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일상 속에서 특별한 가치를 발견한 21개 호텔, 매력적인 일본 호텔 이야기

2019.09.29 09:20:58


새로움은 생소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익숙함을 한 뼘 비트는 것에서 비로소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전복선 저자의 <매력적인 일본 호텔 이야기>는 이러한 사실을 21개의 독특한 호텔을 엮어내 보여준다.
이 책에 사례로 등장하는 호텔들은, 너무나 익숙해 마치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요소들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으로 벼려냈다.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장소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었다. 책에 등장하는 21개 호텔의 공통점은 우리가 거니는 모든 일상 속 장소 하나하나에 숨결을 부여하고 이를 호스피탈리티 차원으로 발전시켰다는 데 있다. 책에 등장하는 말을 인용하면 “모든 과정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자연과 지역을 적극 활용하고, 지속적으로 지역민들과 소통함으로써 호텔이 지역의 랜드마크로서 자리매김하게끔 하기 위해서다. 4곳의 호텔은 이런 이상을 현실로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이들 호텔을 통해 하나의 콘텐츠로서 호텔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면밀하게 살펴보자.


숙박도 예술이 된다

‘BnA 스튜디오 아키하바라’
숙박 공간은 투숙객의 시간이 더해질 때 비로소 완전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BnA는 이 점을 깊이 있게 알려주는 공간이다. BnA는 여행자와 예술가가 상호호혜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했다. 예컨대 예술가는 자신의 객실을 꾸민다. 이후 여행자는 해당 객실에 묵거나 여러 물건을 소비한다. 그러면 이용요금의 일부가 예술가에게 돌아간다. 예술을 감상의 차원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여행자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체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때 예술작품은 ‘바라보는’ 단계에서 ‘머무는’ 차원으로 승화한다. 호텔이라는 요소가 결합됐기 때문이다. BnA는 생계가 어려운 예술가들의 현실을 바꿔보고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나섰다. 예술과 숙박을 결합한 프로젝트로 말이다.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방 하나하나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예술이 된다. 이른바 살아 숨 쉬는 예술이다. 묵는 이마다 제각기 다른 느낌과 감상을 느낄 것이다. 이보다 다채로운 객실이 존재할 수 있을까?


여행객이 직접 농사짓는 호텔
‘리조트 인 야마이치’

호텔은 몸과 마음을 달래는 휴식의 거처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고객의 경험에 ‘체험’의 요소를 가미하는 게 중요하다. 호텔은 체험적 요소를 도입한 동시에 고객과 강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리조트 인 야마이치는 봄철 모내기 및 채소나 과일 채집 등 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한 농사짓는 호텔이다. 단순히 자연을 바라만 보는 건 뻔한 일이다. 감상보다 중요한 것은 감각이다. 감각은 보는 것을 넘어 직접 만지고 먹어봐야만 지각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리조트 인 야마이치는 고객들이 직접 농사를 체험해볼 수 있게끔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고객이 직접 재배한 채소를 통해 프렌치 요리나 과일잼, 채소 절임 등에 도전할 수 있는 순서를 마련했다. 이로써 성수기와 비수기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사시사철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했다. 체험은 거리감을 좁히고 이야기를 만든다. 체험이라는 요소를 부각함으로써 고객들은 리조트 인 야마이치와 유대감을 쌓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다.



불편함도 취향이 된다
‘북 앤 베드 도쿄’

잠자리에도 취향이 있다. 어떤 사람은 푹신한 침대를 좋아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와 정반대의 성향을 띤다. 베개도 그렇다. 낮은 베개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높은 베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취향은 가지각색으로 갈린다. 사람마다 편하다고 생각하는 느낌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불편함도 취향이 된다면 믿겠는가? 여기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고객들의 인기를 끄는 한 호텔이 있다. ‘북 앤 베드 도쿄’다. ‘숙박하는 서점’이라는 콘셉트 아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북 앤 베드 도쿄는 간신히 몸만 누울 수 있게 방을 꾸미고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용으로 쓰게끔 공간을 구성했다. 다만 그 외 공간은 책을 꽂을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꾸몄다. 누구라도 언제든 책을 꺼내 볼 수 있도록 말이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이 ‘책’만 잘 읽을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편안함보다는 즐거움을 추구하겠다는 고집이 엿보인다. 불편하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불편함을 행복으로 치환할 줄 아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욕구와 호텔의 전략이 만나 새로운 문화를 이뤄내고 있다.



지역의 역사를 활용한 공유의 공간
‘하코바 하코다테’

호텔은 언뜻 프라이빗한 곳으로 비춰지지만 그 어떤 곳보다 퍼블릭한 곳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오가고, 그런 이들이 만나 여러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각종 행사가 호텔에서 이뤄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호텔은 ‘공유’의 역할을 한다. 하코바 하코다테는 최근 유행하는 공유경제 요소를 도입한 호텔이다. 공유 주방과 열린 라운지를 지향하며 관광객과 지역민이 같이 어울릴 수 있도록 꾸몄다. 이로써 관광객과 지역민은 함께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라운지에서 열리는 지역 예술가들의 전시회를 통해 서로 교류한다. ‘호텔이 꼭 관광객들의 전유물이라는 법이 있을까?’라는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하코바 하코다테는 은행과 미술관이었던 부지를 용도 변경해 재탄생한 곳이다. ‘일본의 미래를 느낄 수 있는 장소를 만든다.’는 기치로 운영된다. 과거와 현재를 엮어 미래를 그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였다면 은행과 미술관이 호텔로 탈바꿈할 수 있었을까? 확답을 내릴 수 없는 노릇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니다.”라는 대답은 부인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한 지역의 터줏대감으로서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을 다른 용도로 변경하는 건 쉽지 않다. 오히려 싹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게 더 쉽다. 비용도 후자 쪽이 많이 든다. 일본에 은행과 미술관을 활용해 가치를 재창출한 호텔이 있다는 것은 ‘건물’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건물을 보전하고 발전시킴으로써, 관광객과 지역민이 가치를 공유하는 장소로 탄생시켰다. 비용을 고민하기보단 가치를 탐구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물이다.



모방과 발명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일상적 요소라 해서 쉽게 지나친다면 혁신은 이뤄질 수 없다. 지역의 자연과 역사를 활용하고 그것을 ‘호텔’이라는 콘텐츠로 풀어낸 21개 호텔은 숙박 그 이상의 가치를 얻어냈다. 그들은 객실 수에 집착하지 않았다. 호텔이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에 몰두했다. 이제 그들은 지역의 상징물로서 이용자들과 하나의 스토리라인을 만들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말이다. 호텔이 문화 예술의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화라는 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서 지키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뤄나가는 것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말이다.”라는 한 강사의 말이 떠올랐다. 한일 간 경제전쟁으로 예민한 시기,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극복하려면 그들이 갖고 있는 철학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태도가 바뀌어야 도태되지 않는다. 호텔산업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