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아 Assistant Manager는 영국 런던의 Restaurant Gordon Ramsay에서의 경력을 시작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Quince를 거쳐 서울의 L'amant Secret에서 5년간 근무했다. 현재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 Sollip(솔잎)에서 Assistant manager로 근무 중이다.
솔잎은 박웅철 셰프, 기보미 패스트리 셰프 부부가 운영하는 런던의 레스토랑이다. 프렌치를 기반으로 한식 터치를 자연스럽게 가미한 요리를 선뵈고 있으며, <미쉐린가이드 - 영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미쉐린 스타를 받았다.
해외에서는 페어링이 얼마나 일상화돼 있는지 궁금하다. 철학이나 원칙적인 측면에서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을까?
유럽에서는 음식과 어울리는 주류를 함께 즐기는 것을 당연시하다 보니 많은 손님들이 대부분 주류 페어링을 선택한다. 단지 먹고 마시기에서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주류를 즐기는 기회의 장으로 삼고, 접해 보지 못한 주류에 대한 탐구 및 소개하는 직원과의 교류까지 하나의 부분으로 여기는 문화다. 주류 전문가에 대한 존중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고 소비자 층이 두텁다 보니, 많은 수의 소믈리에들이 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각자의 다양한 개성과 철학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나 런던은 새로운 주류에 대한 호기심이 높아, 와인뿐 아니라 다양한 주류를 페어링에 구성하는 곳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페어링 문화를 업계에서는 어떻게 활용하는지 궁금하다.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레스토랑의 철학이나 추구하는 방향성을 보여주는 형태다. 런던은 전 세계인들이 모여 사는 도시다 보니 다양한 국적의 셰프들이 있고, 이들이 페어링을 통해 본인의 음식에 맞는 모국의 주류를 자연스럽게 소개함으로써 국가적 문화 홍보대사의 역할을 한다. 한편, 최근에는 젊은 층이 특히나 관심을 갖는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생산되는 주류로만 페어링을 이루는 등 본인이 추구하는 레스토랑 철학을 녹여내기도 한다. 단지 음식과 어울리는 주류를 제공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소비층과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에 대해 함께 열정을 나누는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들의 주류 소비가 줄어드는 추세다. 술이 아닌 음료와의 페어링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한다면?
실제로 최근에는 젊은 층의 관심이 주류보다는 차나 개성있는 소프트 드링크로 더 기우는 것을 체감한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Sollip에서는 그에 맞춰 ‘Non-Alcohol Drink’와 ‘Soft Drink Pairing’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각 코스에 어우러지는 음료를 직접 다 만들어 준비하고 있는데, 이 중 제일 애정하는 페어링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첫번째는 우엉과 조청을 이용해 만드는 차(Tea)다. 무와 토스트한 보리를 타르트 타탱(Tart Tartin)의 형태로 풀어내 준비하는 디쉬로, 우엉과 조청이 주는 대지내음이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느낌의 페어링이다. 파인애플을 설탕과 함께 숙성시켜 만드는 멕시코 전통 음료, 파인애플 테파체(Pineapple Tepache)는 최근 손님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은 음료다. 재료는 간단하지만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고 자연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보니 더욱 마음이 가는 음료다. 적양배추와 패션프룻을 함께 곁들어 내는 아귀 요리에 함께 선뵈고 있다.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전통주를 포함한 한국 술은 페어링에 얼마나 활용되고 있나?
약 10년 만에 런던으로 돌아왔는데, 한국문화와 음식, 주류에 대한 인지도와 열망에 아주 놀랐다. 런던 대부분의 마트에서 라면, 소주, 고추장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솔잎에서는 메뉴를 건네기도 전에 소주나 막걸리를 먼저 찾는 고객이 많아 한국 주류에 대한 큰 관심을 몸소 느낀다.
솔잎에서는 와인 페어링에 청주가 포함돼 있다. 지난 여름에는 태운 양파와 푸아그라를 이용해 색다르게 풀어낸 누룽지에 양촌 우렁이쌀 청주를 매칭했고, 가을에 들어서는 셀러리악과 녹두를 베이스로 바꿔서 선뵌 누룽지에 일엽편주를 페어링하고 있다. 아직은 소주 정도만 알려져 있어 현재는 막걸리, 청주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더불어 각기 다른 청주들의 독특한 생산방식과 역사를 함께 소개하고 있는데, 현지 반응이 아주 뜨겁다. 특히나 역사와 문학을 사랑하는 영국인들에게 농암 이현보, 퇴계 이황의 일엽편주 시에 관해 들려주면 굉장히 흥미로워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종류의 한국 전통주 및 주류가 영국에 소개되길 바라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페어링 문화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교육과 홍보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해외에서는 일반 소비자들이 페어링 문화를 어떤 방식으로 배우는지.
정해진 모듈로 배운다기 보다는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붉은 육류에는 레드 와인, 흰살 생선 요리에는 화이트 와인,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다양한 요리 관련 프로그램에도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고. 특히나 영국은 요리 관련 프로그램의 인기가 굉장히 높고 종류도 다양할 뿐더러, 미쉐린 레스토랑급의 요리를 직접 시도하는 일반 소비자 또한 굉장히 많다. 이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친구들을 초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에 대해 고민하고 학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퇴근시간에 배포되는 무료 일간지에도 요리 칼럼 섹션이 따로 존재하며, 그 요리에 어울리는 추천 와인이 실리기도 한다. 때문에 일상 속에서 음식과 어울리는 주류에 대한 페어링이 자연스럽게 숙지될 수 밖에 없다.
해외의 주류 전문가 양성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며, 향후 일을 할 때 어떻게 활용되나?
즐기는 소비층이 넓고 깊이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련 종사자가 많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되는 WSET, CMS과 더불어 칼리지(College) 형태의 학교에도 다양한 주류 관련 과정이 있어, 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하고 배울 수 있다.
다만,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격증 취득뿐 아니라 업장에서의 경험 또한 상당히 중요하다. 업장의 헤드 소믈리에 밑에서 배우며 자신만의 스타일과 고객 층을 쌓아 가는데, 응대 시 주류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수적이다 보니 그를 위한 관련 자격증 취득이 매우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특히나 런던은 주류 시장이 크고 지리적으로 가깝다 보니 와인 생산자가 주최하는 마스터클래스가 다양하게 열려, 전문적으로 접근할 기회가 더 많다.
2024년을 마무리하고, 2025년을 새롭게 시작하며 즐길 수 있는 페어링 조합 한 가지.
샴페인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새해에는 한 해의 건강과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샴페인과 한식의 조합을 추천한다. 우리 집에서는 떡국에 굴을 넣어 먹는다. 굴 떡국에 미네랄 가득한 샴페인 ‘Legrand-Latour’를 즐겨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