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의 Coffee Break] Florian_ 카사노바마저 극찬했던 카페

2019.05.10 09:20:24

Prologue #

시오노 나나미가 사랑에 마지 않았던 ‘주홍빛 베네치아’의 5월은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물의 도시’, ‘카니발 축제’, ‘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 베네치아를 부르는 수식어는 저마다 다릅니다.



Scene 1 #

산타루치아 기차역은 매일 8만 명, 연간 3000만 명의 이용자를 수용하는 곳으로 유럽과 이탈리아에서 가장 바쁜 기차역 중 한 곳이죠.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베네치아의 한 뒷골목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바람이 불면서 ‘끼익, 끼익’ 하는 소리가 납니다. 보트를 묶어놓기 위해 만들어진 나무로 된 물체가 움직이면서 내는 소리입니다. 너무 얕아서 파도라고 부르기엔 겸연쩍은 물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합주를 합니다. 평화로운 오후란 책에서 나오는 문장이 아니라 실체란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6세기 망망대해 갯벌뿐인 바다 위에 섬을 만들고 다리를 연결해 수많은 운하가 도시 내부의 지역을 이어줬습니다. 118개의 섬, 400여 개의 다리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해상도시가 건설된 것이죠.



하나의 국가로 1500년의 장엄한 시간을 이어온 역사를 지켜온 베네치아의 현재 모습은 15~16세기의 모습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 섬과 파스텔 채색의 알록달록한 집이 장관을 이루는 부라노에 이르기까지 관광객의 마음을 훔치는 광경이 널려있습니다.


베네치아 시내에서는 그 흔한 자전거를 구경하기도 어렵습니다. 2016년 10월 이후부터 법령이 통과돼 허가 없이 통행하는 이륜차에 대한 벌금을 부과하기 때문인데요. 이곳의 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시선에서는 조금 가혹한 것 아닌가하는 상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로 쓸려 다닐 정도의 거리에 자전거 부대가 등장을 한다면, 아수라장이 될 것임에 분명하기에 통제수단이 필요했을 겁니다.


Scene 2 #

덕분에 베네치아 에서는 수상보트를 시내버스로 이용하게 됩니다. 숨은 곳 여기저기를 방문하고 싶은 여행객이라면, 20유로, 종일권을 구입하면 횟수에 제한 없이 베네치아 곳곳을 누비며 이용할 수 있습니다. 뱃사공이 직접 노를 저으며, 좁은 수로의 곳곳을 구경할 수 있는 곤돌라가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죠.


현재의 베네치아 도시는 지난 16~17세기에 형성된 후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옛날 의복을 입은 사람들이 시내를 가득 채운다고 가정하면, 과거로 회귀됐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일 것입니다. 현대적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셈인데, 이것이 바로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은 산마르코 광장. 도시의 중심이자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가장 넓은 터이기도 합니다.


산마르코 광장에서는 종탑에 올라가면, 베네치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멀리 북쪽의 이탈리아 본토와 남쪽의 아드리아 해안이 펼쳐집니다. 크로아티아로 운행하는 크루즈가 있어서 2시간 정도면 크로아티아의 서해안에 도착할 수 있는 점도 베네치아를 찾는 이들이 급증하는 이유입니다.


Scene 3 #

바다의 풍경과 함께 선상에서의 여유와 낭만을 즐기려는 관광객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도제(국가원수)의 공식적인 주거지로 9세기 건설됐는데요.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1309년부터 1424년까지 약 10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지어진 것입니다. 고딕 양식의 건물로, 베네치아에서도 가장 뛰어난 조형미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산마르코 대성당과 마주한 ‘문서의 문’에는 그 옛날 정부의 포고문이나 법령 등을 게시했습니다. 베네치아가 속한 베네토 주에서는 날개가 달린 사자의 형상을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베네치아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흰색과 분홍의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장식돼 있는 외관은 관저라기보다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란 느낌을 갖게 하는데요. 두칼레 궁전에서 바다 쪽으로 보이는 다리가 하나있는데, 일명 ‘탄식의 다리’인 이 다리는 17세기에 세워졌습니다. 다리 건너에 감옥이 있었는데,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서 감옥에 도착하면 다시는 바깥세상을 보지 못할 것을 탄식한 데서 유래된 것입니다.


‘산마르코 광장’을 떠올리면 단연코 비둘기 공원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집사들이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에게 비둘기 먹이로 쓸 쌀을 쥐어주고 돈을 요구하는 이가 많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관광도시이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1980년대 12만 명이 넘었던 상주인구는 지난해 말 현재 5만 5000명으로 급격한 감소를 보였습니다. 오는 2030년이에는 상주인구가 전혀 없는 도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잿빛 전망을 내놓기도 하는데요. 문제의 근원은 부동산 가격폭등과 일자리 부족입니다.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부동산 소유자들은 주거용 아파트를 수익률이 높은 호텔로 바꾸고 있습니다. 비싼 임대료에 주민들이 하나 둘 고향을 떠나면서 남는 일자리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식당 종업원과 곤돌라 사공이 주류를 이루게 됐습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은 빼낸다.’는 형국이죠.


교통수단이 점차 발달하면서 당일치기로 이곳을 다녀가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차분하게 머무르면서 베네치아의 다양한 색깔을 즐기기 보다는 필요한 풍경을 사진에 담아내고, 최소한의 시간에 최대한 풍경을 찾아 발 빠르게 움직이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죠. 이러면 외형적 규모는 붐비지만 실제적으로 소비에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 되면서, 맛있는 음식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베네치아도 바가지요금에 맛없는 식당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습니다. 이탈리아에 살면서 이곳 특유의 풍부한 음식이 사라져간다는 사실이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심지어 올 초 베네치아를 여행하던 일본인 유학생 4명이 산마르코 광장 인근의 음식점에서 ‘바가지요금’으로 수난을 겪은 이야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스테이크 4인분과 생선요리 한 접시, 물을 주문한 이들이 받은 청구서에 적힌 금액은 대략 1100유로(한화 144만 원)였는데요. 볼로냐의 학교로 돌아간 이들은 이 식당을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가디언>지에 일본인 유학생들의 불편한 여행담에 대해 베네치아 주민 행동모임, ‘그루포 25 아프릴레’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알려집니다. 이들은 해당 식당에 대해 “베네치아의 명성을 위협하고, 모든 주민들에게 손해를 주는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베네치아 시장인 루이지 부르냐로는 트위터에 “이 부끄러운 사건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언제나 정의를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문제가 된 식당은 중국인 소유로, 이집트인이 운영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 여러가지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아 정말 아이러니하지요? 베네치아에 중국인 소유, 이집트인 운영이라니요, 이탈리아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다.’라는 분노가 표출되고 있는 거죠. 이탈리아인들은 자국의 문화에 대한 상당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루포 25 아프릴레는 문제가 된 식당이 위치한 마르차나 지역에서 전체 식당의 1%만 현지인이 운영하고 있으며, 역사 유적이 있는 지역 전체로 보면 절반가량만을 현지인이 소유한다고 밝혔습니다. 베네치아가 관광객들과, 이들을 이용해 주머니를 채우려는 외부인에게 잠식당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Scene 4 #

오늘 소개할 카페는 카사노바마저 극찬했던 베네치아의 자존심 플로리안(Florian)입니다. 이곳의 커피 한 잔 가격은 대략 6~8유로입니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 1유로에 판매되는 이탈리아의 여느 바에 비하면 이곳에서의 커피 한 잔은 사치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이 지닌 역사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야외에서 이들이 제공하는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연주의 향연은 이 것이 단순한 커피 한 잔의 가격이라고 말 할 수 없게 합니다.


카페 플로리안은 1720년에 처음 개업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장소는 현재까지도 이탈리아에서 운영되고 있는 카페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합니다. 플로리안 프란체스코니가 1720년 12월 19일에 베네치아의 승리를 뜻하는 알라 베네치아 ‘트리온판테’라는 이름으로 개업을 했는데, 곧 그의 이름 플로리아노의 베네치아식 이름인 플로리안을 따서 이름이 변화하게 된 것이죠.


카사노바는 플로리안이 유일하게 여성의 출입이 가능한 카페란 사실을 알고, 이 카페를 드나들면서 여심을 훔치게 됩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와중에도, 이 곳의 커피가 그리운 나머지 탈옥을 해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유유히 이 곳을 떠났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괴테, 바이런, 카를로 골도니, 찰스 디킨스와 같은 세계적인 문호와 유명인사들의 방문으로 플로리안은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커피가 아닌 문화 공간을 판매한다.’는 스타벅스의 회장 하워드 슐츠의 이야기처럼, 이 곳에서의 커피는 단순한 음료 한 잔 이상의 의미를 지닌 듯 보입니다.


Scene 5 #

18세기 중엽에는 두 개의 방을 추가했는데, 원로원의 방, 계절의 방 또는 거울의 방, 동양인의 방 또는 중국의 방이라고 불립니다. 이 방들은 각각 저명인사의 방(Sala degli Uomini Illustri), 원로원의 방(Sala del Senato), 계절의 방(Sala degli Stagioni) 혹은 거울의 방(Sale degli Specchi), 동양의 방(Sala Orientale) 혹은 중국의 방(Sala Cinese)으로 불립니다.



이 중 저명인사의 방은 줄리오 카를리니가 그린 카를로 골도니, 마르코 폴로, 티치아노를 비롯한 10명의 저명한 베네치아인들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원로원의 방에는 ‘국가를 지도하는 진보와 문명’이라는 주제로 예술과 과학의 세계를 그린 패널들로 벽이 장식돼 있는데, 이 방은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시작된 방으로 유명합니다.



계절의 방은 사계절을 상징하는 여성의 모습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 방은 베네치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식당이라는 뜻의 일 리스토란테(Il Ristornate)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19세기에 이 방이 카페의 식당으로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동양의 방은 극동지방에서 영감을 받은 파스쿠티가 그린 이국적 여인들과 연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20세기 초 추가된 마지막 방인 자유의 방(Sala Liberty)은 아치형 천장과 징두리 벽판, 수작업으로 채색한 거울로 장식돼 화려합니다.



이곳의 스토리를 모르는 채 방안에서 커피 한 잔을 즐긴다면, 단순히 유명한 카페의 조금 비싼 음료 한 잔을 마시는 기분이 들겠지요, 유럽에서는 스토리가 있는 장소에 위치한 호텔은 낙후된 시설에도 불구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시설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담아내고 있는 스토리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플로리안의 스토리를 알고 이 곳의 그림들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300년의 이야기의 흔적을 사색하며 즐기는 음료 한 잔은 분명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자영업자의 대란으로 불리며, 많은 높은 폐점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커피숍들은 부진한 경기에도, 큰 변화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변화의 양상이 빠를지 몰라도, 매일같이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카페에 들려 브리오쉬 빵 하나와 카푸치노로 아침을 달래는 삶의 형태는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Epilogue#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어라. 세기의 바람둥이였던 카사노바의 명언이라고 합니다. 무한경쟁의 시대 속에서 커피숍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란 어쩌면 여심을 공략하려 한 카사노바처럼,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무엇이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탈옥 가운데도 잊을 수 없었다던 플로리안의 커피 향처럼, 기억에 남는 커피 한 잔 하시길 바랍니다.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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