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선의 Hospitality Management In Japan] 일본 최초 디자인 호텔의 부활 - 호텔 일 팔라초(HOTEL IL PALAZZO)

2024.10.24 08:41:11

 

일본 최초의 디자인 호텔로 1989년 후쿠오카에 문을 열었던 호텔 일 팔라초(HOTEL IL PALAZZO)가 리뉴얼 오픈했다. ‘진심을 담은 건축’이라는 뜻의 ‘심축(心築)’을 디자인 콘셉트의 지속가능한 건물로 완성한다는 목표로 리노베이션한 결과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로 주목받았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인 호텔로의 지위를 확립했다.

 

 

지역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디자인 호텔

 

호텔 일 팔라초의 건설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1986년 가을. 당시는 일본 버블 경제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가격은 절대로 하락하지 않는다는 ’토지 신화’에 빠져 있던 때였다. 그 때, 일본의 부동산 회사 JASMAC은 후쿠오카의 우범지대로 불리던 하루요시(春吉) 지구에 호텔 개발 계획을 세웠다. 하루요시 지구는 오랜 기간 동안 환락가로 알려져 있었으며 동시에 조폭, 강도, 소매치기, 성추행 사건 등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이러한 우범지대로 알려진 하루요시 지구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등장한 것이 호텔의 건설이었다. JASMAC은 호텔 건설 계획을 갖고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인 우치다 시게루(内田繁)를 찾아갔다. 

 


우치다는 지역의 이미지를 바꾸는 호텔 개발이라는 취지에 동의했고, 디자이너와 아트 디렉터를 겸하는 조건으로 참여를 결정했다. 우치다가 생각한 것은 건축에서 소품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디자인한 호텔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건축과 인테리어 그리고 작은 소품까지 따로 노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이 하나의 디자인으로 완성되는 호텔의 건설을 꿈꿨다. 그리고 디자인 호텔을 통해 하루요시라는 지역 전체를 새로운 이미지로 변모시키고자 했다. 

 

 

건축가 알도 로시와의 협업


우치다가 꿈을 이루기 위해 제일 먼저 하루요시의 역사, 현재 상황을 고려한 호텔을 설계할 수 있는 건축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치다의 머리에 떠오른 건축가는 알도 로시(Aldo Rossi)였다. 우치다는 로시에게 설계를 의뢰했고, 로시는 우치다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로시는 1987년 3월에 하루요시를 처음 방문했고 골목골목을 걸어 다녔다. 그 후, 로시는 이탈리아로 돌아가기 전 교토에 묵으면서 니시혼간지의 절을 방문했고, 호텔의 영감을 얻었다. 로시가 생각한 것은 바로 이탈리아어로 저택을 의미하는 팔라초(Palazzo)의 콘셉트였다. 혼돈스러운 지역일수록 바깥 세계의 카오스적인 상황을 잊고 단절될 수 있는 저택과 같은 호텔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콘셉트가 정해지자 로시는 우치다와 함께 설계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바의 인테리어와 로비의 가구 및 소품 등 다양한 부분에 일본의 다른 디자이너들을 참여시켜 진행하기로 했다. 왜 일본의 다른 디자이너를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는지에 후에 우치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일본에서는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그래픽 디자인이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표현력과 퀄리티를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가구, 로고 디자인, 호텔의 광고 카피에 이르는 모든 것을 직접 디자인 해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다나카 잇코(田中一光)이 로고 디자인을 맡았고, 그 외에도 여러 디자이너들에 의한 작업으로 호텔 브로슈어, 엽서, 메뉴는 물론이고, 룸 키, 어메니티, 문구류, 심지어 숙박 약관까지 디자인해 나갔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디자인을 진행시키면서, 우치다 자신은 인테리어와 조명에 집중했다. 우치다는 좋은 공간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인테리어가 절반, 조명이 절반”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호텔 일 팔라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우치다가 유난히 집착한 요소가 있었다. 그것은 가구 디자인이었다. 우치다는 원래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표준적인 가구를 활용하는 것을 선호해 왔지만, 호텔 일 팔라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있어서는 모든 가구를 직접 디자인해야 했다. 로시가 건설하는 디자인 호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호텔만의 가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소품에 이르는 모든 것을 직접 디자인하는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그 결과, 호텔의 건축, 인테리어, 조명, 그래픽, 의상, 요리, 서비스 등 모든 부분의 디자인이 독자적인 디자인으로 구현됐다. 

 

하루요시의 자부심 ‘호텔 일 팔라초’


로시와 우치다의 협업에 의해 호텔 일 팔라초가 완성되자,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경관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호텔 건물은 강 건너편에서 보았을 때, 시선을 끄는 대칭적인 파사드 형태로 설계됐다. 그리고 파사드의 구성이 완벽하도록 층마다 녹청색의 대리석 린텔(건축물에서 입구 위에 수평으로 가로질러 놓인 석재)을 수직으로 배치했다. 동시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트라버틴 대리석은 호텔의 존재감을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입구에 있는 흰색의 로마산 트라버틴 대리석은 이탈리아를 상징하고, 수직 자재인 붉은색 이란산 트라버틴 대리석은 서양과 동양의 접점으로 고대 건축의 기억을 상징한다. 여기에 일본의 디자인이 섞이면서 이탈리아의 분위기가 도시적이고 깊이 있는 복합성을 가진 형태로 재구성됐다. 

 


로시와 우치다에 의해 완성된 호텔 일 팔라초는 오픈하자마자 ‘후쿠오카시 도시경관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후쿠오카 시민의 추천과 응모를 바탕으로 후쿠오카의 매력을 만들어내는 경관, 건축, 광고, 활동 등을 표창하는 것으로, 호텔이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얼마나 받고 있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1991년에는 ‘미국 건축가협회(AIA) 명예상’을 수상했다. 이것은 미국 이외의 건축물로서는 처음 수상을 한 사례라고 한다. 이를 통해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로 주목받았다. 그런 가운데, 또 다른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호텔 일 팔라초는 이와 같은 수상 경력을 바탕으로 후쿠오카를 넘어,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인 호텔로의 지위를 확립했다.

 

 

호텔 일 팔라초의 리디자인(Redeign) 프로젝트 ‘심축(心築)’


호텔 일 팔라초도 오픈한지 25년이 지나면서 시설의 노후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올드한 디자인 호텔로 불리던 가운데, 일본의 주식회사 이치고(Ichigo)가 2016년 호텔 일 팔라초를 인수했다. 


이치고는 호텔 리노베이션의 콘셉트로 ‘심축(心築)’을 내걸었고, 프로젝트 명칭을 ‘리디자인’으로 정했다. ‘심축’은 진심을 담은 건축이라는 뜻이다. 즉, 이치고는 리노베이션을 통해, 호텔 일 팔라초를 지속가능한 건물로서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동시에 호텔 일 팔라초가 오픈 당시 목표로 했던 지역의 변화라는 점을 계승하고자 인접 호텔인 ‘The One Five Villa Fukuoka’, 그리고 ‘The One Five Terrace Fukuoka’와의 연계를 통해 지역의 활성화를 도모했다. 보통 노후화된 호텔의 경우, 주로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의 리노베이션에 초점을 맞추지만, 호텔 일 팔라초는 건물이 가진 가치의 계승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라운지를 리노베이션함에 있어서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제공하는 식음료 콘텐츠의 개발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의 콘텐츠 기획 등에 초점을 맞췄다. 

 


한편, 2층부터 8층까지의 객실 부분 또한 디자인에 공을 들인 요소가 잘 나타난다. 총 77개의 객실에는 직선적인 형태와 둥근 모서리가 특징인 의자, 소파, 테이블 등, 개업 당시 설치된 가구를 현대적인 색상 및 감각으로 재구성해 새롭게 디자인했다. 또한 객실 전체는 차분한 느낌의 한 가지 톤으로 꾸몄고, 침대는 고급스러운 느낌의 슬럼버랜드사의 더블 쿠션 모델을 사용해 숙면을 취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완성했다. 뿐만 아니라, 숙박객의 프라이버시를 보호를 위해 객실 내부의 문을 닫으면 공용 공간의 소음이 잘 전달되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심축의 콘셉트에 맞춘 리노베이션의 과정을 거쳐 재탄생한 호텔 일 팔라초는 하루요시 지구의 브랜드를 재탄생 시킨 주역이자, 동시에 다른 호텔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여주는 존재로 자리잡았다. 

 

 

호텔 일 팔라초 프로젝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우치다는 호텔의 리디자인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우치다의 철학을 계승한 ‘우치다 디자인 연구소’의 직원들이 맡았다. 우치다는 세상을 떠나기 전 호텔에 대해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말을 남겼다. 


“매스 프로덕션의 시대 즉, 누가 만든 지도 모르는 비슷비슷한 호텔 디자인이 넘쳐나는 이 때, 호텔 일 팔라초는 단순히 호텔을 넘어 디자이너의 얼굴이 보이는 하나의 작품으로 그 가치를 유지할 것이며, 앞으로도 그 자리를 지켜 나갈 것이다.” 

 

다시 태어난 호텔 일 팔라초도 이러한 우치다 철학을 계승한 형태로 완성돼 디자인 호텔의 좋은 교본이 되고 있다. 

사진 출처_ https://ilpalazz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