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반가운 손님이 한국에서 찾아왔습니다. 유럽에는 이전에도 몇 번의 방문이 있었지만 이탈리아는 처음인 새내기 방문객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한 모양입니다. 특히나 겨울철임에도 불구하고 야외테라스에 앉아있는 오렌지 빛깔의 칵테일을 즐기는 사람들의 강철의지에 더욱 놀란 모양새입니다. “현지인들은 실내보다는 야외를 사랑하고 그것을 즐겨. 핫한 지역일수록 골목길에 와인 잔을 들고 서있는 젊은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어.” 라며 설명을 하고 있는 제 자신도 테라스의 풍경에 매료되고 있습니다. Scene 1#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다빈치의 흔적이 남겨있는 스포르체스코 성을 거닐고 있습니다. 1482~1499년 사이에 밀라노에서 살았던 그의 생애 가운데 1495년에서 1497년에 걸쳐 완성한 그림 최후의 만찬. 매우 낯익은 주제를 전무후무한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이 작품의 장대한 구도와 함께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다빈치 이전의 작가들도 같은 주제를 그려냈지만 레오나르도의 그것은 전혀 다른 형태의 시도였다고 합니다. 가롯유다까지 열두 제자의 무리 속에 포함시켜서 그 열두 제
Prologue# 동장군의 기세가 지구촌을 뒤덮어 버렸습니다. 미국 남부 플로리다 주부터 북부 메인 주까지 동부 전역이 폭설과 한파로 얼어붙어 영하 20도, 체감온도는 영하 40도에서 최대 70도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연일 보도되는 사망자가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혹한은 유럽과 한국도 마찬 가지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난 7일 북아프리카 알제리 서부 사하라 사막에 눈이 내렸다고 하는데요. 지난 40년간 2차례 눈이 내린 것으로 이례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북부지역에도 큰 눈이 내려 많은 관광객들의 발이 고립됐습니다. 겨울이란 계절적 특성을 감안하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예상 밖의 일들은 놀라움을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집밖을 나서면 고생이다’란 말이 실감나는 시기입니다. Scene 1# 얼마 전에는 이런 뜻밖의 여정 때문에 이탈리아 남부의 고양이가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 남부 레체 시에 사는 얼룩 고양이는 평소에 상자 안에 들어가 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문제가 발생한 날도 이 고양이는 주인이 가져온 상자 안에 들락날락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상자 안에 있는 걸 눈치 채지 못한 주인이 그대로 상자를 밀
Prologue# 아침부터 어두컴컴한 하늘은 이윽고 눈을 뿌렸습니다. 12월의 눈은 로맨틱하기 마련인데 왠지 을씨년스럽기만 합니다. 마치 지난달 월드컵 플레이오프의 ‘악몽’이 되살아난 것처럼 말이죠. 2018 러시아 월드컵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이탈리아는 스웨덴과 0-0으로 비기며 60년 만에 월드컵 축구 본선행 티켓을 놓쳤습니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종말’, ‘파멸’, ‘국가적 수치’ 등의 극단적인 단어를 동원해 충격과 실망을 표현했습니다. “월드컵 본선 좌절은 이탈리아 스포츠 역사상 가장 암울한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며 “축구와 함께 살고, 숨 쉬는 이탈리아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을 뛰어넘는 잔인한 타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탈리아에 살다 보면 자연스레 이들의 축구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데요. 반세기 이상 유래없던 일이 벌어진 관계로 현지 친구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이탈리아 축구의 수문장 부폰 선수는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39살 부폰은 축구 인생의 마지막을 러시아 월드컵 무대에서 장식하려 했지만 그 꿈은 끝내 물거품이 됐습니다. 경기 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나 자신이 아니라 이탈리아 축구 전체가 안타깝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Prologue# ‘Winter is coming’ 전 세계의 드라마 팬을 열광시키는 시리즈물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이 드라마틱한 대사가 생각나는 이유는 실제로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콧속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수능을 준비하는 입시생들의 마음도 덩달아 얼어붙기 쉬운 매서움이란. 유독 시험 당일이 다가오면 강추위로 변해버리는 대자연의 질서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도무지 불변의 방정식은 쉽게 깨어지지 않습니다. 징크스는 어느덧 실체가 돼 버렸습니다. Scene 1# 따뜻했던 가을 어느 날의 기억을 끄집어냅니다. 초콜릿 상자에 아껴두고 하나씩 꺼내며 그것의 달콤함이 사라질까 조마조마 하는 아이의 심정으로 말이죠. 지난 호에서 언급했듯이 저는 이탈리아 DALLA CORTE 회사의 주최로 ‘Road to Coffee’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이 힘들었던 탓인지 ‘다시는 이런 기획을 하지 않을 거야’라며 공언했지만 벌써 마음 한 곳에는 이번에 보여주지 못했던 주옥같은 지역과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힘들었지만 분명 좋은 추억이 많이 남았던 게지요.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의도에는 다른 나라
Prologue#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의 패셔니스타들이 밀라노의 거리를 수놓았습니다. 일 년에 두 번 열리는 패션위크 기간이었죠. 공작새 마냥 본인만의 화려함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듯 뽐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모처럼만에 밀라노는 활기가 넘쳐납니다. 패션의 도시란 수식어가 제법 어울리는 시즌입니다. Scene 1# 135개의 첨탑을 지닌 밀라노 성당을 앞에 두고 야외테라스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은 품질을 논하기에 앞서 그 자체만으로 가져다주는 묘한 만족감이 있습니다. 평온함, 내리쬐는 햇살, 그 자체만으로도 휴식인 셈이지요. 꿀처럼 떨어지는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에 설탕 반 스푼을 넣고 잔을 돌려가면서 향을 느끼고, 진한 커피 맛을 혀끝으로 입안 전체로 맛보고, 잔 밑에 가라앉은 설탕을 스푼으로 긁어먹는 방법은 또 하나의 묘미입니다. ‘이탈리아의 커피는 모두 맛있을 거야.’라는 생각은 ‘한국인은 모두 태권도를 잘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커피도 있지만 경기침체와 더불어 치솟는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오르지 않는 커피 가격은 품질의 저하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이십년 전까지만 해도 밀라노의 시
Prologue# ‘500만 명 대피 소동’이란 타이틀을 인터넷 검색엔진을 켜자마자 접하고서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북한의 행보가 유럽에서는 연일 톱뉴스로 다뤄지면서 외국에서 살고 있는 필자로서는 뉴스의 타이틀만으로도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 분명합니다. 500만 명 대피령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카테고리 5등급 최고 위력의 허리케인 ‘어마’였습니다. 때마침 밀라노에도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자연의 무서움을 느끼게 해줄 정도로 퍼붓다가도 지금은 처연하게 느껴질 만큼 밤의 정적을 가르고 있습니다. Scene 1# 최근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 때문에 예민해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의 요동치는 날씨가 뭇 사내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주말의 직장인을 위로해 보려는 심산으로 출발한 영화 한편은 가슴에도 촉촉한 단비를 뿌리고 지나갑니다. 커피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제목의 영화를 마주하는 것은 설레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영화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유년시절 바닷가, 어부인 아버
Prologue# 작가는 픽션이란 소재를 사용해 현실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세계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베니스의 상인’은 위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유명합니다. 영국의 강한 상업과 기독교와 유대교의 종교적 갈등을 빚던 시대의 민낯을 통렬하게 풍자한 작품. 많은 작가들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베니스의 상인’을 뛰어넘는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평을 남겼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된 베네치아는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도시였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애정처럼 말이죠. Scene 1# 저는 지금 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도시를 벗어난 피서지에서의 기고 활동 중이니 말이죠. 실로 오랜만에 ‘주홍빛 베네치아’를 찾았습니다. 수 년 전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베네치아 출신 친구의 초대를 받고 일주일 동안 머무른 기억이 있습니다. 관광객 모드가 아닌 현지인과 함께하는 느림의 미학은 이제와 돌이켜보면 매우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장터마냥 북적이는 여느 베네치아의 골목과는 다르게 갈매기 우는 소리, 가끔 짖어대는 견공의 소리가 고요한 마을 위에 생동감을 선
Prologue# “앗 뜨거 xxx”, 운전대를 잡은 손이 왼손 오른손을 번갈아 가고 반쯤 욕이 섞인 말로 요란을 떱니다. 시동을 걸자마자 창문을 내리고 에어콘을 최대치로 틀어보지만 중화요리의 팬처럼 뜨겁게 달궈진 차내의 공기에 저항하기란 역부족입니다. 쑥 향기만 없을 뿐 바퀴달린 습식 사우나와 함께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기간 즈음 이었나요? ‘하동관’의 뜨거웠던 곰탕 맛에 영혼의 포로가 돼버린 그 날, 아무 생각 없이 놋그릇에 손을 댔다가 단테의 ‘지옥불’을 경험한 찰나의 제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오버랩 됩니다. 모닥불에서 꺼낸 고구마를 들고 있는 마냥 자동차의 핸들을 부여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면서도 시선은 앞을 향해 고정돼 있고, 머릿속은 다른 시공간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Scene 1# 수정체는 도로 위의 풍경을 지속적으로 좌뇌로 보내며 현실을 인식하고 있지만 우뇌는 어제 밤의 감동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카에 이사무 감독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였습니다. 지난 주토스카나의 마사(Massa)란 지역에 출장을 다녀온 탓인지 문득 이 영화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2001년 개봉한 이 영화는 16
Prologue# 뜨거운 태양이 눈부시게 따갑습니다. 인기척 없이 다가온 여름은 출장용 캐리어의 무게를 줄여줬지만 반대로 흐르는땀방울은 늘어났습니다. 인간은 공포심을 느끼면 저체온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는 땀이 인간의 몸에 설치된 훌륭한 냉각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같은 항온동물은 체온이 늘 일정하게 유지돼야 하는데, 날씨가 추워지면 체온 중추가 근육을 흔들어 열을 생산합니다. 반대로 기온이 오르면 땀샘에서 수분을 배출해 기화열에 의한 체온 상승을 막아주는데, 이를 ‘온열성 발한’이 라고 합니다. 체온과 상관없이 인체의 반응을 보여주는 땀은 바로 긴장하거나 두려움을 느낄 때 나오는 ‘진땀’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른바 ‘정신성 발한’입니다. 공포를 느끼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 되면서 심장박동이 빨라져 호흡이 가빠지고, 진땀이나 피부가 끈적거리게 되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런 땀이 피부를 미끄럽게 만들어 상대방으로부터 탈출하기 쉽게 하는 조물주의 배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Scene 1# 여름이면 안방을 점령한 ‘남량특집’ 공포물이 기억납니다. 선풍기와 시원한 수박으로도 달래지 못한 열기를 무서움이란 심리적 에어컨이 달래줬습니다. 하얀 소복에 피 칠갑을 한 여인들
Prologue# “500년 동안 비를 맞았으리라...” 마치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처연한 듯 평안해 보이는 봄비가 두오모 대성당의 2245개의 조상(彫像)들과 스킨십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작은 성모’라 불리는 그녀의 상징물 Madonnina는 가장 높은 스파이어 위에서 3900장의 금박으로 옷을 입고 빗속에서도 눈부시게 빛이 납니다. Scene 1#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여느 날의 봄비와는 사뭇 다릅니다. 1967년에 발표된 ‘봄비’를 제대로 된 가사도 모른 채 흥얼거려봅니다. 두오모 광장을 지나는 길에서 말이죠. 잠시 멈춰 서서 왜 내가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는지 생각해보니 단골 선술집 주인장이 부르던 가락, 표정 등이 뇌리를 스친 것입니다. 노신사의 주름진 손에서 베어지는 연어가 떠오릅니다. 두텁게 썰어냈지만,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그 맛은 욕에 가까울 만큼 걸걸한 언어를 구사하는 그의 화술과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맛을 보탭니다. 이 오너 셰프의 매력 가운데 한 가지는 60대라 하기엔 과감한 패션스타일인데, 진을 즐겨 입을 뿐만 아니라 컬러풀한 캔버스 슈즈를 좋아하는 유니크한, 꽃보다 청춘입니다. 피가학적 변태 ‘마조히스트’도 아닌데 가끔그
Prologue# 난기류가 피곤했던 여행자의 선잠을 깨웁니다. 넘실대는 파도에 순응하며 항해하는 배처럼 좌우로 일렁입니다. 스릴은 넘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함이 가득합니다.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바다 위를 떠다니는 노인, 그리고 배보다 큰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산티아고. 열정이 넘치는 장면이지만 두려움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노인의 그것처럼 숭고하지도, 열정적이지도 않습니다. 그저 긴 호흡으로 애써 긴장한 마음을 달래봅니다. 눈을 감고 있자니, 3주 동안의 한국 출장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갑니다. WSBC(월드슈퍼바리스타 챔피언십)은, 제가 대한민국 대표로 선발되던 2005년에 비하면 수십 배나 상금이 올랐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란 이름은 더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1999년 스타벅스 1호점 개점은 한국 내 커피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불러온 나비효과일지도 모릅니다. 이 표현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가 1972년 미국 과학부흥협회에서 실시한 강연의 제목인 ‘예측가능성 - 브라질에서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
Prologue# 최근 2017 동경 국제 호텔, 케이터링, 주방기기 박람회 HCJ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이 박람회는 식품 분야 중 설비, 시스템에 특화돼 있는 전문 박람회라고 합니다. 일본 디스트러뷰의 전시 서포트와 워크숍을 진행하고자 방문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전시회에 어떤 업체들이 무슨 아이템을 가지고 참여했는지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국제전시장으로 가는 길은 도쿄 JR 노선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상으로 다니는 전철 안에서는 바다를 둘러싼 풍경들이 펼쳐집니다. 태어나서 일본을 처음 방문하는 이탈리아 동료가 풍경에 매료됐습니다. 질투심은 아니지만 저는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서울에는 한강 위를 지하철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정말 멋있어.” 라고 말이죠. 출퇴근길에 보여지던 그 풍경들을 아무 감흥도 없는 일상의 한 자투리로 여겼는데,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언어에는 그리움이 묻어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복잡한데, 도쿄의 지하철 노선은 거미줄이 따로 없습니다. 1350만 명이 거주하는 일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Scene 1# 시오도메 역에 머물고 있던 저는 저녁 식사를 위해
Prologue#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날에 그렇게 비가 왔어요~’ 故김현식님의 ‘비처럼 음악처럼’이란 추억의 명곡입니다. 비가 내리지만 왠지 모르게 평온해지는 그런 날, 푸릇하게 돋아난 잎사귀들이 분명히 비를 맞고 있음에도 더욱 싱그럽게 보이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이런 날도 있지요. 비가 매섭게 내린 퇴근길의 오후였어요. 지하철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짧은 시간에 이미 온 몸이 젖어버린 날이었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기왕 이렇게 된 것 비를 흠뻑 맞으며 걸어보자’ 속으로 생각하며 자유인이 돼 집으로 돌아온 날이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지만 그저 대자연을 온몸으로 받아들였지요. 살면서 몇 안 되는 그런 추억입니다. 며칠 전 토요일의 비는 이런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추적추적 내렸고, 특히나 운전을 하기에는 시야확보가 어려운 ‘전설의 고향’ 버전으로 비가 내렸습니다. 예상치도 못하게 도로 위의 경계석과 접촉하면서 부지불식간에 두 개의 타이어가 터져버렸습니다. 당혹감과 마주하는 순간이 오면 한국에서의 삶이 얼마나 편리하고 빠르게 작동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주말 동안 굳게 닫혀버린 서비스 센터
Prologue# 오랜만에 된장찌개를 끓였습니다. 해외생활을 하면서 한식을 주로 먹지 않는 터라, 냉장고 안에는 김치 또는 한식에 쓸 만한 재료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12월 밀라노의 한인을 위한 송년행사에 참여해 운 좋게 상품에 당첨됐습니다. 고추장이며 된장 등을 경품으로 받게 됐지요. 유학생활을 하거나 해외에서 거주하는 동포들에게는 이런 재료들이 제법 쏠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한국인을 만날 기회가 좀처럼 없었는데, 이날 수백 명의 교민들이 모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늘 외국인들만 보다가 모여 있는 한국인들을 보니 낯설기도 반갑기도 했습니다. 밀라노란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이곳에는 성악과 패션을 공부하러 오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덕분에 주위에는 프로 성악가(깐딴떼)(Cantante)들이 많아서 귀가 호강합니다. 오페라에 관해서라면 문맹 수준에 가까웠던 제가 파바로티와 스페인의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같은 3대 테너는 물론 엔리꼬 카루소와 같은 이들을 알게 되고, 귀동냥을 하다가 이제는 스스로 유튜브를 뒤적거리기도 합니다. 삶은 긍정적으로 보면 참 다채롭습니다. 어쨌든 이런 연유로 된장찌개를 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