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플레이 마케팅은 브랜드의 화려한 마케팅에 대한 반대급부로 일어났다. 이 마케팅 기법에서는 로고를 축소하거나 브랜드를 가리는 등 겉치레를 빼고 실용성을 강조하고, 때론 솔직하게 브랜드의 결점을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브랜드를 없애다니, 마치 마케팅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인 것만 같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러한 다운플레이 마케팅은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의 변화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호스피탈리티 업계에서 중저가 시장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형 호텔에서 적용할만한 다운플레이 마케팅을 소개한다.
가성비 소비트렌드로 시작된 다운플레이 마케팅
우리는 지금 마케팅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스마트 폰을 통해 정보를 검색하려고 해도 이게 광고인지, 아니면 정말 내가 필요한 정보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디지털의 발달로 전투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기업, 그리고 그 안에서 ‘진짜’ 필요한 것을 찾아내는 소비자들이 대결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와중에, ‘진정성’을 외치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진정성 마케팅>에서는 기존의 마케팅 편법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자고 요구한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진정성 있는 마케팅이 가능하려면 브랜드나 호텔에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의 인격적인 특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인간적인 덕목 중에 겸손함과 솔직함을 적용한 것이 바로 ‘다운플레이 마케팅’이다. ‘Downplay’의 사전적 정의는 ‘대단치 않게 생각하다, 경시하다, 줄이다’ 등의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다운플레이 마케팅은 구체적으로 로고를 줄이거나, 상품의 결점을 드러내거나 심지어 브랜드 자체를 없애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스텐퍼드 대학의 <절대 가치>라는 책에 따르면, 브랜드가 높은 품질을 상징한다는 인식도 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모두의 손 안에 세상의 정보를 쥘 수 있는 ‘완전 정보’의 시대에는 브랜드의 후광보다 제품의 실질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렇듯 가성비를 중시하는 시대에, 화려한 마케팅을 걷어내고 품질에 집중한 다운플레이 마케팅이 각광받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로고를 줄이다
그렇다면 다운플레이 마케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고 있을까? 대표적으로 로고의 크기를 줄이는 방식을 들 수가 있다. 예전에 폴로, 라코스테처럼 브랜드의 로고를 심볼 마크처럼 크게 내보이는 것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러한 방식은 과시 소비의 대표적인 전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와 Z 세대는 가장 똑똑한 소비자로 여겨지는데, 이들은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까지 추구하고 있다. 경제적 상황이 맞물리면서,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 로고로 ‘잘난 척’하는 수법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에는 많은 브랜드에서 로고의 크기를 줄이거나 잘 안보이는 곳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보테가 베네타처럼 아예 로고가 없는 명품이 인기를 끌고 있고, 얼마전에 알렉산더 왕에서 공개한 신제품 ‘헤일로 백’은 전면에 알렉산더 왕의 로고 a만 남겨두기도 했다. 이렇듯 로고를 줄이는 것은 반대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에 집중하게 만드는데,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김상훈 교수(이하 김 교수)는 “럭셔리 브랜드의 소비층이 넓어지니까 자신만의 취향을 과시하고 싶은 상류층 소비자들이 오히려 비과시 소비를 선택한다는 설명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마케팅 경향이 나타나게 된 이유는 SNS의 발달이 가장 큰 이유다. 굳이 브랜드를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소비자들은 제품의 미묘한 스타일과 장점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드를 없애다
로고를 줄이는 것도 모자라 브랜드를 없애기까지 하는 회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브랜드 리스(Brandless)는 ‘생필품의 민주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나타난 브랜드다. 가격 거품을 ‘브랜드 텍스’라고 칭하며, 모든 상품을 3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패키지에는 ‘크리미 피넛 버터’, ‘토마토 바질 파스타’라는 품목명 정도만 적어뒀다. 국내에서는 비슷한 사례로 이마트의 ‘노브랜드’가 성과를 얻고 있다. 노브랜드의 기저귀에는 다른 브랜드처럼 캐릭터나 장식이 들어가있지 않은데, 기저귀를 이용하는 당사자인 아기들이 그런 장식성을 인지하기 못하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는 합리적인 이유 때문이다. ‘브랜드리스’의 핵심은 제품의 면면에 군더더기는 빼고, 가성비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브랜드를 없앤 마케팅 사례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역시 무인양품이다. 무인양품을 영어로 번역하면 ‘No Brand, Good Product’라는 뜻인데, 이름 자체에 브랜드 철학을 공고히 담고 있다. 사실 무인양품이 인기 있는 브랜드 파워를 얻게 된 건 어떻게 보면 굉장한 역설이기도 하다. MUJI에서는 최근 이러한 콘셉트를 그대로 반영한 무지호텔을 만들기도 했다. 현재 중국에서 무인양품 신천, 베이징을 거쳐 이번 달에는 긴자 점을 오픈했는데, 심플하고 겸손한 무인양품의 라이프스타일을 고객에게 제안하며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 이러한 브랜드리스 전략은 고객을 끌어당기지 않고 가성비를 극대화해, 부드럽게 고객을 자연스레 끌어당긴다. 거품을 뺀 브랜드의 겸손한 태도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유머러스한 솔직함으로 사로잡다
스스로 ‘세계 최악의 호텔’이라고 광고를 해, 성공한 호텔이 있다. 바로 암스테르담과 리스본에 자리한 ‘한스 브링거 버짓 호텔(Hans Brinker Budget Hotel)’이다. 한스 브링거의 솔직함과 유머러스함은 그들의 홈페이지 소개란에서부터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뻔뻔하게도 소비자들이 값을 지불한만큼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한스 브링거 호텔. 실제로 이곳에는 객실에 TV도, 화장대도 없고, 심지어 엘레베이터가 없는 것은 친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객실 문이 잠기지 않으니까 조심하라는 식으로 단점을 열거하는데도 불구하고, 유럽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도 같은 이유다. 김 교수는 “호텔이 유명해지려면 일단 이슈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 한스 브링거 같은 경우는 스스로 최악이라고 광고했기 때문에 투숙객들의 기대치가 최저였다. 그래서 방문해본 이들이 오히려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피드백을 준 것이 호텔이 좋은 결과를 내는 데 기여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 어느 상품이나 약점이 있기 마련이고,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마케터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듯 솔직하고 유머러스하다면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글로벌 브랜드의 거품을 빼다, 워커힐
워커힐은 40년 가까이 사용한 글로벌 호텔그룹 스타우드의 ‘쉐라톤’ 브랜드를 떼어내며, 디브랜딩을 선언했다. 호스피탈리티 산업에서도 형식적인 거품을 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글로벌 브랜드의 후광을 걷어낸 워커힐은 독자 브랜드를 통해 국내 호텔 사업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는데, 럭셔리 호텔 브랜드를 지향하던 워커힐에서 다락휴 캡슐호텔을 선보인 것이 국내 호텔의 대표적인 다운플레이 마케팅 사례다.
특급호텔과 모텔이 양분된 국내에서 젊은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틈새시장을 알아챈 워커힐이 캡슐호텔 인천공항 다락휴를 오픈했다. 가성비를 위해 시설 역시 선택과 집중의 연속이었다. 작은 공간에 모든 시설을 고급스럽게 갖춘 ‘콤팩트 럭셔리’를 콘셉트로 잡았다. 콤팩트 럭셔리를 지향하는 공간답게 작은 규모지만 더블베드 사이즈 침대 그리고 샤워실, 화장실이 전부 갖춰져 있는데, 젊은 여행객의 취향을 반영해 TV는 없애고, 그 대신 하만카돈 블루투스 스피커를 비치했다. 인천공항 캡슐호텔 다락휴는 현재 젊은 소비층들의 니즈를 정확히 공략하며 가동률이 90%를 상회하고 있다.
이렇듯 다운플레이 마케팅은 특히 중저가 시장에서 가성비를 추구해야하는 국내 중소형 호텔에게 적합한 마케팅 전략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다운플레이 마케팅을 적용할만한 구체적인 인사이트에 대해 <진정성 마케팅>의 저자인 서울대학교 김상훈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당신의 호텔은 어떤 사람에 빗대 표현할 수 있나?”
<진정성 마케팅> 저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김상훈 교수
본인 소개, 현재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알려달라.
현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서 마케팅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문화 예술 마케팅인데, 영화, 미술, 디자인 등의 다채로운 장르를 아우르고자 한다.
지난 3월 <진정성 마케팅>이 발간됐다.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소비 트렌드를 연구하던 와중에, 마케팅 실무에 있는 이들의 고충을 듣게 됐다. 진정성이 요즘에 트렌드라고 자주 언급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정성’을 실현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책을 본격적으로 집필하기 시작할 땐 제주도에 내려가서 한 달 동안 혼자 살기를 시작했다. 진정성 마케팅이란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핵심적인 9개의 파트로 정리, 양질의 사례들을 선별해 소개했다. 이 책은 많은 마케팅 실무자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는데, 요즘 마케팅이 테크니컬하게 변한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어서다. 매출이 잠깐 반짝 나타나게 되는 편법적인 마케팅은 ‘마케팅 전체는 사기’라는 부정적인 인식만 심어줄 것이다. 마케팅 실무진들이 <진정성 마케팅>을 통해 장기적으로 브랜드를 키워내기를 바란다.
책의 PART 3에는 겸손함과 솔직함을 덕목으로 삼는 다운플레이 마케팅에 대해 소개했다. 실제로 이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한국에서 확실히 다운플레이 마케팅이 잘 통하고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첫째로, 국내 소비자들이 세계적인 기준에서도 굉장히 스마트한 소비자 집단이기 때문이다. 다운플레이 마케팅은 마케팅의 거품을 빼고, 제품의 품질과 핵심만 남겨뒀기 때문에 자연스레 똑똑한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게 된다. 거기에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SNS의 상업적 신뢰도가 높은 편에 속하는데, SNS를 통해 이러한 다운플레이 마케팅을 활용한 서비스나 제품이 바이럴로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운플레이 마케팅은 어떤 호텔에 적용한다면 효과적일까?
모든 호텔이 다운플레이 마케팅을 활용할 수는 없다. 특히 럭셔리 호텔은 어떤 면에서 과시 소비를 촉구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특급 호텔에서 다운플레이 마케팅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반면 중저가 전략을 구사하는 중소형 호텔이라면 주목할 만한 마케팅 기법이라고 본다. ‘우리는 럭셔리 호텔만큼은 못해드리지만, 대신에 이런 것을 할 수 있어요’라고 솔직하게 어필하는 방식을 활용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집중해야할 플랫폼은 인스타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품질이나 서비스의 질을 속일 수 없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그걸 역이용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하길 권한다.
중소형 호텔에는 마케팅 전문 인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소형 호텔이 다운플레이 마케팅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중소형 호텔에서는 한층 섬세한 마케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가격에서 최고가와 최저가를 취급하는 하이 앤 로우 마케팅은 비교적 수월한데, 중간 가격을 다루는 ‘미들브라우(Middlebrow)마케팅’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이때, 중소형 호텔에서는 ‘스위트 스폿’을 찾아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테니스 라켓에서 공이 가장 멀리 날아가게 하는 부분이 스위트 스폿(Sweet Spot)’인데, 경제학에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최적의 가격대를 일컫는다. 서비스 품질과 가격에 대한 정확한 선을 찾는 작업은, 고객 접점에서 높은 통찰력이 요구한다. 예를 들면 라스베이거스에서 숱한 럭셔리 호텔을 제치고 3~4성급 트로피카나 호텔이 수익성이 가장 높았던 것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겠다.
호텔업계의 마케팅 실무진이 레퍼런스로 삼을만한 다운플레이 마케팅 사례를 소개한다면?
안경 브랜드 와비파커는 중저가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혁신기업 1등을 거머쥐었다. 로우로우라는 패션 브랜드는 ‘땅바닥에 고민 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가방’이라고 광고하는데, 매우 현명한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캐치프레이즈이기 때문이다. 다운플레이 마케팅을 제대로 선보인 중소형 호텔이라면, ‘시티즌 M’을 소개하고 싶은데, 실제로 출장을 갈 때 매번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호텔 로비에 들어선 순간 로비는 아름답게 정렬 돼있고, 객실은 좁은 공간에 딱 1인 여행객에게 필요한 제품 선택해 비치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호텔에서도 탁월한 ‘밸류 엔지니어링’을 시행하기를 바란다.
전반적으로 호스피탈리티 업계는 보수적인 경향이 짙다. 그렇기 때문에 호텔에서 쉽사리 약점을 드러내는 솔직한 마케팅을 시도하기 어려워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호텔업계에서 다운플레이 마케팅이 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그리고 호스피탈리티 업계가 조금 더 과감하고 유연하게 변해도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는 바로 소비자가 변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제 호텔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해당 호텔에 대한 것을 모두 알고 투숙하러 찾아오는 이들이다. 호텔뿐만 아니라 경쟁이 과열된 마켓에서는 고객에게 브랜드 정체성을 명확히 심어줘야 한다. 그랬을 때 먼저 버려야 하는 것은 “우린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리는 보수적인 마인드다. <마케팅이다>라는 책에는 ‘나는 고객을 거절한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과감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호텔도 고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 호텔의 정체성을 파악한 이후에, 호텔을 찾는 고객들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