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Beverage Issue] 바람 잘 날 없는 주류업계_ 리베이트 쌍벌제로 거래질서 확립하나 -①에 이어서..
업계 입장 반영하지 않은 국세청 고시,
잠정적 연기에 들어가
뒷돈과 비리, 탈세와 연관돼 있는 단어 ‘리베이트’. 특히 주류 리베이트의 경우 국세청이 벼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사회에서 당장 근절돼야 할 관습이라고 여겨지지만, 7월 1일부터 전격 시행을 하겠다던 개정안은 기약 없이 연기됐다. 업계의 관행과 주류업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졸속행정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서는 제조업체와 도매업소에서 받아온 장려금, 대여금을 창업 및 운영의 자금으로 써온 프랜차이즈와 외식 자영업자의 반발이 매우 거셌다. 특히 전국 주류 도매업소에서 제품을 공급받고 있는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의 입장표명을 통해 이번 개정안이 주류 가격을 인상시켜 소비자들의 피해를 가중시키고 제2의 단통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국세청은 지난 6월 28일 개정안 시행 연기를 발표, 7월 9일에 제조 및 도소매 단체 대표자들을 한데 모아 회의를 열었다. 주된 내용은 주류 리베이트 고시 개정안을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일부분 현실에 맞게 완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는 당초 개정안에서 금지했던 ‘장려금, 수수료, 대여금 등의 제공’과 관련해 주류회사에서 제공했던 술잔, 앞치마, 얼음통과 같은 소모품의 지원 가격을 5000원으로 제한했으나, 소모품 자체 가격이 5000원이 넘고 외식 자영업자의 영업환경을 고려해 한도를 없애는 방안, 제공이 금지되는 금품에서 대여금은 제외하거나 생맥주 케그와 같은 주류 판매에 필수적인 장비 제공은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국세청 법인납세국 소비세과 담당 사무관은 “당초 주류 거래질서 확립을 위해 ‘금품 등 수수 금지’의 현행 고시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5월 31일 개정안을 행정예고 했는데 예고 기간 중 다양한 의견이 개진돼 이를 반영, 제도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잠정적인 연기를 결정했다.”면서 “9일 회의는 그동안 수집됐던 업계 상황을 반영해 국세청에서 수정한 개정안에 대해 발표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과 소통을 위한 자리로, 당일 거론됐던 안건 중 아직까지 정확히 확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관련 부처 및 단체와의 소통을 통해 수집된 의견 등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해 수정 내용과 시행일은 추후 공지할 예정”이라고 이야기해 사실상 8월쯤이라고 예상했던 고시는 잠정적 연기된 것으로 보인다.
비정상의 정상화,
리베이트 쌍벌제는 당연한 수순
그렇다면 주류 리베이트와 관련된 찬반 의견은 어떻게 나눠질까? 먼저 쌍벌제를 환영하는 입장은 당연하게도 그동안 리베이트 제공으로 업계를 이끌어 왔던 제조업체와 도매업소들이다. 전국주류도매업중앙회의 오정석 회장은 이미 언론을 통해 “불법 주류 리베이트로 도매 유통사업이 붕괴 직전까지 몰렸는데 이러한 상황에 리베이트 쌍벌제를 도입하는 것은 국세청이 한 일 중 가장 혁신적인 일”이라며 “막대한 리베이트 지원에 따른 무자료 판매, 허위 세금계산서를 사용한 비자금 조성, 탈세 등으로 위기에 처한 주류 도매산업을 정상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바 있다.
이들의 입장은 주류대출과 관련해 자체적으로 대출금을 지원할 수 있는 도매업소도 극히 드물뿐더러, 제조업체에서도 상위 10%의 신용이 확실한 일부 업소에만 리베이트를 제공하기 때문에 나머지 영세한 도매업소들이 살아남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업계 조사에 따르면 전국 주류 도매업소는 1164개로 상위 10%는 약 120여 개뿐이다. 나머지 1044개 도매업소들은 외식 자영업자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지 못해 거래처를 찾기 힘들뿐 아니라 일부 제조업체와 도매업소의 독과점으로 소비자의 제품 선택권도 침해하게 된다. 한 와인 도매업소 관계자는 “리베이트가 없는 상황에서는 와인은 품질이 좋은 경우 호텔이나 바에 리스트업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공급업체에서 얼마나 보조해주느냐에 따라 리스트에 독점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특히 호텔의 경우에는 조직내부의 시스템 때문에 리베이트에 대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본다. 와인을 평가할 수 있는 이들도 한정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보니 금액적인 부분이 영향을 미치는 듯 보인다.”며 “결국 소비자들만 한정된 종류의 와인을 접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여기에 애초에 업계의 과당경쟁으로 영세한 자영업자들을 꾀했다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결국 반대하는 입장은 리베이트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업주들이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일부 대규모 업체들이 영세상인들을 리베이트의 함정 속으로 빠트려 상인들의 생계도, 주류 업계의 질서와 주류 소비문화도 무너트린 형국”이라고 전했다.
시장논리의 부정,
리베이트는 규모의 경제에 따른 인센티브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장의 논리를 무시한 처사라는 목소리도 크다. 주류 공급업자에게 1000만 원 어치 매출을 가져다주는 매장과 100만 원 어치의 매출을 가져다주는 매장에 대한 대우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요가 많을수록 공급가가 내려가는 것은 규모의 경제 논리에서 당연한 이야기다. 주류대출의 경우에도 금전적인 보상이 아닌 엄연히 갚아야 하는 대출이기 때문에 이익을 추구하는 형태의 리베이트라고는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 외식 자영업자는 “리베이트는 대금의 지급수령 후 별도로 이뤄지는 상황으로 단골거래처와 거래가 일정 금액을 넘었을 때 혹은 특별 판촉활동을 했을 경우 이뤄지는 것”이라며 “주류거래질서에 의해서도 결국 소비자가 선택하느냐, 선택하지 않느냐에 따라 살아남고 못 남고의 시장경제원칙을 따르고 있다. 이런 자본주의에서 어느 정도의 리베이트는 윤활제”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비정상적인 가격변경을 예방하기 위해 ‘동일시점에 동일지위(도매지위와 소매지위로 나뉨) 거래상대방에게는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하도록 하는 조항도 시장의 논리에 어긋난다는 반응이다. 물론 지난 회의를 통해 이를 직전년도 거래금액이 50억 원이 넘는 업체들에 한하지만 소매지위에 포함된 소매점, 호텔, 레스토랑, 편의점 등 성격이 다양한 채널들의 가격을 동결한다는 것은 주류시장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로 보인다. 또한 도매지위에 판매되는 금액보다 소매지위 금액이 반드시 법적으로 높아야 한다는 규제도 시장의 다양성을 제한하는데 한 몫 할 것으로 보인다.
나라셀라의 신성호 이사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도매상의 시장진입이 동등한 입장에서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수입업체가 직접적으로 외식 자영업자와 거래했던 통로가 줄어들어 유통되는 주류, 특히 와인의 종류가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며 덧붙여 “보통 도매업소는 대중적인 와인을 구입하길 원해 유명하진 않지만 소개하고 싶은 비주류 와인들은 직접 레스토랑에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매지위에 판매하는 금액이 도매지위보다 비싸다고 한다면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저렴한 도매업소의 와인만을 선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일부 외식업을 제외하고는 천편일률적인 와인을 선보이게 되는 격”이라고 귀띔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만 터지나
정말 엄한데 불똥이 튄 것일까? 어지러운 주류 유통의 질서를 다잡겠다는 의도는 좋았으나 불을 지핀 고급 클럽, 바, 하드리큐르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 부족해 애먼 영세 자영업자와 도매업소만 허우적대고 있다.
애초에 리베이트 금액이 억 단위를 오가는 하드 리큐르시장에 대해서는 RFID(국세청이 무자료주류 및 가짜양주 등 주류 불법거래를 차단하고 주류 판매업소의 숨은 세원 양성화를 위해 2010년 11월부터 시행해온 IT기술. RFID 태그를 부착하면 주류유통정보시스템을 통해 주류 유통자료와 대금 결제자료 등이 실시간 분석이 가능하다.) 태그 의무화를 실시하면서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노력이 시도됐지만 정작 고급 클럽에서는 RFID가 없는 샴페인을 주력으로 팔고 있어 이마저도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와인은 수입가격이 워낙 노출돼 있으니 가격을 크게 부풀려 팔 수 없는 주류고, 일반 소규모 외식 업장에서 파는 위스키들은 소비가 위축돼 있는 상황이라 크게 영향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클럽이나 룸살롱 같은 곳들에서는 수입업체, 제조업체와 독점계약을 하고 인테리어 비용의 70~80%, 억 단위의 대출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소주, 맥주, 와인장사는 리베이트보다는 서로 살기위해 상부상조한다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종, 업장에 따른 입장차이도 고려해야
앞서 주류에서 크게 분류되는 리베이트를 두 가지로 나눠봤지만 좀 더 세부적으로는 ‘에누리’, ‘할인’, ‘외상’, ‘수수료’, ‘대여금’, ‘장려금’, ‘매출금경감’, ‘시음주’ 등 다양한 형태의 관행들이 존재해왔다. 주종의 특성, 시장 현황, 업장마다 적용되는 관행들이 조금씩 달랐는데 국세청의 고시는 이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은 채 모든 주류와 업장에 동일하게 적용하려고 했던 점이 이번 고시가 원활히 시행되지 못했던 이유로 보인다.
나라셀라의 신성호 이사는 “각각의 플레이어마다 입장이 다르다. 와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리베이트에 대한 반응이 민감하지 않은 편이다. 또한 와인 수입사의 경우에는 메이저 수입사와 마이너 수입사가 명확히 구분돼 있고 마이너 수입사는 연간 50억 이상의 수익이 나지 않는 곳들이 태반이라 해당 고시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와인이라는 주종의 특성상 품목이 다른 주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해당 품목마다 도매와 소매지위 가격을 책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당분간은 혼란이 야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카비스트 이민우 대표는 “서로 다른 성격의 것들을 같은 테두리 안에 넣다보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원가 이하 판매 금지는 이미 선진국에서는 법제화 돼 있어 우리나라가 늦은 감이 없잖아 있다. 반면 가격을 일률적으로 통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면이 많은 것 같다. 리베이트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닌 전 세계 주류시장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전체를 하나로 이야기하기엔 너무 어렵기에 사안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충분한 업계와의 커뮤니케이션 필요해
한 달이라는 시간은 수십 년간의 관행을 뒤엎기에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었다. 리베이트 쌍벌제의 선례였던 의료업계 리베이트의 경우 유예기간을 1년 둔 데 비하면 너무 급했던 것은 사실이다. 국세청의 고시는 갑작스런 통보였고, 업계에서 받아들이는 리베이트의 개념과 국세청에서 규정하는 리베이트 개념조차도 통일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국세청에서는 금품을 받는 행위에 대해 처벌한다고 하지만 외식 자영업자들은 여태껏 ‘금품’이랄 것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코웃음을 치는 형국이니 말이다. 개정안의 내용도 지원을 금지하고 있는 품목에 대한 예외 규정이 중구난방이라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규제받는지 업계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리베이트 쌍벌제’가 언급되고 그동안 묻혀있었던 문제들이 수면위로 올라와 앞으로 주류업계에서는 언젠가 시행될 리베이트에 대해 조금씩 대비해 나갈 것이다. 업계에서도 쌍벌제에 대한 필요성은 느끼지만 방법에 대한 부분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 결국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의 문제다. 일부 업체들의 사례와 특정 시점에 국한돼 처리할 사안이 아닌 듯 보인다. 국세청과 주류업계가 원하는 건전한 주류 유통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피해사례 조사나 업계 종사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이해로 방향을 맞춰나가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