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_ 노혜영 기자의 세상보기] 폭염에 웃는 호텔업계

2018.09.10 09:20:36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리면서 호텔업계가 때 아닌 호황을 맞았다. 휴가철이면 해외로 떠나거나 시원한 계곡, 바다 등 피서지를 찾아 텅 빈 도심 호텔의 한적했던 모습은 지워진지 오래다. 되려 호캉스를 위해 몰려오는 고객들로 호텔의 불황이 홈런을 맞은 것처럼 보인다. 요즘처럼 폭염이 지칠 줄 모르고 아스팔트를 달구다보니 몇 걸음만 떼어도 숨이 턱 막힐 만큼 불쾌지수가 정점을 찍고도 남아 문 밖을 나서기 꺼려진다. 미세먼지보다 무섭다는 자외선을 피해 실외활동을 자제하고 여름휴가의 상징이던 해변조차 달갑지 않다. 그렇다보니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집보다 시원한 호텔을 찾아 연일 인산인해를 이룬다.
 
호텔업계는 지난해 동기대비 매출이 많게는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웬만한 호텔에서는 만실이 속출할 정도로 고객 맞이에 바쁘다. 열대야를 겨냥한 숙면패키지, 스파패키지, 풀패키지, 키즈패키지도 인기다. 최다객실을 보유한 롯데호텔서울은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전 객실이 80% 이상 예약 완료됐고, 지난해 오픈한 시그니엘서울도 쇼핑, 맛집, 놀이시설 등 주변 인프라로 몰려든 가족 단위의 고객들로 채워지며 순항중이다. 이러한 여파로 시그니엘서울의 81층에 위치한 미쉐린 3스타 셰프 야닉 알레노의 파인 다이닝 ‘스테이’의 매출도 20%나 상승하며 선전하고 있다. 특히 주말이면 호캉스를 즐기러 온 손님들로 진풍경이 펼쳐진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는 현장 예약 손님까지 겹치면서 로비가 긴 줄로 북적일 뿐만 아니라 뜨거운 볕을 피해 실내 수영장을 찾는 고객들로 탈의실 락커가 꽉 찰 정도다. 휴가철이 절정에 다다르면서 왠만한 호텔의 주말 예약이 매진된 지 오래인데다 더위가 앞으로도 길게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호텔의 각종 프로모션을 꿰고 있는 고객들도 많다.


이쯤되니 장기 불황의 늪을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쏟던 호텔업계에서는 “폭염이 살렸다.”라는 말이 돌 정도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비단 폭염 때문일까? 호텔업계가 과열경쟁에서 벗어나 고객층의 변화를 대비하고 차곡차곡 내공을 쌓았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비즈니스 고객으로 붐비던 호텔이 가족, 친구, 연인 등 퍼스널 고객으로 타깃 대상을 확대해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열 곳이 넘는 식음업장에서 대대적인 리뉴얼을 선보였으며 프라이빗 고객을 위한 객실 정비에 나섰다. 또한 올해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키즈 전용 라운지를 오픈하면서 가족형 호텔로 거듭나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게 해석된다.


호텔산업은 타 분야에 비해 국내외 정치, 경제, 외교 등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호텔 매물이 가장 먼저 쏟아져 나왔고 사스, 메르스 감염병 사태에 이어 사드 배치로 인한 긴장이 조성되며 호텔업계의 경기가 나아질 기미 없이 장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 여름 숨이 막힐 듯한 더위가 오히려 호텔업계의 숨통을 트였으니, 어디 이만한 단비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