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근의 Kitchen Tools] 12월에 먹는 유명 디저트(마지막 이야기)

2021.12.07 09:00:46

 

디저트는 원래 프랑스어 디저비흐(Desservir)에서 유래된 용어로 ‘치운다’, ‘정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디저트는 식탁을 일단 깨끗이 한 다음에 제공된다. 디저트는 식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리와 감미(Sweet), 풍미(Savour), 과일(Fruit)의 3요소가 포함된 것이다.

- 최수근·최효근 공저, <디저트 이론과 실제>(2000년) 中

 

12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디저트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아닐까 싶다. 빵과는 달리 그리스 로마시대 축제 음식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축제는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경배하는 페스티벌이었고 이때 신에게 바치는 제물, 즉 제사음식 중 하나였다. 로마의 신들 중 달의 여신이자 아이의 수호신인 다이애나도 포함돼 있었기에 생일 케이크의 기원도 여기서 찾는다. 크리스마스는 서기 336년 교황 율리우스 1세(제35대 교황, 재위: 337년 2월 6일~352년 4월 12일)가 예수탄생일로 정해 선포하면서 12월 25일은 공식적인 축일(holiday)이 됐다. 즉, 크리스마스 케이크 풍속은 14세기 이후에 널리 퍼진 것으로 본다.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모습은 각 나라마다 다양한데 프랑스는 나무장작 모양인 부시 드 노엘, 독일은 눈 덮인 빵 슈톨렌, 미국이나 그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생크림 케이크를 많이 볼 수 있다. 지금부터 크리스마스의 대표적인 디저트들에 대해 살펴보자.

 

노엘 케이크(부시 드 노엘, Bushe de Noel)

 

크리스마스를 프랑스에서는 노엘(Noel)이라고 한다. 라틴어 탄신일(Natalis)에서 유래됐다. 프랑스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나무토막 케이크를 먹는데 두 가지 전설이 있다. 하나는 전년에 때다 남은 땔감을 모두 태워 새해의 액땜을 한다는 것과 또 하는 가난한 애인이 나무 땔감을 주면서 난로의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나무토막 케이크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케이크는 스펀지를 구워서 둥글게 만 다음 겉에 데코레이션을 초콜릿 섞은 버터크림으로 마치 장작을 쌓아 놓은 듯하게 놓는다. 주위에 버섯과 넝쿨로 예쁘게 장식해서 판매하고 있다.

 

 

프랑스 셰프에게 장식의 의미를 물어보니 마른나무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라는 상징이라고 했다. 요즘은 케이크를 아무 때나 사서 먹지만 과거에는 1년에 1번, 12월 크리스마스 때와 생일에만 사서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는 설탕이 귀해 단 맛을 선호하던 때다. 생크림은 더더욱 없어서 버터크림을 케이크 위에 바르고 예쁜 체리로 장식한 케이크는 어린이들이 아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일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호텔에서도 크리스마스 때 케이크를 하루에 1000개씩 만들어 판매한 적이 있다. 1달 전부터 케이크 시트를 틀에 구워서 냉동실에 얼린다. 얼린 것을 해동시킨 후 버터크림을 발라서 케이크를 만들었다. 과거에는 케이크 틀이 모두 원형이었다. 1호, 2호, 3호 등으로 구분했다. 요즘은 삼각형, 사각형 등 다양한 모양의 케이크가 만들어지고 케이크 만드는 기술도 늘어서 간단하다. 아이싱을 할 때 수월하도록 원형 틀이 돌아가기도 하고 스펀지 케이크를 반으로 가르는 것도 기계를 사용해 자동으로 자른다. 케이크의 장식도 과일을 주로 쓰지만 과거에는 체리 통조림과 인공 딸기잼이 인기가 있었을 때도 있었다.

 

구겔호프(Gugelhupf, Kouglof)

 

유럽인들은 우리와 조금 다르게 구겔호프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 꼭 나온다. 수플레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디저트로 이것의 원산지가 프랑스 알자스인 줄 알지만 사실은 독일이다. (Gugel)은 독일어로 ‘성직모’ 즉 성직자들이 쓰는 모자다. 호프(Hopf)는 맥주 만들 때 쓰는 호프를 뜻한다. 그래서 구겔호프는 호프를 이용해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도 볼 수 있다.

 

구겔호프는 17~18세기 버터가 보급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원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러 갈때 이들을 재워 준 토기장이에게 감사의 답례로 선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 먹는 구겔호프는 오스트리아의 공주로 프랑스에 시집온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가 좋아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즉 오스트리아 전통 후식인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고향에서 인기가 있었는데 시집 올 때 데려온 제과사들에 의해서 전해졌다는 이야기다. 이후 구겔호프는 프랑스 천재 제과사 카렘이 발전시키고, 후대에 전수됐다고 한다. 요즘은 10여 개 이름으로 불리면서 제과사들이 선호하는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구겔호프 용기를 처음에 쇠로 만들었다. 궁궐에서는 구리로 만들어서 사용했다는 기록이 많다. 귀족들은 구리를, 일반인들은 쇠로 만든 틀을 사용했는데 유럽에서는 법랑으로 만든 제품도 있다. 크기는 대, 중, 소로 나뉘며 다양하다. 우리나라에도 호텔을 중심으로 만들었는데 주로 유럽의 제과사들이 셰프로 와서 보급했다. 구겔호프를 살펴보면 중앙 부분이 솟아 올라 있고, 측면과 윗면 전체에 울퉁불퉁한 모양으로 복잡하다. 깊이도 있는 터라 종이를 사용하기에도 어려워 부드럽게 만든 버터를 붓으로 바른 다음 케이크 크럼을 덧바른다. 케이크 크럼의 역할은 다 구워진 케이크를 쉽게 빼고, 질감과 색을 좋게 하기 위해서다. 아침 식사나 디저트로, 또 짠맛이 나는 것은 술 안주로도 즐길 수 있다.

 

프랑스 알자스의 리보빌레에서는 6월 초 구겔호프 축제가 열린다. 옛날부터 전해오던 제법으로 구운 구겔호프가 대회장에 진열되면, 마을 사람들은 알자스 와인과 함께 각각의 구겔호프를 맛볼 수 있다. 이날의 주인공은 거대한 구겔호프인데 제례 때 신위를 모시는 가마 같은 것 위에 올려서 마을의 번화가를 행진한다. 또 질그릇(陶器)으로 만든 구겔호프 틀에는 여러 색깔의 꽃모양이 그려져 있어 아름답다. 우리 박물관에서도 소장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했던 미국 대사관 클럽에서도 구겔호프를 구워서 판매하는 것을 97년에 본 기억이 난다. 최근의 구겔호프는 브리오슈 반죽 시 건포도를 넣고 왕관 모양으로 된 특유의 틀에 구워 낸 후 가루 설탕을 뿌려서 만들기도 한다.

구겔호프는 맥주 효모로 생지를 발효시켜서 만든 제품이다. 따라서 빵으로 보기에 버터 양이 많이 들어가 케이크로 보는 셰프들이 많다. 브리오슈나 사바랭 등도 모두 발효 과자로 분류되고 있다.

 

그 밖의 디저트들

 

세계 각국의 크리스마스 디저트들을 살펴보면 우선 손으로 반죽해 만든 투박한 모양의 타원형으로 생겼으며 중세의 수도사들이 걸쳤던 망토 위에 눈이 쌓인 모습, 혹은 아기 예수를 형상화했다고 전해지는 독일의 슈톨렌(독일어: Stollen)이 있다.

 

 

영국에는 16세기 중반부터 크리스마스 대표요리가 된 민스파이가 디너 테이블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 크리스마스부터 12일 동안 매일 민스파이를 먹으면 새해 행운이 온다고 한다. 이 파이는 영국의 십자군이 중동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디저트로 알려져 있다. 또한 산타클로스가 좋아하는 요리로 알려져서 영국의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클로스를 위해 굴뚝과 연결된 벽난로 근처에 민스파이를 한 접시 두고 잠들었다. 이때 민스파이 옆에는 당근을 나란히 놓았는데 이는 산타클로스 썰매를 끄는 사슴의 몫이었다고 한다.

 

 

이외에 미국인에 의해 빠르게 전파된 크리스마스 푸딩(Christmas Pudding),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국민 디저트 취급을 받는 디저트 파블로바(Pavlova)도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디저트다.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와 관련해서는 덴마크를 빼놓을 수 없다. 결핵환자들의 치료를 돕기 위해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씰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며, 매년 여름이 되면 세계 각국의 산타들이 모이는 ‘세계 산타클로스 총회’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덴마크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전통적으로 사과조각이나 사과소스를 넣고 디저트를 구웠는데 이것이 에블레스키베(덴마크어: æbleskiver)다.

 

에블레스키베는 ‘사과조각’을 의미하지만 오늘날에는 사과를 넣지 않고 잼이나 시럽 등을 토핑해서 먹는다.

 

[최수근의 Kitchen Tool]의 마지막 기고를 마쳤다. 1년 동안 원고 자료 수집과 수정을 도와준 배정민 학예사와 이동빈 연구원, 그리고 그동안 본 칼럼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