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미국에서 고등학교 재학 시절, 콜럼버스 홀리데이에 맞춰 가족여행으로 간 라스베이거스.
그 멋진 호텔에 투숙하며 모두 경험할 수는 없었지만, 그곳의 다양한 호텔의 로비와 로비 화장실을 구경하며 호텔의 브랜드명과 로비의 인테리어 콘셉트, 직원의 유니폼, 그리고 화장실 인테리어가 얼마나 조화로운가를 비교, 평가했다.
이 경험은 필자로 하여금 호텔의 콘셉트와 브랜딩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 후 학부에서 호텔관광경영학을 전공하며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한 기본 지식을 습득하고, 석/박사로 마케팅 및 브랜딩을 전공했다. 그리고 특1급 호텔에서 프런트 오피스, 식음전략기획, 경영진단, 인사, 경영기획, 디자인기획팀을 거치며 호텔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하며 브랜딩과 브랜드경영에 대해 고찰하게 됐다.
호텔의 브랜드명과 로고 디자인 = 호텔 브랜드일까?
‘호텔의 브랜드’, ‘호텔의 BI’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브랜드명과 로고일 것이다. 이는 초기 브랜드 연구에서 브랜드 정체성이 미국 그래픽 디자인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BI = 브랜드명, 로고’라 인식하게 된 영향이 크다. 브랜드는 사업자가 자기 상품을 경쟁 업체의 것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표’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됐다. 호텔의 브랜드명이나 로고는 고객에게 서비스 형태 및 품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특정 브랜드명과 로고를 통해 해당 호텔이 어떠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 고객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IHG 브랜드의 브랜드명과 로고 디자인을 비교했을 때, 로고 디자인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더라도 브랜드명을 보면 ‘Hotels & Resort(호텔 및 리조트)’가 포함된 것과 ‘Inn(여관, 숙박을 강조한 서비스)’이 포함된 것, 그리고 ‘Suites(거실이 있는 객실, 장기투숙 호텔의 개념)’가 포함된 것은 직관적으로 다른 형태의 서비스 방식일 것이라는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가하면 Marriott의 호텔 브랜드는 브랜드명과 로고 디자인만 놓고 봤을 때, Luxury, Premium, Select, Longer Stay의 카테고리가 구분돼 있지 않다면 해당 호텔들을 찾아보거나 경험해보지 않은 이상 서비스 레벨과 방식을 예상하기 무척 어렵다.
브랜드명과 로고 디자인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바로 호텔의 시설을 포함한 감각적인 요소, 직원들이 만들어내는 조직문화와 서비스, 그리고 의사소통이다. 미국의 디자이너들과는 달리 유럽의 디자이너들은 행동 및 기타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해 브랜드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그로 인해 현대적인 브랜드의 개념은 단순 상표보다 더 넓은 범위로 미학과 기능을 겸비한 디자인, 감정적 요소, 및 조직적 요소를 포함한 비즈니스적 측면까지 포괄한다.
‘호텔’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또 ‘호텔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호텔은 서비스업이다. 여행객에게 일시적이지만 편안한 보금자리가 되고, 실력 좋은 셰프의 음식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다양한 목적의 행사를 편안히 진행할 수 있는 사교의 장이 되는 대표적인 서비스업이다. 이와 더불어 좋은 입지의 공간을 필요한 사람에게 대여해주는 측면에서 본다면 부동산업이기도 하다. 또한 고급 호텔일수록 훌륭하고 멋진 비품을 선정하고 확보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므로 일종의 장치 산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훌륭한 시설과 더불어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과 함께 Wow Moment(감동 순간)를 제공하는 체험형 예술업이기도 하다.
호텔마다 각자의 비전, 타깃 고객, 제공하고자 하는 가치 등에 따라 위의 4가지 본질에 대한 집중도가 달라지며 그에 대한 결과로 호텔의 등급과 종류가 나뉜다. 예를 들면 1, 2성급 호텔은 가장 기본적인 숙박할 공간을 대여해주는 부동산업에 중점을 둘 것이고, 5성급 이상의 호텔은 4가지 본질에 골고루 충실할 것이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부티크(Boutique) 호텔이나 고메(Gourmet) 호텔은 특별히 체험형 예술업에 맞춰 호텔을 설계하고 운영하지 않을까? 물론 다양한 콘셉트의 호텔이 밀집한 라스베가스의 호텔도 체험형 예술업에 집중해 타 호텔과의 차별화를 위해 노력한다.
호텔의 브랜딩의 필수 3요소인 브랜드 정체성,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브랜드 이미지
집중해야 할 호텔업의 본질이 정해졌으면, 그에 맞춘 브랜딩 전략이 필요하다.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브랜딩(Branding, 혹은 Brand Management)을 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 브랜드 정체성(Brand Identity),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그리고 브랜드 이미지(Brand Image)다. 공교롭게도 브랜드 정체성과 브랜드 이미지의 약자는 모두 BI이고 둘을 포괄하는 의미로 브랜드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브랜딩을 할 때, 이 두 가지는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브랜드 정체성은 브랜드 이미지의 선행조건이자 브랜딩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브랜드 정체성이 명확하게 정립돼야 이해관계자들이 브랜드 오너가 의도한 것과 유사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성공한 브랜드일수록 브랜드 오너가 정립한 브랜드 정체성과 이해관계자가 인지하고 있는 브랜드 이미지 간의 괴리가 적다. 이 둘 간의 괴리를 줄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다양한 채널을 통한 효과적인 의사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이다. 브랜드 정체성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으면,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어렵고 결국 이해관계자들이 구축하는 브랜드 이미지도 중구난방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호텔의 브랜딩은 전체론적(Holistic) 관점으로 접근해야
호텔업은 고객과의 접점(Touchpoints)이 다양하므로 전체론적인 관점의 브랜딩에 더욱 신경을 써야한다. 이 전체론적 관점의 브랜딩을 위해서는 브랜드 정체성의 3가지 요소를 일치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전략적(Strategic) 요소인 비전, 미션, 철학, 브랜드명, 포지셔닝 전략, 브랜드 성격 등을 정립한 후, 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감각적(Sensory) 요소를 디자인하고 선택해야 한다. 감각적 요소는 5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그래픽 디자인(로고, 심볼, 폰트, 인쇄물, 홈페이지 등), 인테리어 디자인(전체적인 콘셉트, FF&E, 장식품, 예술품 등), 집기류(OPE_ Operational Equipment 등), 객실 어메니티, 대표 향기, 배경 음악 등을 의미한다. 시각적인 요소는 호텔만의 독특함과 차별화된 포인트를 사진으로 담아 해당 호텔의 홈페이지나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고객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외의 감각적 요소인 청각, 후각, 촉각, 미각적 요소는 시각적 요소와 함께 현장에서의 경험을 극대화시킨다. 정립된 전략적 요소의 의미를 직원과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감각적 요소의 선정 과정에서 그들을 참여시키는 것은 조직적(Organizational) 요소인 조직문화, 직원의 태도 및 서비스 스타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브랜드 정체성의 3요소를 일관성 있게 관리하면, 직원들은 외부 이해관계자와 의사소통을 할 때 더 효과적인 브랜드 정체성 전달이 가능하다.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에서는 브랜드 정체성에 부합하는 프로모션과 홍보자료를 기획할 것이고, 세일즈팀은 객실 판매나 연회장 판매 시 고객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또한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직원들은 서비스 접점에서 브랜드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다. 호텔에 직접 방문한 고객들 역시 일관성 있게 잘 정립된 브랜딩에서 안정감과 신뢰감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잊지 못할 Wow Moment를 경험하며 자신들의 SNS에 공유하는 등 다른 잠재 고객들과 소통한다.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고객의 인식 속에 해당 호텔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가 구축되며, 그 이미지들이 모이고 쌓이면 호텔의 명성이 된다. 이 내용을 도표 형태로 정리한 것이 아래의 프레임워크며, 이는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정립한 것을 발전시킨 것이다.
브랜드 정체성의 요소가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거나, 감각적 요소로 잘 표현되지 않을 경우, 직원들은 어떤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는 조직문화에도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브랜드에 대한 인식(브랜드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호텔이 추구하는 브랜드 정체성과 고객이 인지하는 브랜드 이미지 간에 괴리가 생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외국계 특급 호텔의 경우, 브랜드 스탠다드가 있어 그래픽 디자인과 어메니티 등에 대한 자세한 가이드라인은 제공되나, 인테리어 디자인이나 집기류 디자인, 향기, 음악 등에 대해서는 각 나라의 특성을 반영한 고객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율성을 준다. 이러한 자율성은 약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 호텔의 특성상 평균적으로 매 7~10년마다 개보수를 하기 마련인데 이때 심사숙고해 브랜딩 전략과 함께 일관성 있는 개보수 계획을 구축하지 않으면 모호한 브랜드 정체성을 바탕으로 엄청난 투자를 하고서도 애매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해당 업무 관련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정성연 브랜드 전략가
JW 매리어트 호텔 서울 프런트 오피스에서 3년간 근무 후 KAIST 경영대학원의 MBA 과정을 거쳤다. 그 후 인터컨티넨탈 호텔 서울에서 식음전략기획, 경영진단, 인사, 경영기획, 디자인기획팀을 거치며 브랜딩으로 업무 영역을 확장했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경영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브랜딩 컨설팅회사 ‘brandots 브랜닷츠’의 CEO로서 다양한 스타트업 브랜드 자문 및 컨설팅을 진행했다. 또한 세종대학교 외래 교수로 서비스경영론, 경영학원론, 여가공간계획론 등을 강의했으며 현재는 미국 보스턴에 거주하며 브랜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