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방문하더라도 그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니어 지배인은 존재만으로 고객에게 호텔의 위용을 드러내 준다. 특히 오랜 역사를 지닌 호텔일수록 단골고객과의 깊은 유대 관계를 맺는 일이 많아 시니어 지배인의 역할은 다른 직원들로 대체될 수 없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다. 때문에 자주 가는 호텔에 내가 찾던 지배인이 보이지 않으면 컴플레인을 제기하는 고객이 있을 정도로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단순한 친절과 센스있는 응대를 넘어서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발현된다. 그러나 이렇듯 시니어 호텔리어들의 베테랑 서비스가 호텔의 서비스 차별화의 핵심 요소로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비스 차별화에 갈급함을 느끼는 호텔이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Senior HR Issue 첫 번째 이슈였던 시니어 호텔리어의 클래식 서비스에 이어, 두 번째로는 시니어 호텔리어의 일터로서 호텔은 어떤 직장인지 의미를 되새겨봤다.
요통에 시달리는 호텔업계
신체활동의 중심이 되는 척추와 허리. 우리의 신체 밸런스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허리는 무거운 체중을 지탱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방향으로 운동이 일어나 여러 가지 원인의 각종 통증에 시달리는 부위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인체와 같이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조직은 조직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을 ‘허리’에 비유한다. 허리가 튼튼해야 만사가 형통하듯 그 어떤 조직에서도 튼튼하지 않은 허리를 가지고 있으면 조직이 위태롭기 마련이다.
올해 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실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연도별 퇴직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의 허리인 40·50대의 비자발적 퇴직자가 49만 명에 육박하며 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40·50대 시니어는 높은 숙련도와 생산성을 가지고 있는 조직 내 주역이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높은 임금과 경영진으로의 승계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더이상 쌓을 커리어가 없는 위치에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이 힘들 때 제일 먼저 손 놓이는 이들이다.
이번 코로나19의 여파로 긴축재정에 돌입한 호텔에서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의 위기도 대부분 40·50대 임원급이 짊어졌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니더라도 호텔에서 시니어 직원들의 입지는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 정년은 있지만 정년까지 채우지 못하는 호텔리어들이 대다수인 데다가 그동안의 커리어를 살릴만한 곳이 없어 그간의 소중한 경력들이 사장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호텔리어 공유 & 채용 플랫폼 호텔인네트워크 이정한 대표(이하 이 대표)는 “시니어 직원들의 불안정한 고용은 자연스럽게 주니어 직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주니어 직원들은 시니어 선배를 보며 자신의 미래를 비춰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서비스업계는 박한 연봉에 3교대 근무,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강도높은 업무로 서비스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 이들이 비전을 갖지 않으면 근무하기 힘든 구조다. 그런데 선배들의 커리어가 사장되고 있는 것을 지켜봐오며 더이상 남아있어야 할 이유를 못 느낀 주니어 직원들이나,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그렇게 호텔은 계속해서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산업이 한 단계 성장하려면 시니어 직원들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해주고, 주니어 직원들도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인적 자원의 의존도가 높은 서비스, 환대산업의 호텔일수록 직원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장은 ‘현장’에 마련돼야 한다. 서비스 스킬은 손님과의 잦은 대면에서 비롯된 다양한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경험에서부터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호텔업계 종사자들은 국내 호텔들이 오랜 경력개발을 하기에 그리 좋은 직장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단추 잘못 꿴 비효율적 인력 운용으로
반쪽짜리 럭셔리 제공하고 있던 호텔들
호텔리어의 정년은 대체적으로 60세 전후지만 정년을 맞이해 퇴직하는 지배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국내 호텔 서비스에 대한 전문성이 너무 저개발, 저평가 돼 있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해 라마다 남대문 호텔 & 스위츠 박종모 총지배인은 “서비스 마인드와 스킬은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의 교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서비스업, 특히 서비스업의 정수로 불리는 호텔리어는 현장에 완전히 녹아들어야 스스로의 서비스를 내재화 할 수 있다. 해외 시니어 호텔리어들의 전문성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말단에서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온 내공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국내 호텔 인사구조는 인건비의 이슈가 크다 보니 젊은 직원들을 선호하는데 이직률이 높아 한곳에 오래 있는 직원들이 많지 않고, 그렇다 보니 충분한 현장 경험이 없는 직원들이 업무를 맡으면서 전반적으로 낮아진 연령대로 호텔이 운영, 오랜 경력의 지배인들의 설 곳이 없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인적 인프라의 의존도가 높은 만큼 인건비 비중이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국내 호텔들은 하이엔드 서비스를 추구하면서 고급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인건비에 허덕이며 연봉이 낮은 직원들을 채용하고, 이들의 비중이 커진 탓에 많은 경력의 고임금 시니어 지배인들을 정리, 다른 산업에 비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밖으로 내몰리는 선배들을 보며 주니어 호텔리어들은 비전을 보지 못하고 이탈하는 악순환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돈만 들이면 따라할 수 있는 시설의 고급화는 호텔의 차별화 요소가 되지 못한다. 새롭게 오픈하는 호텔은 계속 늘어나고, 신식 호텔이다 보니 시설은 당연히 기존 호텔들에 비교했을 때 좋을 수밖에 없다. 결국 호텔의 차별화 요소는 소프트웨어, 인적 자원”이라고 이야기하며 “그런데 많은 국내 호텔 오너들이 호텔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 않은데다 호텔은 수익구조가 약한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익을 내려고 해 계속해서 인건비를 운운하는, 태생적으로 잘못된 호텔 운영 방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기본적인 서비스만 제공하는 중소형호텔이야 인건비가 객실 가격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를 AI나 IT 기술 기반의 플랫폼으로 갈음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특급호텔에서까지 인적 인프라를 기술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호텔이 너도나도 서비스 차별화를 외치지만 결국 그저 그런 서비스들만 존재하는 이유가 이처럼 반쪽짜리, 인스턴트 럭셔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지난 시니어 호텔리어 기획에서 만나본 콘래드 서울 권문현 지배인의 럭셔리는 그가 한 곳에서 4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기 때문인 점도 있지만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그를 일부러 찾는 고객들로 인해 완성됐다. 다른 직원들보다 인건비는 높았을지 몰라도 그가 5년, 10년, 2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존재함으로써 쌓인 서비스가 호텔의 위용을 높이는데 발현된 것이다. 결국 인건비의 문제는 인적 인프라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지 몰랐던 호텔들이 그동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으로 만들어 낸 셈인 듯 보인다.
단순 서비스 아닌 관계 맺는 차별화
“26년째 한 호텔에서 3대째 방문해주는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보니 이제 고객이라는 느낌보다 먼 친척을 두고 있는 느낌이다. 호텔에 방문할 때마다 여행 중에 생각나서 샀다는 선물을 챙겨오고, 매년 친필로 작성한 연하장도 호텔로 보내주는 이들이다. 주변에 워낙 호텔이 많이 생겨 다른 호텔에 묵는 일이 있더라도 한 번씩 들러 안부를 묻고, 어떤 때에는 함께 오던 지인의 경조사를 알려주기도 한다. 그렇게 고객들과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오며 쌓아 온 진심이 우리 호텔에서 추구하는 럭셔리 서비스다.” 명동 시내에서 63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보이호텔 객실팀 김희영 부장의 이야기다. 63년의 역사만큼 수십 년째 방문하는 단골고객들이 아직까지 핵심 고객으로 남아있는 사보이호텔. 그들이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호텔을 유지해 오고 지금과 같이 업계가 힘든 때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는 것은 이렇게 오랜 세월, 꾸준히 찾아와준 고객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호텔의 역사가 길기 때문만은 아닌, 언제나 한결같이 같은 공간에서 이들을 맞이해주는 직원들이 있었던 덕분일 터다.
한편 전체 직원 중 약 10% 정도가 20~30년 이상의 장기근속자인 롯데호텔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직원이 근무한다. 그중 2019년도 K-Hotelier로 선정된 배병일 헤드 매니저는 현재 시그니엘서울 스테이 레스토랑에서 근무, 30년간 롯데호텔에 몸담아 온 베테랑 호텔리어인데 은퇴를 5년 앞둔 지금까지도 매주 월요일에 30년의 세월 동안 함께한 단골고객에게 직접 안부 문자를 보내고, 한두 번 방문한 고객이라도 재방문 고객은 귀신같이 알아봐 단숨에 고객들을 롯데호텔의 팬으로 만든다고 한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배 매니저의 서비스 영향력은 오랜 기간 롯데호텔 서울에 근무하다 시그니엘 서울로 보직이 바뀌었을 때 그를 따라 스테이로 주 방문 레스토랑을 옮긴 고객이 있을 정도다. 롯데호텔의 오랜 지배인들 중 단연 톱이라고 할 수 있는 배 매니저은 롯데호텔 서비스의 품격을 높일 뿐 아니라 주니어 직원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언택트가 강조되고, 개인주의 경향으로 인해 과도한 서비스는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직원과 고객 간의 작은 유대에서부터 시작된다. 실제로 호텔의 단골손님들이 자주 찾는 직원이 오랜 기간 보이지 않자 호텔에 컴플레인하는 곳도 있을 정도다. 이처럼 정형화된 서비스 매뉴얼이 아닌 인간적 교감을 통해 맺어 온 고객과 시니어 지배인 간 사이의 시간들은 아무리 젊고 유능한 인재의 서비스라도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는 법이다.
내일 이어서 대체 불가 서비스로 차별화에 기여하는 시니어 지배인과 그들의 일터로서의 호텔 -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