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엽 변호사의 Labor Law Note #5] “저 직원 뽑지 마세요” , 악소문 낸 전 직장 동료, 무죄 받은 사연

2023.01.24 09:00:10

 

Plastic Straws Aren’t the Problem


스타벅스를 기점으로 많은 커피전문점들이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 빨대로 교체했다. 종이 빨대로 교체하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작업인데 이게 가능한 곳은 선두주자인 스타벅스 정도다. 2018년 첫 종이빨대를 도입한 스타벅스는 종이 빨대 사용을 통해 연간 126t, 1억 800만 개 이상의 플라스틱 빨대가 절감됐다고 홍보했다.


많은 국가에서 플리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한다. 영국은 2021년부터 플라스틱 빨대가 전면 금지됐다. 그런데, 커피의 본령(本領)이 무엇인가. 맛이다. 어떻게 마시나. 컵으로 마시거나, 빨대로 마신다. 그런데 종이 빨대는 음료와 함께 담긴 채 몇 분만 지나도 흐물흐물해지고, 맛까지 변화시킨다. 적어도 종이 빨대는 환경이 아닌 커피 자체에 충실한 아이템은 아니다.


그럼에도 환경을 위해서라면 인내할 수 있겠다. 단기적 미각 희생으로 생태계를 살릴 수만 있다면. 플라스틱 폐기물로 죽는 바다거북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연간 1000마리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사실 검증, 없다. 어느 전문가가 말하고 그걸 단체가 공표해 언론사가 받아쓰면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플라스틱으로 죽는 바다거북이 수천 마리 죽는 것에 분노하지만 어부의 어획으로 연간 25만 마리의 바다거북이 죽는 사실은 간과한다. 이를 지적하는 블룸버그 칼럼의 제목이 ‘Plastic Straws Aren’t the Problem’인 이유다. 


자 이제, 질문을 바꿔보자. 바다거북을 살리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플라스틱 빨대가 해양 쓰레기의 0.03%에 불과하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낚시 그물, 어획 문제를 먼저 논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듯, ‘환경’이란 테마는 언제나 쉽게, 그리고 능숙하게 우리를 컨트롤한다. 때로는 멀쩡한 빨대가 흐물흐물해져 우리에게 사소한 짜증까지 느끼게끔.

 

고용주의 직원 평판 체크 위한 블랙리스트 작성
‘처벌된다’


또 하나 능숙하게 상대의 감각을 사로잡는 게 있다. ‘평판’이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업무는 야구선수처럼 타율, 방어율, 홈런 등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의 업무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근로자를 고용하는 고용주 입장에선 서류 1장과 1번의 면접만으로 평생 함께할 직원의 능력을 알 수가 없으니 취업여부 판단기준인 ‘평판 조회’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이를 정리하여 만들어진 게 바로 ‘블랙리스트’다.


바닥 좁은 호텔업계를 예로 들어보자. 고용주와 감정대립이 심한 상태로 어느 근로자 A가 퇴사하는 경우 동종업계 이직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고용주들 사이에 ‘채용 블랙리스트’가 돌기 때문. 개인의 주관적 평가가 근로자의 삶의 터전조차 파괴할 수 있기에, 우리 법은 이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정말 뛰어난 근로자라면, 어느 회사에 입사하더라도 잘 적응해 능력을 십분 발휘할 것이다. 그런데 법은 이런 예외가 아닌 평균에 집중한다. 어느 호텔에서 능력 발휘를 잘 못했고 동료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던 직원이, 다른 호텔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당장 축구만 보더라도, 클럽 하나 옮겼을 뿐인데 펄펄 날거나, 혹은 이상할 정도로 부진하는 선수들이 있는 것을 보면 환경 역시 중요해 보인다.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일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를 일으킨 근로자는 다른 사업장에서 같을 것 아닌가. 고용주에게도 채용을 거부할 권리가 있으니 그대로 둬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위와 같은 의문은 단선적이고, 근시안적이다. 만약 특정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작성되는 ‘채용 블랙리스트’가 합법이라면, 포획되는 이들은 문제되는 일부 근로자가 아니다. 당신을 포함한 ‘전체 근로자’다. 성실하게 근로해도 고용주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다. 어느 악덕 고용주는 이를 갖고 협박까지 할 수 있다.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전 직장 동료의 “A 직원 뽑지 마세요” 투서
처벌될까? 


그럼 고용주가 아닌 직장 동료는 블랙리스트를 만들거나, 혹은 투서로 음해해도 괜찮은걸까. 이를 막고자 근로기준법 제40조는 “누구든지”라는 조건을 붙였다. 고용주뿐만 아니라 동료 근로자에게도 적용된다. 퇴사한 A를 싫어한 전 직장동료 B가, A가 새롭게 취업할 호텔에 A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자료를 작성해 송부했다면 이는 정확히 근로기준법 제40조 위반으로 처벌되는 행위다. 즉, 사용자, 근로자, 제3자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A가 취업하고 이틀 뒤 B가 A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자료를 작성해 송부했다면 어떨까? 근로기준법 제40조는 소위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사용자 또는 제3자에 의해 만들어진 근로자명부가 해당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이미 취업이 됐으므로 취업을 ‘방해’한 사실이 없어 죄가 되지 않는다. 이는 A가 수습사원으로 취업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수습채용자도 이미 근로관계가 성립한 근로자에 해당해 노동법상 근로조건 보호규정이 전면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A 직원 뽑지 마세요.” 악소문 낸 전 직장 동료. A가 취업한 이후라면 취업을 방해한 사실이 없어 죄가 되지 않는다.

 

사족: 소위 장관 혹은 고위공직자 청문회에는 온갖 투서들이 다 날아들고 저 사람은 절대 안 된다며 가족에 사돈까지 신상 공격을 받는다. 이건 왜 괜찮을까. 법 이름을 생각하면 쉽게 해결된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근로기준법
제40조 (취업 방해의 금지)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107조 (벌칙) 제40조를 위반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