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ji Speedway HOTEL토요타자동차(TOYOTA)가 후지산 기슭의 시즈오카현(静岡県) 오야마쵸(小山町)에 2022년 10월 7일 ‘후지 스피드웨이 호텔(富士スピードウェイホテル)’을 개업했다. 국제 규격의 모터레이스가 개최되는 후지 스피드웨이 서키트 바로 옆에 모터스포츠를 테마로 한 호텔이 오픈한 것이다. 게다가 호텔 건물 안의 1, 2층에는 모터스포츠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자동차 박물관인 ‘후지 모터스포츠 뮤지엄‘을 오픈했다. 그야말로 ’모터스포츠와 호스피탈리티의 융합‘이라는 콘셉트에 바탕을 둔 유일무이한 호텔, 후지 스피드웨이 호텔에 다녀왔다.
일본 모터스포츠의 역사
일본의 모터스포츠의 역사는 길다.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전에는 자동차라는 것을 본 적도 없던 일본에 세계 횡단 모터레이스가 열리면서,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클래식 카들이 코베 항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차들은 도쿄를 지나 토호쿠(東北)지역까지 차도도 없는 좁은 일본의 주택가를 가로지르며 당시 토쿠카와(徳川)막부 시절의 일본인들에게 충격을 안겨 줬다.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유럽의 자동차 제조 기술을 어깨 너머로 배워 나갔고, 자동차 기술개발의 모태인 모터스포츠를 일본에 가져왔다. 그리고 첫 레이스를 1936년 도쿄의 타마가와(多摩川)에서 개최했다. 그 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의 자동차 제조 회사인 ‘닛산’, ‘토요타‘가 본격적으로 모터스포츠에 뛰어들게 됐다.
자동차산업은 패전 후 복구를 위해 중공업에 힘을 기울이면서 경제 성장을 이뤄 나가던 일본에 있어서 일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산업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본은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기술개발 시험장인 전 세계의 자동차 레이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한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노력은 1960년대부터 모터스포츠가 일본의 주요 인기 스포츠 장르의 하나로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했고, 이 열기는 1962년 미에현(三重県) 스즈카시(鈴鹿市)에 스즈카(鈴鹿) 서킷을 오픈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인 1963년에는 ‘후지 스피드웨이(富士スピードウェイ)’가 오픈하기에 이른다. 당시 자동차를 가진다는 것만으로도 부유층의 상징이 되던 시절, 그냥 승용차가 아닌 레이싱 카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팬들의 증가는 자동차의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보급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60년대 당시 젊은 시절을 모터스포츠에 빠져 보내던 팬들의 세대가 계승돼 지금은 그들의 손주들이 e-sports로 모터스포츠를 즐기게 되면서, 실제와 가상의 두 공간을 넘나들며 모터스포츠의 인기는 지속되고 있다.
후지 모터스포츠 뮤지엄
호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펼쳐지는 ’후지 모터스포츠 뮤지엄‘에서는 130년의 모터스포츠 역사를 살펴보며 그 매력에 젖어들 수 있는 공간이다. 뮤지엄은 1층과 2층으로 구성돼 있는데, 토요타의 자동차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터스포츠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벤츠, 포르쉐, 닛산 등 다른 자동차 제조회사들의 역사적인 차들을 제공받아 전시하고 있다. 국내외 자동차 메이커 10개 사와 제휴해 진행하는 모터스포츠 뮤지엄 상설 전시는 세계 최초의 시도라고 하니, ‘차알못’인 필자도 1시간이 넘도록 흥미진진하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을 정도도 훌륭했다.
사실 이 뮤지엄은 자동차 생산 산업에 모터스포츠가 완수한 역할을 보여준다는 관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최고 레이스에 출전한 전설의 차량이나 일본 최초 공개의 차량이 포함되는 약 40대의 차량이 체계적으로 전시돼 있으며, 양산차 메이커의 창업자가 모터스포츠 차량 개발에 가졌던 생각도 담겨 있어 모터스포츠의 매력이나 의미에 대해 자연스럽게 매료되게 된다. 뮤지엄을 담당하는 카마쿠라 씨의 설명에 따르면, “레이스 문화의 여명기부터 일본에서의 모터스포츠가 어떻게 발전돼 왔는지를 테마에 따라 15개의 에리어로 구성해 아름다운 레이싱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동시에 기술 진화를 촉구한 뜨거운 역사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필자의 딸은 평소에 자동차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특히 이 뮤지엄에서 모터스포츠의 매력에 빠지게 돼 전시된 모든 차를 카메라에 수도 없이 담았고, 긴 시간동안 초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모습을 보며 앞으로 이 곳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터스포츠의 매력에 빠지고 마니아가 될지, 그리고 그러한 원동력으로 자동차가 얼마나 더 발전하게 될지 미래가 그려지기도 했다.
모든 공간은 자동차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일본을 대표하는 모터스포츠의 서킷인 후지 스피드웨이에 호텔이 오픈한다고 했을 때부터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나 핫한 뉴스였다. 토요타 부동산이 모터스포츠와 일본 오모테나시의 융합을 콘셉트로 내세운 후지 스피드웨이 호텔을 오픈하는데, 그 운영은 글로벌 체인인 하얏트가 담당한다니 세간의 이슈가 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후지 스피드웨이 호텔은 하얏트의 브랜드 중에서 일본 최초의 The Unbound Collection으로, 이는 호텔의 콘셉트가 유니크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호텔에 들어서면 레이싱 카를 세워서 전시한 압도적인 장면부터 자동차를 모티브로 한 아트 작품들이 고객을 맞이한다. 1,2층에 구성된 후지 모터스포츠 뮤지엄에 언뜻언뜻 보이는 엄청난 전시 차량들을 잠시 뒤로하고 3층으로 곧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한쪽은 서킷 뷰, 반대편은 후지산이 보이는 호텔 로비가 펼쳐진다. 서킷을 형상화한 프런트 데스크부터, 후지 스피드웨이 코스를 달릴 때 드라이버에 걸리는 가속도의 크기를 표현한 대형 작품, 전 세계 국제규격의 레이스를 진행하는 서킷의 형태를 모두 모아 조형화한 작품 등 모터스포츠를 모티브한 작품들은 호텔 구석구석에 끝도 없이 펼쳐진다.
사실 압도적인 작품들도 놀랍지만, 필자가 감동하는 부분은 보다 사소한 부분들이었다. 예를 들면 객실 앞에 하우스 키핑을 알리는 소형 장난감 자동차를 깜찍하게 놓아둔 것이나, 객실 메모지의 패턴이 타이어 자국 일러스트라던지, 객실 번호판에 자동차 기어 모양을 형상화한 부분 등은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일단 눈치채게 되면 ‘오호, 여기까지 생각했단 말이지?’하고 감탄할 수 있는 디테일들이다.
모터스포츠를 즐기고, 느끼고, 그리고 쉬기에 완벽한 구성
호텔은 지상 9층, 지하 1층 규모에 총 120실과 4개의 빌라로 구성돼 있다. 먼저 빌라를 제외한 모든 객실은 서킷 뷰 또는 후지산 뷰 중에 선택할 수 있으며, 각 뷰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발코니가 있다. 물론 객실 창은 이중창이어서 서킷뷰의 소음 대책이 마련돼 있다. 스위트는 약 86~145㎡ 정도 규모며 특히 서킷 뷰를 즐길 수 있는 ‘GP 코너 스위트 트윈’의 경우, 침실의 두 면이 창으로 돼 있어 밝고 개방적인 분위기다. 디럭스룸은 약 55~60㎡의 넓이로 굉장히 여유있는 크기다.
빌라는 호텔동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5개의 주택이 나란히 있다. 모든 빌라는 전용 차고가 준비돼 있어 자신의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으며, 호텔동으로 이동할 때에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거실이나 식사 공간, 침실 외에 2곳의 욕실, 그리고 애완견 테라스와 전용 샤워까지 준비돼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레스토랑도 지역의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먼저 개방감이 넘치는 로비 라운지 ‘TROFEO Lounge’와 오픈 키친을 갖춘 이탈리안 레스토랑 ‘TROFEO Italian Cuisine’은 후지산을 바라보면서 이탈리안 요리를 즐길 수 있다. 한편 야키토리(焼き鳥) 메뉴를 선보이는 레스토랑 ‘Robata OYAMA’는 눈앞에서 바로 조리한 메뉴와 술을 즐기기에 좋은 공간이다. 그리고 ‘BAR 4563’은 후지 스피드웨이 서킷 코스의 거리를 의미하는 네이밍처럼 여유롭게 관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어른들의 고급스러운 아지트 같은 느낌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하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온천, 스파, 수영장 그리고 짐이 있다. 온천에서는 후지산을 바라보며 질 좋은 온천수를 즐길 수 있고, 짐에는 실제 레이서들이 연습하는 e-sports 레이싱 기계가 완비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이 호텔은 차를 콘셉트로 호텔을 만들 경우 이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차를 즐기고, 느끼고 그리고 잘 쉴 수 있는 완벽한 구성으로 짜여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 모터스포츠 팬부터 가족단위 고객까지
후지 스피트웨이 호텔은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부유한 고객층을 위해 헬기 승하차장까지 갖추고 있다. 전통적으로 모터스포츠는 해외 부유층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은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보통 평일 낮 호텔 레스토랑에는 여성고객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지만, 이곳에는 남성 고객들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레스토랑에서 만난 사람들도 이탈리아에서 온 멋쟁이들이었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남자 그룹들은 아침부터 짐에서 운동을 마친 상태로 모터스포츠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을 보면 이 호텔의 메인 타깃층이 누구인지 쉽게 가늠이 됐다.
하지만 자동차의 보닛을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필자나 딸인 여섯 살 꼬마 아가씨도 이곳에서 일본에 자동차 문화가 처음 보급된 메이지 유신 이후의 역사를 돌아보고, 갖가지 체험을 하면서 점점 모터스포츠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었다. 특히 호텔에서 3분 거리의 Go Cart 코스는 누구나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가족단위 고객들에게도 충분이 어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다녀온 뒤로 이제 필자도 모터스포츠카를 보면 조금씩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