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수의 Hospitality Design ] 듀퐁 씨의 휴가 les vacances de M.Dupont

2016.10.14 09:17:14


이번 글은 원래 예정했던 프로젝트 소개 대신 한국여행을 한 프랑스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볍게 소개해보려 한다.
평소에 생각치 못했던 점들도 있으니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듀퐁 씨(한국 말로 아무개 씨입니다.)는 빌모트 사의 중요한 고객으로 한창 더위가 시작된 7월 31일부터 2주 간의 휴가를 위해 부인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들어왔습니다. 듀퐁 씨의 어머니, 듀퐁 씨 아내의 아버지가 베트남인으로 매년 동남아시아에서 바캉스를 보내기에 아시아 문화에 거부감이 없습니다. 서울에서 5박을 보내고는 7박을 경주와 부산에서 그리고 마지막 1박을 서울에서 보낸 2주간, 호텔 조식을 제외한 매끼의 식사를 한식으로 했습니다. 심지어 도착 첫 날이 부인 생일이었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숙소의 경우 프랑스에서 미리 그랜드 **트 서울, 경주 보문단지의 호텔 *대, **텔 **서더 부산을 예약해 왔기에 마지막 밤을 북촌의 한옥 체험 시설 ‘고이’에서 묵을 수 있도록 예약해드렸습니다. 특급호텔들의 인터내셔널 스타일은 말 그대로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으니까요.
이 부부의 여행기를 중심으로 7, 8월에 다녀간 동료들의 이야기를 덧붙여 이번 글을 풀어보겠습니다.



강북 노포에서 8000원의 값어치
사진은 강북의 알려진 식당 ‘**옥’에서 찍은 것으로 아주머니들이 식탁에 내려놓은 그대로입니다. 언제부터 이웃나라의 흉내를 내면서 ‘노포’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우리가 돈을 내고 되받는 것이란 실은 아무렇게 내려놓은 그릇들과 수저입니다. 고급 음식집에서도 소주광고가 붙은 플라스틱 물통, 직접 챙겨야 하는 수저통, 식사 중에 두고 가는 후식, 아무런 말없이 그릇을 빼가려는 종업원들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실례합니다.” 한 마디면 자연스럽습니다. 반찬 그릇이 많다보니 손님이 보는 앞에서 남은 음식들을 큰 통에 처리하기도 하고요. 유쾌하지 않습니다.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손님이 갖춰야할 기품, 맞이하는 이가 차려야 할 예를 값으로 매기면 얼마 정도부터일까요?
손님을 맞이하는 개념을 통틀어 불어로는 오스피탈리테hospitalité, 영어로는 호스피탤리티hospitality, 일어로는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라고 한다는데 그런 개념을 우리말로는 무어라 할까요?
북촌 가까이 ‘****님’이란 식당이 있습니다. 자극적이지 않은 점심거리를 찾아 북촌에 짐을 푼 듀퐁 씨 부부를 모시고 찾아갔습니다. 할머니 혼자서 꾸리는 그 식당에는 손님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 음식 재료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늘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이른바 ‘욕쟁이 할머니’ 식당인데 거친 우리네 서비스 산업의 호스피탤리티 문화를 달리 말하면 ‘욕쟁이 할머니’인 것 같습니다.
밤 늦게까지 계속되는 워크숍으로 피로가 쌓입니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데 시간도 늦어졌고 당연히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속도도 느려집니다. 그 때 홀을 담당하시는 분이 다가오셔서 뭔가를 슬그머니 내미십니다. “손님, 따뜻한 레몬즙입니다.” 언젠가 특별히 주문을 한 것을 기억하고는 가져다 준 거죠. ‘빌모트’ 라는 프랑스 종합디자인회사가 서울의 그랜드 **트 호텔을 20년째 이용하는 이유이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모든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요?


탈출evasion을 위한 공모?
여름이면 특급호텔들은 갖가지 프로모션으로 손님들을 끌어들입니다. 수영장, 바비큐 파티, 글램핑 등의 단어들이 들어간 프로모션으로 호텔의 모든 시설들은 쉴 틈이 없습니다. 특히 휴가를 떠나기 시작하는 첫째 주에는 국내 최고 호텔들이라 해도 주차에만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남편은 주차를 하는 동안 아내와 아이들은 호텔로 들어가고 로비는 물론 수영장은 뛰어 다니는 아이들로 세상에 그런 법석이 없습니다. 아침 식사 시간의 식당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죠. 어느 등급 이상의 손님을 위한 식당이 따로 있음에도 이런 때는 소용이 없습니다.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손님들은 힘들죠. 투숙객들만이 아닙니다. 늦게까지 호텔의 야외에서는 음악과 함께 하는 행사들이 이어집니다. 호텔 *대 경주에서 묵던 듀퐁 씨가 아래층에 나이트클럽이 있다고 불평하시길래 알아보니 호텔 뒷마당에서 자정까지 맥주파티를 하고 있었습니다. 프론트는 불평하는 손님이 있다는 점에 놀란 눈치였습니다.
경주 시내에 있는 한옥펜션, *블을 찾았습니다. 그 곳은 유독 유럽손님들이 많더군요. 주인장이 영어를 해서 외국손님들이 불편 없이 머물 수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 머물면서 인파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가까운 나정 해수욕장, 토함산 국립공원을 추천했지만 결국 듀퐁 씨는 볼 것, 먹을 것 없는 경주를 떠나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불국사, 석굴암, 왕릉들은 신라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하루면 충분했던 거죠. 아울렛, 관광음식점들이 함께 대규모로 개발되는 획일적 지방 관광 인프라는 개별 외국인 관광객까지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한편, 강연을 위해 방한한 빌모트 사장이 묵었던 *라호텔은 넘쳐나는 비투숙 고객들로 인해 로비에서부터 객실 확인을 합니다. 아침 식사 후 밖으로 나서기까지 여러 번 제지를 당한 빌모트 사장은 드디어 짜증을 냅니다. 이럴 때는 독채를 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에바지옹evasion은 도피를 뜻하는 불어입니다. 상대적으로 부담 없는 독채, ‘*이’의 주인장, 정진아씨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오는 서울고객들도 많다고 합니다. 대도시에서 발생하는 시청각 공해, 대인관계에서의 스트레스 등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이겠죠. 수영장은 물론 욕조, 부페, 바도 없지만 되려 자신만을 향한 귀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전통 찻집 인사동’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관광객들과 호객 행위로 시끄러운 길에서 벗어나 맞닥뜨리게 되는 작은 마당의 고요함이란… 듀퐁 씨 부부는 전통 가옥의 마당에서 처음 마시는 오미자차, 유자차 그리고 옛날 빙수에 풍덩 뛰어들었습니다.(참, 오미자는 중국 매그놀리아magnolia 나무의 열매로 번역하면 됩니다.)
호텔, 레스토랑의 디자인, 서비스는 이런 이들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해야 합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도 중요하지만 손님들이 뭘 보고 싶어 하는지에 귀 기울이는 것이, 귀찮게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잊지도 않는 적절한 물리적, 심리적 거리에서 들을 준비를 갖춰 고객들의 도피, 탈출에 공범이 돼야 합니다.


북촌마을 “*이”의 입구


“다 똑같으니 그냥 여기로 오세요.”
관광지의 식당, 어느 도시마다 있는 맛집 골목에서 흔히 듣게 되는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귀한 손님들을 대접하려고 한정식집, 고깃집을 예약합니다. 밥과 된장찌개, 구운 생선, 육고기와 쌈을 싸먹을 채소, 그리고 맛난 나물반찬들. 마지막으로 달달한 마실 것까지. 그렇게 ‘대접’받기를 3일째, 동료는 항복을 선언합니다. 그의 눈에는 미리 준비된 똑같은 음식들의 되풀이일 뿐이었죠. 사실 한식당의 후식은 늘 캔에서 꺼낸 식혜와 설탕이 지나친 매실차인데 미리 그릇에 담아 표면이 마른 찬들처럼 그저 많이 차린 것으로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함께 둘러보시죠. 산채비빔밥/매운탕 식당들이 계곡을 점령하고 있고 바다는 모텔 반, 회타운 반입니다. 심지어 외국의 한식당에서도 단순한 메뉴는 마찬가지입니다. 듀퐁 씨 부부가 여느 파리 한식당에서 먹었던 파전, 불고기 그리고 돌솥비빔밥을 빼고 나니 식당을 고르기가 어려웠습니다. 정말 어디를 가나 똑같습니다. 한식당은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 레스토랑도 단순하기는 오십보백보입니다. 파스타, 피자 그리고 스테이크가 전부인 레스토랑들이 많죠. 예를 들어 그랍파Grappa조차 갖추지 않지만 생면을 쓴다는 이유로 정통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알려진 곳들이 대부분입니다. 블로거를 동원하고 봉골레 스파게티, 고르곤졸라 피자만 팔아도 장사는 되니까 서로 메뉴를 베껴서 구성이 똑같습니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아시나요? 껑충한 회사원이 상품을 전해 주러 방방곡곡으로 외근을 나가거나 출장을 가서는 가벼운 에피소드와 함께 지역을 소개하는 드라마입니다. 주인공은 간식이나 점심으로 그 지역의, 그 가게만의 특별한 음식을 먹습니다. 미국 동부해안 굴 서식지의 레스토랑도 생각이 납니다. 나무로 지은 헛간에 나무식탁과 나무의자가 놓여있고 사람 머릿수만큼 나무통에 굴을 담아 식탁에 쏟아 줍니다. 식탁에는 레몬 몇 덩어리가 차려져 있습니다. 스웨덴 바네른Vanern 호숫가의 스피켄Spiken 생선훈연소도 서 너 가지 생선종류에 감자샐러드, 캔 음료수를 제공하는 간단한 레스토랑이었지만 지역명소입니다. 우리네 바닷가에서도 바다 내음 뭉실한 문어 다리 구이와 시원한 생맥주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호텔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즈니스호텔, 라이프 스타일 호텔이 유행하면서 어디선가 본 짝퉁 가구와 어디선가 본 콘셉트로 덮은 어디선가 본 듯한 호텔들이 넘쳐납니다. 지방에는 유행하는 스타일로 똑같이 장식한 울긋불긋 현란한 펜션들이 넘쳐납니다. 시설을 운영하는 계약직 직원들도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옮겨 다니니 결국 ‘어디선가 본 듯한 호텔’에서 제공하는 저질의 서비스뿐입니다. 그런 호텔이 오래갈 수도 없겠죠.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도시 환경은 다를까요? 나라의 얼굴인 공항에서부터 역세권, 쇼핑몰 등은 몇몇 대기업, 동일 업종의 프랜차이즈 카페, 레스토랑들로 우리네 도시 풍경은 다 똑같습니다. 싼 가격만이 경쟁력이 돼버렸고 외국인, 외지인은 바가지의 좋은 타깃이 됩니다. 지역 문화의 개성을 죽이다보니 마늘탑, 말춤 동상 같은 1차적이고 직접적인 조형물들이 고유한 관광자원이랍시고 세금을 들여 설치되고 있죠.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광화문에 위치한 레스토랑 빌즈, 바 카운터의 아래에는 가방걸이를 달았고, 의자는 르코르뷔지에LeCorbusier 조카인 피에르쟌느레Pierre Jeanneret가 디자인했다.


에스칼로프포처네즈, 포처너슈바인슈니첼
전 듀퐁 부부와 북촌 ‘**만두’, 한남동‘*이’에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라비올리ravioli, 동유럽의 피에로기pierogi, 중국의 자오지에餃子 등 밀가루 피에 고기, 채소를 다져 채운 음식은 동서양에서도 먹는 음식이어서 거부감이 적습니다. 참 돈까스도 좋습니다. 프랑스의 에스칼로프escalope, 독일어권의 슈니첼schnitzel은 돈까스의 다른 이름이고요. 일본 음식이라고 추천을 하지 않기도 하는데 위급할 때는 대안이 되기도 합니다. 돼지고기를 안 먹는 분들에게는 닭고기, 생선도 있으니 임기응변이 가능할 겁니다. 포천의 공장지대에서 찾아낸 ‘돈까스**’은 손님은 물론 ‘대접’에 고민하던 주최측에게도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 됐습니다. 많은 한식당에 간단한 와인 리스트조차 갖추지 않은 점은 아쉽더군요. 외국인들에게는 너무 특별한 막걸리, 폭탄주용 맥주만을 권할 수는 없으니 적어도 화이트 1종, 레드 2종을 갖춘, 한정식이 아닌, 무겁지 않은, 단품을 파는 한식당들이 많아 졌으면 좋겠습니다. 인테리어가 아쉽기는 하지만 한남동 ‘*이’는 그런 와중에 찾아낸 좋은 식당입니다. 나눠 먹기 좋은 한국음식은 단품 요리로도 와인과 어울립니다. 키조개 볶음, 명란탕, 간장 닭구이를 샤르도네 포도주와 즐겼습니다. 생선 알을 외국인이 먹냐구요?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에서도 어란을 즐겨 먹습니다. 각각 보타르가bottarga, 부타르그boutargue, 카라스미唐墨라고 합니다.
적절한 값의 와인과 맛있는 일품요리를 먹을 수 있고 거기에 더해 인테리어도 신경을 쓴다면 대박을 칠겁니다. 한남동 ‘*** 키친’, 광화문 ‘*즈’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한국으로 자주 출장 오는 본사 디자인부분 이사와도 즐길 수 있는 서울의 레스토랑입니다. 아쉽게도 이들 식당들조차 식전 빵은 제공하지만 정작 식사 중에 곁들일, 우리에겐 쌀밥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빵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또한 9시가 되면 주방을 닫고 커피조차 주문을 받지 않습니다만 커피는 식사의 가장 마지막이 아닌가요?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의외로 적습니다. 더군다나 앤트러사이트 커피의 원두라 더 아쉬웠습니다.
그들의 문화는 우리네 문화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외국인을 위해 바꿀 필요는 없지만 공통의 요소가 있다면 손님맞이가 쉽고 자연스러워지겠죠.


(좌) 고급 한옥호텔의 외관, (우) 강남 어느 ‘어반 라이프스타일’ 호텔의 객실


참됨authenticité에 관한 마지막 질문들
이번 글에서 듀퐁 씨 부부의 여행기를 통해 우리만의 손님맞이 문화를 되찾을 것,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할 것, 각 지방, 지역, 가게, 식당이 고유의 것을 되찾을 것, 다른 것만이 아니라 공통된 것을 찾아서 응용할 것이 필요함을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진정성, 즉 참된 마음이 있어야겠는데요. 위에서 필요하다고 했던 것들도 그 바탕에 참된 마음이 없다면 결국 지금 보고 있는 현상들이 다시 나타날 겁니다.
마지막으로 건축가/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아래의 몇 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이번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리스 신전의 기둥에 외관은 노트르담 성당을 닮은 예식장과 고려시대 무량수전의 공포양식에 조선시대 경회루의 외관을 닮은 특급 호텔을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할까요? 거기에 담긴 진심은 무엇일까요? 리사이클링 혹은 업사이클링의 개념들로 호텔 디자인 콘셉트를 설명하면서 정작 인테리어는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만든 새 것이거나 컨테이너를 재활용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가짜 컨테이너를 만들어 가져다 뒀다면 그런 디자인은, 그런 콘셉트는 진짜인가요? 가짜인가요?
왜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호텔에서 체크아웃시 진심으로 불만, 불편사항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형식적인 질문에 정작 솔직히 답하면 당황하고 대응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손님이 남긴 음식, 손님이 떠난 방을 살펴서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서비스 산업에서 기본이 아닐까요?
저도 여러분의 솔직한 댓글을 기다리겠습니다.


류근수
빌모트 에 아쏘씨에 한국지사 대표
대구 출신으로 지난 20년간 서울, 파리 그리고 오포르투의 여러 건축회사에서 건축 관련 실무경험을 쌓았다. 2009년부터 파리 소재 빌모트사에서 근무하며 니스 축구장 복합 개발, 오를리 CBD 개발, 튀니지 리조트 호텔 등의 도시/건축사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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