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파칭코 점포들의 도산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통계 조사에 따르면, 2022년 파칭코를 운영하는 기업의 수는 전년 대비 10.9% 감소한 1508곳으로, 코로나19 이전에 비교하면 무려 25%가 감소한 수치다. 시장 규모도 300조 원에서 140조 원까지 떨어졌다고 하니 그 감소폭은 160조 원에 달한다. 이와 같은 파칭코 사업의 하락세 속에서 업계 1위 기업으로 불리는 ‘마루한(マルハン)’은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마루한은 일본을 대표하는 재일교포 기업가인 한창우 회장이 맨손으로 일궈낸 재팬 드림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는 기업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중의 하나인 마루한이 본업인 파칭코 외에 호텔 사업에 진출해 이목을 끌고 있다.
돈을 주어 담는 비즈니스로 불리던 파칭코 사업을 하던 기업이 왜 호텔 비즈니스에 진출한 것일까? 이번 호에서는 파칭코 기업이 호텔 사업에 배팅한 그 배경과 그들이 처음으로 인수한 료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한계점에 달한 파칭코 비즈니스
기업 조사 회사인 ‘테이코쿠데이터뱅크(帝国データバンク)’는 2022년 파칭코 기업들의 수익상황을 분석했다. 그 결과 2020년까지 70% 이상의 파칭코 기업들이 흑자를 기록했지만, 2021년 들어 흑자 기업 수가 40%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파칭코 사업은 하락세에 부딪히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기존 고객들을 유지하기 위해 도입하는 새로운 기계들의 구입비용이 매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칭코 기업들은 고객들이 싫증을 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새롭게 개발된 기계들을 앞다퉈 도입해 왔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면 이를 사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새롭게 출시된 파칭코 기계들의 경우, 기계 가격만 한 대 당 400만 원, 그 외 각종 비용과 수수료가 들어간다. 고객을 모으기 위해 점포들은 이렇게 비싼 기계를 평균 10대 정도 구입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점포 당 수천만 원의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는데 드는 비용의 증가는 자연히 수익률의 압박으로 이어졌고, 파칭코 기업들 모두의 재무상태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파칭코 기업들의 상황을 악화시킨 결정적인 요인은 따로 있는데, 그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정부가 파칭코에 대한 새로운 규제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란 단적으로 설명하면 2021년부터 파칭코 기계에 따라 설계된 대박이 터질 확률을 낮추도록 지시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이 유독 다른 국가들보다 도박 중독 인구가 많다는 점에 주목해 사행성 오락의 대명사인 파칭코에 대한 규제 카드를 꺼냈다. 그렇게 되자 파칭코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고 자연스럽게 시장의 축소로 이어졌다.
게다가 스마트폰의 보급 이후 다양한 디지털 게임이 나타나면서 젊은 세대들의 파칭코 이용 수요가 감소한 것도 세 번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파칭코 기업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됐고, 마루한이 선택한 길은 바로 호텔 사업이었다.
파칭코 기업, 오베르주 비즈니스에 뛰어들다
파칭코 사업이 전성기를 이루던 때 마루한에게는 현금 자산이 넘쳐났다. 이때 마루한은 일본 넘버원 골프장으로 불리던 ‘태평양클럽(太平洋クラブ)’이 경영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도 태평양클럽의 골프 회원권은 일본에서 부유층 중의 부유층임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태평양클럽의 경영권은 마루한에게 매력적이었다.
마루한이 파악한 당시 태평양클럽은 경영난에 빠진 여느 골프장이 그렇듯 코스 관리 등의 운영이 조잡해 회원으로부터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익을 올리고자 골프장의 운영진은 눈앞의 매출에만 눈이 멀어 회원이 아닌 비지터(Visitor)를 늘렸고 결국 회원들의 불만은 더 악화됐다. 마루한은 바로 이때 해외펀드를 이용해 태평양클럽의 주식을 인수해 경영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풍부한 현금을 가지고 클럽 회원들을 위한 고품격의 골프장으로 재탄생시켰고, 태평양클럽의 가치는 되돌아왔다. 지금도 고텐바(御殿場)에 위치한 태평양클럽은 일본의 카루이자와골프클럽과 함께 최고 명문 골프장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후 마루한은 최근 들어 파칭코산업이 침체에 빠지자 이러한 태평양클럽의 성공 체험에 주목해 오베르주(숙박과 식사를 제공하는 형태, 프랑스어) 비즈니스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마루한이 오베르주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진 배경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고급 프렌치 ‘히라마츠(ひらまつ)’의 경영이 어려움에 처했기 때문이다. 히라마츠 창업자인 ‘히라마츠히로토시(平松博利)’ 씨가 도쿄의 니시아자부에서 ‘히라마츠테이’라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1982년 오픈한 이후, 당대의 정재계 인사를 비롯해 일본의 상류층이 찾는 곳으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2001년에는 파리에 진출해 미쉐린 스타를 획득하면서 파리에서 수행 기간을 거쳤던 셰프가 외국에서 활약한 뒤 다시 파리로 돌아와 미쉐린을 획득한 유일한 사례로 프랑스에서도 주목 받았다. 이러한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히라마츠는 오르베주 비즈니스를 견인하는 기업으로 성장해, 도쿄의 주식시장 토쇼 1부에 상장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면서 히라마츠 내에서 내분이 발생했고 결국 경영권은 외국계 펀드에 넘어갔다. 히라마츠의 소식을 접한 마루한은 히라마츠 역시 태평양클럽처럼 재생시키면 자신들이 오베르주 비즈니스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2022년 외국계 펀드로 부터 히라마츠 주식을 전부 인수해 본격적인 오베르주 비즈니스에 착수했다.
마루한의 전략은 하나, ‘명품’에 투자하라
마루한은 히라마츠의 주식을 전부 인수한 후 야마나시에현(山梨県)에서 히라마츠가 전개하고 있던 료칸 ‘후에부키카와 온센 자보우(笛吹川温泉 坐忘)’의 재생에 뛰어들었다. 마루한은 150년의 역사를 가진 료칸의 재생을 위해 먼저 리조트 분야의 명품 기업에서 활약한 인재를 스카웃했다. 그 중에 한 명이 아만리조트의 창업자와 함께 일을 해온 오카유다이였고, 또 다른 한명은 오토그랜덜 글로벌어워드에서 Best General Manager in Japan을 수상한 요시나리 타이치였다. 마루한은 이 두 사람을 영입한 후, 료칸을 부유층 타깃으로 리노베이션해 나갔다.저장 후 닫기
정원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노천온천을 가진 객실은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하는 부유층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수정해 나갔다. 동시에 히라마츠의 레스토랑을 활용해 식음료 부문을 강화했다. 이러한 노력은 오픈하자마자 수치로 나타났는데 OCC, ADR, 영업이익 모두 히라마츠 경영 때를 훨씬 웃돌기 시작한 것이다.
후에 부키카와 온센 자보우의 스타트가 순조롭자 마루한은 호텔, 료칸사업 뿐만 아니라 글램핑 사업, 골프 사업 등의 관광 레저 영역에 본격 진출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 호텔사업을 확장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인수합병 안건과 파트너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업종 불문하고 호텔 사업에 진출하는 중
파칭코 그룹 마루한이 호텔사업에 뛰어들었듯이 현재 일본은 다양한 업종이 호텔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호텔 비즈니스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호텔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기업들이 호텔사업에 나서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호텔들이 생기는 현상은 분명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마루한처럼 현금 자산이 풍부한 기업들의 경우 자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해 하드웨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면에서도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힘은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큰 요소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아만리조트 같은 일류 리조트에서 기획과 서비스를 경험한 인재를 확보한 것과 같은 경우를 들 수 있다. 게다가 이미 마루한은 태평양클럽과 같은 명문 클럽의 성공 경험이 있고, 이러한 경험적 자산 역시 히라마츠와 자보우와 같은 오르베주 비즈니스의 도전하는데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인이다. 파칭코 그룹의 호텔사업에 대한 배팅의 성공 여부는 향후 다양한 기업들의 호텔 진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