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선의 Hospitality Management in Japan] 호텔 불모지의 나라(奈良)를 구하라 - 시스이 럭셔리 컬렉션 나라

2024.05.24 08:37:24

 

전국 1위의 관광지, 호텔 수는 최저


일본의 고도로 불리는 나라(奈良)는 토우다이지(東大寺)와 호류지(法隆寺) 등 국보급 건조물의 수가 교토를 넘어서 일본 전역에서 1위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리고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의 수도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역사의 도시로 불리는 나라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오는 곳일 뿐만 아니라, 연 평균 약 3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나라에는 베스트가 아닌 워스트 1위로 꼽히는 부분도 있다. 바로 일본 전국에서 호텔의 숫자가 가장 적은 관광지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지역에 가장 숙박시설이 적을 수 있을까. 

 


실제로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에 나라를 찾는 80% 이상의 관광객들은 숙박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교토와 오사카에 거점을 두고 나라는 당일치기로 방문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은 나라공원 주변을 둘러보고 상점가를 한 바퀴 돈 후 그냥 떠나기 마련이다. 그래도 나라를 찾는 당일치기 관광객은 많으니 상점가의 상황은 좀 낫지 않을까 싶지만, 상점가의 실상을 보면 수익도 관광객 수에 비하면 크지 않은 편이다. 그 이유는 바로 나라 특유의 장사 형태인 ‘다이부츠쇼우호우(大仏商法 대불상법)’ 때문이다. ‘다이부츠쇼우호우(大仏商法 대불상법)’이란 예로부터 ‘거대한 불상이 있어서 고객을 끌려는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나라에는 고객이 모여 들었다.’는 뜻이다.

 

 

때문에 나라 상인들에게는 손님을 모으려 굳이 노력하지 않는 소극적인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지금도 나라에 가보면, 오사카나 교토 등의 인근 지역과는 달리 상인들은 장사에 소극적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나라를 많이 찾지만 소비를 할 만한 매력적인 곳은 드물고, 이는 짧은 체류시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관광객이 감소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나라현도 더 이상 한가하게 ‘다이부츠쇼우호우(大仏商法 대불상법)’를 논하며 고객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관광객을 당일치기가 아닌 오랜 시간 동안 체류하도록 하고 필수불가결한 숙박시설을 늘리기 위해, 리조트 기업과 호텔 부동산 관련 기업을 모으는 유치 작전을 시작했다. 나라현의 야마시타 지사는 약 80명의 사업자들 모아 지자체가 20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함으로써 호텔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로 최근 탄생한 것이 바로 ‘시스이 럭셔리 컬렉션 나라(Shisui a Luxury Collection Nara)’다. 

 

 

역사적인 건물의 가치를 발전시킨 쿠마켄고


2023년 하반기에 오픈한 시스이 럭셔리 컬렉션 나라는 일본 유수의 명승지로 불리는 나라공원의 서쪽의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절 중 하나인 토우다이지(東大寺)에도 인접해 있어 역사와 문화를 즐기기 쉬운 지리적 요건을 갖춘 곳에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시스이 럭셔리 컬렉션 나라의 모태가 되는 나라현 지사 공관은 원래 코후쿠지(興福寺)의 토지였다. 메이지 시대에 전개된 ‘하이부츠키샤쿠(廢佛毀釋)’ 즉 도가 지나친 불교의 보급 운동을 억제시키는 정책으로 절의 토지는 민간에게 매각됐다. 이 토지를 구입한 사람이 승려에서 사업가로 변신해 큰 재산을 축적한 쇼호인히로유키(正法院寛之)다. 쇼호인이 자택과 정원으로 지은 집을 나라현에 헌납해 1922년부터는 나라현 지사 공관으로 사용됐다. 그리고 2023년,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의 한명인 쿠마켄고의 손에 의해 호텔로 탈바꿈하게됐다.

 


쿠마켄고는 나라현 지사 공관이 가진 역사적 건조물의 정취를 그대로 살리면서 호텔동으로 리노베이션했다. 특히, 쿠마켄고는 이곳의 역사적 의미를 남기기 위해 공을 들였는데, 호텔 프런트의 정면에 학과 계절의 나무들로 그려진 그림을 그대로 남겼다든지, 패전 후 쇼화 천황이 연합군에 항복하는 문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비준서’에 서명한 공간 등을 그대로 살린 점 등을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영빈관으로 사용되던 라운지 ‘네이라쿠(寧楽)’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매력을 담아냈다. 예를 들면, 사원이나 신사, 성 등에 사용되던 천장 디자인을 채용했고, 기둥의 속이 그대로 보이는 ‘신카베(真壁) 구조’ 또한 특징적이다. 전체적인 디자인의 분위기로는 1920년대의 가옥의 느낌을 담아냈다. 즉, 화려함과 모던함을 동시에 추구한 것이다. 

 


쿠마켄고에 의해 새롭게 탄생한 객실에는 특히 모던한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다. 평균 46㎡의 넓은 객실 공간은 일본의 전통 공예 기술을 살린 ‘아시라이(あしらい)’ 즉 정형화된 형태로 조합된 디자인에 새로운 맛을 더해서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객실 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하라(いはら)’라고 불리는 기법을 디자인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하라는 곡선이 교차하는 접점을 이어서 만들어낸 전통적인 디자인으로 침실과 목욕탕의 경계에 있는 벽의 디자인에 사용됐다. 그리고 객실 창밖에는 풍부한 초록이 액자처럼 보여서 아름다움이 느껴지고, 심적으로 치유되는 느낌을 얻을 수 있도록 돼 있다. 

 

 

공간에 맞춘 다이닝


호텔에는 2곳의 레스토랑이 있다. 나라의 식문화를 활용한 레스토랑 ‘Suiyou’에서는 프랑스의 3성급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은 총괄셰프인 마츠세요시오가 완성한 신감각 코스가 요리가 제공된다. 예를 들면, 나라의 향토요리인 ‘아스카나베(飛鳥鍋)’, 새로운 형태의 면 요리 등 현지의 식재료나 조리법을 도입해서 프렌치 코스 요리로 선보이고 있다. 레스토랑 공간의 디자인은 1920년대 다이쇼 시대의 정취를 담아내고 있다.

 


또 다른 레스토랑으로는 지사 공관을 개조한 스시 & 바 ‘Shousou’다. 두꺼운 삼나무 카운터, 토벽과 높은 천장, 상부에는 통기창을 만들어 중후함이 느껴지는 역사적 공간에서 일본의 스시 문화를 맛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요리의 방법에 있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즉, 프랑스어로 ‘데크리네존’ 즉 하나의 재료를 두 가지 조리법으로 요리하는 형태를 도입했다. 예를 들면 새우는 살짝 끓여 초밥이 돼 등장하고, 다음에 껍질은 튀김으로 제공된다. 이렇게 각각의 재료를 두 가지 요리로 만들어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외의 공간으로는 에도시대에 건설된 가옥을 개조해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는 라운지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가옥을 개조했을 뿐만 아니라, 차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정원을 산책해야만 하도록 공간을 디자인했다. 일반적으로 라운지가 정원을 조망하는 형태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정원을 실제로 둘러보고 조망하는 두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야말로 공간 하나하나를 무심히 지나가지 않고 역사와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고도 나라 호텔의 새로운 여명기


연간 관광객 3500만 명, 하지만 호텔 수는 일본에서 최하위. 이러한 불균형으로 인해 당일치기 관광지로 여겨졌던 나라. 그러나 지금 나라는 지자체의 리더십 아래에 하나 둘 새로운 호텔의 오픈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나라에는 이미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문화 콘텐츠가 있고, 나라공원에서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는 사슴들과 교류할 수 있는 흥미로운 요소가 있기 때문에, 숙박시설의 증가는 체류 시간을 늘리는 형태로 관광객의 패턴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스이 럭셔리 컬렉션 호텔, 나라의 등장은 향후 나라의 당일치기 관광을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_ www.marriott.com/en-us/hotels/osanl-shisui-a-luxury-collection-hotel-na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