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우리나라의 병원들도 단순한 치료공간으로서의 병원을 넘어선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해가고 있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띈다.
환자만이 아닌 보호자 및 방문객들이 많은 공간이므로, 머무르는 많은 시간 동안 의미있는 체험을 제공하고, 환자들에게는 마음의 평온과 테라피 기능을 제공하는 의미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이는 기존의 병원 마케팅에서 한층 더 진화한 체험형 마케팅으로서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특별한 공간의 접점으로서 예술을 활용하고 있는 사례들이 늘어남에 따라, 공간 연출 또는 전시의 방향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분당 서울대병원 갤러리 ‘SPACE-U’
분당 서울대병원에서는, 다른 병원들과는 차별화된 콘셉트로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테마로 월터 길버트 박사의 사진전을 열었다. 유전공학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던 월터 길버트 박사는 2000년대에 들어 사진작가 활동에도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노벨상을 탄 과학자가 아닌 사진작가 월터로서 사람들에게 더욱 친숙하고 가깝게 다가가고 있음을 고려해,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도록 사진전을 열게 됐다. 실제와 추상이 공존하는 그의 작품들은 병원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다. 환자들에게는 심리적인 안정을 촉진하며 병원을 찾은 고객들에게는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회화작품의 전시가 아닌, 특별한 인물의 특별한 사진전을 진행하여, ‘과학’과의 연계성을 강조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병원의 이미지와 특성, 추구하는 이념과 정책에 맞도록 예술의 특성을 잘 활용해 기획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단지 공간이 있으니 작품을 건다는 의미가 아닌, 어떠한 이슈를 만들며 어떠한 이미지를 창출할 것인가를 충분히 고려한 전략적인 아트 마케팅의 활용이 필요하다. 이러한 부분은 모두 자생적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이 좋다.
서울 아산병원 갤러리
서울 아산병원 동관 1층에는 종합병원답게 널찍한 상설 전시 공간이 마련돼 있어, 일찍부터 입소문을 타 왔다. 일반 갤러리 못지 않은 다양한 기획전을 진행해 오며, 환자들뿐만 아니라 방문객, 원내 직원들에게까지 색다른 볼거리와 체험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회화작품 뿐만 아니라 미디어아트, 조각 작품 등 다양한 장르의 미술품들을 테마에 맞게 기획해 전시를 진행해 오고 있다. 단순히 남는 공간의 연출이 아닌, 전문 갤러리와 비교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퀄러티 높은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전시 오프닝 날에는 작품들을 보기 위해 병원을 들른다는 이들도 많을 만큼, 세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좋은 작품들이 빛이 나려면, 공간 연출 및 조명이 무척 중요하므로, 병원 내의 전시 공간을 원한다면 처음 설계시부터 이러한 부분을 신경써서 준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해 더큰병원 ‘숲갤러리’
김해 더큰병원은, 척추 및 관절 치료의 대표병원으로서 이름 나 있고 더불어, 고객들에게 무척 평온하고 호감을 주고 있는 ‘숲갤러리’로도 유명하다. 더큰병원 6층에 2014년 6월 개원시부터 자리잡은 ‘숲갤러리’에서는, 작품 감상 뿐만 아니라 전시 작품의 판매 및 구매 역시 가능하다. 평온하고 조용한 쉼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환자들이 휠체어를 탄 채로 관람하러 많이 들르는 장소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병원의 오픈된 일부 공간 또는 벽면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더큰병원에는 별도의 갤러리 공간으로서 마련돼 있다는 점이 범상치 않다.
인기 작품들의 초대전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후원 차원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전시들은 지역사회의 환영을 받고 있기도 하다. 2015년 7월에는 신라대학교 디자인예술학과와 MOU를 체결한 기념으로 교수 초대전과 대학원생 초대전으로 나눠 두 번에 걸친 기획초대전을 진행한 바 있다. 의술과 예술의 만남은 어색하고 생소하기는커녕, 매우 다양한 계층의 환호를 받으며 진행됐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병원들이 지역사회와 교류하고 지역발전을 위해 공헌할 수 있는 방법들은 다양하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테라피로서의 예술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는 이 시대에, 다방면의 욕구와 관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쉽게 주변에서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서울과는 달리, 예술의 접촉빈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지방에서는, 이러한 병원에서의 예술작품 감상 공간이 더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다. 김해 지역에서는 최초로 이러한 공간을 만들어 지역주민들과 소통해 온 더큰병원의 안목에 많은 이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예술, 고객과 소통하며 나눌 수 있는 매개체
대형 병원에서는 체계적인 아트마케팅의 일환으로서 상설 갤러리를 운영하는 경우들이 늘어나고 있고, 소형 병원들에서도 인테리어디자인 대신, 기본형 인테리어 및 조명 시설들을 구축한 후 미술 작품들을 로테이션하며 분위기를 색다르게 바꿔주는 경우들이 많아지고 있다. 단지 의사들 중에 미술품 컬렉터들이 많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고가의 비용을 들여 인테리어를 해두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오염되고 식상해지기 쉬우나, 벽면들을 장식하는 그림들은 언제든지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교체할 수 있기에, 매우 효과적인 인테리어 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술과는 거리가 먼 병원들에서조차 이처럼 공간의 활용에 미술작품을 활용하며 시너지를 내고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고가의 비용을 들인 인테리어 디자인도, 시간이 지나면 식상해지고 빛이 바랠 수가 있다. 미술작품을 활용한 공간들은 손쉽게 또 다른 분위기로 변신을 시킬수가 있다는 점에서 늘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가 있다.
병원들보다도 본질상 여가, 문화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호텔 및 외식업체들에는 이러한 점이 더욱 강한 장점으로 다가올 수 있겠다. 새롭게 변신하면서도, 다양한 고객들과 소통을 하며 나눌 수 있는 매개체로서 예술을 택해보면 어떨까. 딱딱한 비즈니스 미팅이 좀더 부드러워지도록 하며, 좋은 분위기에서 화합을 잘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일조할 수도 있다. 공간의 특별한 분위기와 의미를 살려 감성을 자극하는 연출을 통해 다양한 고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도록 할 수 있는 특별한 수단이 바로 예술이라 하겠다.
<2016년 1월 게재>
송지유 아트컴퍼니
유파트너스 CEO/ 수석아트디렉터
평창동계올림픽 홍보자문위원, 한국콘텐츠진흥원 평가위원, 행정자치부 지역개발 자문위원으로서, 박수근미술관 예풍경마을, DMZ 대성동마을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화장품 브랜드 리뉴얼을 비롯해 중대형 병원 오픈 및 전시, 카페 인테리어 구성 등 다양한 호스피탤리티업계의 공간디자인 및 연출을 해 왔으며, 글로벌 명품 기업의 프로젝트들도 전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