서 ‘팬티 스타킹 밀크 티(Pantyhose Milk Tea)’ 또는 ‘실크 스타킹 밀크 티(Silk Stocking Milk Tea)’라는 별칭이 있다.
- 유엔양: 커피와 밀크 티를 섞은 유엔양. 말레이시아어로는 ‘코피 참(Kopi Cham)’이라 불리고 에티오피아에서도 ‘Spreeze’라고 불리는 음료다. 커피와 차의 비율은 3:7 정도로 뜨겁게도 차갑게도 즐길 수 있으며 동양의 금슬 좋은 원앙새에서 따온 이름으로 암수의 모습이 다르지만 잘 어울린다며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니,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음료다.
- 레몬 티: 더운 홍콩 여름에 필수 음료인 시원한 레몬 티는 홍차에 레몬 슬라이스를 넣어 제공되는데 아이스 레몬 티는 ‘똥랭차’라고도 불린다.
- 훙다우빙: 빙셧을 소개하며 언급된 아이스 단 팥 음료가 바로 홍다우빙이다. 홍콩의 대표적인 음료로 특히 여름에 인기 있는 후식으로 홍콩뿐만 아니라 중국 광둥성과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화교 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