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옥의 Erotic Food] 관음증(Noyeurism), 욕망의 시작, 완두스프
12월 초순인데 날카롭게 차가운 한기에 온몸을 태아의 형상으로 웅크려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결혼 2년차 동생 부부를 위해 퇴근 후에도 없는 약속을 만들고 늦게 집으로 가려고 노력하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누구와도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며 외롭다, 아프다 말하는 것도 초라해 보일까 싫어 저녁밥도 먹지 않고 집으로 오는 길에 온몸이 떨리고 감기몸살인 듯 끙끙 앓는 소리가 입 밖으로 절로 튀어 나왔다. “언니 밥 먹었어?”라는 물음에 “응”이라고 짧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와 몸을 웅크리며 두꺼운 이불을 덮었지만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콕 집어 어느 부위가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아팠다. 한참을 이불 속에서 앓다가 동생 내외가 잠에서 깰까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와 약통을 찾았지만 오래된 마이신과 소화제뿐이었다. 배고픔으로 현기증까지 날 정도여서 무엇이든 먹어야 했다. 냄비 속엔 짙은 녹색의 완두스프가 있었다. 소리를 죽여 스프를 데웠다. 데워진 스프에 생크림을 넣고 볼에 담아 두 손으로 스프 볼을 감싸 안고 있으니 몸이 녹는 듯하며 따뜻하고 부드러운 스프가 목을 넘어갈 때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단맛은 없었지만 생크림의 부
- 김성옥 칼럼니스트
- 2020-01-27 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