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은 이제 단순히 숙박하는 장소에서 머무는 장소로 거듭나게 됐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호텔, 그중 라이브러리는 호텔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공간 비즈니스에서 라이브러리 마케팅의 중요성
호텔은 이제 단순한 숙박의 개념을 넘어선지 오래다.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 호텔들은 여러 사람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라이프스타일을 플랫폼으로 거듭나고자 하고 음식은 물론, 디자인, 음악, 향 등 사람의 오감이 닿는 모든 곳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중에 책 역시 사람들의 취향을 매료시킬만한 좋은 요소 중에 하나다.
공간 비즈니스에서 책을 이용해 성공을 거둔 좋은 사례는 일본의 ‘츠타야’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이제 서점이 아닌,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제안한다는 의미로 ‘문화 기획사’로 불리기까지 한다. 회원 수는 일본 인구의 절반이 넘는 7000만 명에 육박한다고. 츠타야는 어떻게 서점을 넘어 일본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진두지휘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었을까? 가장 먼저 일반 대형서점 진열 방식을 달리해, 장르별로 책을 한 데 모아 두었다. 이러한 디스플레이는 필요한 찾는 데 비효율적이어도,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해 서점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새로운 관심분야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지적 자본론>의 저자이기도 한 츠타야의 CEO 마스다 무네아키는 사람들이 서점에 갈 때, 정해진 책을 찾으러 가는 사람들 보다 서점에 머물며는 책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필요한 책은 온라인 채널에서 빠르고 싸게 구매할 수 있으니, 실물의 공간이 가진 장점을 최대로 살리려고 한 것. 이는 공간 비즈니스의 궁극인 호텔에서도 되새겨 들을만한 말이다. 단순히 책을 도입하는 것을 넘어, 호텔 역시도 창의적인 방식을 고안해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수준의 공간으로 거듭나야할 것이다.
뉴욕의 ‘라이브러리 호텔’은 건물 전체를 도서관을 콘셉트로 한 부티크 호텔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 올여름 오픈한 베이징의 ‘무지 호텔’은 한 층을 전부 라이브러리로 구성했는데, 베이징 무지 호텔에 어울리는 도서 컬렉션을 기획하는 북 큐레이터가 따로 있을 정도다. 이렇듯 세계 호텔들에서 라이브러리 마케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국내 호텔은 라이브러리나 책들을 어떤 모습으로 활용하고 있을까?
호텔 인테리어로 활용하는 라이브러리
호텔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책을 활용하는 사례는 인테리어에 도입하는 것이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라운지&바는 조선호텔 103주년을 맞아 작년 새롭게 리뉴얼을 할 당시 인테리어에 서재를 포함했다. 이 서재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과거를 조명하는 동시에 앞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겠다는 의미로 근/현대 동서양의 특징을 재해석해 조화롭게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서재로 구성된 라운지&바에서 한쪽 벽면은 서적 사이사이에 웨스틴 조선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흑백 사진자료와 함께 디스플레이 해, 마치 박물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지난 7월 오픈한 레스케이프의 7층 ‘라이브러리’는 라운지 공간을 고풍스러운 파리 살롱과 서재 스타일로 연출하고자 했다. 전사호텔의 디자인 기획팀에서 큐레이션을 맡아 약 1500권의 프랑스 고서로 구성했다. 이렇듯 실제로는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 및 라운지 기능을 하는 공간이지만, ‘라이브러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프렌치 어반 스타일을 추구하는 레스케이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책들로 구성해 디자인적 요소로 활용하고 있는 것. 라이브러리 기획 담당자에 따르면, 현재 비치된 고서의 경우 대여가 불가하지만, 추후 <매거진 B>, <모노클> 등 강력한 콘텐츠를 지닌 독립 매거진은 물론 다양한 종류의 매거진과 도서를 구비해 라이브러리의 기능을 활성화 할 예정이라고 전한다.
머무는 서점, ‘이터널 저니’
일본의 츠타야처럼 공간 플랫폼으로 호텔에서 서점을 활용하는 바람직한 사례는 힐튼 부산이 위치한 휴양 단지 '아난티 코브’의 서점 ‘이터널 저니’다. 아난티 코브에는 워터 하우스, 야외 공연장, 해변 산책로 등이 들어서 있어, 힐튼 부산의 투숙객들은 여행 중 단순히 잠만 자러 오기보다, 머물며 휴식을 즐기러 오는 이들이 많다.
이터널 저니는 이러한 투숙객들의 특성에 맞게 서점의 기획과 운영에 신경 쓰고 있다. 일단, 이곳은 도서 검색대를 없애고 서가의 구성과 배열을 창의적으로 구성했다. 약 500평 규모의 대형 서점인 이터널 저니는 일반적인 대형 서점과 달리, 진열된 책들의 밀도가 낮아 여유로운 책장을 자랑한다. 보통 500평 규모의 서점에 3만 여권의 책이 비치되는데, 같은 규모인 이터널 저니에는 2만 권 이하로, 거의 절반 수량뿐이기 때문이다. 여백이 있는 책장의 책들은 쉽게 꺼내 읽을 수 있고, 표지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진열됐다. 자기 계발서 및 전문 도서는 과감하게 배제했으며, 베스트셀러와 신간 도서의 비중이 국내 서점 중 최저다. 특히 신간 코너는 전체 150개가 넘는 책장 중에서 단 3개뿐이다. 대신 인물, 바다, 환경, 작업실, 책을 위한 책의 카테고리로 50여 가지의 주제들을 설정했다.
이러한 큐레이션은 힐튼 부산에 방문한 고객들의 관심 분야 위주로 지정한 것이다. 츠타야 CEO가 언급했던, 배열을 달리해 고객들이 서점에 머무는 시간을 늘렸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이터널 저니는 고객들에게 책을 제안하고, 평소 책에 관심이 없는 고객들이 좀 더 쉽게 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호텔의 투숙객들에게 머무는 서점을 제공해 공간 비즈니스의 이점을 최대로 활용한 것이다.
인쇄된 모든 것에 대한 열정, ‘프린트 컬처 라운지’
재질과 모양, 크기와 언어가 서로 다른, 다양한 판형의 출판물이 모여 있는 곳, 라이즈 호텔의 ‘프린트 컬처 라운지’. 이곳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프린트 컬처 라운지는 홍대의 지역 문화를 베이스로 외국의 힙한 도시들의 서브컬처 문화를 결합시키고자하는 라이즈 호텔의 콘셉트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라이즈 호텔은 ‘좋은 취향의 이정표(A BEACON OF GOOD TASTE.)’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등장한 대형 호텔 체인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부티크 브랜드인 ‘오토그래프 컬렉션’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체인호텔 브랜드가 일관된 가이드라인으로 호텔을 운영한다면, 오토그래프 컬렉션 브랜드의 경우 각 호텔이 위치한 지역의 문화, 예술을 전폭적으로 반영한다. 이렇듯 홍대의 라이즈 호텔은 홍대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위시한 독특한 지역적 문화를 수용해 현재 서울에서 가장 힙한 호텔 중에 하나다. 라이즈 호텔의 서가인 ‘프린트 컬처 라운지’도 오토그래프 컬렉션 중 홍대에서만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로, 서가를 유니크한 독립 출판물로 가득 채워 호텔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라이즈 호텔의 3층에 올라서면 프론트 맞은편 넓은 공간에 테이블 뒤로 프린트 컬처 라운지의 도서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라이즈 호텔의 브랜드 디렉터 제이슨 슐라바흐와 크리에이티브 팀들이 전 세계의 독립 서점과 협업해 프린트 컬처 라운지의 디스플레이를 선정하고 있다. 프린트 컬처 라운지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곳은 뉴욕 소재의 ‘Printed Matter’와 ‘Dashwood’, 멜버른에 있는 ‘Perimeter Editions’ 그리고 서울에 있는 ‘Post Poetics’까지. 독립 출판물에 관심 있는 이들은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환상적인 라인업이다. 가능한 한 홍대의 정체성에 어울리는 희소성 있는 책들을 공수하고, 책의 진열 방식에도 심혈을 기울여 라이즈의 정신을 드러내고자 했다. 투숙객이 아닌 일반 방문객들도 이곳에 들러 자유롭게 출판물을 열람할 수 있는데, 이는 프린트 컬처 라운지가 궁극적으로 다양한 출판물을 통해 방문객들이 예술적 원천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되기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소성 있는 출판물일수록 우리에게 더 가치 있다.”
라이즈 호텔 제이슨 슐라바흐(Jason Schlabach) 브랜드 디렉터
‘프린트 컬처 라운지’에 대해 소개해 달라.
‘프린트 컬처 라운지’는 라이즈 호텔이 사람들의 예술적 교류를 지지하는 것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또, 이곳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라운지인 동시에 출판물을 통해 영감의 원천이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 다양한 서브컬처 문화를 포함한 출판물을 준비했다.
프린트 컬처 라운지에 어떤 고객들이 방문할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계획했는지?
이곳에서 라이즈 호텔의 고객들과 홍대 로컬 방문객이 어우러지기를 바란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프린트 컬처 라운지에서 새로운 생각과 영감을 탐색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또, 예술가들이 인쇄물을 통해 언더그라운드의 예술적인 영감을 끌어올리는 장소로 활용되는 것을 상상했다.
이곳이 3층 로비층에 자리 잡은 이유가 무엇인가?
프린트 컬처 라운지는 사람들의 주요 흐름에서 떨어져 있는 동시에 활동이 있는 곳과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3층 로비층은 사람들이 지나치긴 하지만 북적이며 머무르는 장소가 아니며, 충분히 넓고 조용해서 휴식하기에도 적합해서 선택하게 됐다.
프린트 컬처 라운지를 위해 라이즈 큐레이터가 있다고 들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달라. 또, 이들이 도서와 매거진을 셀렉하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곳의 책과 잡지는 도시 라이프, 스트리트 컬처, 그리고 젊은 문화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들로 선정했다. 우리는 다양한 예술적 시각을 보여주려 크기와 모양 등, 판형이 다양한 출판물로 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매번 가장 좋은 셀렉션을 만들기 위해서 세계의 독립 출판사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하는데, 뉴욕 소재 Printed Matter와 Dashwood, 멜버른에 있는 Perimeter Editions 그리고 서울에 있는 Post Poetics가 우리의 파트너다.
도서 컬렉션을 흔하지 않은 독립 출판물 위주로 구성한 이유는?
라이즈 호텔은 항상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한다, 그중 하나의 방식이 독립 출판사와 젊은 예술가를 찾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한 결과물이 우리의 서가에 배치된 출판물인데, 배열 된 인쇄물 중 세계에서 단 한 권뿐이거나, 총 100부 이하로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우리는 희소성이야말로 출판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중요한 가치라고 여긴다.
프린트 컬처 라운지는 다른 호텔이 라이브러리와 활용하는 방식에 비해 유니크하다. 이곳이 앞으로 어떤 문화적 공간이 됐으면 좋겠는가?
우리는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이상의 것을 추구한다. ‘프린트 컬처 라운지’라는 이름처럼, 이곳에서는 인쇄된 모든 것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고자 한다. 라이즈 호텔 컬처팀의 디자이너들은 라이즈 프레스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만들기 위해 포토그래퍼와 예술가와도 작업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크리에이티브한 에너지를 유지해, 계속 라운지에 새로운 변화를 줄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예술적인 영감을 주고받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