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가장 ‘나’를 가장 잘 포장하는가
지금 이 지면(화면)을 덮고 주변을 둘러보기 바란다. 대부분이 인공적(人工的)일 것이다. 책상이든, 컴퓨터든, 핸드폰이든, 건물이든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것이 없다. 기껏해야 올도완 석기를 쓰던 시절이던 호모 하빌리스에서, 목탄을 사용한 호모 에렉투스를 거치며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뇌는 계속해서 커졌다. 그런데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작아지고 있다. 너무 많은 도구들이 있어 ‘기억의 외장화’가 가능해졌고 많은 정보들로부터 해방됐기 때문이다.
AI는 이제 어려운 학술과제는 물론 의사면허시험도 통과하는 수준이다. 대부분의 시험이 AI에 의해 점령당했지만, 자기소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자기소개서는 인터넷 크롤링 범위와 웹 접속으로 검색되지 않는 당신의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스펙, 에피소드, 열정이 결합된 서사를 가장 잘 포장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이다.
나쁜 자기소개서의 특징
취업·이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학력과 사회 경험, 경력일 것이다. 호텔 관련 전공은 최소한의 관심을 보여주고, 파리의 팔라스급 호텔 핵심부서 경력은 전문성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왜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까. 경력만이 자신을 소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채우는 글이, 바로 소개서다.
나쁜 자기소개서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비문 또는 오탈자는 치명적이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왜냐하면, 지원자의 대다수는 자신의 자기소개서를 첨삭 받고, 주위에서 검토받으며 맞춤법 검사까지 활용하기에 얼마 안 되는 집단에 들어가는 것은 그 자체로 불이익이다. 자기소개서를 검토하는 인사담당자가 글을 ‘잘’ 쓰고 ‘자주’ 쓰는지는 운에 달려 있으나 그들은 최소한 당신과 수준이 비슷한 경쟁자의 자기소개서를 매우 많이 본다. 비교된다.
그 다음 나쁜 자기소개서의 특징은 뻔한 소개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든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으로 시작하는 글은 이를 역이용하는 기재(機才)가 아닌 이상 지양할 필요가 있다. 본인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고사성어를 찾아 젠 체 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바로 티가 나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나열 및 설명도 필요 없다. 분량은 당신의 자산이다. 즉, 시간처럼 아껴 쓰고 돈처럼 가치 있게 써야 한다. 그런 공간에 자신의 글로벌 호텔 인턴 경험을 쓰지 않고 해당 호텔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곳인지,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업계 평가가 어떠한지 쓰는 것은 독자를 우습게 아는 것이다.
간혹 호텔업계가 나아갈 방향에 관한 의견을 묻는 자기소개서도 있는데 여기에서 바람직한 호텔업계에 관한 소신을 밝히는 것 역시 좋은 전략은 아니다. 호텔업계의 비리, 자기과시로 평가되는 모든 기술(記述)은 가능한 다듬어져야 한다. 팽창이 좋네, 긴축이 좋네 하는 순환논쟁만 불러올 뿐인 부분에 대한 기술은 분량을 깎아먹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분량은 지원자의 자산이다.
좋은 자기소개서의 요건
좋은 자기소개서는 당신의 경력 뿐 아니라 지적 능력까지 함께 드러낸다. 글에서 묻어나는 지문이 있다. 그 지문은 쓴 사람의 지성을 웅변한다. 호기심을 끌게 해 따라가게 만드는 글이 있고 처음부터 읽기 싫은데 그래도 지원자니까 책임감으로 읽어야 하는 글이 있다. 두 지원자의 경력과 관계없이 자기소개서에선 무조건 전자가 우수하다.
좋은 자기소개서에는 부정적인 내용보다는 긍정적인 내용이 많다. 어릴 때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다는 내용은 아무도 궁금하지 않고, 업무 지속가능성에 대한 물음표만 남긴다. 인사담당자들은 “너 호텔에서 힘들어도 그만두지 않을 수 있니? 그 이유가 뭐야? 경험으로 설득해 봐.”라고 말하는데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다는 이야기보단, 성실하게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차근차근 역경을 딛었다는 ‘구체적인’ 경험으로 답해야 한다.
호텔리어는 매시간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공간을 공유하며 업무하는 곳이다. 어느 직원의 고객에 대한 실수에 대해 다른 직원이 “제가 한 것 아닌데요.”라고 할 수 없다. 호텔리어는 호텔이라는 공간 안에서 브랜드를 공유하며 서비스의 총화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최종전달자기 때문이다. 적당한 동아리, 사회활동에 대한 포장이 있어야 한다. 호텔 역시 공동체 생활이다.
호텔을 옮기는 이유는 간략히 기재해도 되지만, 적당한 상찬은 필요하다. 고래도 춤추는데 면접관이라고 자신의 일터를 칭송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학사경고, 징계 관련 등 부정적인 레코드는 절대 써서는 안 된다. 만약 위와 같은 이력을 밝힐 것을 요구받으면 별도 서류로 드라이하게 밝힐 것이지 이를 굳이 자기소개서에서 밝힐 필요는 없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 자체로 코끼리가 떠오르듯, 부정적인 레코드는 좋은 인상으로 덮기 힘들다.
자기소개서란 무엇일까
본인을 표현하는 것? 호텔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는 것? 다 좋지만 결국엔 ‘독자를 설득하는 작업’이다. 대개의 경우 이 포인트는 보통 매우 쉽게 간과된다. 독자가 누구인가. 바로 여러분의 상사가 될 사람들이다. 오탈자와 비문을 없애는 것은 매우 적은 비용으로 나쁜 인상을 남기지 않는 것이며, 지원 호텔에 대한 애정을 열심히 리서치해 포장하는 것은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자 그럼, 어떻게 독자를 설득할 것인가.
3가지가 들어가야 한다. 바로 1) 자신이 지원하는 호텔 직무 관련 전문성, 2) 자신이 지원하는 호텔에 대한 애정, 3) 앞으로 관계 맺을 호텔 구성원에게 주는 자신의 좋은 인상이다[지면관계상 다 적을 수는 없지만 2), 3)은 보통 쉽게 간과됨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위 내용을 다 숙지했다면, 비로소 이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포장을 더하는 것이다. 지어내란 말이 아니다. 소개팅을 앞두고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내는 것은 기망이지만 메이크업한 자신의 사진을 보내는 것은 포장이다. 그렇게 포장해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과정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한가지 를 더 제안하고자 한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 당신 자신을 믿어라. 랄프 왈도 에머슨은 <자기 신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을 믿어라. 모든 사람의 가슴은 이 철칙(鐵則)에 따라 반응해야 한다. 그리해 나는 나 자신이 돼야 한다. 자기 신뢰를 바탕으로 인생과 자연 그리고 신성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 인생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 자기소개서라는 공간은, 당신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자신에 대한 굳건한 신뢰에 터잡은 자기암시는 당신을 위한 공간을 창조한다. 이를 통한 사람 사이의 상호 연결 속에서, 해당 호텔에서 충분히 일할 역량이 되고 능력을 드러낼 당신을 전시하는 것이다. 호텔 만큼 내부 구성원끼리 말도 많고 시기가 있는 집단이 드물다는 얘기도 들었다(그런데 실상은 다 비슷하다). 그런데 힘은 자기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게 내부에서 생겨난 힘으로 탄생된 굳건한 신뢰는 글에도 자신감을 입히고 읽는 이에게 좋은 에너지를 준다.
“우리의 애정이 이웃 동료들에게 흘러가게 합시다. 그것은 단 하루 만에라도 가장 위대한 혁명을 성취할 것입니다” - <자기 신뢰>, ‘개혁하는 인간’ 中 발췌
그렇게 당신의 자기소개서는 생명력을 얻고 읽는 이로 하여금 당신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지점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벗어나는 지점이다.
건투를 빈다.
<자기신뢰>
저자 : 랄프 왈도 에머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