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지역, 키소의 부활
나가노현 키소(木曽)에는 에도시대의 숙박 시설이었던 구옥들이 예전 그대로 보존돼 있다. 키소는 당시 도쿄에서 오사카를 잇는 주요 도로였던 나카산도의 길목에 위치해 있어, 여객들이 하룻밤을 묵어가는 숙박지(츠마고주큐)로 번성했었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에는 임업, 칠기 등의 사업으로 풍요로운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인구 감소로 인해 임업과 칠기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줄어들면서 지역은 쇠퇴했고, 점점 과소화가 진행되는 한계부락으로 변화돼 갔다.
이런 변화에 학자들을 중심으로 여객들의 오랜 안식처로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 키소의 쇠퇴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이에 지자체와 협력을 통해 키소의 오랜 가옥들을 상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업이 전개됐다. 학계, 지자체 그리고 주민들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최근에는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을 획득한 가게들도 출현했다. 조금씩 키소가 관광 지역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주식회사 MENEX가 모든 면에서 정성이 깃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콘셉트로 한 고민가 호텔인 제나기(Zenagi)를 최근에 오픈했다.
그런데 제나기는 단순히 오래된 고민가를 리노베이션해 숙박공간으로 제공하는 흔한 호텔과는 다른 요소가 있다. 제나기는 인테리어, 음식, 액티비티 그리고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정성에 정성을 기울이는 그야말로 ‘정성’이라는 키워드를 최대치로 구현한 호텔이다. 호텔의 모든 부분과 요소 하나하나에 스토리를 담아냄으로써 다른 고민가 호텔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제나기는 ‘호스피탈리티’와 ‘오모테나시’를 넘어서는 것이 무언가를 고민한 끝에 그것은 바로 ‘정성’을 쏟아 붓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정성을 쏟아 붓는 호텔의 탄생
제나기를 오픈한 주식회사 MENEX는 원래 어드벤처를 활용한 지역 살리기 사업을 전개해 온 신생기업이다. 모험을 테마로 한 회사다 보니, 직원들은 세계에서 가혹하기로 유명한 어드벤처 레이스인 돌로미테만(Dolomitenmann)에 참가해 완주하거나 다양한 종목의 올림픽에 참가한 적이 있는 스포츠맨들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이들 어드벤처팀을 이끄는 회사 대표인 오카베(岡部統行)는 원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을 해온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기도 했다. 그렇다면 숙박업과 무관한 어드벤처를 테마로 한 이 기업이 어떻게 ‘키소’라는 멀고먼 산골에 오픈하게 된 것일까?
오카베는 어느날 NHK로부터 ‘돌로미테만’이라고 하는 오스트리아의 알프스에서 행해지는 어드벤처 레이스를 테마로 한 다큐멘터리 제작 의뢰를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힘들고 가혹한 레이스 중의 하나로 알려진 이 경기는 4명이 한 조로 도전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오카베는 처음에 네 명의 팀원들이 레이스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희로애락을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막상 취재를 진행하면서 그의 마음을 빼앗은 것은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었다. 원래 이곳은 별반 내세울 것 없는 산골 마을이었다. 그런데 레이스가 열리면서 경기가 유럽 전역에 방영됐고, 그 효과로 인해 마을의 상황은 바뀌었다. 산골 마을에 매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레이스가 진행되는 때만 마을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관광객들은 방송으로 본 마을의 자연을 실제로 보고 감탄했고, 마을 주민들이 하던 놀이들을 체험하면서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야말로 마을 전체가 하나의 리조트로 된 것이다. 관광객이 늘어나고, 매년 레이스가 열리는 과정을 보면서 마을에 사는 아이들도 레이스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그런데, 오카베가 감동을 받은 것은 관광객의 증가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었다. 한 주민은 오카베에게 이렇게 말했다.
“젊은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나이든 우리는 여기서 죽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우리는 살고 있는 동네가 좋게 남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멋진 레이스가 계속 열리니 주민들도 어떻게든 동네를 발전시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오카베는 주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구가 감소해서 동네가 사라지는 걸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외부인의 시점이라면 납득이 가지만, 그곳에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의 시점에 서는 동네를 살리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오카베는 키소의 산골 마을에 모험을 즐기는 친구들과 정성을 담은 호텔을 만들어, 동네를 살리는 길을 모색하기로 했다.
제나기의 콘셉트 ‘4가지의 ZEN’
제나기는 정성을 담은 호텔을 만드는데 중요한 콘셉트로 4가지 각각 다른 ZEN에 주목했다. 첫 번째 ZEN의 요소는 ‘자연’으로, 키소의 산과 숲과 강으로 이뤄진 대자연을 담았다. 두 번째 요소는 ‘감사’로, 농부, 어부 그리고 사냥꾼이 소중히 기른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있다. 세 번째 요소인 ‘휴식’은 미니멀리즘에 충실한 공간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뜻한다. 네 번째의 요소인 ‘체험’은 지역 살리기와 연결된 선행과 고객을 기쁘게 하는 의미를 지닌다. 제나기는 이와 같은 4가지 다른 의미를 가진 ZEN을 융합해 공간, 식사 그리고 활동에 담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제나기에는 이와 같은 ZEN의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해 냈을까? 예를 들어 제나기는 기차가 멈추는 역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호텔에 도착하는 길목에 어떤 표지판이나 간판을 남기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호텔에 도착하더라도 제나기의 간판은 없다. 왜 제나기는 호텔을 알리는 어떠한 표식도 만들지 않은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오카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굳이 호텔에 오는 길 안내를 표시하지 않는 것은 외국인 손님의 경우는 저희가 마중을 나가니 표지판이 필요 없고, 일본인 손님의 경우는 호텔의 표시를 보느라 오는 길에 보이는 경치를 보는 여유를 빼앗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나기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선’의 콘셉트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것에 주안을 뒀다. 그리고 특히 2박 이상 하는 경우를 생각해 식사, 액티비티 그리고 공간의 연출에 고객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그리고 새로움을 항상 만끽하도록 구성했다. 예를 들면, 요리의 경우 지역의 재료를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매일 다른, 그리고 새로운 구성의 요리를 선보였다. 이렇게 정성을 쏟은 결과 제나기는 고객들이 머무는 하룻밤이 항상 특별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키소’라는 멀고 먼 산골에 1박에 12만 엔이 넘고, 오직 한 팀만을 받는 숙박시설이지만, 제나기를 찾는 고객들은 많은 호텔들 중에서도 이곳에서의 경험을 최고로 꼽는 코멘트가 늘어났다.
아낌없이 정성을 담다
키소의 산골 마을에는 제나기의 오픈 이후 인바운드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바운드 관광객이 키소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요리사가 지역의 재료를 바탕으로 키소의 공기, 물, 서리가 어우러지는 요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제나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호텔의 인테리어에 있어서도 하나같이 감탄을 자아내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오카베는 이러한 고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돌로미테만에서 봤던 느낌을 키소에 맞게 담아내는 결과를 창출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나기는 이렇게 고객들의 높은 만족도를 얻어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산골마을에만 있는 가치를 단순히 고객에게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온갖 정성을 담아서 제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작은 마을, 작은 호텔이기 때문에 정성을 아낌없이 쏟아 부을 수 있고 그것이 고객의 만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호텔의 명성 그리고 도시의 명성을 보고 그곳을 찾고는 한다. 하지만 제나기는 지역의 명성도, 도시의 명성도 없다. 그렇지만 제나기에게는 지역과 호텔의 공간에 맞는 정성을 들이는데 한 치의 망설임이나 게으름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성실함과 노력으로 오카베가 영감을 받았던 돌로미테만의 느낌이 키소에서 재현되는 결과가 창출됐다고 생각된다.
사진 출처_ https://zen-res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