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21개의 호텔 속에서 호텔의 진정한 럭셔리를 경험하다

2019.09.19 09:20:32


책을 읽을 때 머리말을 먼저 읽지 않는 편이다. 머리말에서 작가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그리고자 했던 방향이 얼핏이라도 느껴지면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머리말부터 읽었다. 2년이 넘게 전복선 기고자의 글을 받아 보면서 그의 필력이나 소개하는 호텔들의 수준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보다도 그가 어떤 마음으로 책을 펴냈는지, 이 책에 담고자 했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호텔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소개하고 싶은 곳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책에 소개할 호텔을 선정하는 데 좀 더 신중한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 에필로그 中


전복선 기고자의 글에 영감 받아 “우리도 국내의 작지만 개성 있는 호텔들을 소개해 보자!”며 야심차게 새로운 꼭지를 기획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통 섭외가 쉽지 않아 7번의 연재를 끝으로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지면을 접었다. 사실 질투가 났었던 것 같다. 우리라고 못할 것도 없는데 계속해서 비교를 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일본인’이 아닌 ‘기업가’로서 가져야할 영리함과 집요함, 정교함이었다는 것을.


“상식은 진리가 아니다.”
- 도심 속 미래형 료칸, 호시노야 도쿄 中


이 책에 나오는 호텔들은 운영하는 이들의 사상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고, 어느 하나 비슷한 것이 없다. 상식은 진리가 아니었다. 호텔도, 료칸도 아닌 새로운 타워형 료칸을 선보인 ‘호시노야 도쿄’, 그리고 잠은 편안하게 자야 한다는 상식의 틀을 깨고, 불편하더라도 개인적인 잠의 취향을 존중하는 ‘북 앤 베드 도쿄’는 말 그대로 ‘숙박(宿泊)’에 대한 진리를 추구하는 호텔이다.


호시노야 도쿄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고객의 행동 패턴을 변화시켜야 했고, 도심 속 료칸은 어불성설이라는 보수적인 료칸 이용객들도 설득시켜야 했다. 특이하게도 호시노만의 고급 서비스를 고객의 ‘불편함’을 통해 이끌어 낸 것이다. 불편함을 참아내면서 고객은 특별함을 느낀다. 이는 호시노야가 전달하고 싶은 가치를 꾸준히 전달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새로운 길을 개척했으니 없던 일도 생기는 법이다.”는 저자의 말처럼, 없던 일을 감당해낼 확신을 모두에게 통용되는 상식이 아닌, 그들만의 진리에서 찾았다는 점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쉽게 허물고 짓듯이 과거를 지우는 일은 쉬운 일이나 계속 수리해 나가면서 새로운 가치를 더해가는 일은 여러모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이런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소소한 역사의 아름다움과 귀중함을 배우게 된다.”

- 공간의 변신 中


‘교노 온도코로’는 특이하게도 속옷 기업에서 일본 전통 민가를 보존하기 위해 운영하는 호텔이다. 그리고 크루즈 트레인 ‘트레인 스위트 시키지마’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힘들어진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국내 호텔도 지역상생과 가치공유에 대한 호텔업계의 시도들을 다방면으로 시도하고 있는데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다면, 이들이 추구하고 있는 방향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두 호텔은 모두 ‘보존’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뿌리를 내렸다. 태생자체가 그렇다보니 호텔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들은 모두 상생과 공유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운영을 하는 이들만이 아닌 고객의 자연스러운 참여유도와 참여의 의의를 납득하게 하면서 호텔만의 새로운 문화와 가치를 창출해낸다. 상생과 공유를 시도해본 이들이라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공감할 것이다. 그러니 두 호텔은 저자의 말 그대로 ‘그 어려운 일을 매번 해내는’ 곳들인 셈이다. 그들의 끝내주는 ‘근성(根性)’이 부러울 따름이다.


“타지마는 이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자신의 료칸을 보며 ‘요구되는 서비스는 고객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 천공의 숲, 텐쿠노모리 中


책을 읽다보면 소개된 21곳의 호텔의 공통점이 보인다. 바로 각자의 호텔들은 ‘그들만의 럭셔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천공의 숲이라는 이름을 가진 ‘텐쿠노모리’의 타지마 타테오 사장의 경영방식을 저자는 “비효율성의 극치”라고 표현한다. 수익과 효율을 따진다면 도쿄돔 13개와 맞먹는 18만 평의 규모에서 단 3개 객실, 2개의 쉬어가는 공간만 운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지마는 자신의 꿈꾸던 료칸의 모습을 실현시켰다. 저자가 본지 <호텔앤레스토랑> 매거진의 첫 칼럼 주인공으로 고른 곳인 만큼, 텐쿠노모리는 비슷한 규모, 비슷한 콘셉트의 호텔이 늘어나는 국내 호텔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통 객실 예약이 1년 후까지 차있다는 ‘카센안 세니온센 이와노유’는 료칸의 매너를 알고 이를 이해하는 고객만 받는다. 많은 투숙객들을 유치하는 것보다 료칸다운 료칸을 만들어가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손님을 가려 받는 료칸이라니. 그렇다고 해서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닌데 다소 황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노유의 손님이 되고 싶은 여행객들은 1년 전부터 대기명단에 오르기 위해 노력이다.


「매력적인 일본 호텔 이야기」에서 21개 호텔을 직접 만나보니, 저자가 소개하고 싶었던 많고 많은 호텔 중에서 어떻게 선택이 됐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비슷한 콘셉트를 추구하는 호텔들은 많지만 이들의 메시지는 같은 듯 다르면서 한마디로 명확했다. 게다가 이 책의 호텔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동안 우리에게 소개되지 않았던 호텔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저자가 21개 호텔을 일본이 아닌 한국에 소개하는 이유를 담고 있다.


최근 ‘차별화’된 색깔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국내 호텔들이 많다. 앞으로 오픈할 호텔도 이미 포화된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고민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의 호텔들은 ‘호텔’이라는 겉모습이 아닌 ‘숙박’에 대한 진리를 깨친 곳들이다. 그 진리라는 것이 숙박을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운영자의 사상에 따라, 고객을 생각하는 태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각 호텔들은 자연스럽게 차별화라기보다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들만의 아이덴티티를 갖게 됐다.


이 책은 단순히 특별한 호텔들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소개된 호텔들 속에서 숙박업의 의미, 혹은 호텔 기업가들을 통해 그들의 영리함과 집요함, 정교함을 배울 수 있다. 비싸고 호화스러운 것만이 럭셔리가 아니다. 규모와 정형화된 굴레에 갇혀 럭셔리의 참된 의미를 그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호텔만의 럭셔리는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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