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위기일수록 빛을 발하는 럭셔리 시장. 불황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고가 상품이 잘 팔린다는 속설은 코로나 시대에도 단순한 속설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럭셔리 소비가 활성화되며 전체적으로 소비 시장이 위축돼있는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플렉스(Flex)’와 같은 신조어가 등장하며 라이프스타일이 변화, 럭셔리 소비의 주체로 MZ세대들이 새롭게 떠오르면서 럭셔리 브랜드 마케터들은 이들의 동태를 살피는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높아진 국내 호캉스 수요에도 여지없이 럭셔리 소비 니즈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에 특급호텔들은 각종 프리미엄 패키지를 통해 특수를 노리고 있다.
그동안 업계의 부침으로 특급호텔의 럭셔리 마케팅이 가성비 경쟁에 치여 갈피를 잡지 못했던 가운데 이번 호텔 럭셔리 수요의 반등은 특급호텔 포지셔닝이 제자리를 찾는 호재로 적용될 수 있을까?
코로나 우울증과 함께 터진 소비 본능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전반적인 소비가 침체된 가운데 명품 시장만은 활기를 띠고 있다. 롯데쇼핑이 발표한 올해 2분기 실적에 따르면 다중이용시설 기피 현상과 긴급재난지원기금 사용처 제한으로 할인점이나 롯데컬처웍스의 매출 부진은 심화됐지만 백화점은 해외 명품 소비가 회복돼 매출 6665억 원, 영업이익 439억 원의 실적을 기록, 지난 1분기 6063억 원, 영업이익 285억 원 대비 상승한 양상을 보였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가 조사한 ‘7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7월 롯데, 신세계, 현대 등 주요 3개 백화점 전체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2.1% 감소한 반면 해외 명품 매출은 32.5%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텔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한화리조트의 올해 7~8월 일반 객실 예약률이 80% 수준이었던 것에 비교해 스위트 객실 예약률은 90~95%에 달했다고 한다. 국내 최고급 호텔인 시그니엘 서울 역시 최근 주말 투숙률이 90%를 상회하고 있다고.
이와 같은 코로나 특수현상은 오랜 기간 제한된 이동과 소비 욕구로 쌓인 코로나 우울증을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소하려는 심리가 ‘상향소비(Upspending)’로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해외여행으로 아껴둔 비용을 국내 호캉스로 눈을 돌리게 되면서, 일상의 공간인 국내, 도심에서 기왕이면 보다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럭셔리에 값을 투자하는 것이다.
플렉스하는 자린고비,
새로운 럭셔리 주체로 떠오르나
‘욜로(YOLO)를 꿈꾸다 골로 갈 수 있겠다’며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하던 밀레니얼의 욜로 라이프스타일이 이제 더 큰 의미의 ‘플렉스(Flex)’ 소비로 밀레니얼은 물론 Z세대까지 흡수하고 있다. 플렉스란 사전적으로 ‘구부리다’, ‘몸을 풀다’라는 뜻이지만, 1990년대 미국 힙합문화에서 래퍼들이 부나 귀중품을 뽐내는 모습과 비슷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부나 귀중품을 과시하거나 뽐내다’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욜로와 플렉스를 비교했을 때 두 개념 모두 ‘현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욜로는 소소한 본인만의 만족을 추구한다면 플렉스는 본인의 만족을 타인을 향한 과시로 얻고자 한다는 데에 있다. 국내에는 <쇼미더머니>에 출연했던 래퍼 염따가 “플랙스 해버렸지 뭐야”라는 말을 하면서 유행되기 시작, 단순히 많은 ‘돈’을 자랑하는 의미보다 돈을 내 삶의 가치에 맞게 품격있는 ‘소비’하는 것을 자랑하는 의미로 자리잡혔다.
이에 ‘플렉스하는 자린고비’라는 말까지 나왔다. 식품이나 생필품과 같은 일상생활 용품에는 가성비를 따지는 대신, 본인의 가치관을 드러내 줄 수 있는 아이템에는 아낀만큼 과감하게 지불한다는 것이다. 아끼면서 힘들었던 보람을 플렉스 소비를 통해 얻는 셈이다. 구인구직사이트 사람인이 올해 초 20~30대 306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0년 플렉스 소비문화’ 설문에 따르면, 플렉스 소비에 대해 52.1%가 긍정적으로 응답, 그 이유로는 자기만족이 중요(52.6%)하고, 즐기는 것도 다 때가 있다 생각(43.2%)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으며, 스트레스 해소(34.8%)의 이유로도 플렉스 소비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실제로 26.7%의 응답자가 플렉스를 해봤다고 답했다. 그들이 주로 플렉스한 항목은 역시 고가의 명품(53.1%)이 가장 높았고, 뒤를 잇는 항목으로는 세계여행(28.6%), 음식(26.1%)인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SNS로 소통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시각적인 과시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항목들이 상위에 랭크돼 있었다.
“호텔 럭셔리 마케팅, 게임체인저 필요한 시기,반얀트리만의 럭셔리로 팬덤 만들어 나갈 것”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세일즈마케팅 박준용 팀장Q 코로나19의 영향인지 럭셔리에 대한 가치가 조금씩 변하는 듯 보인다. 그동안 지켜봐왔던 고객들을 통해 느낀 럭셔리의 변화는 어땠나?코로나19로 인해 소비자들은 더 극렬히 프라이빗함을 원하고 있다. 희소성이라는 기존 럭셔리의 가치에서 소규모의 프라이빗함이 더해지고 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추세는 보여지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반얀트리 고객은 젊고 트렌디하며 본인을 표현하는데 적극적인 이들이다. 이에 그들이 타인에게 표현하기 좋아할 만한 ‘리마커블(Remarkable)’ 상품과 서비스 구축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또한 최근 하루 평균 약 400~500명의 회원들이 호텔을 방문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동안 부의 가치를 호텔의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소유해 왔다면, 이제는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기 위해 호텔의 콘텐츠를 향유하고 있는 추세가 반영됐기 때문이라 해석하고 있다. 이에 회원들을 위한 소규모 클래스라던지, 골프 대회, 어린이날 혹은 핼러윈 행사, 송년파티 등 네트워킹과 커뮤니케이션, 다양한 경험의 장을 마련해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Q 반얀트리 호텔을 방문하는 럭셔리 고객의 특징은 무엇인가?최근 특히 두드러지는 점은 호텔을 통해 소비한 럭셔리를 표현하고 싶기 때문인지 스스로 호텔을 200% 즐길 만반의 준비를 해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누린 것에 대한 만족도를 타인의 시선과 관심, 호응으로부터 얻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호텔을 바라보는 시선이 우호적인 경우가 많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기 때문이다.덕분에 호텔의 바이럴이 저절로 되고 있다. SNS 모니터링을 하다 보면 우리 홍보팀보다도 사진을 예쁘게 찍어주는 고객들이 많더라(웃음). 호텔에서 따로 초대를 하거나 SNS를 하는 고객들을 위해 추가적인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님에도, 호텔의 서비스가 그들이 표현하고 싶은 콘텐츠가 된 것을 보면 매번 뿌듯함을 느낀다. 때문에 직원들과도 참고할만한 후기가 있으면 공유하고, 직원의 시선이 아닌 고객의 시선에서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편이다.Q 지금까지 고객들을 타깃으로 했던 프로모션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평소 객실 내부에 릴렉세이션 풀이 있다는 메리트로 유아 동반 가족의 휴가 및 이벤트 공간으로서 선호도가 높다. 이에 유아를 대상으로 한 럭셔리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유캉스’ 패키지를 선보였는데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특히 호응이 좋았던 컬래버레이션으로는 전 세계 엄마들이 선택한 영국 목튜브 브랜드 ‘스위마바(Swimava)’의 유아용 목튜브와 어린이용의 보행기 튜브였으며, 글로벌 영유아 뉴트리션 전문가 ‘거버(Gerber)’의 맛과 영양을 담은 오가닉 파우치와 에코백도 인기가 많았다.유캉스 프로모션이 높은 가격임에도 고객의 수요도, 이용 후기도 좋았던 이유는 릴렉세이션 풀이라는 프라이빗함, 그리고 적절한 컬래버레이션으로 객실 이외의 ‘머스트 아이템(Must Item)’이란 추가적인 가치를 선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요즘 럭셔리를 향유하는 소비자들은 가치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타깃하는 고객이 필요로 할만한 것들을 이용해보게 함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 잘 어필됐다. 이런 면에서 최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Q 컬래버레이션은 어떻게 이뤄지나? 프로모션 구성 시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다.컬래버레이션을 하는 목적은 고객에게 지불하는 값에 대한 혜택과 가치를 주기 위함이다. 즉 브랜드 제품을 구매해 제공하고, 이를 소비자 상품가격에 녹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특정 브랜드와 협업할 때에도 이런 부분을 강조한다. 컬래버 브랜드는 우리 호텔 콘텐츠를 통해 제품을 홍보하고, 호텔은 제품을 통해 고객들의 호텔 이용 가치를 높이는 그런 윈-윈 전략이 바탕이 돼야 한다. 가치가 있기 때문에 SNS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싶은 것이지 당연한 값에 당연한 것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면 고객들은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다.브랜드를 선정할 때에는 브랜드에서 타깃하는 고객의 지향점이 우리가 만족시키고자 하는 고객의 지향점과 일치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그 지향점이 잘 맞았던 브랜드가 스위마바였다. 브랜드에서 먼저 제안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마케팅팀에서 공격적으로 제안하는 편이다. 브랜드는 <호텔앤레스토랑> 매거진과 같은 업계지나 멤버십지 등 주로 잡지의 광고 지면을 통해 정보와 트렌드를 읽는 편이다. 컬래버레이션에 특별함을 더하기 위해서는 프리미엄 브랜드는 물론, 숨겨진 좋은 브랜드를 새롭게 발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Q 앞으로 호텔 럭셔리 수요는 어떠할 것으로 전망하는지, 이를 대비해 특급호텔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며 기존 마케팅의 게임체인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0년간 분석해온 멤버십 고객들의 럭셔리 니즈를 바탕으로 신규로 유입되는 1일 명예회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이유로 우리 호텔을 선택하는지 꼼꼼히 살펴보면서 막연했던 럭셔리에 대한 감이 잡히는 것 같아 내부적으로도 이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이제는 과거 호텔이란 어렵고 부담스러운 공간이라는 인식에서 디저트를 즐기러 부담없이 찾는 공간이 됐다. 문턱은 낮아졌는데 특급, 럭셔리를 표방하는 호텔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호텔만의 대체불가능한 무언가가 필요해진 상황이다. 이번 팬데믹으로 유니크하고 프라이빗한 것을 경험한 고객층과 아닌 층으로 호텔 이용 패턴이 극명히 나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특급호텔들은 뉴노멀로 빚어진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우리 호텔만의 유니크함이 무엇인지 찾아야 할 것이다. 반얀트리 호텔은 앞으로 디올이나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가 카페라운지를 운영, 명품을 소유하고 싶은 이들의 초기 단계 접근 방식을 제안한 것처럼 일반 고객들을 대상으로도 반얀트리의 팬덤을 만들어나간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