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선의 Hospitality Management in Japan] KEIRIN HOTEL 10, 경륜 호텔로 지방활성화에 배팅하다! 

2022.10.26 09:00:11


KEIRIN HOTEL 10오카야마현(岡山県) 타마노시(玉野市)에 위치한 우노항(宇野港)은 아트의 섬으로 유명한 ‘나오시마(直島)’로 가는 페리를 타는 항구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는 딱히 유명할 것 없는 이 마을에 항구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이색적인 호텔이 들어서서 눈길을 끈다. 경륜 경기장과 연결된 KEIRIN HOTEL 10이 바로 그것이다.

 

공공 도박장 경륜장의 리노베이션


경륜(競輪)은 1948년에 일본에서 최초로 시작된 스포츠다. ‘뱅크’로 불리는 경주로 위를 자전거가 달리면서 순위를 정하고, 순위 결과에 따라 관객들은 배팅한 만큼의 이득과 손실을 보게 된다. 경륜은 정부가 인정하는 ‘공공 도박’인데, 일본 정부가 경륜과 같은 공공도박을 인정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는 바로 배팅에 대한 배당으로 지불된 금액 외에 수익의 일부가 ‘스포츠 분야’, ‘제조업’ 그리고 ‘사회 복지분야’에 지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방 경륜장은 다소 복잡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 이유는 공인된 도박이라고 하더라도, 도박에 대한 이미지로 인해 여성팬들에게는 외면당하고, 경륜장을 찾는 사람들 또한 배팅만을 목적으로 참관하다 보니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시설도 노후화되면서, 경륜장은 지역의 일부 소수만을 위한 공간으로 남게 됐다.  

 

 

오카야마현의 타마노 경륜장이 오픈한 것은 1950년의 일이다. 패전 후 피폐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던 서민들에게 경륜은 소박한 즐거움을 주는 스포츠였다. 하지만 도박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시설의 노후화로 찾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타마노 경륜장은 재건축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건축을 추진하는 가운데 나온 아이디어가 스타디움 일체형의 호텔을 만드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경륜장에는 선수의 숙박시설이 설치돼 있다. 경륜장에 선수들이 묵는 숙박시설이 있는 이유는 공공 도박으로 열리는 경륜 시합의 경우 경륜 선수가 시합이 끝날 때까지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는 레이스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인데, 선수들은 시합이 개최되는 기간 중 스마트폰 등 통신기기의 반입이나 외부인과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다. 그리고 이러한 접촉을 차단하는데 숙박시설은 필수적인 공간이었다. 

 

 

이처럼 경륜 경기장에 꼭 필요한 숙박시설이었지만, 레이스가 없는 동안에는 비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선수들이 숙박시설을 사용하는 기간은 연간 한달에도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노후화된 숙박시설을 호텔로 만들고 선수들이 이용하지 않을 때에는 모든 객실을 호텔로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호텔로 만들었을 경우 숙박시설로서의 활용도는 높아지지만, 선수들이 외부인과 접촉할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레이스 전날까지 호텔에 선수들이 숙박하는 동안에는 일반 숙박객의 예약은 받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대책을 마련한 후 타마노 경륜장은 호텔로 재건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KEIRIN HOTEL 10이다. 

 

아트와 스포츠 도박의 만남 


타마노 경륜장을  재건축해 오픈한 KEIRIN HOTEL 10에는 왜 '10'이라는 숫자가 붙었을까? 이에 대해 경륜 호텔의 기획과 운영을 맡고 있는 okcs의 마츠야먀(松山) 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경륜은 기본적으로 9명이 달리는 레이스다. 하지만 호텔을 만들면서 숙박객들을 ‘10번째 선수’로 정의했다.” 숙박객들이 10번째 선수가 된 기분으로 호텔에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 네이밍에 녹아있는 것이다. 

 


경륜의 10번째 선수가 돼 KEIRIN HOTEL 10의 체크인 카운터에 들어오면, 입구에 경륜에 사용되는 다양한 도구가 눈에 띄는데 팝적인 ‘10’의 캐릭터 디자인과 함께 오렌지 컬러 벽이 기존의 도박에 대한 불편한 이미지를 산뜻하게 치환시킨다. 또한, 프런트 옆은 경륜장의 오래된 사진과 함께 경륜 자전거와 선수를 응원하는 메가폰 등을 아트 작품으로 구현해서 전시했다. 


그런데 이곳에 숙박하는 고객들은 다른 호텔에서는 볼 수 없는 종이 한 장을 건네 받게 된다. 그것은 뱅크에서 연습하고 있는 선수가 있는 경우 큰소리 내는 등 방해를 하지 말라는 동의서다. 이렇게 낯선 종이에 사인을 하면 객실로 안내된다. 


객실로 들어가면 숙박객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장치가 놓여져 있다. 객실은 ‘스타일리시한 로커 룸’을 이미지 콘셉트로 삼아 만들어졌으며, 5층 이상의 모든 객실에 테라스가 있어 뱅크(경주로)를 보다 가까이 볼 수 있다. 세토나이카이와 뱅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테라스는 경륜 팬이 아니어도 흥분될 정도로 멋지다. 뿐만 아니라, 객실의 인테리어와 비품에 있어서는 세세한 부분까지 자전거와 경륜, 스포츠를 모티브로 한 아트 소품으로 꾸몄고, 잠옷도 경륜의 유니폼을 모티브 제작해서 배치해 두고 있다.

 


스타디움 레스토랑 ‘FORQ’에서는 세토우치(瀬戸内)의 식재료를 사용한 향신료 요리와 오리지널 스위트를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수제 맥주와 함께, 창 쪽은 뱅크(경주로)를 볼 수 있게 좌석을 배치해, 눈앞에서 펼쳐지는 레이스를 관전하면서 식사도 가능하다. 그리고 지역의 색채를 반영한 오리지널 세토우치 스위트 등 카페 메뉴도 충실하게 준비돼 있어, 지역주민 혹은 관광객들이 굳이 숙박하지 않더라도 가볍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레스토랑 외에도 ‘KEIRIN HOTEL 10 Shop’도 경륜이나 자전거를 모티브로 한, 팝적인 디자인의 오리지널 상품을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특히, 다양한 크리에이터와 오카야마의 카페와 컬래버레이션해 제작한 캡, 티셔츠, 토트백, 샌들, 의류 아이템 등을 주력 상품으로 선보이고 있다.  

 

 

 

기억의 계승과 변형


타마노 경륜장을 KEIRIN HOTEL 10 호텔로 재건축하면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옛 경륜장에서 나온 폐자재를 아트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재활용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스타디움의 의자는 호텔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표식이나 퍼블릭 스페이스의 새로운 의자로 재탄생했다. 경륜장의 거대한 간판은 목욕탕의 마크로 바뀌었고, 좌석 안내표는 레스토랑의 테이블로 변신했다. 경륜장의 기억을 버리지 않고 담아내기 위해 폐자재들을 새로운 인테리어로 숨을 불어 넣은 것이다. 호텔의 재건축에는 경륜 선수들도 참여했다. 현역 선수들과 은퇴한 선수들은 자신들이 사용하지 않는 자전거의 프레임과 핸들을 모아 새로운 조명으로 만들어지도록 했다. 


그렇다면 왜 경륜장을 재건축하면서 폐자재들을 활용하는데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일까? 그 배경에는 경륜장을 호텔로 재탄생 시키는 과정에서 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72년의 역사를 가진 경륜장을 그냥 모두 부수고, 버리고 새롭게 만든다면 어떤 기억이나 추억도 그 공간에서 찾을 수 없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때문에 낡은 것을 새로운 감성으로 파악하고, 전혀 다른 가치로 탄생시키는 노력을 한 것이다. 

 


물론 옛것을 활용해 기억을 이어가는 노력에 대해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경륜이라는 공공 도박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KEIRIN HOTEL 10을 만들면서, ocks는 과거의 공간을 없앤다고 해서 사람들이 가진 기억마저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오히려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계승할지를 고민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아트적인 요소를 담아 새로운 경륜장의 공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ocks가 KEIRIN HOTEL 10을 오픈하면서 또 한 가지 주목한 부분은 경륜을 모르거나 관심 없는 대상들이 경륜장을 찾게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즉 경륜장 구석구석 아트 디자인적인 요소를 가미해 여성들이나 아이들도 모든 사람이 거부감 없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경륜장은 다양한 층이 찾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일본에서는 경마, 경정(보트) 그리고 경륜까지 공공도박의 역사가 오래됐다. 한때 공공도박은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중요한 수익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공공도박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고착화됐고 그 공간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서는 기피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타마노 경륜장은 산뜻한 호텔로 변신해 그동안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는데 성공했다. 스토리에 감성을 얹어 아트 디자인으로 풀어낸 이 경륜 호텔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지역들에게 의미있는 사례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