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과 함께하는 세계의 디저트] 설탕(Sugar)_ 1편

2021.03.05 09:00:24

 

디저트 재료들에 대한 연재를 이어가면서, 금월에는 음식문화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소중한 식재료 중 하나인 설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필자가 설탕을 좋아하는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탕을 좋아한다. 물론 설탕을 누구나 모두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인의 식단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 중 하나다. 원래 인간의 생리는 소량의 설탕이나 정제된 탄수화물은 거의 필요가 없게 진화했다. 사실, 설탕 자체도 우연하게 우리의 식단에 등장하게 됐다. 가끔식 종종 인간들도 사탕수수의 줄기를 먹는 경우는 있었지만, 사탕수수는 원래 돼지들을 살찌우기 위한 사료작물 정도였다. 


설탕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에 우리가 인지해야 되는 것은 설탕은 단순히 ‘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세기 동안 설탕은 약, 향신료, 왕권의 상징, 병의 원인, 중독, 억압의 상징 등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했다.


설탕이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 ‘꿀’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얼음이나 빙하로 덮여 있지 않는 육지 어디에나 꿀과 꿀이 있었다. 


선사시대에 사탕수수를 씹는 일도 있었겠지만, 사탕수수의 경작이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기원전 8000년 뉴기니의 원주민들에 의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그 후 2000년이 흘러, 사탕수수는 필리핀과 인도로 퍼졌다. 설탕은 인도에서 최초로 정제됐다. 기원전 100년의 인도 기록에서 사탕수수 압착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5세기 굽타 왕조 때 이르러서 우리가 아는 결정 형태의 설탕이 등장했다. 결정 형태의 설탕은 인도 지역 방언으로 ‘Khanda’라고 불렸는데, 훗날 이 단어는 영어단어 ‘Candy’가 탄생하는데 영향을 줬다. 327년 경 그리스 로마인들이 인도를 방문하면서 설탕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다. 인도인들은 당태종(626~649)이 설탕에 관심을 보이자, 사절단을 보내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법을 전수해줬다. 7세기에 중국은 자신들만의 첫 사탕수수 농장을 갖게 됐다. 인도 아시아대륙, 중동 그리고 중국에서 설탕은 요리와 디저트의 주재료가 됐다.


같은 시기 소량의 설탕들이 지중해를 건너와 의료용으로 내과의사들에게 소개되고 거래됐다. 당시 설탕은 소화불량이나 위장병을 위한 약으로 쓰였다. 650년경, 아랍국가들은 설탕정제, 재배, 요리에 있어서 세계 최고였다. 그들은 설탕을 단순히 약이나 향신료를 넘어 부와 왕권의 상징으로 개념화했다. 그들은 설탕을 이용해 오늘날에도 유명한 마지팬(Marzipan)같이 형태가 있는 디저트를 만들었으며, 설탕공예는 왕실의 호화로운 만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무슬림들이 설탕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집트인들은 가장 하얗고 순도 높은 설탕을 만드는데 특화돼 있었다. 


이후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달콤한 소금’이라고 부르며 설탕제조법을 전수해 갔다. 그들이 설탕을 유럽에 들여오자, 설탕의 인기는 유럽의 부유층사이에서 그 인기가 폭발했고, 설탕은 1300년대까지 가장 귀하고 값비싼 감미료가 됐다. 유럽의 중요 무역 창구였던 베니스는 십자군 이전부터 아랍권과 교역을 해왔기 때문에 반세기 동안 설탕무역을 손쉽게 독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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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호, Sugar 2편에서는 우리 근현대사 속에서 설탕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알아볼 것이다. 

 

 

 

미셸 이경란 
MPS 스마트쿠키 연구소 대표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고 오랫동안 제과 분야에서 일했다. 국내 최초 쿠키 아티스트이자 음식문화 평론가로 활동 중이며 현재 MPS 스마트 쿠키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 플루트 연주자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을 보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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