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한 가지를 놓치기 마련이다. 둘 다 눈에 보이면 좋으련만, 너무 여기저기서 밀레니얼을 외치고 있어 우리 사회의 중심, 시니어를 잊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경력이 단절된 은퇴자와 경단녀의 일자리지원정책이 활발해지며 ‘시니어’에 대한 정의가 40대에서 60, 70대까지 넓은 범위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이번 칼럼과 3월 호부터 연재를 시작한 Senior HR Issue에서 시니어는 은퇴를 앞둔 40~50대 베테랑 시니어 지배인으로 한정해 일컫고자 한다. 현재 호텔에서 시니어 지배인들의 위치는 어디쯤에 있을까?
한 호텔에서만 36년, 그리고 은퇴 후 다시 스카우트. 총 44년의 경력. ‘전설의 수문장’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콘래드 서울의 권문현 지배인은 지나온 세월을 덤덤히 이야기했지만 그의 44년이란 시간은 결코 덤덤하지 않았다. 유튜브에 게재된 권 지배인의 이야기는 23만 뷰를 돌파, 많은 이들이 그의 44년 도어맨 외길인생을 존경했고 오래도록 그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렇게 그런 그를 일부러 찾아오는 고객들로 권 지배인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본인만의 럭셔리를 만들었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다. 일의 차례를 따라가는 과정은 그 업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지만 ‘빨리빨리’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권 지배인 이후 눈에 보이기 시작한 시니어 지배인들의 지금까지 행보를 지켜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오랜 경력을 지켜주고자 하는 호텔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호텔들은 너도나도 빠른 성장에 집중하느라 주위 호텔들이 민첩하고 트렌디한 서비스를 쫓고 있을 때 지배인들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터를 마련해줬고, 그 과정을 통해 시니어 지배인들은 스스로 닦아온 터를 차근차근 걸어왔다.
서비스 차별화에 갈급함을 느끼면서 역설적이게도 인건비를 줄이고자 AI와 키오스크로 인력을 대신하고 있다. 직원이 하기에 단순하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을 기계로 대체함으로써 고객 서비스에 집중하겠다고 이야기 하지만, 결국 AI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데 이용된다. 그러나 1977년 입사한 조선호텔의 도어맨은 로비로 들어오는 차 번호 350개를 외우고, 아침마다 조간신문 인사동정란을 확인해 앞으로 방문할지 모를 주요 VIP 얼굴을 미리 익혀뒀다. 단순하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을 그땐 그렇게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싶었던 비효율이 이제 그들만의 대체 불가능한 서비스로 때를 맞이했다.
인적 서비스가 주를 이루는 호텔에서 인건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직까지도 메인 셰프가 되기 위해 주방에서 설거지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설거지가 귀찮은 일이라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주방 분위기 속의 눈치를 기르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고도 비효율적인 일이야 말로 고객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지배인들이 가장 먼저 밟아야 하는 첫 스텝이자 서비스의 근간이다. 뿌리가 잘 내리기 위해서는 비옥한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 오래된 것을 지킨다는 의미는 계속해서 비옥한 토양을 다진다는 것. 럭셔리를 표방하지만 지금껏 럭셔리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동안 직원들이 밟고 있었던 땅이 어떤 토양이었는지를 생각해보자. 서비스의 ‘정수’를 지향하는 호텔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