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에 최고의 더위가 찾아 왔다. 서울은 열대야만 25일 연속이다. 조만간 한달을 채울 듯 하다. 이렇게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마다 기상 이변이 증폭되니, 와인 세계에 있어서도 새삼 빈티지의 중요성이 느껴진다. 포도가 커가는 성장기의 날씨에 따라 색과 향과 맛이 달라지는 신기한 와인의 세계에서는 매해 와인의 특성이 달라지니, 새로 출시되는 와인들의 테이스팅에 소홀할 수 없다. 8월은 북반구에서 새로운 빈티지 와인이 출시되는 달이니, 캘리포니아의 레드 & 화이트 와인의 새 빈티지 와인들을 시음해 봤다.
나파 밸리의 정수, 퀸테사 와이너리
퀸테사(Quintessa)는 칠레 출신의 어거스틴 후니어스(Augustin Huneeus)가 설립한 ‘후니어스 빈트너스(Huneeus Vintners)’의 컬트 브랜드다. 그룹의 최고급 브랜드로 출범한 만큼, 독립된 자체 포도밭과 자체 와이너리를 가진 에스테이트다. 와이너리는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의 심장부인 나파 밸리의 한 가운데 위치한 러더포드(Rutherford) 구역에 있다. 나파 밸리는 서편의 마야카마스 산맥과 동편의 바카 산맥의 화산 활동과 그 한 가운데를 흐르는 나파강의 퇴적 활동으로 형성된 복잡 다양한 지질 구조와 다채로운 토질을 가진 매우 특별한 와인 산지다.
러더포드 구역에서도 살짝 동편으로 위치한 퀸테사 농장 영지는 바카 산맥의 화산 활동과 나파 강의 활동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 마치 나파 밸리에서 가장 특혜를 받은 지역처럼 ‘나파 밸리의 작은 축소판’ 같은 곳이다. 실제로 113ha 부지의 농장은 토질, 생물다양성, 채광, 미세 기후 여건이 매우 다양하다. 이 땅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회사 창업자인 어거스틴 후니어스는 이곳이야말로 세계적 품질의 명품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와이너리의 입지 조건으로 완벽하다는 것을 간파했다.
와이너리 이름 ‘Quintessa’는 매우 철학적인 이름으로서, ‘Quinta Essencia(제5원소)’라는 단어와 그로부터 파생된 ‘Quintessence(진수, 정수)’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우주와 세상을 구성하는 흙, 공기, 물, 불의 4가지 원소와 추가적으로 존재한다는 다섯 번째 제5원소를 의미하는데, 퀸테사 와이너리에서는 이를 ‘영혼(Soul)’으로 설명한다.
퀸테사 농장의 테루아
퀸테사 농장이 소재한 러더포드 마을은 남북으로 좁고 긴 형태의 나파 밸리에서 중앙에 위치한다. 퀸테사 농장의 오른편에는 바카 산맥이 있고, 왼편에는 나파 개천이 흐른다. 오른 편에 있는 바카 산맥은 퀸테사 농장의 지질학적 요소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준 모태와 같은 존재다. 실제로 퀸테사 농장 토양의 상당 부분이 바카 산맥의 화산 활동의 영향을 받았지만, 크게 3종류의 주된 토질 특성으로 구분된다.
먼저 고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오른편 언덕은 바카 산맥이 오랜 세월 무너져 내리면서 형성된 지질구역으로서 순수한 하얀 색상의 화산재 토양이다. 이곳의 척박한 토양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은 장기 숙성력과 미려한 질감을 갖는다. 가운데 중앙 구역(Central Hills)은 화산토 지질을 공유하면서도 석영과 백악, 흑요석 자갈이 많은 것이 특징이며, 약간의 점토질도 포함돼 있다.
이 구역은 와인메이커 레베카 와인버그가 선호하는 구역 중 하나며, 까베르네 소비뇽에게 최적의 장소로서, 농축미와 집중도가 뛰어나며 동시에 유연하고 매끄러운 느낌의 타닌감을 부여한다. 마지막 타입은 가장 왼편의 나파천 쪽 포도밭으로서, ‘천변하안(Bench)’이라고 불리는 구역이다. 이곳 토양은 나파천에 의해 형성된 지질로서, 대부분 점토질이며 양분이 많다. 단단한 조직과 ‘러더포드 더스트(Rutherford Dust)’라고 부르는 독특한 고유한 먼지 느낌을 갖게 한다.
이렇게 섬세하게 관리되는 26개 각 구획의 토양의 나이와 바위의 나이는 최종 와인의 특성과도 관련이 된다. 또한 와이너리는 유기농 농업 철학에 깊이 심취해서, 1990년대부터 친환경 유기농법을 시작했으며, 1996년부터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으로 전환했다. 포도밭의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 유기 비료와 생태 영농 비료(Biodynamic Preparations)를 비법대로 소뿔에 넣어 6개월 땅 속에서 숙성시킨 후, 물에 섞어 뿌린다.
퀸테사 레시피
현재 농장은 약 65ha가 포도밭으로 조성됐으며,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까베르네 프랑, 쁘띠 베르도, 까르므네르 등 5종의 보르도 품종이 모두 26개 구획(Vineyard Blocks)으로 나눠 식재, 관리되고 있다. 모든 포도밭은 유기농법과 바이오다이내믹 농법 철학에 따라 경작되며, 각 구획의 뉘앙스를 보존하고 강화시키기 위해 각 포도밭별로 독립적으로 수확되고, 양조한다. 산도를 보전하기 위해 모든 포도는 새벽 일찍 신선한 상태에서 수확, 신중한 선별을 거쳐 중력 낙차를 활용해 자연스럽게 발효조로 이송된다.
발효에는 오크 탱크와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 그리고 콘크리트 탱크가 빈티지 특성에 따라 적절히 활용된다. 발효가 끝난 와인은 지하 셀러의 오크통에서 22개월 정도 조용히 숙성된다. 오크통은 밀도가 조밀한 프랑스 중부 지방의 오크숲에서 자란 목재만을 사용한다. 새 오크의 비율을 꾸진히 줄여 현재는 약 60% 정도만 새 오크통을 사용한다. 최종 블렌딩은 품종, 고도, 토양 타입에 따라 수십 개의 샘플을 마주하고 테이스팅을 하며, 매해 공통의 최고의 퀸테사 표현을 위해 최적의 블렌딩 비율을 결정한다. 병입 후에도 1년 이상 숙성하니, 통합 3년 후에야 시장에 출시되는 것이 퀸테사 레드 와인이다.
퀸테사 2021 Quintessa, Rutherford, Napa Valley
퀸테사 2021년 빈티지는 비가 가장 적게 내린 빈티지 해의 특성을 잘 표현한 교과서적 레드 와인이다. 2021년 퀸테사는 까베르네 소비뇽 91%, 까베르네 프랑 4%, 까르므네르 3%, 메를로 1%, 마지막으로 쁘띠 베르도가 1% 블렌딩됐다. 영지 내의 각 품종들이 모두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배려했다.
글라스에 따르니, 선명한 흑자줏빛 컬러가 와인의 농축미와 깊이감을 드러내 주며, 시간의 추이에 따라 응축됐던 향이 글라스에서 장엄하게 퍼지는 것이 느껴진다. 싱그런 블랙베리와 블랙커런트는 감미로운 건포도와 블루베리 잼의 이국적 향기와 조화를 이뤘고, 라벤더, 말린 허브, 흑연과 재, 화산재 광물질 표현이 중간 향의 고상함을, 그리고 다크 초콜릿과 코코아, 모카, 파이프담배의 구수하며 감미로운 향이 마지막 화려함을 장식한다.
생동감 있는 산미와 부드러운 감미의 조화가 입안 전반을 감싸며, 미디엄 풀바디로서 압도적이지 않고 쫄깃하며 육즙이 풍부한 타닌이 길고 매우 섬세한 질감을 선사한다. 입안에서는 과도한 무게감과 거친 부분이 없이 세련되고 섬세하며 맛있고 우아하고 정교하다. 5년 이후부터 30년 정도까지 즐길 수 있는 다재다능한 레드 와인으로 평가된다. 이런 점에서, <Wine Enthusiast> 매거진은 이 빈티지에 ‘100점 만점’을 준 듯하다. 기념비적 퀸테사다.
Price_ 60만 원대 예정
일루미네이션 2023 Illumination, California
2년 전에 필자는 와인메이커인 레베카로부터 새로운 와인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 화이트 와인의 출시를 전해 들은 바 있다. 2002년 영지에 소규모로 식재한 소비뇽 블랑과 약간의 세미용을 블렌딩해 보르도 블랑 스타일을 구현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약 200상자밖에 생산되지 못해, 나파 밸리에서는 가장 희귀한 화이트 와인이 될 것 같았고, 당연히 한국 시장 출시는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해 2023년 빈티지로 국내 시장에 첫 선을 보였다. ‘일루미네이션’이라는 멋진 이름은 레베카가 소비뇽 블랑 품종을 관찰하다가 얻은 이름인데, 소비뇽 블랑은 익지 않았을 때는 껍질이 희미하고 탁한데, 수확할 때쯤 잘 익으면 환하게 빛난다고 한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이름이며, 화려한 레이블 디자인은 6C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발견된 수도원의 책자에 있는 <켈트 이미지 북>에서 찾은 것이라 한다. 화려하고 복잡하고 정교한 레이블은 곧 일루미네이션 와인의 테이스팅과 기묘하게 일치된다.
블렌딩 비율이 매우 특별한데, 일반 소비뇽 블랑 58%에 복숭아, 구아바 등 이국적 화려한 향이 돋보이는 ‘소비뇽 블랑 뮈스케(SB Musqué)’라고 하는 타입을 32% 블렌딩했다. 나머지 10%는 세미용을 섞어 고급 화이트로서의 기품과 적절한 무게감을 얻었다. 나파 밸리의 높은 기온을 고려해 산도를 보존하기 위해 유산발효를 차단했으며, 복합미와 꽃향을 더하기 위해 소량의 아카시아 나무통을 사용했다. 발효 과정에서도 효모 잔해 등 미세 앙금을 저어주며 바디감과 복합미를 끌어 올렸다. 그 결과 잘 익은 멜론, 귤, 핑크 자몽의 노트에 바닐라, 삼나무, 부싯돌 미네랄, 잔디풀내음이 특징적으로 완성됐으며, 높은 산미와 함께 원만한 볼륨감이 안정감있는 바디를 형성하고, 끝없이 입맛을 다시게 하는 매력 만점 캘리포니아 소비뇽 블랑이다.
Price_ 20만 원대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